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정신건강의 정치 - 자본주의와 정신의학

헤이즐 크로프트(Hazel Croft)

 번역: 두견



낙인을 줄이는 것은 좋은 시작이지만 정신건강에 대한 보다 급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영국의 사회주의자 헤이즐 크로프트(Hazel Croft)가 주장한다.

 

출처: https://www.rs21.org.uk/2017/07/29/the-politics-of-mental-health/

 



 

테레사 메이[영국 총리]가 선거 기간 동안에 정신건강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었고, 해리 왕자와 일단의 유명인사들이 정신건강의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따라붙는 낙인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는 등, 정신건강의 문제는 최근 몇 달간 미디어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긍정적인 한걸음이지만 낙인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거의 항상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는데,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정신건강 운동가 엘레노어 롱덴(Eleanor Longden)의 이러한 말은 정신건강에 대한 현재의 접근법을 요약한 것이다. 정부, 정신과 의사, 보건의료 전문가 및 언론에서 나오는 주류적 담론은 정신건강의 결함을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설명에 의해 지배된다.

 

정신건강은 거의 항상 누군가의 행동과 감정에 있어서 무엇이 손상되었는지, 부족하거나 불충분한지에 대해 개인화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정신건강 문제들에 대한 경험을 겪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논의는 훨씬 적다. - 그들의 주거 상태는 어떠한가, 그들의 노동은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학대에 고통받았는가, 빈곤과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그들의 정신적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사설 임대 주택에서 생활이 누군가의 정신건강에 초래할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생각해보자. - 집세 지불에 대한 걱정, 잦은 이사를 낳는 짧은 계약기간, 비좁고 부적절한 환경, 그리고 쫓겨날 것에 대한 걱정이 낳는 지속적인 불안감.

 

우리는 어느 정도 정신건강의 위기로 특징지어진 상황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불안전한 생활 조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근심, 저임금과 자주 불안정한 일자리, 잔인한 복지제도와 긴축정책의 커다란 효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살 충동, 우울증, 불안, 성격장애와 다른 정신건강 문제들에 시달리도록 만들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삭감되었고 흔히 사람들이 원하는 지원 제공에 실패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진행중인 사람들의 대략 4분의 3은 예컨대, 정신과적 도움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고, 심각한 정신건강 상태로 진단받은 사람의 4분의 1은 보살핌이나 이용가능한 지원의 부적절함으로 심각한 자기 방치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나는 오늘날 정신의학과 정신건강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살펴보며, 정신 건강의 이해, 진단, 그리고 치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정신의학

 

지난 40년 동안의 어느 때보다 정신의학적인 진단과 실행에서 생물의학적 모델은 더욱 더 지배적이 됐다. 비록 여전히 신체적 건강 악화와는 동등하지 않게 주목받거나 취급되고 있지만 정신질환은 정신과 의사와 미디어와 많은 서비스 이용자들에 의해서, 대개 개인의 유전적 구성이나 뇌화학같은 육체에서 비롯한 결함이나 질병의 문제로 압도적으로 개념화되고 있다.

 

물론, 논의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가 바뀌긴 했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래로 의사와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신체적 원인을 발견하는 데 집착해 왔다.

 

정신이상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를 해부해 뇌에서 손상을 발견하려던 19세기의 집착에서부터, 20세기 초 정신질환의 주요 원인을 독소와 육체적 감염으로 보던 이론들, 그리고 도파민 과다가 조현병을 유발한다는 식의 뇌의 화학적 뷸균형에 대한 최신의 이론화까지 말이다.

 

20세기 전체를 통해 종종 뇌의 덩어리들을 잘라내는 전두엽백질절단술을 포함해서, 인슐린 투약과 전기충격 요법(ECT)을 통해 혼수상태를 유도하는 등 과도하게 야만적인 물리 치료법이 정신질환 치유를 위해 사용됐다.

 

1950년대에 항정신병과 항우울제의 대량 생산이 발전된 이후로 약물치료는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의 신체에 대한 이러한 야만적 실험의 대부분을 대체했다. - 비록 ECT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말이다. 모든 뇌 연구, 물리적 실험 및 약물의 광범위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명확한 생물학적 설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의학적 모델은 지난 40 년 동안 정신질환에 대한 모든 연구를 주도하면서, 정신적 고통의 발달에서 심리적, 사회적 및 구조적 요인을 탐구하는 연구를 갉아먹으며 계속 부활해 왔다. 생물학적 이론과 치료의 이러한 지속적인 우위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제약산업이 정부와 정신의학 종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정신의학에 거대한 투자를 하는 거대 제약회사는, 어떻게 다양한 행동과 감정이 그에 따른 약물을 판매할 수 있는 별개의 조건으로 정의되고 분류되는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사용한다. 거대 제약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 데이비드 힐리가 쓴 것처럼 그들은 현재 단순한 약이 아니라 질병을 판다.”

 

지출 삭감과 긴축의 시대에, 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정신의학 약품으로 그들의 시장을 건설하는 동시에 정신의학 서비스는 사라져갔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형 정신병원들은 문을 닫았고, 대개 목이 좋은 곳에 있던 부동산들은 최고 응찰자들에게 매각됐다.

 

1980년대 초반에 내가 일했던 Napsbury 병원의 장기 입원 환자가 살던 공간을 지금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화려한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 거대한 기관들의 폐쇄를 환영했고, 사람들을 공공의 눈 밖으로 치워서 가둬버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적인 보호 시스템과의 연관성을 싫어했다.

 

그러나 많은 찬사 속에서 그것들을 대체하기로 돼 있던 지역사회 케어는 참담한 자금 부족 속에 있었고, 많은 경우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데이센터들도 문을 닫았고,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종종 표준 이하의 시설, 불결한 침구들 속에 홀로 남겨져, 약물치료에 의존하도록 강제됐고,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야 어느 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정신병 치료제가 증상을 완화시키면서 생명을 구할 수는 있지만, 항정신병 약이나 기타 정신병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사람들은 메스꺼움, 성욕 감퇴, 체중 증가, 불면증, 피로 및 환각 등으로 쇠약해지는 부작용에 자주 고통받게 된다.

 

정신건강 예산 삭감의 영향이 갈수록 강해짐에 따라서, 정부는 손해의 위험이 커보이지는 않는 강압적 방법들을 갈수록 더 채택해 왔다. 그래서 강제치료명령의 도입과 회복 모델 의 폭넓은 도입이 이뤄졌고, 많은 정신건강 운동가들과 서비스 이용자들은 그것을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강압의 도구로 여겼다.

 

예를 들어, ‘휴지통 속의 회복그룹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열악한 주거, 빈곤, 낙인,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불합리한 노동조건 및 수많은 다른 장벽들과 같은 견디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일상 생활의 병리학

 

1990년대 초반부터 정신과 약물은 정신의학 기관 밖에서 훨씬 광범위하게 처방되었다. 오늘날, 병원 밖에서 정신의학 서비스를 접촉하는 사람들의 약 90%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는다.

 

1987년에 처음 도입되어 역사상 가장 빨리 판매된 정신과 치료제가 된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을 예로 들어 보자. 프로작은 다른 어떤 약보다 더 자주 처방되어 왔고, 한 세대의 이름이자 베스트셀러 책의 주제가 됐다. 그것은 사람들의 우울한 증상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것보다는 낫게'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의해 판매됐다.

 

제약 회사들은 사람들에게 알약 형태의 '해결책'을 팔기 위해, 그들이 느끼는 진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먹이로 삼는다. 거대 제약회사의 지배는 또한 지난 40년간 새로운 정신질환의 급격한 확산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과거에는 의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뿌리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던 더욱 더 많은 삶의 문제들이 약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병리화되고 치료되어 왔다.

 

새로운 정신질환이 발생한 과정을 강조하는 것은 모든 정신과적 진단이 신화라거나 거부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건강의 문제를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진단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느끼거나 겪었을 수 있는 환청같은 급성기 증상에 의미를 부여할 길을 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진단은, 그것이 아무리 불충분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도움, 치료, 그리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종종 정신과 진단은 사람들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 참가로 겪은 외상성 증상에 대한 인식, 보상, 지원을 요구하는 베트남 퇴역 군인들의 투쟁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1981년에 공식적인 진단으로 인정 받게 만들었다.


이처럼 그 진단이 기원이 베트남 퇴역 군인들의 투쟁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의료 재정을 계속 삭감한다는 것은 PTSD와 같은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진단 방법이 또한 이용 가능한 치료 유형을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질서 아래서 우리의 정신건강은 시장의 요구에 종속된다.

 

한편으로 정부와 대기업은 행복과 웰빙에 대한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팔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보수가 좋은 직업과 행복한 관계를 통해 개인적인 성취감을 찾는 일종의 소비자적인 꿈인데, 성공의 징표로서 소비재를 장식해두었다. 반면에,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의 꿈과 목표를 실현시켜주지 못할 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도록 독려받는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심리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의미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신적인 서비스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리 치료, 상담, 그리고 다른 상담 치료들은 특히 당신이 가난하거나 소외된 사람이라면 더욱 접근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점점 더 많이 제공되는 서비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정신적 행복을 책임지고 있다는 행복 산업의 교활한 메시지이다. 국민의료보험(NHS)을 통해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인지행동치료((CBT)를 제공받는데, 이것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종종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또는 다시 흔히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명상 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이런 서비스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더 넓고 광범위하게 이용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CBT와 명상은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거나 모든 정신건강 문제를 다루는데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치료법은 사람들이 매일의 삶에 더 잘 대처하기 위해 그들의 행동이나 사고 방식을 바꾸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예컨대 장기적 심층 심리치료나 제약없는 상담 등을 통해 정신적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을 돕는데 더 나은 길을 안내하진 않는다.


그들은 또한 일자리 불안정이나 부적절한 주거 문제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제약도 다루지 않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으로 그것에 직면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킨다.

 

사회적 틀

 

비록 신자유주의 정책이 정신의학의 실천과 진단에 충분한 영향을 미치기 전에 작성되긴 했지만, 마르크스주의 저술가인 피터 세드윅(Peter Sedgwick)의 연구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아래서 정신건강을 탐색할 수 있는 유용한 사회적 틀을 제공한다.

 

1982년 그의 저서 심리정치학’(Psychopolitics)1970년대에 쓰여진 여러 논문에서 세드윅은 정신 질환을 실제적이고 구조적인 것으로 개념화했다. 그의 책은, 정신의학이 억압의 도구라고 주장해 온 RD LaingThomas Siasz와 같은, 반 심리학자들에 대한 비평이었다.

 

세드윅은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가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고 있다고 동의했다. 하지만 육체적 질병 또한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세드윅은 주장했다.

 

대부분의 () 정신의학자사상가들은 정신의학에 대해 개인주의적 비판을 했는데, 즉 문제를 정신과 의사의 행동의 하나로 해석했다. 하지만 세드윅은 정신의학을 억압적인 정신과 의사와 정신적으로 병들었다고 낙인찍힌 환자 사이의 개인적 싸움으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발병하고 정신의학적 진단이 이루어지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 건강은 사회적 과정의 일부였고, 더 많은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나 투쟁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한 사회적인 틀은 우리가 개인의 심리적인 감정을 사회의 관계와 구조와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할 수 있다. 정신건강은 착취와 억압이라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을뿐 아니라, 그 안에 얽혀있다.

 

우리는 이것을 정신건강과 그 치료가 젠더와 인종에 따라서 조정되는 방식을 통해서 볼 수 있다. 여성들, 소수민족 출신들, 그리고 성소수자들(LGBTQ)은 모두 정신적 고통의 증상을 겪고 정신건강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다.

 

예를 들어, 최근의 연구는 영국에서 소수민족 출신의 사람들이 정신이상을 앓을 가능성이 5배 더 높으며, 어릴 때 영국에 온 이민 1세대들이 가장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원들은 인종차별, 소속감, 위협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살아갈 새국가에서의 충돌되는 요구 등과 같은 요소들을 정신과적 삽화의 발전 요인으로 확인했다.

 

동시에 정신의학적 체계 안에서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와 트랜스포비아는 억압받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정신질환으로 진단받거나, 젠더와 인종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더 넓은 추정에 따라 그렇게 분류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은 반사회성 성격 장애로 진단 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경계성 성격 장애(BPD)로 진단받는 사람의 70% 이상은 여성이며, 그들중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신체적 또는 성적 학대를 경험했다. BPD(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성격 장애라고도 함)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종종, 정신과 의사나 임상의를 매번 곤혹스럽게 만드는 까다롭고교활한 환자로 특징지어진다.

 

그런 환자의 말과 행동은 BPD를 가진 여성에 대한 젠더화된 도식에 맞추어 해석되고, 그녀는 너무 따지기 좋아하고, 너무 뭔가에 굶주려있고, 너무 교활하면서, 너무 성을 밝히는 존재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BPD 진단은 트라우마와 정신질환의 발달에 있어서 아동기에 겪은 학대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정신의학적 진단은 - 그것이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 성적 범죄와 젠더적 억압에 대한 여성의 반응을 개인적인 문제로 만들거나 병리적인 문제로 취급하도록 만들어버린다.

 

그의 뛰어난 책인 <항의하는 정신병: The Protest Psychosis>에서 조나선 메츨(Jonathan Metzl )은 조현병 진단이 어떻게 화가 난 흑인 남성 시위자에 대한 설명과 관련돼 왔는지 분석한다. 미국에서 민권 운동과 다른 흑인 투쟁들이 벌어진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말이다. 메츨은 정신의학적 진단이 어떻게 부지불식간에 인종과 성별에 따른 편견들을 불어넣는지를 보여 주는데, 이것은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부딪힘의 모든 측면을 형성한다.

 

그는, 정신의학적 진단은 제멋대로인 가정주부”, “마약에 취한 참전용사”, “정신이 산만한 아동또는 화가난 흑인등과 같은 비참한 사람들을 규정짓고, 선을 긋고, 억누르는구실을 한다고 주장한다.

 

메츨이 구조적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차원에서, 그러한 집단에 대한 선입견과 두려움은 정신의학적 인식이나 사람들이 정의되어지고 진단받게 되는 방법을 형성한다. 설사 정신과 의사나 정신건강 분야 노동자들이 그들을 도우려고 할 때조차 말이다.

 

사회적 틀을 통해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것은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요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적 생존자인 제이 왓츠(Jay Watts)는 최근 <가디언>에 실린 통찰력 있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경험을 입증하는 쪽으로 우리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아무리 그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이해하기로 선택했더라도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질병으로, 다른 사람들은 트라우마의 결과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때야하는지에 관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혼합된 메시지에 대한 구체적 응답으로 개념화하려고 한다.”

 

사회적 틀은 정신건강이 어떻게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중심이 되는지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주면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싸움과 연결시킨다. -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맞서는 투쟁, 성적 해방을 위한 투쟁, 적절한 주거를 위한 투쟁, 또는 불안정한 노동과 우리가 더 오래 더 힘들게 일하도록 만드려는 시도에 맞서는 작업장에서의 투쟁 등.

 

우리는 정신건강 노동자, 서비스 사용자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투쟁해 나간다. 그렇다. 필요할 때 정신건강에 대한 서비스를 지킬뿐만 아니라, 우리를 생물학적 몸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행복척도에 따라서 측정해야할 단위로만 보지 않는 해방된 방식으로 정신건강을 개념화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

 


(기사 등록 201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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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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