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최근 페미니즘 논쟁들에 관한 짧은 글들

미래

 


남성 동지들에게 드리는 고언: 어려운 길 가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같은 다소 정체성 정치의 다소 과한 발언들에 큰 소리로 혀를 차며 너희들이야말로 가부장제와 한 패라는 폭언까지 서슴지 않으시는 분들이 남성 페미니스트로서(페미니즘이란 말이 싫다면 여성 해방을 지지하는 남성으로서라고 해도 좋다) 이러한 호명에는 빠르게 입 다물고 고개 돌리는 걸 보면 정말이지 환멸감이 들고 화가 난다. 전위나 지식인, 엘리트를 자임하며 운동에 일침을 날리고 싶다면 최소한 그 이름표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피흘리고 상처받으며 싸우는 현장과는 멀찍이 떨어져 서서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주문은 잘 하면서 스스로 어려운 길 가기는 저어한다면 그건 무익한 논평을 넘어서 마르크스주의나 좌파 운동의 권위를 횡령하고 그 권위가 있기까지 피흘려 싸웠던 사람들의 삶과 희생을 착취하는 짓이다. 활동가나 지식인들의 노동을 다른 이의 삶을 수단화하고 이용하려는 수작 정도로 폄하하고 불신하는 시선들은 그런 사람들의 그러한 실천 때문에 현실적 정당성을 얻으며, 그 피해는 어김없이 좀더 성실한 동지들에게 돌아간다. 민폐도 그만한 민폐가 없다. 쎄게 돌려주자면, 당신들이야말로 그런 방식으로 자본주의와 한 패인 것이다.

 

성별주의나 성차별로부터 해방되려는 여성들이 어째야 하는지에 대해 논평을 즐겨하는 뭇 남성 동지들에게 부탁하건대,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훈시는 자제하고, 그 힘으로 먼저 당신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 당사자 앞이라고 고개 숙이고 회개하며 침묵하는 마당쇠 페미니즘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물 밖에서 팔짱 끼고 쉽게쉽게 말할 수 있는 얘기는 대개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안다는 걸 좀 유념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도 현실도 잘 모르는 타인의 실천에 대해 설교하는 것보다 당신이 당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당신밖에 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싸움들에 힘을 쏟는 게 심지어 여성 운동의 오류를 극복하는 데에도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여성배제적, 동성애혐오적인 남성연대의 내부에서 그 일원들과 싸우면서 인류의 나머지 절반을 계몽하고 바꾸어나가는 일은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종종 페미니즘 운동에서 남성에 대한 과한 불신과 적의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현실에서 너무 많은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여성에 대해 가해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대중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여성운동과 연대하는 남성들이 스스로 그러한 실천을 탈각하고 해방의 동맹으로 등장한다면 그러한 태도들은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해 자연히 잦아들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분열을 막는 일은 여성들 혼자의 몫이 아니다. 남성들이 같이, 아니 실은 더 많이 해야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폭력이나 성차별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절대로 사소하거나 지엽적인 일일 수가 없지만 하는 입장에서는 조금만 반성하고 조심하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실로 사소한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대의를 위해 네가 당하는 부당함은 좀 참으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가해자에게 대의를 위해서 최소한 네가 일상에서 하고 있는 착취나 차별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훨씬 더 올바르다.

 

당신이 정말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면 우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자. 그러고도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 쓰고 조언할 여력이 있거든 회개하는 죄인도 우월한 논평가도 아닌 동등한 주체로서 눈을 마주보고 말하자. 어려운 주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피해 서사를 넘어서자는 비판에 대하여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피해자 서사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은 이제 너무 많이 반복되어서 익숙해질 정도지만, 사실 나는 이러한 비판들이 여성들이 피해 서사에 의탁하는 현실을 별로 바꾸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여성운동 내에서도 이미 십 년 전부터 나오고 있었지만, 그런 고민을 안고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기는커녕 그러한 문제의식을 새로운 실천으로 이어가는 것조차 어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해 손쉬운 비판을 던지는 논객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여성들이 피해자 놀이를 즐거워하며 피해자 권력에 도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한 여자를 공론장에 들이는 것 자체에 여전히 너무나 인색하고, 공론장 외의 영역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여서 피해자 위치에 서지 않으면 여자가 여자의 삶에 대해 말을 하는 걸 도저히 진지하게 듣지 않는 인간들이 여전히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남성 연장자의 권위 앞에서는 설설 기면서 나이 어린 여자에게 논리로 지는 건 죽어도 참지 못하는 동지들, 서로 인권 존중하자는 이야기 하면 네가 기층 민중의 처지를 알고 그런 호사스러운 소리를 하느냐고 도리어 면박을 주는 동지들,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자기 고통을 전시해서 상대가 더 아무 소리 못 하게 만드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드는 동지들이, 말을 하고 싶은 여성에게 상처와 피해의 서사 이외의 대안을 매일 매순간 박탈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피해로 환원하는 단순화된 서사가 그렇게 범람하는 것이다.

 

나는 가해자로 지목되어 언어폭력, 정치적 사보타지와 배제, 무엇보다 동지들로부터의 날것의 증오와 불신에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노출된 경험 때문에 몇 년간 피해자 권력화에 대한 비판, 경계를 거의 히스테릭할 정도로 해왔고 피해자중심주의를 성인지적 객관성 같은 좀더 발전된 원리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피해 서사가 이렇게나 판을 지배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지 않는 한 그것은 피해서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은 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도 안 해보는 외부자들이 쉽게쉽게 던지는 투쟁밖에 모르는 경직된 운동권어쩌고 하는 얕은 냉소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그것을 운동에 도움이 되는 건전한 비판이라 여기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제발 좀더 나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생존하고 싶기 때문에, 안전하고 싶기 때문에, 아프지 않고 싶기 때문에 그러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보다 사회가, 청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부터가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화의 한계에 관한 활동가 대담 기사 사진(출처: http://stoprape.or.kr/m/266)


 

반지성주의가 승리하는 순간: ‘굿즈남논쟁에 부쳐

 

최근, 남성의 발언에는 훨씬 쉽게 관심이 쏠리고 권위가 부여되는 현실을 기반으로, 페미니즘에 관해 마땅한 무게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단발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호응을 얻는 지식인들을 굿즈남으로 비하하는 한 여성 페미니스트의 글이 일각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나는 굿즈남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기로 했는데, 그 글이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일반론이라서 필자가 어떤 사람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지점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어차피 모르고 말할 권리도 없다는 식의 반지성주의보다 현실의 삶을 위해, 현실의 삶에 대해 말하고 쓰는 대신에 자기 머릿속에 상상한 구도를 현실에 투사하고 그것으로 당사자들의 삶을 재단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삶에 충실하기보다 사회적 인기와 보상을 갈구하는 지성의 타락, 지성의 태만이 훨씬 더 위험하고 그리고 훨씬 더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이러한 현실 위에서 꽃피고,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지식인들을 폄하하는 발언이 아니라 자기 계급의 신뢰성을 스스로 깎아먹는 지식인들의 실천이다. 반지성주의가 승리하는 순간은 이러한 발언들이 사회에 만연할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지식과 이론에 더 이상 질타나 분노를 던질 만큼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것, 이론이며 언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 삶과 무관한 것이며 우리가 가진 것은 손에 잡히는 고통과 분노뿐이라는 체념과 냉소가 더 이상 소리내어 말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단단하게 뿌리박는 때이다. 이러한 확신에 가까운 불신은 공상이 아니라 이미 사회 구석구석에 피어나고 있는 현실이고, 나는 그 어디보다도 여성운동에서 그런 감정들을 많이 마주쳤다. 그리고 타인의 삶과 싸움에 대한 존중 없이 펜과 혀를 놀리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러한 태도에 대한 경계와 자성이 - 우선 스스로의 위치성을 성찰하는 것으로 모든 말과 글을 시작하는 습관이 - 모든 뜻있는 지식인들에게 최소한의 윤리로 자리잡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번성하게 될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실제로 틀렸기 때문에, 즉 지식과 이론이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사회는 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식인 계급이 대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지식인 계급의 도태 이전에 이 시대 이 사회의 대중이 다른 시대, 다른 사회의 동료들과 연결되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와 운동은 개별 현장이나 지역, 집단, 부문의 시야를 넘어서 광범위한 연대를 건설할 수단을 잃고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된다.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일지언정, 여성운동 내에서 지성의 상품화와 부박한 소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는 것이 나는 그래서 차라리 반갑다



(기사 등록 20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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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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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05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피해자 놀이를 즐거워하며 피해자 권력에 도취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한 여자를 공론장에 들이는 것 자체에 여전히 너무나 인색하고, 공론장 외의 영역에서도 사태는 마찬가지여서 피해자 위치에 서지 않으면 ..."<< 이 부분에는 반은 동의 반은 동의할 수 없네요. 제가 보기엔 리부트된 넷페미니즘은 충분히 피해자 놀이 즐거워 하고 그걸 권력화 하고 싶어하거든요. "여성이 제일 약자다"라는 기반 논리로 몇년 간 행해진 흐름들을 보셨다면 동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가 반은 동의한다고 한 것은 그런 피해자의 이기적인 심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명시하셨기 때문이에요. 분명 우리는 다시 피해자만을 탓하는 것으로 회귀하지 않아야죠.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를 미화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드네요. 좀 이기적이고 피해자 권력 휘두르고 싶어하는 거 솔직히 인정한다고 뭐 안 달라져요. 단순 양비론 하란 말이 아니라, 무게를 다르게 둔 양비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도한 트집잡기 인가요? 하지만 전 그간 몇년 인터넷 페미니즘에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이 다시금 지겨운 반복을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2. 2018.01.05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 댓글은 뭣보다 넷 페미니즘의 피해자 서사가 성소수자 혐오 논리를 정당화하는데 쓰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작성했습니다. 페미니즘이 리부트되기 전에는 여초 집단, 여성학 페미니즘 강의실이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요새는 오히려 저기가 가장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곳이 되어버렸거든요.

  3. 2018.01.05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하간 전반적인 문제의식은 대부분 동의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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