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안 그런 남자들’에게 – 미투에 대한 반격에 부쳐

안 그런 남자들에게 미투에 대한 반격(백래시)에 부쳐


미래 





1.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죽을 만큼 억울해하는 것은 그들이 꽃뱀에게 당했기 때문도 아니지만 그들이 특별히 뻔뻔하고 파렴치한 인간이기 때문도 아니다. 이 사회는 성폭력을 많이, 쉽게 휘두르는 남자를 상남자’, ‘으로 추켜세우면서 덮어주고 감싸주기 어려워지면 등을 돌리고 돌을 던진다. ‘자취하는 여자가 인기가 좋다’ ‘차려준 밥상도 못 먹는 건 X자다’ ‘남자가 25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는 따위의 말들로, 남성은 으레 성욕을 못 이겨 항상 풀발기상태에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남자로서 어딘가 급이 떨어지는 결격이라고 취급하면서 여자가 너무 밝히면 깬다’ ‘여자가 내숭 떠는 맛이 있어야지’ ‘여자친구가 처녀 아닌 걸 티내면 남자들은 못 참는다라며 여자는 순결하고, 무지하고,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지배당하고 순종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멋대로 역할을 정해두고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 같은 남자를 부러워하고 선망하면서, 그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사태가 백일하에 드러나면 그 때서 짐승 같은 놈’ ‘남자들이 다 저렇지는 않다며 위선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어제까지 칭찬과 부러움, 시기와 선망의 대상이 되던 행동이 하루아침에 비난을 받게 되면 억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해자의 고통과 몸부림이 약간의 동정이라도 얻게 되면 당신들은 그를 기회로 또다시 피해자를 은근히 비난한다. ‘남자 망친 년’ ‘한 번쯤 실수에 너무 가혹했다’ ‘마녀사냥같은 말을 운운하면서. 그 고통, 그 억울함은 당신들이 만든 것이다. 당신들이 이 사회의 권력을 그렇게 굳게 틀어쥐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니면 가해자들이 조금만 덜 비겁했더라면, 하여 그 감정이 정확하게 책임소재를 향했더라면 증오를 받는 것은 당신들이었을 것이다. 군대에서의 고생이며 남성 간의 성폭력, 남성 노동자의 착취 따위에도 국가나 지배계급이 아니라 이기적인 요즘 여자들을 탓하는, 당신들의 그 비열한 근성이 아니었다면.

 

강간 문화가 남성을 죽인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죽인다. ‘안 그런 남자, 바로 당신들에게 하는 말이다.

 

2. 가해자의 재교육과 복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어서’ ‘사람을 매장해버리면 안 되니까따위의 도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성폭력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저지르는 짓이고, 가해자를 직책에서 해임시키거나 공적으로 제재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 가해자의 진정한 권력의 원천인 사적이고 비공식적인 지위를 해제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요원한 일이기 때문에, 여전히 피해자에게 가장 강력한 위험은 가해자가 되기 일쑤다. 가해자 주변인들이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배제할지 해결에 협조할지는 아직도 많은 경우 가해자가 그것을 원하는지에 좌우된다.

 

당신이 가해자와 유대가 있는 가해자 주변의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피해자를 위한다면, 본디오 빌라도처럼 간단하게 손을 씻어보여서는 안된다. 당신의 탄식이 대중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가 닿도록 하라. 가해자 동일시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비판에 한 점 타협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가해자가 뉘우치고 거듭나도록 가르치고 이끄는 역할이 당신에게 있다.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사람임을 믿는 것, 그가 억압의 공모자가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동료로서 생존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해자가 지위를 유지하는 공동체보다는 가해자가 탈주하는 공동체가 그나마 차악일지는 모르나, 가해를 만들어냈던 성역할, 성각본, 성을 다루는 방식들이 변하지 않았다면 가해자를 잘라내는 것은 그저 나머지 사람들의 문제를 은폐하는 꼬리자르기에 불과하다. 자존심을 버리고 죄를 뉘우치는 남성을 내심 ‘X’ ‘X이라고 깔아보면서 입으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위선을 넘어 죄악에 가깝다. 가해자가 거듭난 사람으로 복귀할 수 있는가, 그것이 그에게 정말로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는가는 공동체가 정말로 얼마나 변화했는가를 재는 하나의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3. 가부장적 성 각본은 여자를 함락할 성채나 획득해야 할 전리품으로 취급한다. 성폭력을 고발하고 여성이 인간이라는 것을 피터지게 외쳐온 수십 년의 싸움 끝에 사람들은 주인이 열어주지 않은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이 범죄라는 인식 정도는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성채를 함락하는 방식이 공성에서 항복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취급이 본질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동의했고 심지어 욕망했는데도 수치스럽고 모멸당한 기분으로 끝난 섹스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겪어봤는가?

 

제 발로 모텔에 들어갔는데 그게 무슨 강간이냐라는 말은 딱 이런 정도의 이해에서 나온다. 포위를 했든 기만을 했든 싸워볼 의지조차 잃을 만큼 자원과 전투력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든 제 손으로 성문을 열어주었다면 그것으로 섹스는 합법적이 되었다는 인식. 그 인식 하에서 문제는 오로지 강제성을 입증하는 데에 놓이며, 여성이 바랄 수 있는 최대한은 최소한 힘으로 겁탈당하지는 않는 것, 최소한 성문을 닫아걸고 자기를 유폐하여 안전을 구하는 정도는 허용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구책은 턱없이 무력해서, 이미 감언이설이나 애원으로 성문을 열게 만들려는 남성들이 새로운 규칙에 훌륭하게 적응한 플레이어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게 성문을 열어준 여성은 안에 들어온 자가 어떤 모멸과 고통을 초래하든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징징대지 말아라라는 비아냥이나 듣게 된다.

 

동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생기는 것이다.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동의 정도가 아니라 문서를 쓰고 지장을 찍는대도 인간과 인간으로서 하지 않은 섹스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일 수밖에 없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오직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양쪽 모두가 주체적으로 관여되는 교감의 행위만이 제대로 된 섹스다. 나머지 모든 것은 물리력이 개입했든 아니든, 여자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든 아니든, 그것이 법이나 규약으로 징계할 수 있는 행위이든 아니든 본질적으로 폭력이며 모욕이다.

 

4. 성이 아니라 폭력이 문제다. 이 억압적이고, 예속적이고, 후지기 짝이 없는 관계와 행위가 섹시하고’ ‘남자답고’ ‘우월하게받아들여지고 여겨지는 것, 성을 다루는 그 터무니없는 시대착오가 문제다. 여자와 회식과 출장을 피하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밖에 성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여자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만큼은 죽어도 거부하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안 그런 남자들을 호출하는 것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라며 남자를 존재론적으로 단죄하고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들 모두가 가해자라는 바로 그 이유에서, 가해자 모두의 목을 칠 수는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관계로 만나야 한다. 그러니 부디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자. 멋지게. 섹시하게. 자연스럽게. ‘미 투가 드러낸 이 끔찍한 광경들이 더는 만들어지지 않도록



(기사 등록 2018.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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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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