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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샬러츠빌 - 부상하는 나치의 위험과 그 대안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9. 18.

남수경



[이 글의 필자인 남수경은 미국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이다. 처음에 실렸던 글(http://socialist.kr/charlottesville-and-far-right-terror/)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사회주의자>에 감사드린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대학도시 샬러츠빌, 그곳에서 지난 812일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발단은 지난 봄 샬러츠빌 시의회가 시 공원에 있는 로버트 리 장군과 토마스 잭슨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고,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공원 이름을 각각 해방공원(Emancipation Park)과 정의공원 (Justice Park)으로 바꾸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되었다. 로버트 리와 토마스 잭슨은 미국남북전쟁 당시 북부에 맞서 남부연합군을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샬러츠빌 시의회의 결정은 최근 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예제와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남부연합 관련 기념물 철거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시의회의 의결로 두 공원의 이름은 즉시 바뀌었지만, 동상 철거와 관련해서는 결정에 반발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6개월간 임시중단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샬러츠빌 집결은 8월이 처음이 아니었다. 78일에도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 이하 KKK)” 멤버 약 50명이 샬러츠빌에서 모여 동상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KKK의 상징인 흰색 두건 복장을 하고 남부연합기를 흔들며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저지하려는 집회에 그 스무 배가 넘는 천명 이상이 모여 극우파를 수적으로 압도해 버렸다. “인종주의자들은 껴져버려라는 구호를 외치는 반인종주의 시위대에 밀려 KKK는 예정된 집회시간도 제대로 다 채우지 못하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퇴장해야 했다.

 

하지만 극우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812일에 샬러츠빌에서 우파여 단결하라(Unite the Right)’라는 명칭의 집회를 조직해 백인우월주의자, 신나치, KKK, 대안우파 등 다양한 극우분파들을 한 곳에 모아 힘을 과시하려는 시도를 했다.

 

샬러츠빌 시당국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를 허가해 주었다. 고무 받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집회 전날 밤, 샬러츠빌 소재 버지니아대학 캠퍼스에서 위협적인 횃불시위를 벌이며 힘을 과시했다. 대학 구내에 있는 한 흑인교회 앞을 지나면서 시위대는 일제히 백인의 생명이 소중하다피와 땅이라는 나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하얀 두건을 쓰고 횃불을 들고 행진하면서 흑인을 린치하던 극우 비밀결사체 KKK을 떠오르게 했다.

 

토요일인 812일 극우 인종주의자들은 공원 안 리 장군 동상 앞에 모였다. 군복을 입고 나온 이, 헬멧과 사제 방패, 총기로 무장한 이 그리고 남부연합 깃발이나 KKK 휘장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너희들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 “유태인은 우리를 대체할 수 없다같은 나치 구호를 외치며 위력을 과시했다. 극우와 혐오단체들을 감시하고 있는 남부빈곤법센터(Southern Poverty Law Center)’에 의하면 이날 집회가 최근 수십 년간 열린 극우집회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집회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마무리를 위해 공원을 향해 행진하던 인종주의반대 시위대가 다운타운 몰 근처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차 한대가 전속력으로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차에 치인 사람들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혼비백산한 사람들로 거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량테러를 감행한 사람은 오하이오에서 극우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온 제임스 필즈 2세라는 이름의 스무 살 청년이다. 그는 공화당원이자 대안우파 지지자인데, 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나치즘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백주대낮의 극우테러로 한명이 목숨을 잃고 30명이 넘게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는 32세의 헤더 헤이어로 샬러츠빌에 거주하던 여성이었는데, 로펌에서 법률보조 업무를 보면서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해 온 활동가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헤더가 모든 종류의 차별에 대항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항상 존재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하며 그녀의 죽음을 추모했다. 반면, 한 신나치그룹은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그녀의 외모를 비하하고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거짓말로 고인의 죽음을 조롱해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샬러츠빌에서 극우 테러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즉시 자생적으로 거리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극우에 반대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사건 직후 24시간 안에 미 전역에서 약 700개의 자생적인 추모와 연대투쟁이 진행되었다.

 

샬러츠빌의 극우테러가 난지 불과 일주일 후인 819일에는 보스턴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소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민주당 소속인 보스턴 시장은 극우인종주의자들이 보스턴에서 환영 받지 않을 것이며, 극우집회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보스턴 시는 극우집회에 허가서를 발부했고, 시장은 말을 바꾸어 보스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혐오와 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에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겠다는 그의 발언은 실질적으로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독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샬러츠빌의 극우테러를 목격한 사람들은 같은 일이 보스턴에서 되풀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극우 집회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가 참가한 가운데 집회신고 시간보다 훨씬 빨리 허겁지겁 끝나버렸다. 반면, 극우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하는 맞불집회에 4만 명 이상이 모였다. 반인종주의 시위대는 (No) 나치! K.K.K.! 노 파시스트 미국!” 같은 구호를 외치며 보스턴 시내를 행진하며 극우를 수적으로 압도해 버렸다. 보스턴의 반나치 시위에 동조하는 연대시위 역시 미 전역에서 동시에 열렸다.

 

827일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서 열린 극우의 마르크스주의 반대 (No to Marxism in America)’ 집회에서도 일주일 전 보스턴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누가 샬러츠빌의 테러를 조장했는가?

 

샬러츠빌에서 벌어진 극우테러는 일탈한 일개 미치광이가 저지른 우발적 범죄가 아니다. 공화당의 인종주의 아젠다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극우의 자신감을 고조시켜 더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추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샬러츠빌과 같은 극우 테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KKK의 전 리더이자 대선 때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던 데이비드 듀크는 샬러츠빌에 모인 극우 시위대가 우리(백인)의 나라를 되찾자트럼프의 약속을 이행하려고모였다고 말했다. 샬러츠빌 극우테러를 규탄하는 시위에 등장한 다음과 같은 피켓문구는 현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운전은 제임스 필즈가 했지만, 그에게 차 열쇠를 준 것은 트럼프다.”

 

하지만 트럼프만 탓할 수 없다. 극우가 더 대담하게 행동하는데 트럼프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 것은 사실이지만, 백인우월주의가 트럼프 시대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이 되어도 인종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기승을 벌이는 이유는 미국 사회 체제에 인종주의가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반무슬림 정책,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자를 추방해 추방사령관이라는 오명을 얻은 오바마의 반이민정책, 그리고 민주, 공화 양당 행정부를 불문하고 일관되게 계속되고 있는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 폭력과 차별적인 법 집행, 이 모든 것들이 극우반동이 자라날 수 있는 양분을 제공했다.

 

경찰 또한 샬러츠빌 극우테러에 책임이 있다. 경찰은 11일 저녁 버지니아대학 캠퍼스에서 극우파가 집회허가 없이 횃불시위하는 것을 묵인했다. 12일 집회에서 경찰은 극우인종주의자들이 맞불시위대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물리적인 공격을 가해도 수수방관 지켜보고만 있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이나 스탠딩락 송유관저지 투쟁에 대해 중무장한 경찰이 탱크, 최류탄, 물대포 그리고 심지어 개까지 동원해 탄압하던 것과 비교해 보라. 샬러츠빌에서 경찰의 묵인으로 인해 백인우월주의자들은 더 의기양양해져서 반인종주의 시위대를 공격했다. 그 절정이 차량 테러로 나타났다. 반면 경찰은 이날 반인종주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체포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경찰의 이중적인 태도는 812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극우집회에서 일관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78일 집회 때에도 경찰은 나치가 아니라 반인종주의 시위대를 연행하고 막는데 급급했다. KKK가 집회를 해산하고 떠나려고 할 때 시위대가 이들을 막아서자, 경찰은 극우를 에스코트해서 안전히 보내 주었다. 반면 극우시위대가 떠난 후 반인종주의 맞불시위대가 집회를 바로 정리하지 않자, 경찰은 이 시위를 불법 집회로 규정해 바로 최루가스를 쏘며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반나치 시위에 가담한 사람들 중 22명이 연행되고 그 중 네명이 중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문화유산인가 아니면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가?

 

리 장군 동상철거에 반대해 샬러츠빌에 모인 대안우파를 비롯한 극우파는 자신들이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남부연합의 문화유산과 전통을 지키려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안우파는 전혀 새롭지 않은, 과거와 똑같은 폭력적인 반동 인종주의자들의 새로운 세대일 뿐이다. 그들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성소수자/트렌스젠더 혐오 등 자본주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대변한다.

 

트럼프도 남부연합 동상 철거를 미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며 극우의 주장을 지지했다.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는 건 어리석은일이고, 동상 철거를 묵인한다면 다음에는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차례일 것이라며, “아름다운 동상과 기념물들의 철거와 함께 위대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발기발기 찢겨져 나가는 걸 보는 게 슬프다고 한탄했다. 그의 이런 주장이 새삼스럽지 않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중에도 남부연합 기념물과 상징이 혐오가 아니라 문화유산 (heritage not hate)’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부연합은 미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인종주의 흑인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이다. 남부연합은 시작부터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주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남부연합 부통령 알렉산더 스티븐스는 한 연설에서 남부연합의 토대와 근간이 니그로가 백인과 동등하지 않고, 우월한 인종의 노예로 복종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라는 위대한 정의에 기반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남부연합 관련 동상이나 기념물들은 인종분리를 합법화하는 짐 크로법이 만들어지고 KKK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시대에 세워졌다. 남부연합기가 다시 걸리고 동상 같은 기념물이 건립된 데는 분명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해방된 흑인에게 백인이 여전히 우월하고 그들을 지배할 권리가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극우의 남부연합 동상 지키기는 노예제가 있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백인만의 세상을 되찾기 위한 반동적인 투쟁이다.

 

샬러츠빌은 다시 한 번 미국의 정치 지형이 양극화 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쪽에는 노골적으로 인종혐오를 조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극우가 있다. 그들은 더 대범하게 행동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지금이 자신의 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조직화를 통해 세를 키우려 하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좌파가 있다.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파편화 되어있고 조직적으로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반우파, 반 트럼프 정서 속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에 맞서 싸우려는 대중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시기를 맞았다. 극우에 맞서 싸우는 광범위한 공동전선을 세우고 동시에 정치적 조직적 독립성을 유지해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조직을 건설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가 미국의 사회주의자들 앞에 있다. ‘우파에 맞서 싸우면서 사회주의적 대안을 건설하라가 지금 이 시기의 좌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 등록 2017.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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