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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우크라이나, 세계 재분할의 첫단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10. 23.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19972월까지 러시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비록 외국에서 살아 왔지만, 간헐적으로나마 러시아 매체들을 접하곤 해 왔습니다. 확실히 기억되는 건 하나는, 2004년까지 러시아 매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렇다 할만한 관심이란 전무했습니다. 러시아는 내부 문제 (체첸 독립 운동의 무장 탄압 등)부터 많았던 것도 한 이유이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를 그저 러시아 영향권의 일부분으로 파악한 것도 큰 이유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이 파악은 그리 틀리지도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크라브추크 대통령 (1991-4)이나 쿠츠마 대통령 (1995-2004)은 소비에트 시대 공산당/군수 복합체 출신들로서 서방과의 관계도 발전시키려 했지만, 기본적으로 모스크바에 대한 "후국" 내지 하위 동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심지어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 핵 무력의 주력 미사일인 R-36,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드니에프로시의 Pivdenmash/Yuzhmash이라는 초대형 공장에서 제조되곤 했었습니다. 자국의 핵 미사일의 생산을 의뢰할 정도라면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의미하는 건대, 그 때까지만 해도 러-우 관계는 대체로 그랬습니다. 예컨대 한-미 관계 정도야 아니지만, 대략 "후견-피후견 관계"에 가까웠습니다.

2004년은 분수령이었습니다. 그 때에 푸틴이 적극적으로 미루었던 도네츠크 지역 자본의 대표격인 야누코비치가 대선에서 지고, 그 대신에 유체느코라는, 약간 더 친서방적 인물이 당선됐습니다. 사실 유체느코만 해도 모스크바와의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 예컨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약간 더 중립적인 포지셔닝을 추구해보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좀 더 과감하게 - 서방 시스템에의 편입의 가능성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독립국"이라기보다 일종의 "후국", "러시아 영향권의 일부"로 파악했던 푸틴은, 이를 "서방의 러시아 영향권 침탈"쯤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 그 어떤 행위자성도 부여하려 하지 않았던 그는, 우크라이나의 "서방으로의 회향""서방의 계략", "흉모"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실질적으로는 "서방", 즉 당시의 미국의 부시 행정부나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등과 점차 가까워지길 원해도 예컨대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 가입 등을 시기상조로 보거나 아예 반대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서방으로의 편입"을 가장 원했던 것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 정치자본가 (political capitalists: 정권과 유착된 자본가)들의 군림을 견제하려 했던 우크라이나의 일부 간부층과 자본가층, 그리고 중산층이었습니다. 한데 푸틴으로서는 그들은 주체적 "행위자"일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친러파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2010-14년에는 우크라이나는 다시 러시아 매체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진 듯했습니다. 모든 것을 바꾼 건 2013년 마이단 시위와 야누코비치 실각, 그리고 훨씬 더 친서방적 신권력의 출현이었습니다.

사실 마이단 이후 정권 교체가 되고 나서 먼저 집권한 야체뉴크 징권까지만 해도 나토 가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푸틴은 마이단 운동에 대해 "크림 반도 합병"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2014년말에 우크라이나 국회가 우크라이나의 비동맹적 위치 관련 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하여 공개적으로 "나토 가입을 원한다"는 의향을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넘어간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여전히 "중립적" 위치에 있었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푸틴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의 강탈" (크림 반도 합병, 돈바스 일부에서의 친러 괴뢰 국가체 부식)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었을까요? 사실 아무리 제국주의 열강이라 해도 타국 영토 강탈은 요즘 세계에서 결코 흔한 일은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은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라크를 점령하고 나서도 이라크의 국경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푸틴이 이 정도의 무리수를 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경쟁 열강으로 파악한 미국의 "경향적 쇠락"이 있었습니다. 푸틴은 2008년 공황, 2009-11년 미국의 이라크 철수, 아프간에서의 친미 정권 안정화의 실패, 중국의 경제적 부상 등을 "미국 헤게모니의 종말"로 이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패권이 이 정도로 "누수 현상"이 심하다면 세계 재분할에 착수할 수 있다고 보고, 선수를 치면 칠수록 본인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 우크라이나가 미국 편에 넘어갈 일이 두려워서 우크라이나 영토의 강탈을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미국이 어차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데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을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미국 패권의 위기란 푸틴에게는 "천추의 기회"이었던 것이죠.

푸틴의 예측이 맞았을까요, 틀렸을까요? 아직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아 속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지금 내릴 수 있는 저의 예비적인 결론이란, 자국 군대나 우크라이나 군에 대한 푸틴의 예측은 한참 현실과 떨어져 있었지만, 세계 정세에 대한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어차피 동심일체인 유럽 연합과 미국의 군사 보호령인 한, 일 등 이외에는 대러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은 거의 없고, 유럽 연합이나 한국, 일본도 사실 우회 무역 (3국을 경유하는 무역)을 통해서 거의 전전과 같은 수준의 대러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러시아에 다소 친화적인 중립의 자세를 지키고 있는가 하면, 니제르에서의 친러 성향 군부 세력의 쿠데타나 하필 푸틴의 생일 (107)을 기념하듯 (?) 일어난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공격 등은 계속해서 미국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공격만 해도 미국이 막후에서 추진해온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및 사우디 석유 감산 조치 철회, 유가 인하 유도 계획을 탈선시키거나 유보시키는 데에 기여해, 사실 미국의 대외 정책으로서는 상당한 패배에 해당됩니다. 미국이 이처럼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에, 푸틴의 군대는 아무리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많은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아무리 그 약점들을 다 노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궁극적으로 추가적인 우크라이나 영토의 강탈에 "성공"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이 영토 강탈은, 2020-30년대의 헤게모니 교체 시대의 "세계 재분할"이라는 지옥의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됩니다. , 앞으로 더 많은 전쟁들이 예상되는 거고, 이 전쟁들이 한반도까지 휩쓸지 않도록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할는지 이제 고민할 때입니다.

(기사 등록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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