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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버니 샌더스는 어디가고 오물투성이 트럼프가 이기다니!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1. 11.

전지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이 결과가 좌절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설마하며 트럼프는 안됐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상하원도 공화당이 쓸었다고 한다. 이걸 보고 전세계의 우익과 인종주의자들이 좋아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특히 브렉시트에 이어서 트럼프 당선이고, 이제 다음 스텝은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나치인 르펜 승리라는 말을 들으면 욕지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클린턴과 트럼프에 투표한 사람의 구성을 보여주는 출구조사 결과(http://edition.cnn.com/election/results/exit-polls/national/president)를 보면 우리가 누구와 함께 슬퍼해야 하는지 분명해 진다. 여성, 청년, 성소수자, 흑인, 라티노, 아시안의 다수나 압도다수는 클린턴을 찍었다.

 

트럼프 투표자의 84%는 불법이주민을 추방해야 한다고, 86%는 멕시코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고, 86%는 트럼프의 여성혐오 발언들이 큰 문제없다고 답했다. 나는 지금을 악몽으로 여기고 있을 여성, 유색인, 무슬림과 무조건 한편이고 같은 심정이다.

 

엘리베이터에 우연히 같이 탄 두 여성이 트럼프 당선 소식을 듣고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소식, 우울한 기분으로 와인을 사러간 여성이 울면서 와인을 고르는 여러 여성들을 만났다는 소식 등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파온다.

 

물론 이것은 오바마 8년이 낳은 배신과 실망의 결과일 것이다.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의 소득은 4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소득 최하위 구간 계층의 실질임금은 60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이것은 2008년 경제 위기에 대한 오바마 정권의 해법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선거 유권자의 72%미국 경제가 부자와 권력자를 위해서만 작동한다, ‘68%는 기존 정당과 정치인은 나같은 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월가와 1%의 대변자클린턴을 찍기보다 기권했을 것이다. 즉 버니 샌더스를 탈락시키고 클린턴을 옹립한 민주당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텃밭을 기반으로 소위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구)를 끌어당겨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지지 인종주의자로 득시글거렸다는 악질적 비밀경찰 FBI도 큰 공을 세웠다. 여러가지로 브렉시트와 유사하다.

 

반기득권, 반엘리트 정서로 가득한 제조업 몰락 지역의 백인하층민과 노동계층 속에서 악선동을 하던 인종주의 우파가 메이저 언론의 압도적 예상을 뒤집고 승리한 것이다.(설마 브렉시트 때처럼 이것을 반체제 여론과 노동계급의 승리라고 여길 좌파는 없으리라 믿는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으로 고통받은 일부 백인 노동계층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들을 단순히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로 찌든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모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이 절망과 냉소 속에서 반동적 대안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더구나 그들만이 미국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미국 노동계급은 지금 인종, 젠더, 종교에 따라 분열돼 있고 이번 선거는 그 반영이었다. 계급, 인종, 젠더는 역시 분리될 수 없이 얽혀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그래도 힐러리같은 매파는 아니지 않냐는 말도 옳지 않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양당은 둘 다 매파이고 전쟁광이다. 트럼프는 절대로 결코 비둘기가 아니며, 고립주의든 국제주의든 저들의 선택 기준은 오로지 미국의 패권이다. 조지 부시의 고립주의(일방주의)는 유엔과 상의없이 이라크를 폭격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일부 우파는 트럼프가 되면 러시아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시리아를 폭격할 거라고 기대한다.

 

이번 결과를 자유주의의 패배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것도 일면적이다. 물론 사람들이 재수없어 하는 엘리트적 자유주의로는 극우 인종주의적 대중선동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것을 꼴좋다고 강 건너 불구경처럼 말할 수가 없다. 노무현 5년에 대한 심판으로 이명박이 됐을 때도 기쁘진 않았듯이 말이다.

 

자유주의가 그보다 더 나쁜 극우 인종주의에 패배한 것이 지금 상황의 핵심이며, 정말로 실패한 것은 독립적 좌파 대안이기 때문이다. 3 독립 후보인 녹색당의 질 스타인은 거의 주변화됐고, 반우파 여론은 또 민주당에 갇혀 버렸다.

 

민주적 사회주의가 핫이슈였던 올해 초가 아스라하게 느껴진다. 이는 독립적 대안이 아니라 힐러리에게 그 과실을 갖다 준 버니 샌더스의 책임이 크다. 사실 극우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 - 빈곤, 실업, 좌절, 양극화 - 은 급진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기도 하다. 문제는 오늘날 급진좌파는 너무 분열돼 있고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히틀러가 등장하던 1930년대 당시만 해도 공산당과 노동운동은 매우 강력했었다.

 

하지만 좌절하고만 있기에는 다가오는 위험의 크기가 너무 크다. 결국 우리는 다시 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누가 거리에 앉아서 싸우고 있느냐다는 하워드 진의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지금 미국의 좌파는 인종주의와 반이민 선동에 맞서면서 그것을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맞서는 투쟁과 연결시키고 더 큰 단결을 건설해야 한다. 우리도 이 나라에서 한심한 자유주의 야당이 또다시 우파의 어부지리를 낳지 못하게 좌파가 힘을 모아 독립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트럼프 밑에서 지낼 순 없다고 주먹을 쥐고 있을 미국인들에게, 이미 거리로 나가서 트럼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싸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아마 박근혜 당선 직후의 우리와 비슷한 심정이리라.

 

우리도 4년후에 이런 격변이 벌어질 줄은 잘 몰랐듯이 그들에게도 투쟁의 행운이 올 것이라 믿는다. 트럼프에게 모욕당하고 벌레 취급받아 온 여성, 유색인, 무슬림들이 다 같이 들고 일어나 백인 노동자들을 견인하며 트럼프를 조기에 쫓아낼 수 있기를, 양당체제를 넘어서며 불평등, 불의, 억압을 끝내길 응원하고 학수고대한다.   


 (기사 등록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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