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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혐오뉴스/ 캐버노/ 삼성해고자 복직/ 가사노동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0. 23.

전지윤



 


에스더기도운동과 혐오뉴스

 

에스더기도운동과 가짜뉴스에 대한 <한겨레>의 훌륭한 취재와 보도는 사회적 반향을 만들어냈다. 정부와 법무부가 대책까지 발표했다. 부실하고 초점이 어긋난 대책은 표현의 자유논란도 불러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표현의 자유가 핵심으로 보이진 않는다.

 

광우병 쇠고기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온갖 폭로와 추론들을 우파정부가 유언비어, 가짜뉴스라고 억누르던 때와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강자와 다수자를 조롱할 자유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할 자유는 다르기 때문이다. 닭장 속에서 여우가 맘대로 활개칠 자유는 닭에겐 공포일 뿐이니까.

 

에스더류의 가짜뉴스때문에 성소수자, 난민, 무슬림 등이 겪어온 고통은 실질적이었다. 일상적 혐오에 노출된 소수자들이 자살충동,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는 수많은 통계가 존재한다. 얼마전 인천퀴퍼에서는 부러진 깃대, 펑크난 트럭, 망가진 물품, 잘라진 전선, 할퀴어진 상처 등이 목격됐다.

 

따라서 한겨레가 혐오뉴스라는 프레임을 강조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냐는 소모적 논란보다, 누가 왜 혐오를 부추기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나갈 수 있게 말이다. 드러나고 있듯 그 핵심에는 기독근본주의 세력이 있고 전쟁, 분단, 독재 속에 반공주의와 연결돼 복음과 구원을 강조하며 성장해 온 한국 개신교의 위기가 있다.

 

위기의 뿌리에는 권력과의 결탁, 시장물신에의 굴복이 있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세습하는 교회, 성폭력한 목사, 부패에 대한 자정이었다. 그런데 개신교 우파가 찾은 것은 무슬림, 낙태하는 여성, 성소수자라는 희생양이다. 이 흐름에 휩쓸리길 거부한 사람은 이단으로 낙인찍었다. 지난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가장 노골적이었다. 그들은 온갖 혐오공약과 함께 종교인 과세 반대, 교회 부채 해결 등의 실속도 챙기려 했다.

 

물론 개신교 우파만 다가 아니다. ‘소수자 혐오 간증을 공직의 필수로 여기는 기득권 정치세력이 있고, 이명박근혜 시절 개신교 교단과 국정원의 관계는 긴밀했다고 한다. 지금 이들은 보수 메이저언론조차 불신하며 유튜브를 주요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 유튜브 이쪽에서 최고 인기 정당은 대한애국당인데, 근래 자유한국당을 보면 이들까지 포괄하는 보수통합을 통해 반격과 부활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브라질에서 노동자당 정부의 무능과 실패를 기회삼아, 기독교우파를 기반으로 소수자 혐오선동을 하며 권력쟁취 직전까지 온 보우소나르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따라서 저들의 혐오뉴스와 표현, 선동을 규제하기 위한 대책은 중요하다.

 

주로 개인 명예훼손에 치중된 법무부 대책은 우리 사회에 소수자 집단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고민과 대책도 없었다는 걸 반증하고 있다. 혐오할 자유를 허용하는 것도, 개인적 구제책만 마련하는 것도 자유주의적 한계에 머무는 것 같다.

 

차별과 혐오를 금지, 예방하며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제도, 새로운 희생양을 찾게 만드는 삐뚤어진 분노가 발붙이기 어려운 사회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 1020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평등행진이 그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과 자율적 규제의 힘을 보여줄 투쟁에 많은 관심과 동참이 절실히 필요하다.

 

미국 캐버노 대법관 인준과 반성폭력 투쟁

 

근래 거대하고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미국 사회를 두쪽 나게 만든 가장 뜨거운 문제는 바로 대법관 후보자 브렛 캐버노의 성폭력 의혹이었다. 캐버노의 인준 여부와 무관하게 적어도 미국 대법원의 정당성에 커다란 금이 간 것은 분명하다. 대법원의 구성을 보수 다수파로 바꾼 후 낙태 금지 등을 통과시키려던 트럼프의 계획에도 큰 문턱이 생겼다. 여성들의 용기와 오랜 투쟁이 낳은 중대한 변화라 할만하다.

 

사실, 캐버노를 고발한 크리스틴 포드 교수에게 상황은 불리했었다. 36년전 일이었고 물증과 증인도 없고, 포드는 정확한 날짜 장소도 기억 못했다. 미수에 그쳤던 성폭행이었고, 포드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여성이고, FBI 수사에서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36년 전의 미국에서 그런 일은 성폭력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맥주, 스포츠, 파티를 좋아하는 철없는 소년들의 해프닝으로 여겨졌고, 실제 당시의 청춘영화들에 그런 사건은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등장한다.

 

당시에는 데이트강간의 개념도 없었고, ‘동의가 없었다면 성폭력이란 생각도 존재하지 않았고, ‘여성의 노는 예스라는 편견이 광범했다. 포드가 당시 이걸 제기했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수많은 소녀들이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들에게는 피해를 나타낼 언어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브렛 캐버노만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이 사회구조와 규범, 문화의 문제임을, 미국 주류사회와 엘리트 교육과 문화 등에 뿌리박힌 여성혐오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에 이 모든 것이 흔들렸다.

 

미투 등을 거치며 변화된 규범과 인식은,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캐버노가 아니라 포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죄없는 불쌍한 남성의 인생을 망치려는 여성의 거짓말과 음모라는 공화당의 주장은 잘 먹히지 않았다.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무릅쓰고, 고발에 나선 여성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새로운 상식으로 떠올랐다.

 

물론 트럼프와 공화당은 성폭력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이었다. 그들 모두가 성폭력범이기 때문은 아니다. 마치 자연질서처럼 받아들여지던 성차별적인 도덕과 질서 전체를 뒤흔드는 일로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억압과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질서에 대한 태도와 연결된다. 그래서 성폭력 저지르는 남성은 소수지만, 그들을 옹호하는 남성과 심지어 여성은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이번에 미국 소식들을 보면서, ‘우리는 포드를 믿는다는 구호와 팻말들이 가슴을 울렸다. 만신창이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 고발에 나선 피해자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지금 구하라씨도 그럴 것이다. 최근에 나도 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믿고 도왔다는 이유로 또 날선 비난들을 받았다.

 

사건에 책임있는 사람과 그 주변인들의 반응은 익숙한 거였다. 내가 노동자연대에 복수하기 위해 이런다는 거다. 그래서 법적판단과 피의자 소명권도 부정하고 전능한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를 것을 강요하며, 7년전의 일을 가지고 죄없는 사람의 끝없는 희생을 강요한단 것이다. ‘궁예관심법같은 해괴망측한 논리로 파리목숨처럼 상대방을 난도질하고 괴롭히는 파렴치한 베드로같은 사람.’

 

억장이 무너질 말들이지만, 선택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부담이었을 것이라 씁쓸하게 되새기게 된다. 이번에 포드 교수는 하나의 도미노였다. 이미 앞서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도미노들이 포드에게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줬고, 포드는 다시 자신의 모든 걸 던지며 다음 도미노들에게 힘을 줬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결국 우리는 계속 전진해 갈 것이다.



 

삼성 해고노동자 복직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삼성 해고 노동자들은 계속 투쟁하고 있다. 23백일 가까이 매일 강남역 삼성본관 앞에 세워둔 봉고차에서 잠을 청하는 삼성 SDI 해고자 이만신 동지. 어제 집회 가보니 삼성시계 해고자 김용희 동지도 작은텐트를 치고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얼마전 백두산에서 즐겁게 사진찍는 이재용을 봤다. 그 장면을 보고 삼성에서 죽어간 노동자의 가족과 해고당해 길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문정부도 굳이 이재용을 같이 북한 백두산까지 데려가서 같이 웃으며 사진찍을 일인가.

 

영업비밀이라며 노동자 죽인 작업환경도 공개안하는데 감싸주고, 노조 파괴 총책임자가 이재용이라는 것도 못 밝히면서. 북한도 이재용을 거의 부통령급으로 대우했다던데, 3대세습이나 무노조 경영에서 통하는 점을 본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게 한반도 평화나 통일에 어떤 도움이 된단 말인가.

 

돈 벌고 사업하려다 산재살인과 비리를 저지른 이재용을 두고 재판은 재판이고 사업은 사업이다란 말도 이해가 안 되지만, 정말 그런 것인지는 재판 결과가 보여줄 것이다. 이번에 북한 간부는 이재용을 소개하면서 여러가지로 유명한 분이라고 했단다. 정말로 산재살인으로, 노조파괴로, 부당해고로, 부패비리로... 유명한 자는 맞다.

 

최근 MBC 스트레이트 보도를 통해 삼성이 저지른 불법과 범죄가 더욱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https://www.youtube.com/watch?v=epkMvUElXHE) 전직 경찰들을 이용해 아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노조 파괴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법부는 계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삼성을 보호해주고 있다. 도대체 뭐가 더 밝혀지고 드러나야 삼성이 단죄받고 노동자들이 복직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화재사고 나면 풍등과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살인사건 나면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떠넘기는 식이다. 더 이상 그래선 안된다. 우리 사회 많은 문제의 원인과 책임에는 삼성이 있다. 매출액 4백조, 계열사 수백개에 달하며 한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불법, 비리, 갑질을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고 책임지지 않는 게 삼성이다.

 

이런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이만신 동지같은 분을 삼성은 조직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동지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디딤돌이다. 2천일 넘게 싸우고 있는 삼성 SDI 이만신 동지, 그리고 삼성시계 김용희 동지 등 모든 해고자들은 즉각 복직돼야 한다. 삼성 해고노동자, 피해자, 반올림도 함께하는 집회는 매주 목욜 12시에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있다.

 

가사노동의 가치와 사회재생산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한 결과가 나왔다는 며칠전 보도는 매우 흥미롭다. 음식, 청소, 돌봄 등 가사노동의 가치는 2014년 기준 연간 3607천억원이며 GDP24.3%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수치마저 매우 과소평가됐다는 지적이 많다.

 

유사한 서비스, 돌봄 직종의 시장임금을 기준으로 추계했으니, 그런 종류의 노동이 저평가, 저임금인 현실이 그냥 반영됐고, 노동시장에서 성별 임금격차도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가사노동 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노동들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한꺼번에 몇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고강도 압축 노동이란 점도 반영되지 않았단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반영하면 가사노동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훨씬 거대할 게 분명하다. , 가사노동에서 여성의 차지하는 비중이 남성보다 가치에서는 3, 시간에서는 4배나 차이가 났다는 통계는, 여전히 극심한 성차별의 현실을 드러낸다.

 

한국정부가 유엔의 권고로 이런 통계를 만들어낸 것도 재밌다. 가사노동과 노동력 ()생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기성체제과 공식기구들도 아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서도 이런 분석과 관점을 더 적극 수용해야 한다.

 

이미 마르크스가 제시한 것들 속에 이 모든 게 들어있다는 것만으론 한참 부족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모독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보통 여성들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게 되면 해방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연결되는데, 이 주장 속에 이미 여성들이 주로 수행하는 ‘()생산은 사회적 생산의 일부가 아니고 뭔가 비생산적이고 덜 가치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무급, 부불로 그 가치를 강탈당하는 가사노동과 ()생산은 막대한 가치를 만들어내며, 특히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 생산에 필수적이란 점에서도 사회적 생산의 중요한 핵심 일부라 봐야 한다. 어머니 등 내 주변 여성들이 수행해온 수행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들을 때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가치있는 것이었는지 놀라게 된다.

 

나아가 이것의 대부분이 수행되는 영역과 이것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핵심 영역이고 주체라고 봐야 한다. 이 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변화와 투쟁의 핵심 주체로 등장한 여성과 소수자들(예컨대 최근 브라질의 심각한 위협인 극우 대선후보 보우소나르에 반대해 앞장서 거리로 나온 것도 그들이다)을 봐도 이것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얼마든지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다

 

이 글(링크)은 정말 안타깝고 실망스럽다.(상대는 안 그러더라도, 나는 가급적 누군가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길 피하고 싶다. 노동자연대 분들에게 하도 그런 공격을 겪어봐서.)


침묵과 고심 끝에 내놓은 입장이 결국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피해생존자와 연대자를 다시 공격하는 것이라니. ‘노연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나는 별로 잘못한 게 없다는 논리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노연 지도부가 잘못한 것은 바로 성폭력 피해호소를 무조건 불신하고 피해자의 행실, 평판을 들먹이며 비난하고, 피해자를 압박하고 입을 막기 위해 법적 소송으로 가도록 부추긴 것에 있다. 또 그렇게 해서 나온 판결문을 아전인수로 이용해 계속 잘못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공격한 것에 있다.

 

그런데 이 대부분이 실행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고, 이 글에서조차 다시 반복하면서 피해자가 큰 피해를 입은 건 맞지만, 나는 피해를 준 게 별로 없다가 성립 가능한가? 피해자를 매도하던 논리들을 다시 자세하게 펼치면서 소명이지 가해가 아니다라고?

 

명예훼손역고소를 통해서 나온, ‘물증이 없고 양쪽 다 잘못했으니 서로 보상하고 끝내자는 부실한 판결문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해 공개하며 피해자 공격에 활용한 것도 문제다. 노연 지도부도 이와 같은 행동들을 가해가 아니라 진상 규명 활동'이라고 했었다.

 

나도 ‘2차가해보다는 ‘2차피해가 더 적절한 개념이라고 보지만, 이런 행위들이 옳지 않고 피해자를 더욱 괴롭힌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컸던 그 남성을 좋아해 술먹고 몸으로 접근해 성추행까지 해놓고 잘 안되니까 가해자로 몰았다는 논리를 피해호소라며 다시 정당화하는 것은 정말 한탄스럽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 ”까지 쳐서 인용하며 마치 나도 그 논리를 믿었던 것처럼 몰면서 피해자와 갈라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3년전에 저 논리가 왜 문제인지 지적한 바 있다. ‘성추행 얘기는 피해호소의 신빙성을 떨어트리고 입을 막기위해 등장한 시도였다고 말이다.(http://www.anotherworld.kr/129?category=561075)

 

, 나는 처음부터 저런 주장을 지지한 적이 없었고, 소송을 취하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C가 당한 성폭력 피해를 반드시 해결해 주겠다는 말로 둔갑될 수 있는가? (앞부분에는 내가 그 호소를 묵살했다는 모순된 언급도 나온다.)

 

피해자와 대책위도 지적했었지만, 저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논점도 아니고 별건으로 다뤄볼 수도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전력과 결함을 들춰내는 시도들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전부 사실이 아니거나, 피해자는 완벽하고 순수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맥락과 의도 속에 제기됐느냐다. 다시 말하지만 피해호소의 신빙성을 떨어트리고 입을막기 위한 맥락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남성의 피해호소는 묵살하거나 조건부로 처리하자는 것이냐라고 되묻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 나보고 사실을 왜곡했다고해서 재확인해 봤지만, 역시 피해자는 절판을 요구한 적이 없고, 반성과 사과만 된다면 필자 제외도 철회할 뜻이 분명했다. 결국 우려했듯이 절판 결정은 이렇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공동필진들과 대립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거듭 말해왔지만, 나는 노연 지도부나 이 동지들만 잘못했다는게 아니다. 2013년말까지 노연 지도부의 일부였던 사람으로서 나도 잘못과 책임이 있다. 2014년에 이 동지들이 나와 함께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설득하지 못한 것도 여전히 쓰라리다.

 

따라서 정치단체에 속한 내가 이번에 공개적 코멘트를 한 것은 아연한 일이 아니다. 왜 이것은 정치단체가 입장을 밝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런 문제에 침묵한다면 그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물론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도 아주 괴로운 일이기에, 이 동지도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동지가 노연 지도부의 잘못과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한 것도 의미있는 전진으로 보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에 대한 자신의 책임도 인정하길 바라는 것이다.

 

먼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사람으로서, 아직도 늦지 않았고, 얼마든지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고 그것이 문제 해결의 길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아가 7년이나 지속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이런 운동사회 내부 사건에도 충분히 돌려지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피해자 동지와 피해자 대리인이었던 동지가 쓴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제가 7년 동안이나 이 사건을 붙잡고 계속 문제제기하고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제가 멘탈이 강해서도, 시간적·정신적 여유와 여력이 넘쳐서도 아닙니다... 힘들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용기를 내서 문제제기를 했고 끝까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도 나고 힘들고 지치지만, 저는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것입니다... 가해 사실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더 이상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해결입니다. 저는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가 분명합니다.”

 

피해자한테 미안하다 잘못했다 나쁘고 차별적인 말이었다 한 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성매매 하려고 했다느니 가해자를 짝사랑해서 성추행까지 했다가 잘 안 되니까 도리어 가해자로 몰았다느니 하는 소리가 잘못됐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기사 등록 201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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