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좀비 자본주의와 새로운 좌파의 건설

이 글은 캐나다의 사회주의자인 데이비드 맥낼리(David Macnally)가 지난해 6월에 터키 좌파 신문 <Ozgur Gundem>과 인터뷰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맥낼리는 캐나다의 극좌파 조직인 뉴 소셜리스트’(New Socialist)의 주요 활동가이면서 세계 경제, 여성 억압,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많은 책과 글을 쓴 학자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을 위한 많은 이론적 기여를 해 왔다. 한국에 출판된 그의 책으로는 글로벌 슬럼프(그린비)가 있다. 번역에 수고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davidmcnally.org/?p=861

 



1. 당신은 2007년에 시작된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 역사상 네 번째로 큰 경제 위기라고 했는데요. 더 넓은 그림을 그려보는 의미에서 이 위기의 주요한 성격을 설명해 줄 수 있나요?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요?

 

이 위기는 고전적인 자본주의적 불황의 모든 특징들을 보여주었습니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투자와 축적의 25년은 자본의 과잉축적을 초래했습니다. 보다 많은 공장들, 광산들, 쇼핑몰들, 상품을 생산하고 광고하는 것, 그리고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아파트 건물과 주택들이 시장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규 투자에 대한 수익의 비율(즉 이윤율)이 하락했습니다. 또한 장기간의 팽창이 일어나는 동안 금융적 폭발과 모기지 담보증권 등 새로운 종류의 복잡난해한 금융 상품들이 어지럽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경제가 둔화하기 시작하자, 가장 도를 넘는 지출을 한 은행들과 대출기관들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은행 위기는 2009년에 엄청난 액수의 공금을 민간 은행으로 쏟아 부은 결과 큰 틀에서 해결된 반면, 근저에 깔려 있는 경제적 문제는 큰 틀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불황이 시작된 지 7년 후에도 여전히 투자와 성장의 호황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침체와 저성장이 얼마간 지속되고 많은 수의 국가들의 경제가 다시 불경기로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새로운 궤도는 시야에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2. 당신의 책에서는 이 위기를 1930년대의 위기와 비교하면서 실업률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나 1960년대와 같은 거대한 전투적 노동계급의 반격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투쟁과 비교하면 투쟁은 주로 오래 가지 못하고 상당히 방어적입니다. 이러한 차이의 주요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1930년대 대공황의 초기 몇 년 동안은 노동계급 운동과 좌파에게 끔찍한 시기였음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파시즘이 부상하고 있었고 노동자 조직들은 큰 패배를 겪으며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노동계급 투쟁의 진짜 고양은 위기가 수 년 동안 지속된 이후에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의 큰 격변들과 함께 1936~1937년 즈음에 시작됐습니다. 물론 이 투쟁들 전부가 승리로 끝났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투쟁들은 분명 다수의 저항과 자기조직화에 대한 새로운 역량을 상징했습니다.

 

이번 위기의 첫 7년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좌파의 승리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이 1930년대와 크게 다른 한 가지는 전투적 노동계급 조직, 즉 공산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스트 조직이 오늘날보다 1930년대에 훨씬 더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 노동계급 내의 더 강력한 급진적 문화를 반영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긴축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진짜 운동을 건설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노동계급의 정치 문화를 재건해야 하는 두 가지 강력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3. 당신은 노동권과 사회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지적하면서, 또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이데올로기적 그리고 문화적 변화도 강조했습니다. 저번 책에서 당신은 이 후기자본주의적 공격을 좀비 자본주의와 같은 흥미로운 은유를 사용해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신자유주의가 거둔 승리들 중 하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약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거대 기업들과 은행들을 위해 생각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밖에 못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대중문화의 모든 곳에서 좀비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건 놀랍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우리가 모두, 미국의 주요 텔레비전 프로의 이름을 빌려오자면 워킹 데드’(walking dead)라고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직장에서 아무 의욕도 없이 고지서 요금을 지불하기 위해 고생하면서 일하는, “시체의 삶(dead time)”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좀비 폭동의 전복적 이미지는 우리가 이렇게 따분하고 우울한 삶을 벗어나,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뱀파이어들을 타도하기를 은밀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좀비는 자본주의가 우리를 지배하는 형상이면서 세계를 뒤집고 진짜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 욕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4. 당신의 또 다른 은유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것인데요. 저는 프랑켄슈타인의 진짜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었을 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책의 뿌리와 당신의 작업에서 갖는 중요성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1818년에 메리 셸리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자본주의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운 분석입니다. 셸리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들과 동물들의 신체 부위를 합쳐서 만든 거대한 창조물을 상상하도록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이 창조물이 전기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말하는데, 전기는 당시 산업 혁명의 추진력으로 떠오르고 있었죠. 그래서 마치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처럼 강력한 새로운 존재가 있고, 이 존재는 가난한 사람들과 동물들의 몸으로부터 만들어졌고, 엘리트들은 이 존재를 위협적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셸리는 영국 지배계급에게, 만약 그들이 주의하지 않으면 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창조물이 그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복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소설로서의 프랑켄슈타인이 탁월한 점은 현대 노동계급의 창조를 일종의 괴담으로 본다는 것인데요, 이는 노동자들에게 그럴 뿐만 아니라, 그 창조물이 반란을 일으킬 경우 그것을 창조한 지배계급에게도 그렇습니다.

 

셸리는 또한 그 창조물이 읽고 쓰는 것과 정치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서도 혁명적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 창조물은 아랍인 페미니스트가 당대의 가장 훌륭한 반노예제 소책자인 C. F. 볼니(Volney)<폐허:The Ruins>를 읽는 것을 귀 기울여 들으며 읽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셸리는 또한 영국의 지배자들에게 그들이 잠에서 깨운 적수가 국제주의, 여성의 권리, 그리고 노예제에 맞선 투쟁에 헌신하는 프롤레타리아트임을 알려 주는 것이죠. 이는 오늘날에도 좌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반인종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인 노동계급 정치의 이미지입니다.

 

5. 불평등, 유럽부터 인도까지 파시즘의 부상, 경찰의 강도 높은 군사화, 이슬람국가(ISIL)과 같은 잔혹한 조직, 지구 온난화, 식량 위기 이것이 좀비 자본주의의 배후가 될까요?

 

. 그것이 배후가 될 것입니다.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혹은 만들어 낼 때까지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점점 더 불평등, 전쟁, 환경 재해, 그리고 제국주의의 행태를 모방하는 종파적인 저항을 키웁니다. 저는 이것이 긴축과 위기의 시대의 뉴 노멀(새로운 표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좌파의 대중운동과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그토록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고요.

 

6.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시애틀, 아랍의 봄, 월가 점거 운동, 남아메리카 등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꽤 강한 시위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은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실패한 주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런 운동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현 체제의 대안에 대한 강력한 바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운동들은 모두 거의 40년 동안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운동이 퇴각하고 패배해 온 후에 등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런 운동들은 처음에 심각한 도전과 난관에 부딪히며 스스로를 유지하고 성장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 왔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성공들 중 하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장기적 운동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는 경험 많은 급진적 조직가들의 핵심을 크게 줄였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 좌파의 임무들 중 하나는 새로운 세대의 급진적 조직가들이 생겨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급진적 좌파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래 존속하는 조직들과 운동들, 대중 교육을 위한 공간, 민주적 자기조직화를 위한 회합, 문화적 제도, 기타 등등이요. 좌파 진영의 새롭고 성장하는 집단적 조직가들을 키워낼 수 있는 급진적인 기구들의 이런 네트워크 없이는, 지속되고 있는 반자본주의 조직화가 확장되고 발전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7. 당신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급진적 민주주의 강령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강력한 경제적 뿌리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나요?

 

저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그 어떤 “21세기 사회주의에도 본질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 작업장, 학교에서, 대중 회합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풀뿌리 민중권력을 발전시켜야 하고 이 모든 형태들은 서로 연결되어서 신뢰할 만한 민주적 자치 체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회의 경제적 관계에 대해 특히 생산, 분배와 금융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시리자 정부가 긴축을 끝내기 위한 국민투표는 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만한 경제적 수단, 특히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했던 그리스에서 이 문제를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는 민주주의가 삶의 모든 중요한 면면들, 예를 들어 우리의 작업장에서의 관계와 같은 모든 면면들에까지 침투하는 사회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그 사회에서의 경제적 자원과 관계들에 대한 권력을 갖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조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당신은 좌파의 단결을 강력하게 옹호해 왔고(제가 잘못 봤다면 바로잡아 주세요), 한 번은 아나키스트들과 마르크주의자들의 단결된 조직도 제안하셨습니다. 우리 역시도 단결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쿠르드와 터키의 혁명적 세력 역시 단결된 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넓으면서도 동시에 강력하기도 한 반자본주의 당을 건설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물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시리자와 포데모스에 대한 당신의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분명 좌파의 단결을 옹호합니다. 저는 우리가 일상의 정치적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보다 믿을 만한 급진적 좌파 조직들을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작고 부차적인 문제에서는 차이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을 두고 규명해야 할 진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좌파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노동계급 저항을 건설하고, 반자본주의 분석을 제기하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물론 좌파 내의 다른 세력들과는 함께하기를 거부하는 순수주의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중적 반자본주의 노동계급 운동을 건설하는 기본 강령을 가지고 함께 할, 그리고 이런 운동을 가능하게 할 기본적인 정치적·조직적 원칙들에 동의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런 조직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고 나서 날카로운 논쟁들이 있을까요?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적 토론과 논쟁,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는 정치 문화를 발달시키는 것은 새로운 좌파를 건설하는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작은 혁명 집단들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도전적이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리스에서 시리자를 건설한 프로젝트는 제가 논의한 것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저는 오늘날 시리자의 좌파 플랫폼’[시리자 내 좌파그룹]에 모여 있는 급진좌파 세력들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작은 써클 정치를 벗어나서 훨씬 더 중요한 공간, 인민 대중을 포함하는 공간에서 그들의 사상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게 어려움을 마법처럼 없애 주는 것은 아니죠.

 

최근의 시리자 정부와 트로이카와의 경제 협정은 큰 문제이고 시리자 정부가 긴축의 부드러운형태를 추진하는 것으로 끝날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시리자 내부의 좌파가 노동계급 집단들 내에서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았다면,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그들을 견인하려고 노력하면서 진짜 자기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저 올바른 노선을 견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당신은 거봐,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정치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거봐, 시리자가 원칙을 버릴 거라고 말했잖아.” 혹은 거봐,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했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절대 사회주의적인 좌파 대중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40년의 패배 이후에 이제 우리는, 다시 혁명적 사회주의를 노동계급과 연결할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는 새로운 접근과 정치적 실험에 도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스페인의 포데모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가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급진적인 좌파들이 밖에 서 있는 것보다는 포데모스의 전개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 그 운동 안에서 활동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런 정당들이 새롭게 하는 일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온전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자본주의에 있어서, 우리가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서 진정으로 단절할 필요가 있다는 믿음에 있어서 명확하고 강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좌파는 그 기회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주변부에서 부상하기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을 잡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진짜 대중운동과 대중조직의 일부가 되는 방법을,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종류의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알아야만 합니다. 세계적 경제 불황이 수년 동안 이어지면서 고통을 낳고 있기 때문에, 만약 사회주의적 좌파가 미래에 정치적 사건들에 영향을 미칠 그 어떤 가능성이라도 잡으려한다면 우리에게는 창조성과 대담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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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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