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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21세기형 혁명은 어떤 모습일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2. 6.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직업상 "혁명사의 연구자"입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한국의 1920-30년대 혁명 운동 연구에 몰두해왔는데, 그 작업을 하면서 이웃나라 혁명사,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혁명사 등도 같이 엮어서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 생각을 여기에서 한 번 적어보지요.

대체로 세계사에서는 영향력이 큰 혁명들은 소위 "헤게모니적 과도기"와 오버랩됩니다. 세계 체제의 패권 세력들이 교체될 때에 대개 그 교체기는 동시에 전란기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네덜란드 등 18세기 초반의 패권 새력들이 힘을 잃어 영국의 패권이 공고화되는 과정은 바로 18세기말-19세기초의 전란기인데, 미국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등은 바로 그 때에 터졌습니다.

헤게모니 교체기/전란기에 혁명이 일어난 나라들의 차후 궤도를 보면 대개 그 국력이 강화돼 세계체제 안에서는 패권세력이나 준패권세력, 열강으로 부상되기에 이르는 것은 보통입니다. 여태까지의 세계체제 패권 국가 (네덜란드, 영국, 미국)나 그 패권에 도전하는 강국 (러시아, 중국, 이란 등) 모두 다 혁명을 한 번 거친 사회들입니다.

20세기는 그야말로 "혁명의 세기"인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영국과 미국 사이의 패권 교체 시기/전란기인 1914-45년 사이, 내지 그 직후에 국제적인 "힘의 공백" 속에서 일국 혁명이 성공하기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상적인 글로벌 패권 시스템이 돌아갔다면 아마도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열강 간섭군에 의해서 그냥 조기에 압살을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데, 1차 대전 직후의 분위기에서, 이미 전쟁으로 피로해지고 제대만 바라는 영국, 프랑스 징집병들에게 러시아 혁명 압살을 강요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마찬가지로 한국 전쟁 (1950-53) 이후에 미국의 전세계적 패권 유지 시스템 (군사기지, CIA 간섭 등등)은 어느 정도 제도화되었지만, 그 전인 1949년에 중국혁명이 이미 성공한 겁니다. 그 혁명이 성공하고 나서 미국 정계 안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중국을 놓쳤는가"를 가지고 자책의 분위기가 팽배해, 나중에 그 자책들은 매카시즘 마녀 사냥으로 이어졌죠.

그러면 일단 패권 교체기와 세계적 전란기는 혁명 세력에는 "기회"입니다. 한데 그 세력들은 역사적으로 부단히 진화되기도 하죠. 프랑스 혁명의 급진파 (자코뱅파)는 주로 수공업자 등 중산계층의 하층 (도심 중하층)을 그 기반으로 삼았는가 하면, 이미 부분적으로 산업화된 1917년의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들은 직업 혁명가 (중급 이후 당 간부)를 주로 도심 중하층 등을 중심으로 해서 모집했지만, 지지기반은 그 밑의 도심 대공장 숙련공 계층이었습니다.

중국 혁명의 경우에는 지도층은 대체로 부유층의 주변부 (주은래, 등소평, 아니면 현 습근평 주석의 부친인 습종훈 등은 전부 다 중소 지주 집안 출신이었습니다...)이었지만, 지지기반은 아예 빈농 계층이 된 것이죠. , 시대가 내려갈 수록 보다 주변적인 계층 (중하층에서 숙련공, 숙련공에서 빈농층)이 혁명의 주력 부대가 되는 경향입니다.

오늘날의 예컨대 인도를 보면 낙살라이트 혁명 운동의 주력 부대는 단순한 빈농층도 아니고 아예 빈농 중에서도 오지의 피차별 부족 집단 등 인도 사회의 가장 주변화되고 가장 잔혹한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혁명 세력들은 진화되고 그 지지기반 역시 "주변으로, 또 주변으로" 계속 옮겨지고 있지만, 혁명이 일어날 나라는 16-17세기나 지금이나 대체로 같은 유형의 나라입니다. , 대개는 "자본주의 발전이 막 시작되어, 전자본주의적 모순들과 자본주의적 모순들이 복잡하게 착종된 사회".

20세기초반의 러시아나 1920-30년대의 중국은 바로 그런 사회를 대표합니다. 한데 예컨대 오늘날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국가 주도의 과독점 자본주의 발전의 수준이 꽤나 높은 사회들입니다. 1980년대의 한국에서는 "혁명"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신자유주의화 이후 한국이 세계체제 핵심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 분위기도 확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단 세계체제 차원의 또 하나의 전란기는 지금 시작 단계입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어 그 도전세력들이 곳곳에서 공격을 개시하고 있는 "초전" 단게죠. 우크라이나는 이미 재작년부터 불타고 있고, 가자 전쟁은 벌써 홍해와 레바논 남부, 일부 이라크와 시리아의 영토로, 그리고 예멘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영 선박과 기지들이 공격을 받고, 미국 미사일이 예맨과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를 겨냥해 날아갑니다.

지중해 지역 북동부 (우크라이나)와 남동부 (근동)의 완충 지대들이 이미 열강 세력 사이의 대리전 중이고, 이 세계 전쟁의 화염이 동아시아로 옮기는 것은 아마도 궁극적으로 시간의 문제일 것입니다. 일종의 "슬로우 모션", 각종 대리전 형태의 제3차 대전 속에서 선진권의 의회주의 제도마저도 파열음을 자꾸 냅니다. 지금 미국 대선에 이르는 과정만 봐도, 이 정도의 과열된, 사법부까지 정치화시킨 이전투구는 아무래도 거의 "사상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한국 검사 정권의 각종 희비극들도 이 전세계적인 "선진권 민주주의 위기"의 일부입니다. 탈세계화 경향 속에서 "국가"가 경제의 주된 단위가 되어 "국민 경제"로의 회귀가 본격화됩니다. 몇년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이 전세계적인 "난리" 속에서는 아마도 다시 "혁명"의 기회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혁명일 것이고 어디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인가요?

일단 "장소"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막 산업화가 본격화되거나, 산업화가 폭발적으로 크게 일어나고 있는 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지역은 아마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할 것입니다. 지금 제조업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가 가파르게 많아지고, 그 노동자들이 거의 복지 혜택을 받지 않고 잔혹한 착취를 당하는 나라들은 서쪽 터키와 이집트부터 동쪽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방글라데시까지 꽤나 많습니다.

이 신흥 노동 계층의 상당부분은 극도로 주변화되어 있는 불안 노동자들입니다. 잃을 게 그다지 없는 수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공업단지 안에서 수년 동안 같이 일하고, 같이 투쟁의 경험을 쌓는 것이 바로 "노동 대투쟁 폭발"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가 1980년대의 한국 노동운동사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특히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여성 노동자 (방직업) 역할이 클 것을, 여러 가지 역사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에 충분히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새로운 부분은,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이 특히 기후 위기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혁명 운동의 폭발이 어쩌면 기후 위기로 인한 자연조건의 대대적인 악화 등과 연동될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데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를, 결국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선진권 국가들의 민중이 갖고 있죠.

구미권에서의 기후 위기 해결, 탈성장을 향한 대중적 운동과 신흥 공업 지대들의 혁명 운동이 만약 서로 연대할 수 있으면 우리는 어쩌면 다시 한 번 "세계 혁명"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글로벌 전란기야말로 전쟁을 필수적으로 낳는 자본주의가 왜 폐기해야 하는지 모든 세계인들에게 가장 잘 보여주는 시기죠

(기사 등록 20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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