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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헤게모니없는 지배? / 일극? 다극? 무극?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6. 15.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 헤게모니 없는 지배?

윤치호는 영어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에 영어 공부를 시작하고, 거의 60 년 가까이 영어로 일기를 썼던 사람인데, 하필 영어로 쓰는 처음의 동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조선말로 주변 사물과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영어를 선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치호에게는 영어란 언어 그 이상이었습니다.

영어는 (기독교적)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호 체계이었으며, 성경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이었으며, 우월한 문명의 표징이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몇년간 거기에서 공부하고 감리교를 받아들인 윤치호에게는 미국은 그 어떤 현실적 관계를 떠나 그저 "이상" 그 자체이었습니다. 서재필이나 이승만, 아니면 식민지 시기의 안창호-흥사단-수양동우회 계열 인사들의 미국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오늘날의 뉴라이트들은 이런 미국관의 말류 쯤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발성이 강한 흠모와 선망, 우러러봄과 자기 동일시 열망 등을, 우리가 그람시적 의미의 "헤게모니"라고 칭하곤 합니다. 미국이란 완숙한 자본주의 문명의 헤게모니란, 자본 축적이 아직 덜된 후발 국가들의 지식인/대중들까지 자발적으로 따르게끔 만들 수 있는 사상, 이념, 문화적 저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연성 권력"이라고도 하는 것이죠.

미국의 헤게모니는 물론 미국의 지정학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한반도 남반부에서마저도 상당한 부침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다시 그 절정에 달하고 있지만, 1980-2000년대에 같은 경우 "한국의 반미 현상"에 대해 상당수의 논저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한데 반미가 가장 유행했던 1980년대만 해도, 학창 시절에 "양키 고홈"을 외치곤 했던 대학생들은, 석박사를 하러 그 뒤에 종종 바로 그 "양키"의 나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NL 계열을 제외하면 운동권도 밥 제솝의 맑스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론이나 브루스 커밍스의 사학 등 영미권의 진보 사상을 학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게 필적할 만한 이론적 자산을, 동구권과 일본을 포함하여 어디에서도 찾아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그 성향을 떠나서 궁극적으로 한국 지식인이라면 미국에서 생산된 학지를 조우하여 학습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 문화는...우리는 지금 K-팝의 세계적 성공에 열광하지만, 서태지와 김건모 이후로는 한국 가수들이 미국산 랩과 레게 (reggae) 등을 익히지 않았다면 과연 K-팝이라는 혼종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유튜브와 넷플릭스라는 미국산 플랫폼이 없었다면 과연 K-팝과 K-드라마는 지금처럼 전세계에 퍼졌을 리가 있었겠어요? 지식인 사회는 지식인 사회대로, 대중 문화는 대중 문화대로, 미국의 지적인, 문화적인 헤게모니를 떠나서 존재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미국이 완숙하고 오랫된, 정교한 (sophisticated) 자본주의 문화라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 국가에서의 자본주의란 아주 최근의, 아주 초고속의 축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상입니다. 자유주의적 레짐도 아닌, 독재 국가 주도로 축적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들이죠. 문화나 학지 생산의 영역을 보면, -러 근현대 문화의 상당 부분은 스탈린주의나 마오주의 등 "대안적 근대"(결국 실패한) 모색과 직결돼,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비전문가들에게 쉽게 수용되지 못할 것입니다.

-러의 사회 과학은 스탈린주의적/마오주의적 도그마의 완전한 지배를 벗어난지 30-40년밖에 안되는 데다 여전히 독재 국가의 사상적 억압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인지라, 사실 지금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미국산 이론들을 수입하여 그 토착화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엄청난 내부 시장을 보유하는 중-러의 대중 문화 같은 경우, 애당초에는 "수출"을 목적으로 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컨대 중-러 영화 생산의 상당부분은 전쟁과 "애국"을 테마로 하는 국책 영화들인지라, 한국 관람객들에겐 거부감 이외에는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문화가 녹아 있는 한류는 중-러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한국에서는 중-러 대중 문화의 팬들을 거의 찾을 수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미국과 전면적인 대립 국면으로 돌입한 중-러는 미국의 사상, 이념, 문화적 헤게모니 ("연성 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는 채 그저 경제와 군사 영역에서의 힘겨루기만 할 것인가요? 일단 그렇게만 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대립의 쌍방이 보통 서로를 미러링하는 법이고, 결국 자유주의/민주주의 등을 내세우는 미국에 맞서려는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대미 대립의 이념적 기반을 다진 뒤에 그 이념을 학술적으로 정교화시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대략적인 예상입니다만, -러의 대미 대립의 이념으로 현재에도 이미 "탈식민화", "구미권의 세계 지배 타파" 등이 제시되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탈식민" 등을 출발점으로 해서 중-러가 과거의 "3세계주의"를 계승하는 모종의 대항 헤게모니의 건설을 시도할 것 같긴 합니다. , 스스로를 이미 제1세계로 인식하는 한국인에게는 이런 대항 헤게모니의 이데올로기는 아마도 설득력을 갖지 않을 것 같기만 하죠.

대중 문화 영역에서는, 아마도 틱톡의 경우처럼 중-러는 미국발 전자, 영상 자본주의 모델을 출발점으로 해서 대미 경쟁을 시도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중국산 영화 <장진호>가 한국 전쟁에 대한 "시각"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사실 중국 국가주의적 시각만 벗어나면 이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물의 중국식 "복제판"에 가깝습니다. 복제는 시작, 그다음에는 할리우드의 생산 방식을 혼종화하여 토착화를 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경제와 군사에 이어 중-러는 이데올로기 생산과 문화 생산 영역에서도 나름 "대항 헤게모니" 구축의 시도를 할 것 같지만, 한국에선 그 시도들이 당분간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제 예상입니다. 이미 스스로의 자본주의적 정교함의 수준을 미국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한국인들의 관점에서는 중-러는 너무 지나치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막 치고 올라가는" 조야한 졸부 국가를 연상케 하는 것이죠...

일극? 다극? 무극? 파편화되는 세계질서와 윤석열 정부

이번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러시아가 "고전"을 한다든가, (전쟁의 애당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이미 사실상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꼭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말로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탈군사화"니 거론했지만, 크렘린의 본래의 목표는 우크라이나를 사실상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복종"시키는 게 목표이었죠. 이 목표의 달성에, 러시아는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복종"하긴커녕 서방 측과 더더욱더 밀착한 게 푸틴 침략의 결과입니다. 이 실패를 직면한 푸틴은, 지금 우크라이나 영토를 조금씩 점령, 강탈해가면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의지가 약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 기약 없는 전쟁의 장기화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침략국의 "실패"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거죠.

한데 러시아가 실패하고 있다고 해서 과연 "대리전"으로서의 성격도 농후한 이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고 있는 건가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본래 목표의 달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본래 목표는, 미국의 "후국" 후보국이 된 우크라이나를 침략함으로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교란"시킨 러시아의 경제를 제재 등으로 말라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침략 개시를 앞두고 미국 측이나 유럽연합 측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범할 경우 러시아 경제가 10%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무역이 거의 차단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사상 최강의, "지옥으로부터의" 제재를 미리 준비한 셈이었죠.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 실패했듯이, 미국도 러시아와의 경제전의 전장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광의의 서방 (유럽연합, 일본, 한국, 싱가포르, 북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포함)은 대러시아 제재를 결의했지만, 거기까지이었습니다. 서방과의 무역이 줄어든 만큼 러시아의 대인도, 대중국, 대중동 등의 무역이 갑자기 팽창해버렸습니다. 오일 등을 과거에 비해서 아시아쪽으로 훨씬 더 많이 판 덕에, 2022년에 러시아의 수출총액은 2021년에 비해 오히려 19,9%나 성장한 것입니다.

제재와 서방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의 철수로 2022년 경제 전체는 마이너스 2,1%의 성장을 했지만, 2023년에 플러스 2%대의 성장률이 예상됩니다. 미국의 노림수는 대러시아 제재를 통해서 러시아 경제의 폭락, 그리고 푸틴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민심 이반, 궁극적으로는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그 계획 역시 푸틴의 침략 계획만큼이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푸틴도 바이든도 실패한 이유는 사실 비슷합니다. 양쪽이 자신의 힘을 과신한 것이죠. 푸틴이 우크라이나 군사력이나 우크라이나인들의 독립에의 의지,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 의지 등을 과소평가하고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대 평가했다면, 바이든은 서방 바깥의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일 등)이 대러 제재를 했다고 해서, 중국이나 인도는 물론이거니와, 걸프 국가들이나 터키, 심지어 미국의 우방 중의 우방인 이스라엘 (!)마저도 대러 제재 대열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러 제재 체제 가담 압박도 무용했지만, 대러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우회, 면탈을 돕지 말라는 구소련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압박 역시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구소련 국가 중에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도 서방과도 매우 활발한 관계를 발전시켜온 카자흐스탄의 대유럽 무역은 2022년에 27%나 늘어난 것인다 그 추가분의 상당 부분은 카자흐스탄을 통한 러시아의 유럽으로부터의 "우회 수입"이라는 점을 관계자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걸프 국가나 이스라엘은 그렇다 치고, 카자흐스탄이나, 20235월에 러시아와의 항공 연결을 재개한 조지아 등마저도 미국의 말을 그다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경제 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민심 이반"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어려움을 적어도 아직까지 겪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국내외의 많은 분석가들이 미국 중심의 일극 세계체제가 지금 다극화되어간다고 진단합니다. 미국의 경쟁 초강대국인 중국이나 여타의 대국인 인도 등의 상대적 부상이 가시화된 만큼 그런 분석도 나올 수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현재 세계체제의 더 현저히 보이는 특징은 일종의 "무극"이라고 할 파편화 경향입니다. "미국의 말"도 과거와 같은 절대적인 힘을 지니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도 꼭 미국이 약해지는 만큼 강해지는 법도 없습니다.

미국의 우월성이나 패권이 상대화된 세계체제에서는 각자도생, 즉 국가마다의 다면적인 "실리 추구"가 보편적인 생존의 법칙이 되어갑니다. 그러니까 파편화되어 가는 세계체제에서는 터키처럼 나토 회원국의 입장을 견지하여 우크라이나에 무인기 등을 지원하면서도 러시아와도 정상 무역하고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까지 계속 건설하는 것은 차라리 "정상"에 가깝습니다.

중동의 대국인 터키는 그렇다 치고, 발틱의 소국인 에스토니아도 - 우크라이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 대러시아 무역을 계속 합니다. 에스토니아의 대러 수출은 2022년에 2021년에 비해 1% 정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러시아의 에스토니아 제품을 사주는 5위 파트너입니다.

사실 이처럼 각국의 대외적인 다변화, 관계의 다면화, 다각의 실리 추구가 대세인 요즘의 세계에서는, 윤 정부의 미국에 대한 "충성어린" 태도를 보면 볼수록 신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도대체 그에게 미국과 일본이 무엇이기에, 그가 이처럼 한반도 평화의 희망도 한국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손쉽게 희생시키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망국 외교를 한국의 시민 사회가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큰 비극의 서곡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기사 등록 202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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