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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불가피'한 것은 구조조정 반대를 위한 투쟁과 단결뿐이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4. 29.

잘려나가는 조선·해운업 비정규직을 지켜내야 한다

 

전지윤





요즘 상황을 보자면 지난 413일에 있었던 것이 구조조정 찬반 투표였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총선 직후 세월호, 테러방지법, 청문회 얘기 등이 나오면서 야당이 뭔가 개혁을 할 것 같은 기대는 잠깐 생기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3일 천하였다.

 

문제는 경제다. 정답은 구조조정이다!’ 이게 민주당 김종인의 본심이었던 것 같다. 안철수와 국민당도 만만치 않지만 역시 민주당이 하다. 선거 패배의 책임과 주도권을 둘러싸고 늪에 빠진 새누리를 제끼고 두 야당이 구조조정,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누가 더 적극적인지 경쟁하고 있다. 총선 전에 여야 합의로 원샷법과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을 통과시킬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 친기업이 되자”, “임금 양보가 필요하다”, “서비스법에 의료도 포함하자이게 민주당에서 나오는 소리다. 새누리에서 노동개악 4법 발의자중 하나였던 진영이 민주당으로 옮겨서 새비대위원이 됐다. 한화투자증권 CEO 시절 노동자 수백 명을 해고했던 민주당의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 주진형은 실업 대책을 왜 정치권과 정부에 묻느냐고 한다.

 

물론 전두환 정권에 들어가 구조조정과 노동자 탄압을 도왔었던 김종인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설명한 책을 보면 해고가 수월하게 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에게 독재적 권한을 선물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제 그 기간을 더 연장해주려 한다.

 

김종인은 지금 크게 3가지를 착각하고 있다. 첫째, 이번 총선 결과를 민주당의 승리라고 본다. 둘째, 자신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본다. 셋째, 이번 총선은 구조조정 찬반 투표였는데 거기서 찬성이 승리했다고 본다. 이 사람이 돕고 박근혜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는 올해에만 5명이 산업재해로 죽어나간 현대중공업 노동자 등이 서 있다.

 

이처럼 여야가 모두 다가오는 위기에서 한국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선제적 구조조정과 고통전가를 추진하자는 공감대를 이루자 <조선일보>는 신이 났다. “야당이 명석을 깔아주었으니 정부는 이제 망설이지 말고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구조조정의 폭풍은 조선·해운업부터 닥치고 있고 거제에서만 25천명 해고가 예고되고 있다. 곳곳에서 임금 삭감, 인원 감축, 무쟁의 선언 강요 등이 추진되고 있다. 기업과 채권단이 인력감축 계획을 제출하면 정부는 더 센 계획을 내라고 퇴짜를 놓는 식이다.

 

기재부·금융위·해수부·고용부 장관 참석하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큰그림을 그리고 있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밀실에서 수십만 명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근래, 실업자가 된 한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후세에 엄마가 내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동안 엄마한테 받아 왔던 사랑 이상을 베풀게요. 미안해요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했다.

 

조선·해운업은 시작일 뿐이다. 이미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도 과잉 투자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금 개악을 당한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임금피크제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 공공부문은 성과연봉제 공격이 한참이다. 성과연봉제는 퇴출제나 노동개악 4법하고도 연결돼 있고 사기업으로도 번질 것이다. 결국 지금의 구조조정 공세는 전체 노동자·민중을 향해 닥쳐오는 쓰나미인 것이다.

 

따라서 먼저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반대할 수 없다며 저들이 강요하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IMF 경제 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곧 노동자 공격과 해고, 고통전가를 뜻한다. 이것을 왜 지지해야 하는가?

 

오히려 우리는 이 위기가 누구 때문이고 무엇 때문인지 물어야 한다. 이 위기가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이나 고용의 경직성 때문에 온 것인가? 천만에다. 조선·해운업계는 저임금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고용의 70~80%에 달할 정도로 극단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1년에 수십 명씩 산업재해로 죽어갔다. 즉 노동자들은 지금의 위기에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고 아무 책임도 없다.

 

반면 조선·해운업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경쟁과 자본가들의 탐욕스러운 이윤 추구가 낳은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해운업의 위기는 배를 빌려 운항하는 해운사들이 호황기 때 이윤에 눈이 멀어 지금보다 5배나 높은 용선료계약을 맺은 것과 관련깊다. 조선업의 위기는 고유가 시절에 경쟁적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든 결과다.

 

처음에 그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한 탁월한 선택으로 보였다. 하지만 세계경제 침체로 물동량이 줄어들고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그것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저주가 됐다. 현대상선은 지난해에만 용선료 19천억을 지급해야 했다. 조선 3사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만 85천억의 적자를 봤다.

 

이익을 독차지했던 자들이, 이제는 손해를 나누자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물론 손해를 일부라도 나눌 생각도 없어 보인다. 예컨대 한진해운 전회장 최은영 일가는 수조 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97억의 보수를 받아갔고 조세도피처에 페이퍼회사까지 차렸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3천억의 이익을 거두고도 노동자 해고만 추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지난 1년 새 46조 원이 늘었다

 

, 식당 주인이 주식 투기를 하다가 돈을 날려서, 밤낮없이 일해 온 종업원 일부를 해고한다는데, 식당주인은 챙겨놓은 재산과 숨겨 둔 빌딩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 종업원들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자본주의에서 이런 일은 불가피하다. 마치 돈벌이에 눈 먼 대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를 가지고 인체실험을 한 게 불가피했듯이 말이다. 경쟁과 축적의 논리 때문에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하며 노동자들을 쥐어짜려 한다. 특히 위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가와 친자본 언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일단 같이 손을 잡고 위기를 극복하자. 노사는 공동운명체이고 빵이 커져야 나중에 나눌 수 있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이 말들은 모두 사실과 거리가 멀다. 노사가 공동운명체란 말은 포주가 있어야 성매매 여성도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하고, 커진 빵을 나누겠다는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2010년에 쌍용차 부도 사태 때 정부와 사측은 노동자 절반을 해고 했지만, 부도에 책임이 있는 상하이차는 먹튀를 했을 뿐이다. 공장 밖에서는 노동자 30여명이 죽어갔고, 공장 안에서는 노동강도가 몇 배나 강화됐다.

 

그 결과,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는 다시 수익을 올리게 됐지만, 해고자 복직은 끈질긴 투쟁 끝에 일부만 이뤄졌다. 즉 쌍용차에서 회사가 살아나는과정은 노동자가 죽어가는과정이었다. 더구나 이것은 쌍용그룹으로, 대우그룹로, 다시 상하이차로 인수될 때마다 반복돼 온 과정이었다.

 

즉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며 극복된 위기가 새로운 위기로 연결됐던 것이다. 조선업에서도 해양플랜트에 대한 투자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이었지만, 지금의 위기의 원인이 돼 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계속돼 온 신자유주의 구조조정도 일자리를 줄이고 소비만 위축시키며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위기에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책임도 없는 노동자들이, 책임을 떠넘기는 자들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는 구조조정을 수용할 이유가 무엇인가. 따라서 원내 유일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의 지도부가 자꾸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며 저들의 프레임을 수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정의당 지도부는 대책없는 일방적인 고통전담을 반대하며 정부를 비판한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프레임 안에서 보완책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을 수 있다.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공조나 연립정부를 강조해 온 것도 우려스럽다.

 

앞서 봤듯이 민주당은 우리가 노조를 설득하겠다며 구조조정 앞잡이로 나서고 있다. 따라서 국회 안에서 진보 의원들이 갈라져서 일부는 민주당과 공조하고, 그러다 민주당에 뒤통수 맞는다면, 이것이 국회 밖 투쟁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그보다는 국회 밖의 강력한 단결과 투쟁이 진보의원 8명을 지렛대삼아 새누리, 민주, 국민당을 압박해야 한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며 노동자·민중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사회 진보와 개혁을 위한 요구와 투쟁이다. 이미 민중총궐기 12대 요구 등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부자 증세, 복지 확충, 노동개악 중단,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 보장,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공공의료 확충 등이 그것이다.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추가적 요구와 과제가 제기될 것이다. 부도·파산 기업의 국유화와 일자리 보장, ‘먹튀기업주 처벌과 재산 환수, 공적자금 투자 기업의 공공적 통제, 공공·녹색 일자리 확충 등.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 숨겨놓은 빵을 찾아내야 하고, 필수적 기간산업(조선·해운 등)을 더 이상 단기적 이윤논리에 맡겨놓을 이유가 없으며, 살기좋고 생태적인 사회로 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해운업의 기업주들과 정부는 지금 비정규직·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먼저 짤라내고 있다. 이어서 정규직 노동자들도 쳐낼 것이다. 조선·해운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공공부문과 주요 대기업, 다른 산업에서도 공격이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같이 싸워야 한다. ‘산업별·업종별 노사정협의체같은 것에 기대다간 시간을 빼앗기고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 특히 조선·해운업에서 정규직 노조들이 손을 잡을 뿐 아니라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앞장서 방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 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너무나 심각했었고, 그것이 민주노조의 가장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그 약한 고리를 집중공략하는 지금,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방패가 아니라 한 몸으로 보는 게 정말로 중요하다. 주류언론이 폭동 가능성을 말할 정도로 조선·해운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끓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 분노가 향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같이 찾아 나가자. 부문과 정파를 넘어서서 단결하고 다양한 요구를 결합시켰던 민중총궐기의 정신과 투쟁이 더 폭넓고 더 강하게 이어져야 한다. 이런 투쟁이 발전해 나간다면, 경제 위기와 고통전가의 끝없는 악순환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이 체제에 대한 더 근본적 도전도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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