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소중한 벗, 김득영 동지를 떠나보내며

전지윤


우리의 소중한 벗이었던 김득영 동지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우리는 최근에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참담한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예전과 달리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안돼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이미 8월초에 이제 마흔을 갓 넘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고인이 어떠한 고민과 얼마나 큰 고통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할뿐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너무나 미안하고 또 부끄럽게도 말입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고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퀵서비스 등 고된 일을 해온 고인은 근래 줄어드는 일거리와 늘어나는 빚, 몇 달째 밀린 월세로 힘들어했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본 그의 고시원과 밤마다 술을 사갔다는 집 앞 가게 할머니의 말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왜 이제야 왔냐는 말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낡은 고시원의 그 좁은 방에서 외로이 술잔을 들었을 고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집 앞 골목길에는 그가 몰던 낡은 오토바이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왜 고인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요?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야 했을까요? 도움이 되지 못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가슴을 칠뿐입니다.


고인은 2008년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변혁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이 체제가 낳는 부조리와 모순, 억압과 차별에 분노했고 해방된 세상을 염원했습니다. 고인은 더 많은 사람들을 이 투쟁에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다함께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토론회 준비와 지원 등 매번 묵묵히 온갖 궂은일을 하던 고인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2010년에 고인은 거리에서 <레프트21> 신문을 판매하다가 동료 5명과 함께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국면에서 안보 위기는 사기다라는 이 신문의 제목이 당시 이명박 정부에게 거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인은 동료들과 함께 법정투쟁을 하며 끝까지 이 부당한 탄압에 맞섰습니다. 이 법정 투쟁 과정에서 제출하고 진술한 것을 보면, 고인의 꿈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정부와 권력자들은 폭력과 탄압으로 지배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아랍 민중의 혁명은 자유와 민주를 향한 민중의 염원을 결코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자유와 민주는 오로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115191심 최후진술)

 

정부와 권력자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최상의 체제라고 말하지만 저는 자본주의 체제야말로 인류 최악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종식시켜야 합니다.”

(20111272심 최후진술)

 

이처럼 고인은 자본주의에 반대했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했으며 아래로부터 민중의 힘을 믿었습니다. 2013년말 박근혜 정부가 철도파업을 짓밟기 위해 민주노총을 침탈했을 때도 고인은 맨 앞에서 저항하다가 연행됐습니다. 고인은 또 재판을 받았고, 다음해 5월 이런 진술문을 썼습니다.

 

하나 둘씩 밝혀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사람의 안전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정부와 관료, 기업주들의 공모와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끔찍한 참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박근혜 정부는 계속해서 사람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를 추진합니다.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를 위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시민을 감시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집회와 시위, 파업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서 박근혜는 하야해야 합니다.”

 

고인은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도 앞장서 투쟁하고, 정권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용기있는 투사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그의 귀는 성소수자 등 부당한 차별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항상 열려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13년말 제가 가장 힘든 시기에 저의 손을 잡아 준 고인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는 당시 비난이 아니라 토론해야 한다며 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비를 맞아주었습니다. 그런 선택이 낳은 커다란 인간적 괴로움과 아물기 힘든 상처까지 견뎌내면서 말입니다.


그 후로도 고인은 변혁 재장전모임을 함께 하면서 저에게 이런저런 정치적 자극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쓴 글에 포함될만한 정보와 사실을 알려주고, 치우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지적도 해주었습니다. 이견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특히 음악을 폭넓고 깊이있게 이해하고 있었고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 자신이 베이스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고인의 페이스북에 가면 수많은 좋은 노래들이 올려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래에 제가 특히 좋아하게 된 노래들은 바로 고인이 저에게 추천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작은 체구에서 얼굴 전체로 퍼지던 김득영 동지의 사람좋은 웃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술과 술자리를 즐겼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그리고 왜 더 자주 연락하고, 찾아가고, 어려움을 더 파고들어 알아보려 하지 않았는지 너무나 큰 후회가 됩니다


왜 지난 봄에 고시원 옆방에서 누군가 숨을 거두었다는 말을 할 때 더 심각하게 물어보지 않았을까요. 왜 페이스북에 더 이상 음악을 올리지 않는지 의심하지 않았을까요. 모임에 더 자주 나와서 토론해보자는 말만 하고 있었을까요. 이 미안함을 어찌 갚을 수 있을까요.


김득영 동지가 페이스북에 마지막으로 올린 한영애의 '완행열차' 노래가사가 마지막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완행열차 타고서 간다 그리운 고향집으로

차가운 바람 맞으니 두 눈이 뜨거워지네

고향으로 가는 이 마음 이 기차는 알고 있겠지

말 못할 설움과 말 못할 눈물은 차창밖에 버리고 가자

 

김득영 동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고인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가 끝까지 멈추고 싶지 않았을 투쟁을 이어가겠습니다.


 

* 故 김득영 동지 추모식

 

9월 12일(토) 저녁 8시 / 언론노조 회의실(한국언론회관 18층, 시청역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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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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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태규 2015.09.10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인의 뜻과 미소를 끝까지 기억하겠습니다.

  2. 홍기헌 2015.09.10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득영씨 미안합니다...그냥 동지가 떠난것에 슬퍼하는것밖에 할수있는게 없네요. 너무 미안해요..득영씨.

  3. 이상수 2015.09.10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 못할 설움과 말 못할 눈물은 이 세상에 두고..
    편히 쉬시라..미안합니다..

  4. 정윤심 2015.09.10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곳에서 주찬권씨 만나 여기서 포기했던 음악 마음껏 하며 행복하길 바랍니다.
    외롭게 보내서 너무 미안해요 득영..

  5. 현정 2015.09.10 2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내 상처만 너무 커보여.. 소중한 동지들 제대로 둘러 볼 생각조차 않았어요.. 너무 미안해요 정말 너무나 미안해요득영씨

  6. 비파 2016.08.09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자들은 학생출신이든지 노동현장 출신이든지 소모임(相助계,써클)이나 가족을 이루며 집단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와 노동자들은 생활공간에서 학습모임, 소모임을 통하여 상호침투를 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들과 더 통큰 연대를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가족관계나 집단, 소모임(써클, 계친구)의 도움없이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가들은 이재유의 경성트로이카 방식을 배워서 살아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운동가를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 혁명가이고 사람입니다. 노동운동가가 죽어 사라지면 사회민주주의자 또한 물없는 물고기 삶처럼 활동기반을 잃어 살아갈 수도 활동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특히 학생운동가들은 100년동안 세상은 바뀌었지만 노동자의 삶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운동가들은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사 경험속에서 선진노동자들의 생활방식과 활동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운동가를 있는 그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과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맞대어야 합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계급적 지위를 뛰어넘는 사랑은 나의 체면을 깍는 수치가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되는 혁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곳으로부터 이슬비가 뭉쳐 혁명의 물결이 일렁이기를 바라겠습니다.

  7. 선봉 2016.08.09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총각 동지는 살아생전에 라면과 소주대신 맘씨 고운 연인이 해주는 따뜻한 밥 한끼가 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삿밥조차 못 얻어먹을 이 동지를 추모하며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라는 옛말을 떠올립니다.`

  8. 불꽃 2016.08.12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동운동가들은 동지를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날 노동운동가라 불리는 선진노동자들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거나 땅에서 갑자기 솟아생겨난 사람들이 아니라 학생운동가들이, 청년노동자들이 파시즘자본주의에 맞서 가두투쟁과 총파업 투쟁을 직업으로 획득하면서 생겨난 해방꾼입니다. 장구한 세월에 거쳐 계급적 직관력을 획득하고, 또 역사적 경험을 쌓아서 이루어진 노동계급의 선봉대입니다. 그들이 지금 사회주의를 지향하든 반제국주의를 지향하든 아니면 종북적인 모습으로 투쟁을 하든지간에 그들은 투쟁속에서 자신을 단련시키고 대중을 조직하고 혁명운동으로 몰입된 가슴 벅찬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 파시즘 세상을 바꾸고자 목숨을 걸고 결의한 인간해방 노동해방 여성해방 전사들입니다. 우리를 자본주의에서 구원할 청년영웅들 입니다. 지금 그들이 노동당이라든지 정의당이라든지 80년대 반체제운동에서 생겨난 사민주의 정당과 다른 점은 스스로 사고하고 파시즘에 맞서 뜨거운 가슴으로 끝까지 투쟁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동지를 조직하고 혁명을 결의하는 대중운동에 대한 과학적 세계관이, 그리고 략술이 서툴러서 조직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없어서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적으로 얻어맞다가 죽어가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해방을 결의한 노동해방 전사들은 그가 청년이든 학생이든 주변으로부터 현장으로부터 동지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이론을 학습하고 가두에서 대중을 설득하고 집회시위를 조직하는 그런 일상적인 어려운 투쟁을 통하여 마르크스와 레닌의 청년 시절을 본받고, 사회민주노동자당을 내오기 위한 노동해방 기관차를 만들 혁명정당의 설계도를 그려야 합니다. 자신의 지난 투쟁을 초라하다 깎아내리지 말 것이며 종북이다 종미적 종파적이다 싸우더라도 논점을 밝혀낼 것이며 자신과 동지를 그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며 연대 우정 사랑 해방을 미래에서 당도한 우월한 도덕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인 개인적 소유를 뒤엎기 위한 큰 마음으로 동지를 사랑하는 큰 발걸음을 내디더야 합니다. 좀 더 과학적인 이론을 만들기 위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소모임(써클)을 만들고 노동자써클을 통하여 정치운동을 벌여나가며 공동생활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150년부터 시작되어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생겨난 노동자혁명가들이 일생을 내걸었던 고난의 행군을 여성해방 투사들과 손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은 완결된 사회구조가 아니며 개인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한 부르주아적 자유- 착취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민사회입니다. 과거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 세상을 레닌이 완성했듯이 일제하 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남조선 변혁운동을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이 이어가야 합니다. 노동운동가들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지를 규합하고, 함께 손잡고 투쟁할 전위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위조직은 노동해방 전위당을 만드는 산파입니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는 긴밀한 투쟁으로 인간해방의 세상을 날마다 두들겨 만드는 과정이 해방세상입니다. 대장장이가 풀무질과 담금질로 장군이 사용할 보검을 두들겨 만들듯이 우리도 혁명의 보검을 인간사랑으로 두들겨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해방 조직과 집회시위의 주인으로 일어나게할 실천을 통하여 날선 사회민주당을 두들겨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해방으로 나아가는 민주적 혁명 과정으로서 현실에서 솟아나는 혁명적 노동자들의 사회주의입니다.

  9. 선봉 2016.08.14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0. 선봉 2016.08.19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년이 지나고서야 알았지만 만약 김득영 동지가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면 장례를 치러드려야 합니다.
    몇몇 사람이 장례위원회구성을 결의하고 운동진영(정의당, 노동당, 변혁노동자당, 민중연합당, 민주노총, 진보넷)등 단체에 방문하여 절명하게된 경과를 설명하고 장례식(과 영결식)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김득영 동지가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면 파업과 촛불로 항거한 노동해방 투사이기에 노동자장이나 사회장으로 치를 것을 충고합니다. 김득영 동지가 아직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례비를 십시일만 일만원씩, 오만원씩 모아야 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이나 진보운동의 도움을 받아 시급하게 사회적의식인 영결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가족장으로 이미 장례를 치렀다면 올해 절명1주기에는 김득영동지추모회를 만들고 고인의 묘소앞에서 추도식을 갖고 추모모임(이나 추모카페)를 통해서 김득영 동지가 길거리에서 이룬 사회주의운동을 기록으로 남기고 모임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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