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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월호 1년 - 눈물을 하나로 모아 거대한 파도로 만들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4. 11.

전지윤


199039일 서울 마포구 한 주택가 지하방에서 불이 났다. 성냥불 장난을 하던 2명의 아이가 죽었다. 아이들은 손톱으로 잠겨진 문을 긁으며 발버둥치다 죽었다. 맞벌이로 일하며 아이들을 맡길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부모가 문을 잠근 것이었다. 그해 말 가수 정태춘이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로 아이들을 추모했다. 이 노래에서 가장 슬픈 부분은 아이들 목소리로 나오는 나레이션이었다.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엄마 아빠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야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뚱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이 노래를 무수히 반복해 들으면서, 들을 때마다 눈물짓던 것이 기억난다. 이것은 내가 이 잔인한 체제에 맞서겠다고 결심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우리는 지난해 416일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하게 됐다.



그날 우리는 모두 3백여 명의 소중한 생명이 생매장당하는 것을 눈뜨고 지켜봤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이 체제와 한국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모두 담아낸 비극이었다.

내릴 수 없는 배에 갇혀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들으며,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 같다는 공포 속에 침몰을 기다리는 심정.’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됐다.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하는 정부를 보면서 이것은 더 굳어졌다. 필요한 장비들은 신속하게 투입되지 않았고, 정부의 발표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민간업체인 언딘이 구조 작업을 독점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났고 절망은 더 깊어졌다.


이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자마자 이 정부는 폭력으로 그것을 억누르려 했다. 정부가 세월호 항의에 대처하며 동원한 경찰 병력 수는 2008년 촛불의 무려 8배에 달했다. 823세월호 진상규명 국민대회때는 참가자 1명당 경찰 4.7명이 배치됐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가족까지 종북으로 몰았다. 언론은 세월호 가족들을 경제 위기의 주범’, ‘갑질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렸고, 우파 정치인들은 세월호 가족 비난을 통해 박근혜의 총애를 받고자 했다. 마치 누가 더 야비하고 잔인하게 가족들을 공격할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 했다.


진실을 밝히고 안전사회를 만들자는 세월호 특별법은 전방위적 방해 속에 누더기가 됐다. 이 과정을 주도한 공로로 이완구는 총리가 됐고, 민주당도 손 잡고 우는 척하면서 뒤통수치기를 반복했다.


진심으로 함께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시간들을 버텨내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의 투쟁 덕에 우리는 인간일 수 있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그것이 아무리 누더기라해도, 세월호 가족들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땀과 눈물을 정치적으로 대변해야 할 진보정당들은 종북몰이로 강제해산 당하거나 사분오열된 상태였다.

노동운동은 세월호를 자신들의 투쟁과 제대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가 누더기 특별법으로 나타났다. 당시, 동혁 엄마 김성실 님은 이렇게 한탄했다.


그 많은 단체가 정말 연대해서 힘껏 한목소리를 내었을까? 같은 마음인데 왜 힘은 분산되어 모기소리만 나는지 모두가 제발 힘을 마음을 진짜로 연대해 줄 수는 없는지...”


그리고 이제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한국 사회는 더 안전해 졌고 침몰로 향하는 운항은 중단됐는가? 전혀 아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장성 요양병원, 판교 환풍구, 오룡호 침몰 등에서 판박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현대제철에서 또 노동자가 펄펄 끓는 쇳물에 빠져 사라졌다. 따라서 더더욱 세월호를 잊을 수가 없다.

 

중학교 친구 애들이 딸 핸드폰에 카카오톡을 해 와요. 어쩔 때는 밤에 계속 딸 핸드폰이 울어요. 카톡, 카톡 그러면서보니까 우리 애 중학교 단짝인 애가 '보고싶다', '사랑한다'고 계속 쓰고 있더군요.”(세월호 가족 유영민 님)

 

학생들을 보면 그 학생들이 생각나고, 창문을 보면 세월호 창문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어떻게 그 일을 쉽게 잊겠어요.”(세월호 생존자 김동수 님)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기에 이 사건과 그 트라우마는 아직 해결될 수 없다.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를 밝혀내어 그 책임을 정확하게 묻고 처벌하는 것피해자들 치유의 핵심적인 사회적 과정이라고 말한다.


훼손과 절단없이 세월호를 인양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것은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9명 실종자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이다. 이청관 전 88수중개발 전무는 세월호 인양은 “100%,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월호보다 더 큰 몇 만톤짜리 배도 인양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의 진실과 남은 가족들마저 시커멓고 차디찬 바다 속에 침몰시키려 하고 있다. 이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에 그나마 남아있던 알맹이마저 파괴하려는 시행령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시행령은 진상조사가 불가능하도록 인력, 구조, 조사범위를 축소시키고 있다. 조사 대상들이 조사를 주도하도록 만들어놓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이 특별법이라는 부러진 삽으로라도 땅을 파보겠다고 나서자, 그 위에 시멘트 공구리를 하려는 겪이다. 왜 이 정부는 세월호의 진실을 한사코 덮으려고 하는 것인가? ‘세월호를 빨리 잊자고 저렇게 열심인 것일까? 지난해 420일 세월호 가족들이 진도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며 외쳤던 정부는 살인마구호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탐욕스러운 자본, 생명보다 이윤을 보호하는 국가가 세월호 참사의 2인조 공범이라는 점은 이미 어느 정도 밝혀졌다. 자본과 국가가 추구하는 민영화와 규제완화, 비정규직화 등 세월호노믹스는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과 정면충돌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진실은 그 이상으로 추악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먼저 정부의 말 바꾸기와 은폐 시도가 거듭 드러나 왔다. 진도관제센터는 세월호와 교신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며칠 후에야 교신 내용을 공개했는데, 이것은 삭제·편집된 흔적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의 폭로에 주목해야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wxHh4tNzaqE김지영 감독은 놀랍도록 끈질기고 철저한 자료수집과 조사를 통해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냈다김 감독은 해경이 밝힌 AIS 자료는 물론 레이더 영상까지도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조타수의 과실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검찰 발표와 1심 재판 결과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 감독은 세월호의 항적을 영상으로 재현하기 위해 해수부의 AIS데이터, 해외 AIS 데이터, 진도VTS 레이더 영상, 주변 선박의 레이더 영상 등 모든 자료를 해도 위에 놓고 표시해가는 과정에서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정부가 발표한 AIS 기록을 통해 배의 속도를 계산해본 결과 세월호의 최고속도인 21노트의 두배가 넘는 43.5노트가 나왔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치다.”

세월호가 침몰 전 지그재그 운항을 했다. 당시 둘라에이스호에서 찍힌 동영상을 보면 세월호 방향은 정부가 발표한 헤딩 값과 전혀 다르게 돼 있다

세월호가 급변침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좌우로 방향을 바꿨고, 급변침 직전에는 배를 왼쪽으로 크게 틀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급변침했다

특히 변침 직전에 왼쪽으로 회전하다 다시 오른쪽으로 급변침을 할 경우 직선으로 정상운항하다 변침한 경우와 비교해, 배가 3배나 더 기울어지게 하는 효과를 낸다


, 세월호는 침몰 5분전부터 지그재그로 운항하다가 침몰 직전 왼쪽으로 튼 뒤 다시 오른쪽으로 크게 틀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이 밝혀낸 모든 증거들은 이 낡고 오래됐고, 증개축을 통해 복원력이 떨어졌고, 화물결박도 제대로 안 된 배가 침몰을 자초하듯이 운항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이 아니고선 세월호의 항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내기 어렵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구에 의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기록 삭제와 조작, 정부전산센터 마비 등이 과연 해경만의 힘으로 가능했을까? 왜 세월호만 국정원 보고가 의무로 돼 있었던가? 왜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자이자 경영주라는 증거 발견과 소문이 끊이지 않는가? 박근혜는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지난 연말에는 청와대에서 문고리 3인방과 다투다가 청와대비서관 조응천이 쫓겨난 게 415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세월호가 침몰한 416일에 박근혜의 관심은 어디 있었는가?


우리는 이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만 한다. 별이 된 세월호의 희생자들과 서서히 죽어가는 그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가 탄 이 내릴 수 없는 배가 계속 밑바닥으로 침몰하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연결돼 있고, 그것을 풀어낼 열쇠이기도 하다. 진보당 종북몰이 등에 맞서 진실을 밝혀왔던 김인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간첩, 종북, 사회불안세력, 세월호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프레임 속에서 증오와 분열을 계속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세월호의 수백 배가 넘는 부모들 속에서 함께 통곡하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이런 미래를 막기 위한 투쟁에 앞장서 왔다. 소설가 박민규는 말한다.


그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과 수모와 회유와 압박을 온몸으로 견뎠으며, 그럼에도 와해되지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이 봄을 견인했다. 이것이 어떤 힘으로도 덮을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고 위대함이다. 밤이 길수록 그들은 빛나고 항로가 없어도 그들은 길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나중에 동생 만나러 갔을 때 떳떳하게 얼굴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 갈 거예요. 그거 하나예요”(최윤아 님)라고 말한다. 이 힘이 지금 정부가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도 모두 떳떳하게 얼굴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1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위한 투쟁과 통상임금 투쟁, 공공부문 정상화 반대 투쟁 등이 서로 분리되면서 함께 가라앉았던 일이, 종북몰이에 타협하며 진보정당들이 서로 외면하고 원망하며 갈라지던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더구나 지금 박근혜는 갑자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약점을 공유하고 있는 이명박 쪽 머리를 치기보다는 꼬리만 치며 폭탄을 피하려던 시도가, 지뢰밭을 건드린 상황이다. 부패의 주범들이 얽히고 설킨 부패의 사슬을 건드린 게, 의도치 않은 부메랑 효과를 낳고 있다. 검은 돈의 종착지는 명백히 박근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은 기꺼이 세월호 1년의 분노와 슬픔이 분출될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을 위한 투쟁과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에 맞서는 투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둘 모두 이윤이냐 인간이냐, 돈이냐 생명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노동운동은 지난 1년간 개악을 향한 박근혜의 뒷덜미를 잡아 온 세월호 가족들에게 보답할 의무도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연금 개악 반대를 결합해 연가투쟁에 나서려는 전교조 노동자들이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침몰해야 마땅한 것은 세월호의 진실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라며 세월호의 진실과 우리의 삶을 침몰시키려는 자들이다. 우리의 눈물을 흩어지지 않게 하나로 모으고 거대한 파도로 만들어서 그 속에 저들을 침몰시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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