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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이재용의 진짜 죄 값은 아직 물어지지도 않았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2. 8.

이상수(반올림 상임활동가)

 

 

황유미 추모식에서 눈물 흘리던 황상기 아버님 



기어이 이재용이 풀려났다. 재판이 끝나고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 없어진다. 김시녀 어머님이 저쪽에서 우신다. 아무래도 혜경씨와 통화를 하는 듯하다. 이재용이 풀려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혜경씨가 요 며칠 잠을 잘 못 이룬다고 어머님이 걱정을 했었다.

 

한혜경님은 삼성에서 LCD를 만들다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받고 시력·보행·언어 1급 장애를 얻은 피해자다. 혜경씨는 삼성에서 안전교육 대신 극기 훈련을 받았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한다. 나무에 매달려 매미소리를 내고, 물속에 들어가 숨을 참던 시간들. 납과 화학약품의 유해성을 알려주는 대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어떤 일이라도 참고 복종하는 습성을 기르던 시간들. 그걸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혜경씨와 어머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12일로 반올림 농성장을 지켜왔다. 겨울철 농성장의 밤은 핫팩으로 견디는데, 얼마 전에 혜경씨가 핫팩에 발을 데였다. 핫팩의 저온 화상은 상처가 깊어 아주 오래 간다. 혜경씨는 장시간 외출이 어려워져서 이재용 선고 날에도 어머님만 혼자 올라오셨다. 맘은 불안한데 혼자 집에 있느라 혜경씨는 더 힘들었을 게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이 재판은 남다르다. 이재용의 범죄혐의는 뇌물죄, 횡령죄, 재산국외도피죄, 범죄수익은닉죄, 위증죄이지만, 직업병 피해자의 마음속에서 이 재판은 기업살인, 직업병 문제 방치에 대해 죄를 묻는 것이다.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 피해자만 320명이다. 그 중 118분이 이미 돌아가셨다.

 

직업병 피해자 중에는 혜경씨처럼 끝내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 인정이 되었어도 직업병을 인정받기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있다. 삼성이 직업병 조사와 증거자료협조를 거부한 탓에, 산재신청과 소송으로 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치료비와 생계 보조가 가장 절실할 때 피해자들은 산재보상을 받지 못했다.

 

직업병 피해자들의 이런 절박한 상황을 악용해서, 산재 은폐를 대가로 돈을 건네는 일도 반복되었다. 황상기 아버님은 아직도 삼성이 약속을 어기고 500만원을 건넸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신다. 유미씨의 백혈병이 재발해 치료비가 너무 급했던 탓에 그 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겠나.

 

삼성과의 교섭과정에서 피해 가족들이 갈라진 경험은 지금까지도 아픈 기억이다. 교섭단에 속한 가족들의 보상논의를 먼저 하자는 삼성의 집요한 요구가 일부 가족에게 받아들여져 반올림과 별도의 가족대책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교섭단에 속한 가족들에게 보상한 후 다른 피해가족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믿을 수 없었던 황상기 아버님과 혜경씨네, 그리고 활동가들은 차마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함께 보상받아야 한다는 배제 없고 투명한 보상은 반올림의 가장 중요한 요구이다.

 

이후 가족대책위와 삼성이 제안했던 조정위원회가 권고안을 냈지만, 삼성은 이마저도 걷어차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심사해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보상위원회 절차를 강행했다. 반올림은 이를 바로잡기 위한 농성을 850일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삼성직업병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선고가 내려지고 호송차를 향하던 이재용이 미소 짓던 순간이 카메라에 잡혔다. 1년간의 재판으로 거듭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재벌청문회로 하루 종일 사람들 앞에 선 날에도, 잘 훈련된 것처럼 꼭 필요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였지만,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쁨을 온전히 감출 수는 없었나보다. 기뻤을 게다. 언론도 사법부도 다 내 손 안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니들이 아무리 나서봐야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걸 온 세상에 보여주었으니.

 

그가 호화롭고 따뜻한 집에서 안락한 잠을 청했을 그 밤에, 몸도 맘도 힘드셨을 황상기 아버님은 온기 없는 농성장에서 서러운 밤을 보내셨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분노는 어쩔 수 없이 한 박자 늦지만, 그 분노가 다시 세상을 밀어간다. 잠시 풀려났지만 다시 갇힌 범죄자들을 기억하며, 그에게도 그런 미래가 펼쳐지기를 간절한 맘으로 바래본다. 이재용은 아직 죄 값을 치르지 않았다



(기사 등록 20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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