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운영위원회 동지들에게 드리는 고언

전지윤


[이 글은 다함께(현 노동자연대) 내에서 한참 분파 논쟁이 벌어지던 2014년 초에 나온 글이다. 당시 다함께 지도부는 나의 이견 제시에 대해서 중징계를 하고, 정치적 비판보다는 온갖 인격모독적 비판을 했다. 또 우리를 개인주의, 분파주의, 아나키즘이라고 부당하게 공격했다. 이 글은 토론의 진정한 쟁점을 흐리는 이런 공격을 중단하고 정치적 토론을 하자고 호소했던 글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은 매우 무겁습니다. 최일붕 동지는 제가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가장 존경했고 가장 많은 것을 배웠던 선배 혁명가입니다. 지금도 이 점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일붕 동지가 남한에서 국제사회주의 조직을 창건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소련 몰락 이후의 혼란기에 대안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방황 속에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최일붕 동지가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에 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여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군대 제대 후 분명한 정치적·조직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제가 입수했던 국제사회주의자들의 팸플릿 <90년대 중반 남한에서 사회주의자의 행동지침>은 얼마나 가슴 벅찰 정도로 명쾌했던가요.


저는 최일붕 동지가 쓴 그 팸플릿을 속에서 제 청춘과 인생을 걸만한 길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참을 수 없었던 저 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정말 매력적이면서 기존의 좌파들에게 찾지 못하던 대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평생을 살겠다고 다짐했고 국제사회주의자가 됐습니다. 물론 국제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은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구속되기도 했고, 온갖 실수와 오류 속에 좌절하기도 했고, 생계와 건강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최일붕 동지는 제가 길을 잃고 헤매거나, 힘들어할 때, 믿고 바라볼 수 있는 선배 혁명가였습니다. 최일붕 동지는 저에게 항상 거인이었습니다. 최일붕 동지의 어깨 위에 올라서면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었습니다. 최일붕 동지는 많은 경우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핵심을 짚어내 주었습니다. 신문사나 운영위에서 최일붕 동지와 함께 했던 많은 순간들은 전략과 전술에 대한 살아있는 영감과 배움을 얻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최일붕 동지와 이 동지를 신뢰하고 함께 협력했던 동지들이 있었기에 노동자연대다함께는 남한에서 가장 중요한 극좌파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근래에 와서 저의 이런 신뢰가 많이 흔들리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중요한 많은 문제들에서 최일붕 동지와 운영위의 주요 동지들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동지들의 헌신성과 규율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뢰와 기대 때문에 이번에 저는 몇 가지 중요한 이견 때문에 논쟁을 피할 수 없다고 예상하면서도,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는 최일붕 동지 등이 제가 제기한 쟁점들에 대해서 얼마나 날카롭고 반박하기 힘든 정치적 비판과 분석을 준비하고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일붕 동지 등이 쌓아 온 정치적 권위와 그런 주장의 설득력 때문에 제 주장의 영향력이 커지기는 힘들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협의회 때 제 주장이 반향을 크게 얻지는 못할 수 있다는 예상도 하고 있었습니다.

 

어긋난 기대와 예상

 

그러나 제 기대와 예상은 많은 부분에서 빗나갔습니다. 진지하고 날카로운 정치적 반박이 아니라, 저에 대한 온갖 인격적 모독과 비난과 음해가 쏟아졌습니다. 저의 이마에는 온갖 부정적 딱지가 붙여졌습니다. ‘전지윤이 이랬다더라는 온갖 왜곡 과장된 소문들 속에 저는 순식간에 비열한 도덕적 파탄자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주장의 영향력이 커지고 협의회 때 반향을 얻기는 힘들 수 있다는 예상은 맞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최일붕 동지나 000 동지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렇게 상황을 몰아가는 것을 보면서 제가 겪은 실망감은 매우 큽니다.

2차 자료집에 실린 최일붕 동지의 글(‘민주집중과 단결 분파에게 주는 고언’)을 보면서, 저의 이런 실망감은 더 커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글에 대한 답변을 쓰는 것입니다.


최일붕 동지는 이 글에서 저와 저의 주장에 대한 동지들의 신뢰를 깎아 내리기 위해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원들을 편 가르기 갈라치기 하거나 음모적으로 조직”(이하 215216)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회원들에게 값싼 위로를 제공하며 다가가 운영위원회와의 감정의 골을 더 벌려놓으며 적나라하게 비윤리적 행동을 했다고도 하십니다. 제가 무자비하고 강경한 특정 운영위원을 탓하며 그를 속죄양삼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네 탓이 아니라 운영위 탓이야. 특히 그 사람”, “그가 그랬던 것이지 난 안 그랬어”, “내가 진실을 말하니까 그들 모두가 나를 해치려 하는 거야.” 무슨 영화 속의 대사처럼 제가 말했다는 내용을 이렇게 인용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몰래 만나서 간교한 혓바닥을 놀리며 온갖 사악한 꼬임을 하고 있는 모사꾼입니다. 실제로 최일붕 동지는 접선”, “추파”, “이간질”, “비열한 행위”, “음험한 모략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말입니까? 말이나 글로 남아있는 어떤 근거가 있습니까?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막연한 전지윤이 그랬다더라입니까?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란 것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면서 얼마든지 뒤틀릴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저를 인격 파탄자로 만들어서 도대체 어떤 효과를 얻으려는 것입니까?


이것을 보면서 저는 정말이지 누가 회원들을 편 가르고 갈라치기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기자들을 제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최일붕의 꼭두각시라고 봤다구요? 도대체 제가 언제 누구에게 이런 식으로 기자들을 모욕했다는 것입니까. 그러면 제가 지난 몇 년간 기자들에게 보였던 태도는 전부 위선이라는 것입니까. 기자들과 저 사이에 불신과 반감을 키우는 데 정말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것 같군요.


제가 그럼 어떻합니까? 징계 철회가 다급한데요하면서 냉담 회원들에게 서명받은 실용주의무심결에 드러냈다증언은 또 어떻습니까. 증언은 저와 징계 반대 서명을 해 준 회원들을 갈라치고 있습니다.


제가 마치 그 회원들을 한심하다고 무시하면서도 급한 김에 실용적으로 서명을 받은 듯이 말입니다. 진실은 제가 징계에 반대한 사람들의 서명을 받은 게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제가 이번에 저에게 서명해 준 동지들에게 너무나 큰 고마움과 동지애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뒤풀이 때도 녹음기로 내가 한 말을 녹음하고 나중에 그런 맥락과 뜻이 아니었다고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방식으로 저를 몰아세워서 저와 저의 주장에 대한 동지들의 신뢰를 떨어드리고 싶었다면, 저와 회원들 사이에 불신과 감정의 골을 키우고자 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제가 처음에 신문사에서 나와서 몇몇 동지들과 글을 교환하며 토론할 때만 해도 저를 대하는 동지들의 태도가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왜 내가 사임했는지 궁금해 하고 저를 걱정해주면서 귀를 기울이는 동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차 자료집, 각 지회 모임에서 전지윤 성토, 15일 공개 토론회, 2차 자료집 등이 이어지면서 저는 싸늘하게 저를 쳐다보거나 차갑게 외면하는 동지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설득과 동의

 

뿐만 아니라 최일붕 동지 등은 제가 제기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반박보다는, 진정한 쟁점을 흐리는 자세를 거듭 보여주고 있습니다저는 종북몰이에서 우리가 좀 더 원칙있는 방어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 사태의 진실을 돌아봐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노동정치연대에 대한 참가를 재고해 보자고 했습니다. 철도파업 개입 등에서 보인 우리의 태도에서 보완할 지점을 제기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 우리 활동에 대한 진지한 돌아보기와 주로 전술적 보완점을 제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대해서 저는 1차 자료집과 2차 자료집에서 치밀한 논리와 분명한 사실에 입각한 설득력있는 반박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 글들에서는 도대체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이라고 보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2012년 경선부정에서 당권파의 조직적·체계적 부정이 있었다는 건지 없었다는 건지, 우리 탈당의 명분(이유가 아니라)이 경선부정이기는 했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노동정치연대 참가를 재고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등을 분명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경기동부연합의 파르티잔이라며 저를 매도하거나, ‘전지윤이 쓴 성명서를 꼼꼼이 못 봐서 이렇게 됐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 더 많았습니다. 자료집들의 분량 자체도 저에 대한 온갖 딱지 붙이기와 인격적 매도에 더 많이 할애돼 있었습니다. 최일붕 동지의 글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일뿐 아니라 더 두드러집니다.


이처럼 동지들의 반박속에서 제가 설득되거나 동의할만한 근거를 찾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면 저의 문제제기와 의구심의 바탕이 된 상황 전개와 사실들은 추가로 계속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내란음모 사건은 재판이 진행될수록 국정원의 말도 안 되는 조작이었다는 점이 증거를 통해서 너무나 분명해지고 있습니다경선부정은 얼마 전 광주지법에서 70여명 대리투표 유죄 판결이 났는 데, 그것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아니라 진보신당 출신 000 후보 쪽이었습니다.

노동정치연대의 정의당, 노동당 등을 포함하는 진보혁신회의건설 방안은 민주노총 중집 회의에서 거부됐습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도 참여케하는 방안을 강구한답니다.


철도파업에서는 노동자들 자신이 민영화 반대/부정선거 규탄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1·2부로 나눠진 두 집회에 적극 참가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일붕 동지는 ‘2009년 쌍용차 파업 때 우리의 관점이 이번에 달라질 이유가 뭐냐는 제 질문에 그 때 내가 틀렸었다고 너무 간단히 넘어갑니다.


결국 저는 최일붕 동지 등에게 정치적으로 설득되지 못했고, 제 생각을 철회할만한 현실의 상황 변화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우리 단체가 이 쟁점에서 취한 입장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가지고 일관된 실천을 해나가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런데 제 이런 이견과 의문을 담은 글은 삭제되거나 배포가 차단당했고, 사임의 변과 기고한 독자편지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견과 의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토론을 통해 가다듬어 협의회 때 제시하려던 움직임은 징계 경고를 받아야 했고, 결국 징계를 당했습니다.


최일붕 동지는 저의 주장을 별의별 얘기이고 친진보당 편견이라고 지칭하면서, “포럼의 발제자나 기관지가 그런 주장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219)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주장을 알릴 수 있도록 포럼 발제 기회를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일붕 동지가 혼동하듯이 <레프트21>편집자 사임의 변을 실어달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부회보인 <뉴스레터>사임의 변을 실어달라는 것이었고, 온라인 독자편지로라도 내 입장을 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편집권이 있으니 안 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개별 배포하는 것을 징계 위협하고 결국 징계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발전한 이견

 

이런 과정은 결코 저의 이견과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정치적으로 설득시키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우리 단체가 이 정도의 이견도 정치적 토론이 아니라 규율조치로 접근하는 상황이 됐는가라는 심각한 문제의식만 더 키우게 됐습니다.


따라서 제가 제 자신의 오류를 가리고 우리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고 징계 문제와 민주주의 문제를 들고나오고 있는 것”(220)이라는 최일붕 동지의 주장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징계 문제는 제가 들고 나온게 아니라 저에게 징계 경고를 하고 실제 징계를 하면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제가 징계를 일부러 유도했다고 보는 게 아니라면요.


정치적 이견을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규율조치로 접근하면서, 정치적 이견이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한 이견으로 발전해 나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이 진정으로 회원들의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서 집중된 행동을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고 봤습니다.


진정한 행동통일은 많은 사람들이 설득과 동의를 통해서 그 정치적 방향이 옳다고 확신할 때 더 효과적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도부의 권위도 정치적 설득을 통해서 회원들의 지지를 얼마나 잘 이끌어내는 가에 따라서 쟁취되는 것이지, 행정·규율 조치를 통해서 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최일붕 동지가 저와 민주집중과 단결분파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는 것은 부당할뿐 아니라 진정한 쟁점을 흐리는 것입니다.


중앙 지도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217), “느슨한 연방적 조직 구조를 지지”(221) “아예 집중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222), “중앙집권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223)


최일붕 동지는 이처럼 우리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는 내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분파가 단체와 원칙과 규범, 성취해야 할 기준의 차원에서 입장을 달리한다위선적인 단결보다 노골적인 분열이 1천 배 더 바람직”(218)하다는 트로츠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노동계급의 중심성과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실천과 전술에서는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언급까지 넌지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쟁점을 흐리고 존재하지 않는 차이를 과장하면서, 동시에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의 책임을 저와 분파 구성원들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노동계급 운동에 책임있는 자세로 동참한다면, 당신은 남들에게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215)

개인의 자존심보다 계급투쟁의 과제들이 중요하고 그 과제들에 당신이 헌신해야 한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사회주의자의 자세일 것”(216)

개인주의적 풍조가 규율있고 헌신적인 혁명가 조직의 성장을 방해하는 시대정신에 전지윤이 일조하는 게 원칙있는 혁명가로서 분별력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216)


최일붕 동지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우리는 노동자 투쟁 개입을 위해서 지금까지처럼 엄격하기 이를 데 없고 무자비한 훈련을 해 나아갈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자존심고 마음에 상처를 입든다든가, 그래서 중앙에 원한을 품고 복수나 응징을 한다든가 해도 우리는 모두 '부수적 피해'로 간주할 것이다. 혹독하고 인정사정없는 훈련을 충분한 기간 동안 받은 전투원들이 전장에서 사상을 당할 확률이 더 작다.” (223)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은 우리 분파 구성원들이 운동의 대의보다 개인의 자존심을 더 앞세우는 사람들이고, 정직한 평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개인주의적 풍조에 타협해서 혁명조직 건설이라는 과제를 방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분파는 계급투쟁에 헌신하지 못하고, 상처입은 자존심을 앞세우며 사사로운 복수심에나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진실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도 아니고 진정으로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해주지도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 봅시다. 제가 지금 엄격하고 혹독한 활동에 지쳐서 이러는 것입니까? 상처입은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까?

저는 규율있는 상근 생활을 잘 지켜왔다고 자부합니다. 부족한 잠도 이겨내고,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여가도 즐기지 않으면서 활동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분파에 모여있는 동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인가 정치적 이견인가

 

이 동지들 중에서는 정말 청춘을 바쳐서 활동에 투신했던 많은 동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활동에 쏟아 부었던 이 동지들의 열정과 시간은 계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동지들이 활동의 한복판에서 뛰어다니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상처입은 자존심이라구요? 제가 이번에 이견을 드러내놓고 논쟁할 것을 결심하면서 그 과정에서 입을 인간적 상처를 걱정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숨기고, 모른 척하면서 활동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논쟁 속에서 저와 분파 구성원들은 예상보다 더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상처는 원인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견이 원인입니다. 이 정치적 이견을 드러내놓고 논쟁하기 위해서, 이 과정에서 입을 마음의 상처도 무릅쓰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주기보다 정치적 토론을 하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던 동지가, 투쟁의 대의를 우선하던 동지가 왜 활동에서 멀어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동지들이 다 나약해서, 투쟁의 대의보다 별것아닌 자존심을 앞세워서, 원래부터 개인주의적이어서, 아나키즘적이어서, 연방주의적이어서 입니까? 심지어 알고 보니 매우 비열하고 음모적인 도덕적 파탄자였는 데 그것을 숨겨왔던 것입니까? 이것은 매우 간단하고 편리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를 봐도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최일붕 동지 등 현 지도부 동지들의 몇 가지 정치적 입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진실과 정의에는 잘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납득하지 않는 사람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주의자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주장과 평가를 바탕으로는 결코 뚝심을 가지고 자신감있게 활동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나 자신이 했던 활동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가 되지 않을 때, 그 평가가 쉽게 동의되지 않을 때, 제대로 된 평가와 방향 정립을 위한 시도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느낄 때 사회주의자의 자신감은 떨어지고, 활동은 삐걱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의구심과 이견을 제시하기 시작한 사람을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잔뜩 딱지 붙이고, 다른 열성 회원들이 그를 멀리하도록 온갖 불신을 조장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심지어 규율과 행정 조치로 그에게 예전같은 헌신성을 강제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런다고 강력한 지도력이 유지되고, 진정한 집중주의가 가능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그런 사회주의자들을 냉소 속에서 수동화시키거나, 멀어지게하거나, 혁명조직 건설의 길에서 믿음을 잃고 이탈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것은 단지 부수적 피해라며 무시할 문제가 아닙니다.


최일붕 동지는 회원이 단체에 책임지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보고를 한다는 뜻”(222)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집중과 단결 분파의 성원 거의 전부는 평소에 자신이 입수한 노동자 운동 관련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우리 분파 구성원들에 대한 이 같은 별 근거없는 편견은 정말 그만 봤으면 합니다. 당장 우리 분파의 000 동지는 지난 몇 년간 0000 투쟁에 개입하면서 신문에만 십여 차례나 소식을 보내주었던 동지입니다. 이에 대한 피드백이 없었던 게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것보다 더 주목하는 것은 최일붕 동지의 일방적인 시각입니다. 최일붕 동지는 회원이 단체에 보고할 필요는 강조하면서 단체가 회원에게 보고할 필요는 경시하고 있습니다. 당장 제 경우에 운영위원회 내부에서 어떤 이견이 논쟁되고 있는지 처음에는 기자들에게, 나중에는 회원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운영위원이 중도 사퇴하고 신문의 편집자가 교체됐는 데, 그 사실과 이유를 회원들에게 보고할 의무를 져버렸습니다.


최일붕 동지의 이런 일방향적 시각은 가차없고 무자비한 훈련을 받다가 자존심이 상해 중앙으로부터 멀어진 회원들”(215)을 언급할 때도 다시 드러납니다. 여기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회원들을 가차없고 무자비하게 훈련시키는 중앙은 누구에게 훈련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중앙에 대한 이견과 비판은 시도 때도 없이 사선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 걱정하면서 말해야 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전통

 

중앙이 전지전능하고 무오류라고 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것은 가능할 수도 바람직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발전하면 기층 회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중앙 지도부의 정치적 오류를 바로잡고 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은 줄어들 것입니다.


이 속에서 지금까지도 이미 쌓여 온 의문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20032004년에 우리 단체로 쏟아져 들어왔던 젊은 활동가들중 많은 수를 잡아두고 간부로 성장시키지 못했는가. 신입 회원만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 활동가들이 회전문처럼 빠져나가는 일이 왜 반복되는가. 어느 순간부터 정체하기 시작한 회원 규모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2009년부터 말해 온 노동계급의 귀환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학생팀이나 노동조합팀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책임자를 교체하고 더 뛰어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철도 파업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고 하는 데, 그러면 이랜드 파업 등에서 우리가 했던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했던 활동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없이 다음 투쟁 개입으로 옮겨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메뚜기 뛰기가 아닌가.


이것은 결코 무자비하고 혹독한 훈련에서 낙오한 사람들의 내향적 고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평가할 때,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계급투쟁에 개입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토론이 특정한 시와 때에만 허용되지 않고 자유롭고 풍부하게 이뤄질 때 우리는 노동자 투쟁에 개입해서 더 효과적으로 시의적절한 전술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계급투쟁 속에서 우리가 사상을 당할 확률이 더 작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최일붕 동지가 문제의 핵심이 당에, 또 계급에 책임지려는 진정한 활동가들과, 당과 계급에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 채 자유와 권리만 주장하는 선전주의자, 개인주의자들 사이의 차이에 있[]”(223)고 규정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에게 트로츠키나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일시적으로 멘셰비키(선전주의자, 개인주의자들)의 편에 서는 인생 최대의 실수는 피하라는 충고입니다. 저와 우리 분파가 멘셰비키(선전주의자, 개인주의자들)의 후예라는 모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저와 우리 분파야말로 레닌과 볼셰비키의 진정한 전통을 계승하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통은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전술을 결합하며 계급투쟁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오류를 직시하고 그것에서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민주적 토론을 통해 정치적 확신을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강력한 행동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191710월의 봉기는 당원 다수의 확신과 노동계급의 지지 속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혁신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최일붕 동지와 현 지도부가 우리와 함께 이런 작업을 계속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기대를 져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정치적 이견을 토론과 설득이 아니라 규율과 행정조치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중단돼야 합니다. 진지한 정치적 반박보다 인격적, 지엽말단적 비방과 공격에 매달리는 일도 사라져야 합니다. 민주집중제를 진정으로 강화하고 우리 단체를 더욱 건강한 혁명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혁신이 시도돼야 합니다.


우리 단체가 노동계급에 뿌리 내리기를 더 본격화하기 위해서도 이것은 필요한 작업입니다. 최일붕 동지는 “[우리가 이런] 논쟁을 벌이고 있다면 철도나 다른 노동자들이 우리 단체를 어떻게 보겠는가”(219)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치적 이견이 진지하게 토론되지 못하고 이런 식의 징계와 소수파에 대한 몰아내기로 치닫는다면 선진 노동자들이 우리 단체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열성 회원들의 헌신성만 찬양한다고 과연 우리 단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요. 지도부의 권위와 신뢰가 더 높아질 수 있을까요.


진정으로 강력한 지도력은 규율이 아니라 정치적 설득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미 저한테서는 오랜 세월과 경험 속에서 쌓여 온 최일붕 동지와 현 지도부 동지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금이 더 커지다 못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 없기를 진정으로 바랄 뿐입니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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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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