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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어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한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4. 2.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cNally)

번역: 박상우

 


우리는 기존 국제사회주의 경향(IST)의 전통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정치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해 왔다. 따라서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고민과 시도를 해 온 경험들도 살펴보고 있다. 그 점에서 캐나다에서 데이비드 맥낼리 등의 주도로 ‘New Socialist’가 해 온 고민도 참고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 글은 이들이 IST와 분리하며 199633일의 뉴 소셜리스트 대회에 제출했던 토론 문건이다. 비록 시간이 꽤 지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들이 담겨있기에 번역했다. 


출처: http://newsocialist.org/component/content/article/2-uncategorised/95-what-kind-of-socialist-organization

 

차례


1.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조직에 대한 질문

2. 활동가와 사회주의자로 조직하기

3. 사회주의 출판물을 통해 조직하기

4. 오늘날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

5. 새로운 방향으로의 첫걸음

6. 조직구조와 절차에 대한 몇 가지 제안

 

I.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조직에 대한 질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관점이 조직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좌파 내에 존재하는 세가지 주요 입장과는 다르게 구분된다. 일단, 이러한 다른 입장들을 검토하는 것이 우리들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첫번째는 (좌파 내에서) 지배적인 입장인데, 바로 의회-개혁주의 모델이다. 이것은 의회 내 지배권을 장악하는 데 집중하는 대중 선거 정당을 만들어내려는 조직화 방식이다. 이 모델에서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개혁주의 정당의 선거 캠페인 이미지나 슬로건을 구매하는 수동적인 지지자(투표자)가 되어버린다


전문적인 직업 정치가, 노조 임원들과 같은 소수 엘리트가 사회 변화를 가져올 능동적 대리인이 되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기껏해야 시다바리(footsoldier: 조직 내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지도 않고 높은 지위에 있지도 않지만, 실제 업무는 도맡아서 처리하는 사람)가 될 뿐이다.


두번째는, 종파주의로 묘사될 수 있는 다양한 극좌파적 접근 방식이다. 종파 모델은 대개 러시아 볼셰비키의 경험을 터무니없이 과장해서, 소수의 열성적인 혁명가들이 스스로를 노동 계급 운동의 전위부대로 선언하는 방식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동 계급을 위해 종사하는 진정한 지도부라고 믿는다


역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마법에 가까운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 하에, ‘전위부대분파는 자신들의 중요성에 대해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망상을 키워간다. 교조적인 슬로건(이미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진 다음에 분석을 함)이 정직한 이론적 분석을 대체하고, “지도부가 만들어서 전달하는, 어느 대중 운동에도 실질적인 토대를 두지 않은 노선이 민주적인 토론과 논쟁을 대체한다. 종파가 보통 열성적으로 조직을 지키려는 동력과 헌신적인 회원들을 보유할 수 있는 데 반해, 그 경직성과 교조주의 그리고 맹신은 조직이 진짜 대중 조직으로 성장할 능력을 박탈한다.


마지막으로는, ‘자연발생적 혁명주의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접근들이 있다. 자발적 혁명주의는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자 조직의 책임을 부인하며, 모든 것이 노동 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는 자발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자발적 혁명주의는 그 성격상 숙명론적이다. 사람들에게 어떤 엄청나고 신비로운 돌파구를 가져다줄 거대한 역사적 순간을 기다리라고 한다. 아나키즘은 그러한 자발적 혁명주의가 가장 선명하게 발전한 형태이다. 조직을 건설하려는 어떠한 헌신적인 시도에도 대개 적대적이기 때문이다.[각주:1]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접근은 이 모든 방식과 다르다. 의회-개혁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사회의 혁명적 변화가 다수 대중의 투쟁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자주적 행동과 스스로의 힘을 통한 해방을 필요로 한다


동시에, 우리는 노동 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하는 힘이 새로운 형태의 대중 정당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그 대중 정당은 구 질서에 맞서 투쟁하는 그들의 활동을 조직화할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정당이다.


종파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개혁주의를 부정하고 혁명 정당을 부르짖으면서 자신들만의 엘리트주의에 빠져간다. 그 엘리트주의는 선택된 소수, 진정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 자칭 [똑똑하고 명확한] 전위부대가 역사적 진보의 핵심 요소라고 믿는다.


그들이 필수적이라고 제안하는 모든 것들은 오늘날 자신들의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고,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노동 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원칙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많이 입으로 말하건, 종파주의 단체는 필연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전체 역사적 투쟁이 노동 계급의 자주적 동원이 아닌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연발생적 혁명주의자들은 조직의 문제를 조직을 없애버림으로써 해소한다. 개혁주의나 종파주의로 빠지지 않는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라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단순히 문제 그 자체를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한번, 민중의 대리자(the agency of people)는 제거된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해결해줄 역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년 전에 엥겔스가 주장하였듯이, “역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엄청난 부를 소유한 것도 아니고 전투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재산을 소유하고 행동을 하고 전투를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들이다.”[각주:2]


사회주의자 조직에 대한 물음은 우리가 숙명론을 거부하고, 능동적인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들을 더 유용한 활동가와 사회주의자로 만들려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II. 활동가와 사회주의자로 조직하기


(앞 문단의) 이 마지막 지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핵심 도전과제는 당면한 투쟁과 운동 안에서 효과적인 활동가와 사회주의자가 되는 법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로는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대중] 활동가 아니면 사회주의자 둘 중 하나만 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활동가가 되는 법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냥 어떤 캠페인이나 연합체에 참여해서 그들이 활동을 건설할 때 함께하면 된다. 이러한 일은 보통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접근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인식을 건설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측면에 존재하는 조직화된 사회주의자그러나 사실상 운동 바깥 영역에 존재하는 - 를 살펴보자. 이 사람은 최악의 경우에 (극도로 종파주의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거나, 자신의 조직을 건설하고자 하는 현실적목표를 위한 편리한 수단으로 투쟁을 이용한다. (이들에게) 그 순간의 실제 투쟁은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사회주의 종파에 사람들을 끌어모을 장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만 투쟁의 중요성을 파악한다.


우리가 추구하려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운동 내부에서 진실하고 원칙을 지키는 그리고 건설적인 사회주의 활동가로 기능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이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투쟁의 본질적인 중요성이 자주적 행동을 건설하고 사람들을 동원하고 정치화하며, 실질적인 이득을 얻어내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생각들을 토론해내고, 선전물과 출판물을 배포하고, 사람들을 모임에 초청하고 또 그럼으로써 사회주의자 의식과 조직을 강화하는, 개방적인 사회주의자로서 작동하길 원한다.


엥겔스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1848년 독일에서 있었던 민주적 혁명의 고조기 맥락에서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자신과 마르크스가 좌파 민주주의 신문(신라인신문; the Neue Rheinische Zeitung)을 발행하기로 결정한 것과 또 그것이 투쟁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보면:


우리가 독일에서 막대한 부수의 신문을 창간했을 때, 그 슬로건이 자동적으로 (신문의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그건 다만 민주주의 슬로건일 수도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세세하게 특별히 프롤레타리아적 성격 당시 신문 표제에는 아직 새길 수 없었던 - 을 강조하는 슬로건이었다. 만일 이것을 거부했었다면, 만일 우리가 가장 진보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 운동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다만 잡지 귀퉁이에다 조그맣게 공산주의를 설교하면서 소규모 종파를 건설하는 것 외에는 남아있는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각주:3]


이 글에는 두가지 매우 중요한 요점이 있다. 첫째는, 엥겔스가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닌), “가장 진보적이고 프롤레타리아적인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운동(19세기 중반 독일에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기본 슬로건에 대해 주장하는데, [궁극적으로는] 노동 계급의 정치 권력 장악만이 진정으로 이 투쟁을 이겨낼 수 있다고 모든 면에서 세세하게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방식의 기본 공식을 발견한다: 열성적인 활동가로 구실을 하되 운동의 좌파로서, 어디에서나 세밀하게 노동 계급 투쟁과 사회주의자 관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활동가로 작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노동 조합에 대한 마르크스의 접근 방식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요점을 발전시킨 할 드레이퍼(Hal Draper: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주요 이론가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대안적인 대척점으로서가 아닌 계급 운동의 충실한 좌파로 활동해야 한다. 그들은 (노동 계급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노동 계급과 함께, 현재 노동 계급이 처한 그 지점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대중이 얼마나 그들의(사회주의자) 관점으로부터 뒤쳐져있던지 간에 진정한 계급 조직의 일원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운동이 가지는 제한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최고의 투사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또 동시에, 이 연계를 통해서, 사회주의자는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사용하여, 포기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숨기는 일 없이 또 잘못되거나 효과적이지 않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으면서 전체 운동을 더 높은 수준의 계급 투쟁 노력과 의식으로 밀어 올려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한다.”[각주:4]



III. 사회주의 출판물을 통해 조직하기


위에서 내가 인용한 1848년의 예 - 마르크스가 당시 편집했던 신라인신문” - 를 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운동 내부에서 활동하는 동안 사회주의자는 투쟁 안에서 자신들의 독자적 입장을 광범위하게 전파할 도구를 필요로 한다고 굳게 믿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명백하게 사회주의자 관점을 드러내기보다 당시 운동의 지도부 뒤에 몸을 숨겼을 것이다. 사실, 사회주의자가 출판물없이 개방적이고 원칙적인 기초 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누구든 중요한 투쟁 가운데서 활동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를 떠올릴 때마다, 그들을 출판물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마르크스와 <신라인신문>, 볼셰비키 운동 초기 때의 레닌과 <이스크라>, 다가올 혁명을 준비하던 시절의 레닌과 <프라우다>, 1918~19년 독일에서의 로자 록셈부르크와 <적기>, 1919~20년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파업과 공장 점거 시절의 안토니오 그람시와 <신질서>.


출판물은 몇 가지 핵심 과제를 수행할 수 있기때문에 필수적이다. 일단, 사회주의자의 견해, 분석, 실천을 위한 제안을 전파하는 도구가 된다. 둘째, 모든 부문의 투사들과 활동가들을 위한 토론과 논쟁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한 집단이 다른 집단들과 자신의 경험을 비교해보면서 경험을 일반화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견해와 경험, 수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함께 연결됨으로써 투쟁 내부에서 사회주의 활동가로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출판물은 그 본질상 공개적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경향의 견해들을 구체화시켜준다. 생각에 얼굴과 모양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어느 신비로운 조직에 속해있다고 말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실질적인 경험과 관계맺고 참여하는 외향적인 출판물을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출판물은 사회주의자들이 주변 동료들이나 같은 학교 학생들, 다른 활동가 등등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 중심 역할을 한다. 또 출판물은 사회주의 조직에 참여하는 우리의 활동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도록 해준다.(“우리는 이 잡지를 통해서 조직한다.”)



IV. 오늘날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


지금까지,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전통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화에 대한 질문에 접근하는지와 관련해 몇가지 생각들을 대강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날 캐나다에서의 (그리고 세계 많은 부분에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일단,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노동 계급의 선진 부대” (투쟁적이고 계급 의식이 있는 수천 명의 노동자)로부터 의미있는 지지를 받아본지 이미 50년이 넘었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 좌파의 역사적 전통에는 간극 또는 단절이 존재한다이러한 결과로, 마르크스주의 집단은 수십년간 철저하게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어왔다.


둘째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대면하는 문제는 전투적인 노동자 선진부위를 조직으로 건설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선진부위는 조직화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 대신, 그렇게 선진적인 노동자 계층은 그들 자신의 투쟁으로 창출될 것이다. 25년 전에 던컨 핼러스(Duncan Hallas)가 썼듯이


동료 노동자들 사이에 굳게 뿌리내리고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의식을 가진 수천명의 조직된 노동자 계층은, 인간적측면에서 손과 머리를 통해 일일이 탄생되어야만 한다.”[각주:5]


이를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그저 빨간 깃발을 흔들면 노동자들이 달려들어올 거라고 믿은 것이 1930년대 이래 극좌파들에게 질병처럼 퍼졌던 오류다.


우리가 인식해야할 세번째 요소는, 1964~76년 기간의 대중 투쟁을 통해 창출된 새로운 좌파의 태반이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한줌 정도의 주요 조직은 생존하였지만 (여러가지 강점과 약점을 동반한채), 남아있는 조직 대부분은 당시 좌파가 저지른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 현재 남아있는 조직들 대부분은 확고부동한 종파주의적 형태의 조직이고 새롭고 역동적인 성장을 위한 역량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각주:6]


마지막으로, 1989년 이래 도래한 새로운 정치적 시기에 의해 창출된 사회주의자 조직화의 실질적 가능성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동유럽에서의 민주 혁명, 넬슨 만델라 석방과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회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민주의 정당) 정부의 형성, 걸프전 반대 운동, 선거 불안정과 폭발적 대중 시위(1994년 이탈리아, 1995년 프랑스, 훨씬 작은 규모로 발생했지만 온타리오 1995~96)1989~92년의 불황과 사회공공 서비스를 둘러싼 격렬한 싸움에 의해 발생하였었다


새로운 유형의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가 1930년대 스타일의 자본주의 위기로 돌아갔다거나 몇 년안에 혁명적인 조직이 작은 대중 정당이 될 수 있는 대중 급진화시기에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각주:7]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발견해야할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저항의 부활 속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정치적 물음이 발생하고있고, 이런 결합으로부터 사회주의 정치를 향한 새로운 청중이 형성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좌파가 형편없이 빈약하고 작으며, 대부분 조직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종파주의적으로 과장된 형태이고 새로운 투쟁에 미치는 사회주의 정치의 영향력은 극히 경미한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직)내부 삶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 모두에서 정치적으로 원칙을 지키고 반-종파주의적이며, 개방되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조직을 향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V. 새로운 방향으로의 첫걸음


현재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려는 진정한 호흡이다. 이 문건의 서두에서 다루었던 세 가지 흐름(의회-개혁주의, 종파주의, 자발적 혁명주의)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뉴 소셜리스트와 관련 조직은 이러한 새로운 방향을 구현하길 희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원과 성취물들에 대해 극도로 겸손한 입장을 취해야한다(이와 관련해서는 the editorial “A Radical Voice in the Struggle,” New Socialist #2, March-April 1996을 보시오.). 적절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원칙을 지키는 마르크스주의 정치와 매우 개방된 형태의 조직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조직을 만들어내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제 이 공식의 두번째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회주의 종파 조직들은 근본적인 문제로 감염되어 있다. 그 근본적인 문제란, 구성원들에게 (점점 더 메시아적인)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어디 딴세상 조직같은 성격의 종파 조직이, 대부분의 활동적인 좌파들에게는 거주가 불가능한 곳이 돼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거의 20년 전에 던컨 핼라스와 토니 클리프가 지적한 내용이다. ‘국제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미국 조직에게 글을 보내면서 그들은


여러분의 동지들로부터 높은 수준의 희생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은 단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만간 그들은 허물어지고 맙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종파가 희생적인 구성원과 평범한 사람들을 구분하면 할수록, 진실된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하기란 더욱더 어려워집니다.”[각주:8]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형태의 조직이 갖는 문제점은 사람들이 쉽게 참여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면서 원칙을 지키는 정치를 유지하는 것(이는 조직을 정치적으로 구분시켜준다)이다. 바로 이 점을 염두했기 때문에 뉴 소셜리스트가 좌파 내 진지한 사람들(Ellen Meiksins Wood, Lynne Segal)과의 인터뷰에 그렇게 강조점을 두었던 것이고, 게스트(Howard Adams, Bruce Allen)를 초청하기도 하고, 좌파 내 종파를 한 데 엮는 모임을 후원하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NDP(신민주주의 정당), 공산당, 캐나다와 오타와 뉴 소셜리스트 평의회로부터 연사들을 초청해 “Mike Harris(1995년부터 2002년까지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기업하기 좋은' 온타리오를 위해 노동조합의 권리와 공공서비스,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일련의 공격을 가했다.)를 이기기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60명이 참석한 회의를 뉴소셜리스트와 Octopus Books가 함께 후원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주장하는 좌파의 새로운 방향은 미사여구 이상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조직의 실질적인 실천의 일부가 되어야만 하고, 다른 개인들 및 조직과 함께 일하는 방식이 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방향은 또한 민주적인 토론과 반대 의견을 가진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정치적 문화를 발달시키는 것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이단 사냥하기, 겁주고 괴롭히기 식의 논쟁 문화와는 완전히 단절해야 한다. 새롭고 참여적인 사회주의자 조직은 수많은 질문을 허용하는 접근이 정말로 필요하다(우리는 NDP에 투표하는 걸 옹호할 것인가, 퀘벡 국민투표에 대해선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Harris에 대항해 전면적 파업을 요청해야할 것인가 등등).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방향은 토론이라는 진실로 참여적인 절차를 통해 이러한 입장들에 도달해야만 할 것이며, 다양한 관점을 환영해야할 것이고, 근본적 원칙의 사안이 아닌 문제들에 대해 구성원들의 반대할 권리를 용인해야만 할 것이다.[각주:9]


조직은 살아있는 토론과 논쟁이라는 신선한 공기로 호흡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다른 조직에 참여할 때도 계속 이어져야한다.



VI. 조직의 구조와 절차에 대한 몇 가지 제안


조직 구조와 연관한 핵심 질문은 항상 무엇을 하려는 조직 구조인가?’가 되어야할 것이다. 종파주의 집단들을 병들게 한 요소들 중 하나는 그들이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괴리된 모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20년대 초기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작성한 대중 정당을 위한 조직화 지침같은 걸 사용한다


그 결과는 구체적인 환경에서의 실제 사람들이 겪는 실질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사회주의자 조직에 대한 철저히 기계론적인 접근을 하게 된 것이다. 종파주의자들의 경직되고 교조적인 방식과 단절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세운 실천적인 과제들이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조직 구조를 필요로하는지 결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염두해두고, 이제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조직을 정의하며 이 논의를 시작했었다. 우리는 잡지를 발행하고, 모임을 개최하고 주요 운동과 투쟁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렸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우리에게는 우리가 헌신적으로 하려는 일을 하게끔 도와주는 효과적이고 책임감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조직 구조는 우리가 효율적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성취하려고 정한 것을 실제 행할 수 있게 하는 메카니즘을 제공해야한다. 동시에 이 조직 구조들은 민주적 책임이라는 원칙 위에 기반해야 한다. 민주적 책임이란 사람들이 특정한 정치적 과제(출판물을 편집하고 발행하기, 모임과 활동을 조직하기, 재정을 관리하기)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선거에 기반해야 하고 구성원의 정기적 회의에서 정한 방향에 따라야 한다.[각주:10]


조직에 대한 질문을 유발하는 층위는 기본적으로 두가지가 있다. 1) 지역 조직 (또는 분과) 층위 2) 전국적 조직 층위.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지역 조직 층위에서는, 모임, 잡지 판매, 활동 참여, 재정(뉴 소셜리스트 판매와 회비 모금) 측면의 일에 기본적 틀이 있어야한다


8명이나 10명이 넘는 회원이 속한 지역 조직 중 대부분은 여러가지 업무 영역을 나눠 책임을 지게하기위해, 선출된 조정 위원회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특별히 도움이 될만한 어떤 정해진 공식도 없다는 건 명백하다. 조직들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다른 지역 조직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배워나가야할 것이다.


이제 뉴 소셜리스트와 제휴한 조직들의 전국적 모임 층위에 대해 이야기하자. 다시 말하건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거창한 자존감같은 것은 최소화하면서, 효율성과 책임감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특히 우리는 열두명 남짓 되는 회원들로 구성된 작은 조직들이 중앙 위원회, 정치 위원회, 전국 운영위, 노동 위원회, 여성 위원회 등을 겨우 꾸려내는 터무니없는 상황은 피하려고 한다


작은 조직들에게 그런 조직 구조는 허세에 가깝다. 그것들은 추상적 모델에 기반한 것이지, 당면한 투쟁 안에서 효율적인 사회주의자로 존재할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하려는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을 염두하면서, 나는 우선은 조직화와 관련해 세 가지 기본적인 제안을 하겠다. 첫째는, 조직의 최고 의결 기구는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모든 구성원이 완전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갖는 전체 모임(총회, 전국 조직 위원회)으로 구성되어야할 것이다


둘째는, 일년에 최소 한번은 전체 모임과 같은 기구에서 뉴 소셜리스트의 편집부를 투표를 통해 구성해야한다. 셋째는, 그러한 전체 모임은 또한 전국 운영위를 선출하는데, 전국 운영위는 전국 대회를 조직하고 대회 준비를 책임지며, 토론 문건을 배포하고. 지역 모임과 소통하며, 전국 정치 캠페인을 조정하고, 전국 재정을 조직하는 일들을 한다


이 제안서의 많은 구체적인 운영상의 요소들은 우리 조직이 발전해나감에 따라 실제적으로 운영되어져야 할 것이다. 추상적 모델과 공식을 폐기함으로써, 우리는 실험과 즉흥적 대처 등을 고무하도록 준비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실제 경험으로부터 배우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시간에 지남에 따라 우리 조직의 구조와 절차를 실증적으로 발달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의 결말은 열어두어야 한다. 레닌이 인용하기를 좋아했던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진실은 구체적이다.”


대중은 발전을 할 시간과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오직 그들이 자신들만의 운동을 가졌을 때만 획득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이건 관계없이 그들 자신의 운동이면 된다. 그 안에서 자신들의 실수를 겪으며 더 앞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 실수들을 통해 배울 것이다.

나는 우리의 모든 실천이 전반적인 노동 계급의 운동 각각의 단계에서 포기하거나 우리 자신의 명확한 입장과 조직을 숨기지 않고 함께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각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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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나 실제로는 아나키스트 조직이 보통 권위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의로운 소수에 의한 단호하고 도의적인 활동이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음모가 몇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조직은 권위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아나코-생디칼리즘은 하나의 큰 연합이라는 조직 형태를 추구하지만, 국가 권력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운 입장을 보인다. (see Tom Keefer, “Marxism versus Anarchism,” New Socialist #2, March-April 1996). [본문으로]
  2. From “The Holy Family” in Writings of the Young Marx on Philosophy and Society, Lloyd D. Easton and Kurt H. Guddat (eds.) (New York: Anchor Books) p. 385. I have changed “man” to “human being” and “human” in the translation of this passage. [본문으로]
  3. As quoted in David McLellan, Karl Marx: His Life and Thought (New York: Harper and Row, 1973) p. 201 [본문으로]
  4. Hal Draper, Karl Marx’s Theory of Revolution, Volume II: The Politics of Social Classe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8) p. 121 [본문으로]
  5. Duncan Hallas, “Towards a Revolutionary Socialist Party” in Party and Class (London: Pluto Press, 1972?) p. 9 [본문으로]
  6. 가장 중요한 극좌 조직은 아마도 영국의 SWP(회원수 약 9,000명)와 프랑스의 ‘노동자 투쟁’(Lutte Ouvriere: 회원과 조직화된 지지자가 약 4,000명)일 것이다. 지금까지 SWP가 더 건강한 정치적 경향이긴 하지만, 수많은 종파주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단체가 지도하는 소규모 조직들의 국제적 경향 안에서 종파주의를 공격적으로 고무시키고 고취시켜온 측면이 있다. [종파가 아닌]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린 몇천 명의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혁명적 조직이라면 그러한 조직은 계급 투쟁이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때 진정한 발전을 위한 능력을 가지게 될지 모른다. [본문으로]
  7. See the critique of such ideas in Declaration of the Political Reorientation Faction, available from New Socialists. [본문으로]
  8. Duncan Hallas and Tony Cliff, Letter to the International Socialists (United States), March 7, 1977, p. 4 [본문으로]
  9. 몇가지 명확한 예를 들자면,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은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없어야할 것이다. 노동 조합에 반대하는 입장도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10. 나는 여기서 회원 민주주의(membership democracy)를 강조한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은 회원(지지자나 동조자가 아닌)의 특권이다. 이는 우리가 활동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회원과 비회원의 경계를 완전히 흐리는 것은 조직의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능동적인 참여를 기대하지 않는 운영 방식으로 빠져들고 만다. 일단 그러기 시작하면, 행동주의로는 정의될 수 없는 조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조직은 단지 잡담이나 하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문으로]
  11. Frederick Engels, “Letter to F.A. Sorge,” November 29, 1886 and “Letter to Florence Kelley-Wischnewetzky,” January 27, 1887 in Marx-Engels Selected Correspondence (2nd. ed.)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65) pp. 396, 40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