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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미투'(metoo)/ 올림픽과 한반도/ ‘혁명의 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2. 26.

전지윤


 


'미투'(metoo)와 상상력의 중요성

 

요즘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발을 응원하면서, 가부장체제에서 기득권적 위치에 있는 남성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성폭력적 사회 속에서 나도 어떤 가해의 일부였는지 돌아보게 된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 안된다고 계속 교육받는 것, 도와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않고 믿지않는 것,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살아있는 죽음이라고 했다. 한국사회가 바로 그것을 강요해 왔다. ‘미투는 전에도 있었지만 계속 사라지고 지워져 왔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황해문화>에 발표된 것은 반년 전이었지만, 그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들어주고 믿어주려는, 더 말해도 괜찮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다. 초중고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금새 20만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가 촛불을 끄고 광장을 떠날 때, 그 불씨를 품고가서 자기 자리에서 새로운 촛불을 켠 여성들이 변화를 만들었다.

 

서지현, 최영미, 김수희, 김보리 등이 그런 분들이다. 촛불 전에도, 촛불 후에도 계속 촛불을 끄지 않고 싸워왔던 소수자, 장애인, 반올림, 청소노동자 등과 함께 이들이야말로 촛불을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키려는 주역이라는 지적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고발의 새로운 물결이 억압적 국가기구의 핵심인 검찰에서 터져나왔던 것도 의미심장하다. 간첩조작한 검사가 나중에 여기자 성추행한 검사로 또 이름 내밀던 곳이 검찰이었다. 아시아나 항공에서는 성폭력을 스킨십 경영이라고 포장해 왔던 것이 드러났다.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의 첫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수컷 쥐와 인간 남성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 온 심리학자들이 스트레스와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을 맞서가나 도망치거나둘 중에 하나로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제3의 선택지로 여럿이 한데 뭉쳐서 서로 돕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이 최근 미투물결 속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윤택 같은 가해자들이나, 그것을 방조하고 외면해 온 수많은 남성들은 왜 그랬을까. 솔닛은 가부장제가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폭력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자기 감정에 대한 절단이라는 벨 훅스의 지적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남자들은 감정이입의 범위를 넓혀서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는다... 특권은 종종 상상력을 제약하거나 가로막는다.”

 

상상력이란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아니라 네게 벌어졌기 때문에 내가 말 그대로 몸소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치 내 일처럼 상상할 수 있고, 내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어져 있고 누구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차별주의와 체제를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거나,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과 위험이 무엇인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차별은 누군가가 어떤 측면에서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에게는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우리 서로 간의 차이가 전부이고 공통의 인간성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의 일부를 닫아두었거나 제거해버렸다는 것이다.”

 

총기난사로 올해들어서만 1천 명이 죽었다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정신병운운하며 교사도 총기로 무장을 떠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을 닫거나 제거한 이 자는 총기난사 희생자나 그 가족, 친구들의 고통에 전혀 감정이입하지 못한다.

 

상상력은 정말 중요하다. 내 돈으로 그 손실을 메워야 했던 알바생의 심정을 상상해 보면 왜 청와대 게시판에 ‘5천원, 5만원 지폐의 색깔을 다르게 해 달라는 청원이 올랐는지 이해가 된다.

 

지금은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미국에서 미투 대열에 앞장선 스칼렛 요한슨을 보면서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동조한 그녀의 과거가 떠올라 불편하다는 지적을 봤다. 요한슨이 팔레스타인 민중의 심정까지 상상력을 넓힐 수 있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앞서 성폭력의 경험과 피해를 말했다가 연애 결별의 앙갚음으로, 정신질환의 문제로, 불순한 의도로 중상모략을 하는 거짓말쟁이로 비난받았던 여성들의 심정을 상상해 보자.

 

미투의 물결 속에서도, 미투를 응원하는 글들 속에서도 그런 불신, 비난, 매도의 글과 책들이 여전히 버젓이 올라가 있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이런 울분이 언제까지 억눌러질 수 있을지.

 

연극계만이 아니라 운동사회까지 포함한 한국사회 곳곳이 지뢰밭이다. 이윤택 등을 욕하며 지금의 미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을 넘어서, 앞서 나왔던 미투를 우리가 억누르고 지우려고 한 게 아닌지 돌아 봐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투로 열린 문은 닫히지 않는다. 수많은 여성들이 그 문에 발을 걸고 있고 온몸으로 그것을 막을 것이다.

 


평창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평화

 

민족 화합과 평화통일만을 앞세우며 다른 모순을 외면하거나, 차별받는 소수자의 문제를 주변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다양한 모순과 억압이 상호교차하고 있고, 어느 한가지로만 설명되거나 풀릴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이번 평화올림픽을 맘 편히 축하하기엔 걸리는 점들이 많았다.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던 가리왕산 500년 원시림이 사라졌고, 무슬림 기도실은 보수기독교의 반대 속에 무산됐고, 개막식 방송에서는 수화통역도 제공되지 않았다. ‘한민족과 한핏줄만 강조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불편할 일이다. 생태환경의 문제도, 종교적 억압도, 장애인과 이주민 등 차별받는 소수자의 문제도 나중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호교차하는 현실에서 민족 모순과 평화의 문제도 삭제, 무시될 순 없다. 평창올림픽은 누가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지, 평화로 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보여 줬다. 한미군사훈련이 연기되자마자 거짓말처럼 긴장이 풀리고 길이 열렸다. 비행기와 배가 오가고, 사람이 내려오자 미국와 유엔의 대북제재가 그것을 막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하지만 평화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냉전보수 세력이 열심이었던 것은 오로지 북한에서 온 여성들의 외모, 몸매, 패션 품평이었고 몰카와 임신여부 판단까지 서슴지 않았다.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던 게 북한 여성에게는 더했던 것이다. 소녀시대 서현까지 종북으로 몰렸다. 교차적 모순의 연결성은 가해의 연결성으로도 드러났다.

 

미국은 올림픽 기간을 겨냥해 3개의 핵항모 전단을 한반도 주변으로 보내며 전략폭격기 6대를 추가로 괌에 배치했고, 일본은 해상자위대 함선과 초계기를 서해까지 진출시켰고 한미군사훈련을 계속하자고 떼썼다. 펜스와 아베는 잔치집 와서 깽판치는 진상고객같았다. 반세기전에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갈라놓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내몰았던 것도 이 세력이다.

 

문제는 올림픽 이후다. 미국은 최근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 북한을 50번이나 거론하며, 핵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도 가능하다고 했다. 실전 사용 가능한 저강도핵무기들을 더 많이 만들어, ‘핵무기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심리적 부담을 덜어서 언제든 쉽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술핵을 동북아에 배치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이것은 최근 강경매파로 유명하던 빅터 차마저도 그걸 반대하다 트럼프 눈밖에 났다는 코피 작전과도 연결된다. 북한 군사시설을, 전면 맞대응하진 않을 정도로 제한적으로 타격해 위험을 제거한다는 논리다.

 

여기선 갑자기 김정은이 재앙을 감수하며 반격할 정도로 비이성적이진 않을 거라 가정된다. 물론 김정은은 트럼프보단 합리적으로 보이는데 문제는 전쟁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클라우제비츠)이라는 데 있다.

 

트럼프 일당은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거라서 코피 작전을 검토한 적은 없다고 강력 부인한다. ‘그것이 부수적 피해는 낳겠지만, 미국 본토의 안전이라는 더 장기적이고 큰 이익에 비해 감수할만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딱히 말이 없다.

 

미국의 패권이라는 더 장기적이고 큰 이익을 위해서 이미 30만명 이상이 죽은 시리아에서 여전히 러시아와 폭격을 주고받는 것도 감수할만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천안함, 웜비어, 탈북자... 이런 것만으로는 아직 한반도를 시리아처럼 만들기엔 부족하다고 느껴 명분을 더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일시적 소강마저 문정부가 안팎의 온갖 방해 속에 나름 애썼다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일시적 소강이 정상회담으로, 정상회담이 진정한 평화로 나가려면 넘어야할 고비가 한둘이 아니다. 그것은 이 정도 노력으론, 문정부만의 힘으론 가능하지 않다.

 

전쟁연습은 연기가 아니라 중단돼야 한다고, 대북압박과 제재도 끝나야 한다고, 우리가 만나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고, 북한 핵과 미사일도 문제지만 미국은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교차하는 모순들과 차별받는 소수자의 문제에도 눈감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트럼프는 여성혐오에 찌든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러시아 혁명과 혁명의 적

 

지난해 러시아 혁명 100주년으로 여러 책들이 나와서 챙겨 봤었는데 그중에 <혁명의 러시아 1891~1991>(올랜도 파이지스)도 있었다. 그 책에서 1937년 대숙청을 다룬 부분에서, 특히 아래 편지가 기억에 남았었다.

 

이 편지는 볼셰비키 투사로서 10월 봉기에 앞장섰던 안토노프-오프세옌코의 부인 소피아가 감옥에서 남편에게 쓴 것이다. 그도 이미 투옥됐다는 것을 모르고 쓴 것인데, 오프세옌코는 결국 총살당했다. 요즘 여러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생각이 나 다시 찾아 읽어보니, 이것이 어떤 심정인지 다시 떠올려진다.

 

혁명의 이상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자신이 혁명의 적으로 몰렸을 때, 이것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다가 과연 그런가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당이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잘못이 없을 때,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리는데 만약 이 사람마저 나를 믿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그 심정...

 

사랑하는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왠지 당신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체포된다면, 그것은 타당한 이유, 이를테면 범죄와 같은 잘못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우리가 항상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지요? 나의 경우에도 틀림없이 무슨 잘못이 있겠지만, 그게 무언지 나는 모릅니다...

 

지난 사흘 동안 나는 죽음을 각오하면서 나의 인생을 찬찬히 훑어보았어요. 나는 다른 인간에 대해서든지, 혹은 우리나라나 정부에 대해서든지 범죄라고 인정될만한 그 어떤 잘못도 저지른 기억이 없어요.. 당신은 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나의 행동과 나의 생각과 말의 진실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내가 여기 갇혀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뜻하지요. 아무튼 나는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나는 만약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내 처지가 더없이 끔찍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 내가 그렇게 불신을 받으며 살 수 없다는 겁니다.”

 


(기사 등록 2018.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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