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러시아 혁명 재평가 토론회 “교사이자 반면교사로서 혁명”

전진한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85다른세상을향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 재평가>80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관심 속에 진행됐다. 더운 날씨와 휴가 기간에도 다양한 활동가들과 청년들이 토론에 함께했다.


 

박노자 발제

 

먼저 한국사회에 대한 급진적이고 치열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는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교원의 발제가 있었다. 러시아혁명과 동시대인 식민지 조선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러시아에서 직접 겪은 경험도 제시하며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러시아혁명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영감과 교훈을 주는 역사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러시아혁명 당시의 용어들에 오늘날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무산계급 독재를 지향했던 혁명 직후 소비에트 대표자회의는 노동자들의 1표가 농민 5표의 가치를 지닌 불평등 구조였다. 하루 수십 번의 온라인 투표가 가능한 오늘날 민중은 새로운 독재보다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할 것이다. “전위당또는 민중에 대한 계몽개념 역시 오늘날 교육 수준이 높은 수많은 무산계급들을 고려하면 현재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현재도 유효한 화두가 있다. 러시아 민중 대다수는 토지의 무상몰수·배급을 원했던 농민들이었는데, 오늘날 여전히 인도나 파키스탄 같이 농장주의 지배가 남아 있는 곳에서는 급진적 토지개혁 요구가 필요하다. 볼셰비키의 주요 기반은 대공장 숙련공이었는데 이들은 급여가 높았으나 장시간 고강도 노동, 하우스 푸어, 회사 갑질, 신분 불안 등을 겪었고, 이는 오늘날 노동귀족이라고 부적절하게 불리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이들이 급진적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것은 귀중한 경험이다.

 

또 러시아혁명에서는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중요했다. 이들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초과착취에 가장 심하게 시달렸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문화와 언어, 정체성 수호, 평등한 대우가 중요한 요구였다. 이런 요구는 혁명 이후 토착화정책으로 실현되었는데 이후 점차 사라지기는 했어도 소련 말기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됐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사회주의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회주의는 국가의 사멸·고사를 뜻했는데 러시아혁명 이후 국가는 오히려 강화됐다. 징병제 군대, 비밀경찰 체카, 중앙집권적 노동통제가 이뤄졌다.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변호된 국가권력 강화는 혁명을 변질시켰다.

 

콜론타이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반대파는 당 독재를 규탄하면서 노동조합에 권력을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러한 정파의 활동을 금지시킨 사람이 레닌이었다. 레닌 시기 이미 당의 국가화와 보수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트로츠키가 스탈린에게 패배할 것은 예정된 것이었다.

 

스탈린주의적 개발은 잔혹했지만 민중들에게 지지가 있었는데, 스탈린 시기 노동자·농민의 신분상승 기회가 보장됐고, 무상의료, 무상교육, 노후연금, 주거공급 등 복지가 제공됐고 노동자·소수자에 대한 여러 우대 정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교사이기도 하고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무엇이 사회주의를 변질시키는지를 잘 알고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정성진 발제

 

다음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교육에 헌신해온 정성진 경상대학교 교원의 발제가 이어졌다. 체계적이고 열정적인 발제로 러시아혁명과 레닌주의 신화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주장을 들려줬다.

 

마르크스 사회주의론의 주요 요소 10가지는 연속혁명, 세계혁명, 국가 소멸,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작업장 민주주의, 개인적 소유의 재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상품·화폐·시장의 소멸, 노동시간 단위 경제 조절, 노동의 폐지다. 소련은 이러한 10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주의라고 볼 수 없고, 일종의 자본주의에 해당했다.

 

특히 스탈린주의 체제는 당관료로 이루어진 국가자본이 노동 착취, 정치적 자유 억압, 경쟁과 축적 논리로 지배한 당관료 국가자본주의였다. 레닌도 러시아를 노동자국가가 사기업을 관리감독하는 국가자본주의라 불렀다. 1930년대 스탈린 반혁명의 성격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역행했다기 보다는 같은 국가자본주의 안에서 국가 성격이 노동자 국가에서 당관료 국가로 전환된 것이었다.

 

마르크스와 레닌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먼저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않았던 반면 레닌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로 간주했고 이는 이후 소련 국가의 억압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레닌은 1914년 이전 카우츠키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위로부터의 의식성을 주장했고, 10월 혁명에서 소비에트 승인 이전에 권력을 장악하는 등 아래로부터의 관점이 모호했다. 레닌은 <국가와혁명>에서 노동자자주관리 생산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프롤레타리아국가를 사회주의로 간주했고 지도, 복종, 통제 등을 강조했다.

 

소련 붕괴는 스탈린주의의 파산과 레닌 사회주의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지 마르크스 사회주의론의 파산이 아니었다.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과 마르크스 사이의 공통점을 과장해왔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마르크스적, 비레닌주의적 공산주의론을 복원·재조명하는 것이 오늘날 필요하다.

 

소련 붕괴 이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기회를 잡지 못한 이유는 그들 다수가 레닌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진정한 레닌주의자라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1904년 트로츠키는 레닌의 민주집중제와 전위당 이론을 대리주의라고 비판하며 당내 민주주의,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강조했고, 1914년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이론에 맞서 반전평화사상을 주장했지만,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하면서 그 주장들을 철회해버렸다. 1917년 이전 트로츠키의 사상을 되살려 추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전지윤 토론

 

마지막으로, 나중에 토론자로 추가된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이 발표를 했다.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 단체 내에서 지난 3개월 넘게 진행해온 세미나 내용과 결과를 요약 정리해서 소개했다.

 

100년전에 러시아에서 민중들이 혁명을 일으켜 짜르 제거, 전쟁 종식, 자본주의 폐지를 이룬 것은 고무적인데 결국은 실패, 변질하고 말았다. 그 원인에 대해선 스탈린이 등장하면서 노동자 통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가자본주의가 됐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변질이 레닌 시절부터 시작됐다는 것이고, 그것을 상황논리로 변호하게 되면 스탈린 시대도 얼마든지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주의와 볼셰비키의 경험을 신화화하고 그대로 반복하자는 주장에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우리는 지난 3개월 넘게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여기서 나온 평가는 먼저 레닌주의 당은 원래 규율과 중앙집중만 강조하는 새로운 종류의 당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율적이고 분권적인 당이었고 그것이 혁명 시기에 급속한 성장을 가능케 했다.

 

레닌이 없었다면 혁명이 가능하지 않았다는 말도 틀렸다. 실제 러시아 혁명의 주요 고비는 모두 볼셰비키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투쟁과 주도력으로 돌파됐다. 되려 10월에 소비에트의 민주적 논의와 사전합의 없는 봉기 이후, 볼셰비키가 좌파 야당들을 배제하는 권력 독점으로 나가고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를 무력화한 것이 문제였다.

 

내전 과정에서 징병제와 사형제 부활 등의 심각한 후퇴가 있었고, 1921년 크론슈타트에서 소비에트 민주주의 부활을 외치는 민중을 무력 진압하며 결정적 전환이 이뤄졌다. 하지만 탄압으로 유지했던 전시공산주의와 신경제정책들은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고, 볼셰비키의 억압과 후퇴가 전해지면서 국제 좌파들이 실망하고 국제적 연대가 약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즉 열악한 상황이 환경을 제공했지만 이데올로기에도 씨앗이 있었다. 러시아 혁명에서 나타난 부정적 씨앗을 극복하고, 긍정적 씨앗을 발전시켜야 한다. 아래로부터 통제와 민주주의, 자주관리는 결코 가로막히지 말아야 한다. 폐쇄적 조직을 레닌주의라고 신화화하지 말고 대중 속에서 함께 배우고 답을 찾으려는 민주적이고 열린 조직과 정치를 발전시키자.

 

질의응답 및 자유토론

 

2부는 질의응답과 자유로토론으로 시작했다. 질문지를 통해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한 러시아의 현재 정치적 상황과 변혁운동의 양상에 대해 알고 싶다.’


러시아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었는가? 1917년 러시아는 농업국가였기에 사회주의로의 개관적 이행 조건이 준비되지 않았었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크론슈타트 수병들을 진압한 것은 실수였는지,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아나키스트들은 폭력적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볼셰비키로부터 탄압을 당했다는 것에 놀랐고 기존과 다른 평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의견을 듣고 싶다.’


러시아혁명 시기 장애인들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진보적 정책이 있었는가, 사회주의와 장애인 인권이 연결될 수 있을까?’

 

플로어 발언을 통한 다양한 질문과 의견 제시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라스 리는 10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옛 볼셰비즘의 정식이었던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가 구현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4월 테제 신화를 해체했다. 제헌의회에서 볼셰비키는 4분의 1도 안 되는 표를 획득하자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소비에트를 앞세워 당 독재를 펼쳤다. 다른 정파에 대한 탄압을 넘어 그 정파를 지지하는 민중들도 탄압했고, 이것이 러시아의 비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부족 문제는 현재 주변화된 좌파들에게도 극복 과제다. 운동에서 배우고 토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재와 민주주의를 대립하는 주장에 이견이 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민주주의와 대립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용어가 모순이라는 주장에도 이견이 있다.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라는 표현은 사적 소유 철폐를 주장한 마르크스 주장과 모순 되는 것 아닌가? 소련처럼 사회복지와 노동자 농민 우대 정책이 있는 사회라면 방어할 가치가 있는가?”

 

당시 독재는 가치 중립적 용어였으므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불평등 선거제도는 문제지만, 농민에 비해 생산수단을 집단으로 소유해야 하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 쿠바, 중국, 베네수엘라 같은 주변부 국가들은 서구중심주의 속에서 재단·평가되고 있는데, 평균수명도 길고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쿠바 민중 스스로의 인식은 다르다. 서구중심주의적 평가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

 

연사들이 이에 응답했다. 먼저 정성진 발제자가 발언했다.

 

제정 러시아가 농민이 다수인 국가였음에도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트로츠키는 불균등결합발전으로 설명했다. 일국을 넘어 세계적 관점으로도 모순이 결합되어 혁명을 위한 조건은 형성되어 있었다


혁명 직후 수립된 사회가 급격히 변질되어 사회주의라고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변혁 자체는 사회주의적 혁명이었다. 2월은 부르주아 혁명, 10월은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보는 단계론은 틀렸다. 민중권력에 의해 이중권력 상태를 만든 2월 혁명을 부르주아혁명이라고 볼 수는 없다. 2월과 10월은 연속적 과정이었다.

 

이어 박노자 발제자의 응답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관료들이 체제 유지와 소련붕괴 후 민심 수습을 위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복지를 유지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계급적 이해가 갈려 있다는 점을 보면서 민중들의 계급의식을 끌어올리는 것이 러시아 변혁운동의 과제다.


쿠바는 급진적 혁명 후 공동체에 가깝고, 북한과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북한은 자국 민중들에게 과다한 노동을 강요한 한편, 팔레스타인, 쿠바 등 제3세계를 지원하기도 했다. 억압적 측면과 반제 해방운동의 기여를 균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소련 사회는 지킬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지키지 못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당 내에서 최고지도자의 노선을 공개 비판할 수 없었다.

혁명 초기에는 장애인 정책, 모성보호, 아동보호 정책에 중점을 뒀으나 곧 재정 궁핍에 직면했다. 그러나 이런 진보적 정책들 일부는 끝까지 유지됐다. 혁명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이어서 몇 명의 플로어 발언을 들었다.

 

러시아의 인구 다수는 농민이었지만 사회 핵심부가 자본주의 생산체제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가능했다. 레닌과 볼셰비키가 당 독재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계급 상태의 반영이기도 했다고 본다. 내전을 겪으면서 노동계급의 선진부위가 사라졌다. 러시아 혁명이 왜곡·변질된 것은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리아와 베네수엘라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세계 혁명을 위한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혁명 직후 동성애는 합법화되었다가 스탈린 집권 후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동성애가 다시 불법화되었다. 쿠바의 경우 동성애는 불법으로 탄압받다가 이후 합법화되었고 현재는 모든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여러 진보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주의 혁명과 성소수자 해방의 연관성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정리발언

 

마지막으로 앞선 질문과 의견들에 답하며, 발제자들이 정리 발언을 했다. 먼저 전지윤 토론자가 말했다.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말하면서 장애인, 여성, 소수자 문제를 뭔가 부차화시키는 태도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은 노동계급의 개념을 재구성해서 조직노동자와 착취가 중심이라는 식이 아니라 장애인, 여성, 소수자의 문제를 상호교차성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같은 사회주의를 위로부터 제국주의의 압박, 공격 위협에서 방어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래로부터 민중의 불만과 저항의 관점에서는 비판해야 한다.


경제적 발전만 보지 않고, 주변부 경제 후진국의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관점이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도 있다. 연속혁명론과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관점이 그것인데, 막상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고나서 생산력을 중시하며 야간노동, 성과급 등을 도입했다.


이런 후퇴가 노동계급의 사기저하와 해체 때문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혁명의 변질에 맞선 파업, 저항, 봉기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볼셰비키가 이것을 탄압, 진압한 것에 있다. 오늘날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도 혁명을 지킨다며 독재를 정당화하고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나타난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재하는 사람이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고, 어떤 당도 서랍 속에 답이 없으며, 끝없는 시행착오, 토론 속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기억하자.

 

다음으로 정성진 발제자가 발언했다.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란 생산자와 생산수단이 결합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생산수단은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소비재는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고, 레닌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공산주의를 국유화로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주변부 국가들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19193·1운동은 1917년 혁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1920년대 초 코민테른 대회에 조선인이 많이 참여했다. 러시아혁명의 해방적 에너지는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 혁명은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 영향을 주고 받아왔다.


우리는 이미 현실사회주의 좌절과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지난 경험들로부터 이론과 모델을 연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혁명의 현재성을 함께 더 고민해보자.

 

마지막으로 박노자 발제자가 마무리 발언했다.

 

한국은 반공 이데올로기 속 러시아혁명이 악마화되거나 무시돼왔다. 악마화와 낭만화를 넘어선 해석이 필요하다. 혁명가라 하더라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레닌과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유산계급 출신들이었고, 중앙집권적 지도, 훈육, 통제에 익숙했다. 볼셰비키의 기반이었던 숙련공들은 빈농 등과 비교할 때 가장 억압받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런 한계를 이해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촛불혁명은 민중 다수의 집단행동으로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줬다. 그런데 러시아 혁명은 정권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꾼 혁명이었기에 아무리 변질되었어도 변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미 제국주의를 추종하거나, 사적 소유가 존재할 수 없거나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배집단의 행동 반경을 제한시킨다. 러시아 사회가 사적 자본주의로 넘어가는데는 무려 75년이 걸렸다. 중국도 자본주의로 전환되었음에도 여전히 좌파 이데올로기로 호소한다.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토론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이나 지속됐고, 참가자들은 뒤풀이에서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러시아혁명이 우리에게 보여준 잠재력과 이상을 또다시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끊임 없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한 토론회였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는 이후에도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 재평가를 위해 지난 3개월 넘게 진행해 온 세미나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관심이 있고 참가하고 싶은 분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기사 등록 201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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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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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이상실 2017.08.14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인용

    "마르크스 사회주의론의 주요 요소 10가지는 연속혁명, 세계혁명, 국가 소멸,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작업장 민주주의, 개인적 소유의 재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상품·화폐·시장의 소멸, 노동시간 단위 경제 조절, 노동의 폐지다. 소련은 이러한 10가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주의라고 볼 수 없고, 일종의 자본주의에 해당했다.

    출처: http://www.anotherworld.kr/465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만약 토론회 참가자들의 주장대로 소련이 정성진 교수가 주장하는 10가지 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소련 사회가 '자본주의'일 이유는 무엇인가? 나쁜 것은 자본주의라서 그런건가? 소규모 단위를 제외한다면 사적 자본이 없는 사회를 어떻게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어이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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