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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디지털 전체주의 시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9. 23.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느끼는 부분이지만, 저는 가면 갈수록 "페북형 인간"이 되어갑니다. 거의 매일 1회 정도 포스팅하고, 거의 1~2시간에 한번씩 페북 확인하는 것은 인제 습관되어 거의 체화된 것이죠. 물론 여기에서 언어문화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조선말로 글 쓸 수 있는 것은, <한겨레> 등에서 아주 가끔 시사적 글을 쓰는 것 이외에는 거의 페북 밖에 없으니까요.

 

요즘 국내에서도 영어논문을 쓰는 게 좋다고 하여 조선어 학술체를 안써서 까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려운데, 그래도 정기적으로 페북질하니까 언어가 유지되는 듯합니다. 아마도 제 모어인 러어로 페북질하는 것이었다면 재미도 없고 시간도 잡아먹고 해서 그냥 그만두었을 터인데, 조선어 학습은 귀중하고 국내에 계시는 분들과의 의견교환도 되고 해서 계속 하는 거죠.

 

한데 페북을 계속 상대해다 보니 좀 무서운 느낌이 듭니다. 무기체인 '네트워크'인데, 꼭 제 생각을 읽는 어떤 초능력자(?) 같은 느낌이 막 들어 좀 무섭죠. 가령, 제가 트럼프를 까는 사이트에 몇 번 들어보고 그러면, 페북에서 곧 머지 않아 트럼프를 비판하는 매체의 광고가 제게 들어옵니다. 아니면, 아이들의 러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구라파에서의 러시아 이민자 자녀를 위한 언어과정 등을 좀 알아봤는데, 그 뒤로는 꼭 체코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러어 켐프의 광고가 계속 나오고요...

 

물론 페북은 '초능력'을 보유하지 않습니다. '문맥 광고', 저의 인터넷 검색에 대한 데이터에 관한 자동화된 분석의 결과로 뜨는 겁니다. 제 인터넷 검색이 저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건 큰 오판입니다. 글로 검색하면 그 결과들이 자동저장되는 거고, 페북 켜놓고 검색할 경우 페북이 제 검색결과들을 다 보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구글과 페북이 모아놓은 빅데이타를 접근할 수 있는 부서, 예컨대 미국의 첩보기관들은 저를 '투명인간'인 것처럼, 전부 '' 볼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페북이 제 대화 내용 같은 것을 '엿듣지' 않는다고 그 CEO가 몇 개월 전에 미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하긴 했는데... 문제는 기술적으로는, 제 컴푸터에 마이크가 달려 있고 그 마이크에 대한 접근을 네트워크가 할 수 있는 한 제 대화들을 엿듣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지 않는다 해도 '필요하다'고 회사 내지 그 회사를 관리하는 안보기관들이 결정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죠.

 

저는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대자본/정부 등이 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라도 할까, 그런 생각입니다. 일일동선은?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다 파악 가능하고요. 돈 씀씀이는? 스톡홀름 같으면 요즘 적어도 시내에서 무현금 상점들이 대세입니다. 오직 카드만 써야 하는데, 돈 낼 때마다 시스템에 다 찍히죠. 제 생각들은? 검색 내역, 휴대폰 통화 내역, 전자우편 내용 등을 보면 대강 다 알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의 첩보기관들이 스노든의 말대로 독일 총리의 메일을 자기 메일처럼 다 확인한다면 저 같은 미물의 전자우편계정이야 할 말도 없죠.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사이트가 제 취향을 다 아는 것처럼 맑시즘 책 광고부터 제게 띄어주는,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도대체 나만의 것이라고는 하나라도 있나요? 내 머리 속의 생각 정도겠죠? 그런데 이것도 시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거짓말 탐지기로 제 내면을 어느 정도 들여다볼 수도 있고, 뇌 스캐너로 뇌 속의 꽤나 복잡한 생각들 ("증인이 재판에 나가야 한다"와 같은 복합도의 문장 정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http://www.ccbi.cmu.edu/reprints/Wang_Just_HBM-2017_Journal-preprint.pdf ). Mind-reading, 즉 뇌 속의 내면의 목소리, 아직 발화되지 않은, 한데 뇌 속에서 이미 만들어진 문장들을 거의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는 기계의 도래는 시간의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인류에 대해 수많은 범죄들을 저질러왔지만, 그 중에서 아주 큰 것 두 개는 바로 핵을 개발한 것과 이처럼 정부와 자본에 다수에 대한 감시, 추적, 통제의 기술을 제공해준 것입니다. "통치성"이 거의 완벽해지는 디지털 전체주의 시대에는, 아무리 다당제의 법칙대로 정부가 정기적으로 교체된다 해도, 아무리 공명선거가 진행돼도 통치자와 피치자의 관계에 있어서는 후자의 위치는 획기적으로 약화됐습니다.

 

전자에게 후자가 다 투명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예전대로 4년에 한번씩 대선이 진행된다 해도, 미국의 경찰이 국내외의 "피의자"들의 뇌를 스캔해서 "불온한 반미 생각"이나 "테러적 의도"의 유무 여부를 판단해 해당자들을 "알아서 조치"할 수 있다면, 이건 이미 자유민주주의와 별로 관계없는 통치의 형태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모든 사회주의/사민주의적 진보세력들의 세계적 규모의 통일전선입니다. 그리고 반전, 탈핵, 반권위주의와 함께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한 통제를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저 괴물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저들이 우리를 아주아주 비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8.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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