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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3·1절 집회 단상: 태극기의 헤게모니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3. 3.

윤미래

 

 

 

 

세종대왕상을 사이에 두고 노란 리본을 매단 태극기와 그냥 태극기 또는 성조기와 함께 매단 태극기가 대치했다. 언론은 대체로 '둘로 나뉜 3·1'이라고 이 풍경을 보도했고 일부 보수 언론은 촛불도 태극기도 자중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훈계했다. 누가 보면 박근혜가 탄핵감인지 아닌지 애매한 문제로 소추됐고 여론이 50:50으로 갈리는 줄 오해할 지경이다. 언론이 기계적 중립의 외양 아래서 이런 방식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매번 똑같이 유감스럽다. 그래도 비례의 문제를 빼고 본다면 3·1절과 태극기의 의미를 둘러싼 전선이 생긴 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판단과 대응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난 이틀간 했던 생각들을 짧게 정리해보았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집회가 많은 좌파들에게는 굉장히 심기 불편한 듯하다. 나 역시 그런 좌파들 중 하나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부터 얼마나 많은 야만과 불의로 점철되었는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편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극기의 의미를 두고 벌이는 작은 전투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을 그저 불편해해서는 안되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태극기는 우선은 인류 보편에 대비되는 한국의 특수이익을, 계급지배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이상과 대비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성 질서를 대변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것은 한반도 영토 및 조선족·재일교포·교민사회 내에서 보편이익을 상징하기도 한다. 태극기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둘러싼 싸움은 그래서, 곧 이 사회 안에서 누구의 이익과 입장이 보편타당한 것으로 인정받는가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우회하는 정치는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싸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태극기의 의미(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내포하는 바에 대한 사람들의 정의)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 의미가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광장에서 같은 깃발을 들고 두 개의 역사를 외쳤다. '건국' - 한강의기적 - '적법절차민주주의' - '자유통일'의 계보가 한쪽에, 항일투쟁과 민주화와 시민사회운동의 역사가 다른 쪽에 있었다.

 

어느 쪽도 온전한 내 역사는 아니다. 건준이나 전평, 4·3과 여순, 청계피복이나 전노협 같은 이름들은 어느 쪽에도 잘 들어가지 못한다. 반성폭력 운동이나 이주여성인권운동도 자리를 찾기 애매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역사가 그것들과 똑같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관점이다. 전자의 역사 서술은 숨길 것 없는 지배계급의 욕망 그 자체인 반면, 후자의 역사 서술은 이 체제를 깨뜨리지 않는 한 결코 달성될 수 없는 이상들을 제한되고 순치된 형태로나마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여전히 우리 손을 떠나 있고, 보통 사람들은 사회를 통치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통치당하고, 불평등과 부조리는 일상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이상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결국 더 급진적인, 더 계급적인, 더 피억압자 중심적인 운동과 접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국가에 필적할 만한 대항헤게모니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 보편의 옷을 입히기 위해 태극기를 드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전략적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좌파는 자연스럽고 전략적으로 이해할 만한 수위에서 만족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다. 사회주의적 실천은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멀어보일지라도 바로 그 국가를 넘어설 대항헤게모니를 만들어내는 실천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실천의 방법으로서 두 개의 태극기 사이에 양비론을 취하는 것이 적절하거나 효과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조기와 묶인 태극기에 대항해 노란 리본을 맨 태극기를 든 사람들은 지향하고 있는 기치가 있고, 그것은 한계적일지언정 좌파의 이상과 공유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대중의 급진화는 이 공유하는 부분으로부터 시작되어 결국 한계를 깨뜨릴 때까지 그것을 밀고 나가는 과정이고, 이 전선에서 그 과정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 지금 좌파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기사 등록 2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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