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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트럼프/ 카탈루냐/ 촛불1년/ 한샘 성폭력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1. 9.

전지윤

 



 

트럼프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1년전 한 집회에서 마이크를 주길래 트럼프가 당선됐는데, 우리가 잘 싸워서 트럼프와 박근혜가 정상회담하는 비극만은 막아보자고 발언했던 게 기억난다. 결국 이번에 트럼프는 당선 1주년을 한국에서 맞았지만, 촛불은 박근혜와 트럼프의 만남을 막아줬다.

 

하지만 촛불로 만들어졌다는 정부가, 박근혜가 했을 방식을 흉내내 트럼프를 맞이하는 역설이 벌어졌다. 트럼프 방한 날에 광화문 현장에서 느낀 건 어떻게든 트럼프에게 반대 목소리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문재인은 트럼프 앞에서 진정한 친구, 오랜 벗, 위대한 미국...’ 이러고 있었다.


트럼프의 반공시절 똘이장군식 연설에는 국회에서 20번 넘는 박수와 기립박수까지 이어졌다. 북한 군사공격과 한반도 전쟁 개시를 위한 명분을 쌓는 듯한 섬뜩한 연설에 말이다. 정말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가 한미동맹과 군사적, 경제적, 역사적으로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왔으며, 어떤 정치세력도 이 틀을 벗어날 수 없단 게 재확인된다. 깡패 두목의 가랑이 사이를 기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주면 평화가 올 거라는 자기최면엔 할 말이 없다.

 

물론 얼마전 한중 사드 봉합은 중국의 부상 속에 한미동맹에 틈이 생겼다는 것도 보여 줬다. 곧 있을 한중 정상회담에서 그것은 다시 드러날 것 같다. 시진핑은 얼마전 당대회에서 ‘2049년까지 세계 선두국가 건설을 선언했고, 한국 자본주의는 이제 중국 자본주의와 무시할 수 없게 얽혀있다.

 

트럼프가 이번에 3척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까지 끌고 오긴 했지만, ‘일대일로를 야심차게 추진하며 그물망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중국과 환태평양경제협정(TPP)을 진작에 포기하고 무기팔이만 하는 미국의 대조는 뭔가 변화가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와 틈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이번에 약간이라도 톤다운을 한 게 있다면 그건 여기저기서 NO트럼프, NO WAR를 외친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문제에서 민중당 동지들의 투지와 헌신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이러니 부패우파가 통진당의 부활이라며 입이 나올만도 하다. 이런 주장과 투쟁을 막기 위한 강제해산이었다는 자백인 셈이다. 그래도 나를 앞세우기보다, 반전평화를 위한 더 넓고 강력한 운동을 위해 더 세심하고 많은 고민도 필요하다.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대중적인 흐름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게 저들의 노림수였다는 걸 잊지 말자.

 

 

카탈루냐 독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문제가 그렇지만, 특히 카탈루냐 독립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 같은 문제는 정답이 없고 뭐가 더 타당할지 열린 문제일 것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고, 분리독립은 민족주의 성격이 있으며, 여론조사에서도 독립 찬성이 과반을 넘진 않는다고 한다.

 

민족주의는 분명 한계와 문제가 있다. 만약 이탈리아 북부동맹이나 영국 브렉시트 때처럼 극우가 주도해 대중적 불만을 반이민 선동과 국가주의로 흡수하려는 거라면 지지하기 어렵다. 경제위기와 긴축에 대한 분노에는 공감하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이탈리아 북부도, 영국도 피억압보다는 억압과 제국의 역사가 두드러진다.

 

반면 지금 카탈루냐 독립 요구와 운동은 인종주의 우파, 대자본 등의 주도로 벌어지고 있지 않다. 독립은 카탈루냐 자치의회의 결정이고, 스페인 우파 중앙정부의 폭력적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애초에 스페인 국가가 건설될 때부터 카스티야 왕국, 언어 등이 중심이 되면서 카탈루냐는 소외된 측면이 있었고, 프랑코 독재 때도 민족주의 운동은 탄압받았다고 한다. 프랑코 독재의 유산과 신자유주의가 결합된 ‘78년체제에서도 독립은 억눌려 왔다는 것이다.

 

자치의회에서 통과시킨 반긴축 법안들을 중앙정부가 거듭 폐기시킨 것도 반발을 낳았고, 카탈루냐 친독립 좌파들은 올해초 난민 환영 운동도 이끌었다고 한다. , 지금 독립운동은 좌파와 노조들이 주도하며 스페인 왕정과 우파정권, 긴축정책에 저항하는 성격이 주된 것이다. 무엇보다 독립 요구가 거리의 투쟁, 총파업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처음부터 반자본, 반긴축을 우선하는 순수한 계급투쟁만을 기다리고 지지할 순 없는 일이다. 지금은 독립의 요구 속에 계급적 요구와 투쟁이 반영돼 있다고 보인다. 친독립 좌파는 거리에서 독립, 사회주의, 페미니즘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스페인 좌파인 포데모스는 다소 양비론적인 태도를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독립을 지지하는게 옳다고 본다. 카탈루냐 포데모스가 더 독립에 적극적이라는데, 각자의 위치성을 고려할 때 그보단 스페인 포데모스가 독립을 적극 지지하고, 카탈루냐 포데모스가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게 더 나을 듯 싶다.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를 억압하는 상황이니까.

 

민족주의에 타협하자는 게 아니라, 특히 억압하는 국가에 속한 좌파로서 민족적 억압에 반대하자는 것이다. 분리된 민족국가 건설이 대안이라는 게 아니라, 경찰보내서 두들겨패고 정부해산시키는 라호이에 맞서서 독립할지 말지는 카탈루냐인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자는 것이다.

 

지금, 카탈루냐 민중들이 저들도 우리를 편들지 않고 라호이의 공격을 수수방관하는구나하는 심정으로 스페인 좌파와 노동운동을 보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지역과 민족을 넘어선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촛불 1년과 진보진영

 

촛불 1년을 지나면서 촛불의 바다 속에서 다같이 촛불을 들었던 찬란했던 기억보다, 곳곳에서 귀를 닫고 서로 비난하는 모습이 두드러져 씁쓸하다. 특히 민주노총이나 사회운동 진영을 비난하는 일부 날선 발언들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에서 완전히 틀린 말은 없을 것이다. 한상균이 감옥에 있고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인데 무슨 만찬 참석이냐는 말도, 5대요구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주장할 좋은 기회였다는 주장도, 공약 후퇴에 항의하며 청와대로 가자는 말도, 적폐세력의 본거지는 여의도라는 말도 말이다.

 

그런데 서로의 방향에서 비워 있는 부분만 부각하며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자극하고 비난한다. 자기 편의 부족함에는 관대하고 다른 편의 부족함에만 엄격하다. 서로가 촛불을 말아먹는 적폐나 배신자라고 매도하며 상대를 몰아내겠단다. 거울을 보듯이 서로 너희같은 사람들 때문에 너희 진영은 고립되고 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진영에나 일부 대화가 안 되고 너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며 이견을 존중하지 않는 닫힌 태도는 마치 자신들만 선택된 우월한 인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상대 진영의 가장 극단적인 사람들이 내뱉는 거친 표현들을 퍼나르며 감정적 대립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도 이해가 어렵다.

 

물론 나는 대체로 내가 함께해 온 조직된 사회운동 진영의 입장에 더 기울어져 있다. 민주노총의 초청 거부와 촛불 1년을 위한 청와대 행진에 더 공감가고, 문정부가 이룬 성과보다는 드러낸 한계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건너 편의 문제점이 더 눈에 들어오고 비판하고 싶은 생각도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분들이 성찰할 몫일테니, 우리 진영에 대해 더 엄격하게 돌아보고 싶다. 우리가 정말 옳고 이기고 싶다면, 다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 애썼어야 하지 않은가? 촛불의 힘이 미조직 대중의 자발적 동참에서 나왔다면, 그들과 함께 촛불 1년을 준비했어야지 않나? 정권 퇴진 구호와 청와대 행진 전술이 거대한 촛불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거대한 촛불이 정권 퇴진과 청와대 행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나?

 

촛불이 더 나가지 못한 것은 친문, 온건세력의 방해보다 사회혁명을 대안으로 세워내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 탓 아닌가? 1년전 사분오열과 소멸의 위기로 몰렸다가, 지금 박근혜까지 쳐내며 재결집과 부활을 노리는 부패우파 적폐세력은 지금 기회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있다고 느낄 것 같다.

 

 

한샘 성폭력 사건

 

요즘 한샘 사건의 내용과 전개과정을 보면 소설 <다른 사람>하고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사내연애를 하다가 피해를 당한 여성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자 회사는 인터넷에 올려서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고 수입에 타격주고 직원들 사기를 떨어트리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여성을 비난한다. 또 연애 과정에서 자신이 한 잘못들은 객관적으로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남성만 비난했다고 탓한다.

 

사건이 드러나자 온라인에서도 더 공격받은 것은 여성이었다. 댓글에서 사람들은 그녀가 멍청하고 이해할 수 없고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한다. 또 그녀가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분석하고 논쟁을 벌인다. 주인공은 이것들이 쓸데없고 무의미한 말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찾아 읽는 것을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한샘 사건에서도 카톡에서 피해자가 보인 남성에 대한 호감과 친근함, 사건 직후 별일 아니었다는 식의 태도가 문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그런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여성은 피해를 겪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서 주인공은 성폭력 상담소에 전화한다.

 

상담원이 내게 물었다. 모르는 사람인가요? 거부 의사를 밝히셨나요? 도중에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으세요? 싫은 기색 비친 적 있으세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일본 전공투의 교훈과 가해자 의식

 

얼마 전 일본 전공투의 역사와 교훈에 대한 토론회 때 임경화 선생님이 아주 유익하고 좋은 발제를 해주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가해자로서의 자각과 가해자 의식에 대한 강조였다. 그 점을 보여주기 위해 급하게 번역까지 해 오신 1968년 전공투 투쟁 당시에 도쿄대 공대 대학원생, 연구자들의 성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성명에는 명문대생으로 자신들이 특권적 인간이며 잉여가치노동자 계급에 기생하는 존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접적 가해자일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사회모순을 심화시키는 이중의 의미에서 가해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문 연구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로서 자기부정을 지향하고 사회변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부당한 존립 기반을 스스로의 손으로 묻어버리라!”

 

선생님은 이 성명을 최근에 탈핵 논쟁 속에서 이 나라의 한 공대 학생회가 낸 성명과 비교했다. 거기에는 오히려 피해자 의식이 보여진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탈핵이 진행되고 있고, 이 때문에 연구환경이 위협받고, 연구예산도 줄어들면서 공든 탑이 무너질 상황이라는 한탄이었다.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는 거였다.

 

물론 1968의 혁명적 열기가 넘치던 상황에서 나온 목소리와 지금을, 그당시 일본 대학이나 학생의 성격과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토론에서도 나왔지만, 탈핵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불안을 단순히 무시해도 안 될 것이다.

 

더구나 모두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만, 모두가 가해자라고만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현실에서 순전한 피해자도 순전한 가해자도 없으며, 대개 우리는 모두 가해와 피해를 서로 주고 받는다.

 

그럼에도 68년 도쿄대 투사들의 가해자로서의 자각과 의식은 소중해 보인다. 누구를 밟고 서 있는지, 누구에게 고통을 주었는가 자각하는 것,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은 결코 가해자일 수 없고, 아무 잘못도 없다며 우기는 사람들, 상대방에게만 반성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를 낙인찍고, 잘라내는 것을 해결책으로 보는 문화도 이걸 부추기는 것 같다. 그러면 결코 낙인찍힐 수 없다는 공포와 반발만 커지고, 사회적 구조와 공동체의 문화는 변화하지 않는다. 토론과 평가 속에서 함께 배우고 거듭나는 과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해자로서의 자각과 의식은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려는 사람은, 그것이 만든 상처를 살펴보고 해결하려는 사람은, 잘못을 낳는 구조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은 이미 가해자가 아니라 변화의 주체다. 나부터 돌아봐얄 거 같다.


 

(기사 등록 201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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