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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차별과 상처/ 김정은 답방/ 이수역/ 삼성 해고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2. 1.

전지윤 



다문화한부모 가정 청소년의 비극이 보여준 것

 

얼마 전 옥상에서 추락 사망한 중학생이 다문화 한부모 가정 자녀로 집단 괴롭힘을 당해왔다는 게 밝혀졌다. 이것이 더 커다란 빙산의 일각이거나, 이어질 비극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불길함을 지울 수 없다.

 

돌이켜보면 저출산, 농촌 비혼남성 등의 해결책으로 국제결혼이 한참 붐이던 시기가 바로 2000년대 중후반이었다. 당시 결혼 10쌍중 한쌍이 국제결혼이라고 했다. 꼽아보면 그렇게 맺어진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한참 청소년으로 자랐을 나이다.

 

그때 국제결혼의 일부 양태는 참담할 정도였다. ‘절대 도망 안감, 후불제, 자녀딸린 재혼 환영, 60세 이상도 가능, 베트남 처녀, 싸다...’ 이런 현수막들이 붙었고, 남성들이 동남아로 단체로 가 며칠만에 결혼해 신부를 데려오고,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결혼들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감금, 부부강간, 노예노동, 가정폭력,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지면서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제결혼도, 부작용도 처음보다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 여성을 깔보고, 출산의 도구와 복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는 남았다. 다문화센터에서 일하는 동지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교재는 철저히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상황과 지문이 구성돼 있어, 교육하는 강사들도 민망할 정도란다. 순종하는 아내와 며느리로서만 인정한다.

 

근본에는 낮은 비용으로 손쉽게 저출산과 노동력 수급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자본주의의 필요와 인력송출/이주여성의 송금이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상황이 맞물려 있다. 결국 국경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사회재생산과 노동력 이동의 문제이다. 인종주의와 혐오, 멸시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이 구조다.

 

여기서 누군가 꿈꾸었을 사랑, 행복 등은 무참히 짓밟혔다. 2007, 남편에게 맞아 갈비뼈 18개가 부러져 죽기 전날 쓴 19살 베트남 여성 후안마이의 편지를 다시 보자.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맘에 들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았을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뿐이었죠.”

 

자신의 어머니가 가정에서, 사회에서 어떻게 멸시, 차별을 당하는지 지켜본 아이들이 이제 청소년이 됐다. 학교에서 그들이 마주한 건 차별과 폭력이다. 다문화가정 자녀중 미취학률이 6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는데, 이 놀라운 수치가 사실이라면 학교가 이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곳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여기서 자란 이들이 조롱과 왕따를 당한 건, 한국말을 잘 못해서도, 김치를 안 먹어서도, 한국문화를 거부해서도 아니다. 따라서 이제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한국말을 배우라고, 한국음식을 만들라고, 한복입고 김장을 하라고 그만 좀 교육시켜야 한다. 오히려 교육받아야하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존중해야 할 것은 우리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고, 다른 건 축복이라고, 차이를 존중하고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누가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누구나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차별과 혐오는 안된다고 분명히 배워야 한다. 찢겨진 마음의 상처와 응어리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한다.

 


김정은 답방과 종북혐오의 정치

 

4차 남북정상회담이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김정은 답방에 대한 두 가지 가장 대조적 태도가 보이는 것 같다. 한편에서는 백두칭송위원회’, ‘위인맞이 환영단처럼 그것을 적극 환영하는 목소리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김정은 암살 현상금 1억달러’, ‘쳐부수자 살인자 김정은등을 내걸고 강력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양쪽 중에 정말 극단적이고 위험하게 보이는 건 후자이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자는 이야기는 그것이 좀 과해 보여도 이해할 구석이 있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암살하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것은 편하게 듣고 넘기기 어렵다.

 

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맥락을 보면, 마음은 더 한쪽으로 기운다. 김정은 답방은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중요 고비 중 하나인데, 대북제재를 지속하고 남북대화를 막아서는 트럼프와 미국 때문에 그것이 가로막히고 있다. 김정은 답방을 결사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 위기로 밤잠을 설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래도 너무 표현이 심하다며 김정은 환영 주장들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낯간지러운 표현들로 김정은을 찬양한 것은 트럼프가 먼저였다. 그가 위대한 협상가”, “굉장히 똑똑하다”, ”위대한 인격“, “매우 존경스럽다등으로 김정은을 칭찬할 때 사람들은 그 변신을 웃어넘겼지, 비난하지는 않았다.

 

과장된 표현으로 노골적으로 강대국인 미국과 트럼프(심지어 이스라엘까지)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았고 지금도 많다. 하지만, 그들보다 북한과 김정은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더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조롱과 비난, 낙인과 혐오만이 아니라, 실질적 탄압과 위해까지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70년을 맞이한 국가보안법만이 문제가 아니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세워진 이 나라는 친북, 종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학살해 온 과거가 있다. 독일 나치즘의 주된 희생양이 유대인이었다면, 한국형 파시즘은 친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다.

 

혐오는 한국정치에서 새롭게 등장한 게 아니고 성소수자, 난민 등에 대한 혐오의 발전이 새로운 것이다. 혐오에 기반한 정치세력은 여전히 강력하게 곳곳에서 사회진보를 가로막고 있고, 나아가 종북에 대한 ()혐오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조롱과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은 김정은 환영 주장이 아니라 어떻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러는데 그냥두냐며 난리치는 보수언론과 정치세력이라고 본다. 더불어 구혐오에 대한 반대와 신혐오에 대한 반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킬지 더 고민하고 돌아봤으면 한다.

 

지난 9월 평양에서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문재인)라는 연설이 왜 누군가에겐 큰 불편함이었는지, 평화와 화해로 가는 과정에서 탈북자 등 또다른 소수자는 어떻게 껴앉을 것인지 곱씹어야 한다. 민족, 인종, 젠더, 장애... 를 넘어서 누구도 불편하거나 배제되지 않는 운동과 언어가 필요해지고 있다.

 


이수역 사건과 신뢰와 공감의 격차

 

워낙 뜨거운 쟁점이다보니 이수역 사건에 대한 글과 기사, 영상들을 찾아봤다. 모든 걸 종합해 볼 때, 적어도 지금으로선 처음에 피해여성 중 하나가 네이트판에 올린 글이 상당부분 사실과 부합하고 진실을 담고 있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착각이나 혼동과 달리 피해여성측은 첫 글부터 상황이 악화되고 언성이 높아지면서 서로 모욕적인 말을 뱉었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명백히 일방적으로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입은 쪽은 남자 6명쪽이 아니라 여자 2명쪽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언론은 여성들의 거친 발언을 부각하고 있고, 경찰은 남성들의 촬영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여성이 먼저 손을 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론은 이것을 소름돋는 반전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몇 가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먼저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경청하고 믿을만한 존재나 존중할 증인으로 여겨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도 남성이 하면, 남성이 당하면 더 큰 신뢰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최근 양진호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심지어 여초집단에서도 장을 맡는 건 남성인 이유, 티비 뉴스에서 메인앵커는 항상 남성인 것도 이와 연관있다. 최근 라디오스타를 보다가 예능프로도 남녀가 같이 사회를 볼때 7:3 비율로 말하라고 대본에 나와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폭력 사건에서도 가해남성보다 피해여성의 증언이 덜 신뢰받고 의심에 시달리는 경우는 흔하다. 이것은 더 큰 구조적 불평등과 관련있을테니, 양비론이나 쌍방과실로 이런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그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다음으로 두드러지는 건,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격차이다. 여러 명의 남성에게 공격받으며 느꼈을 여성의 공포와 위협, 고통보다는 여성의 모욕을 받은 남성의 불쾌감과 상처에 더 큰 반응과 공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 이 사회의 주류가 누구에게 더 공감하고 감정이입하고 동일시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양진호 사태에서도, 왜 수많은 여성이 고통받고 죽어갈 때보다 갑질 동영상 하나가 더 큰 폭발적 반응을 낳고 있냐는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것은 지금의 분위기에서 읽히는 당혹감이다. 착하고 고분고분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얌전히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여성성의 등장에 사회는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피해자답지않고, ‘여성답지않기 때문이다.

 

나서서 설치고 욕하고 떠들며 상대를 괴롭히고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여성성... 논쟁적 부분은 여전히 많지만(특히 이번 사건에서 여성쪽의 게이 비하 발언은 분명 문제였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이런 주체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미투 운동이, 양진호의 구속이, 웹하드 카르텔의 균열이... 가능했을까?

 


삼성에 맞선 노동자, 해고자, 철거민 들의 투쟁과 연대는 계속된다

 

최근,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반올림의 오랜 투쟁과 사회적 연대가 마침내 삼성의 사과와 보상을 이끌어냈다. 이것의 의의와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고, 그것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잘못을 더욱 계속 키우는 경우가 정말 많다. 따라서 정말 의미있는 변화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지난주 협약식에는 여러 피해자와 가족분들이 함께했는데, 23년전에 직업병으로 죽은 딸을 가슴에 묻은 아버님도 멀리 완도에 올라오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당시 따님은 아기를 낳고 일주일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엄마를 보지도 못한 그 아기가 자라서 지금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단다. 삼성의 사과는 너무 늦었고 이런 분들의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그래서,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자본과 권력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 점에서 협약식이 끝나고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가 이만신 삼성SDI 해고자의 항의를 외면하고 자리를 빠져나간 것은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사과의 충분조건 6가지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강조하는 것은 사과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과를 해도 상대방은 사과를 받은 느낌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날 황상기 아버님이 한혜경님의 손을 잡아서 쥐어주자 마지못해 그 손을 잡던 김기남 대표의 모습이 기억난다. 마땅히 한혜경님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며, 우리의 잘못으로 당신이 이런 고통을 겪게됐다고, 되돌릴 수도 없지만 같은 일의 반복을 막겠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다. 이런 진정성이 안보였기에 지금 피해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잠을 푹 자지 못한다고, 기분이 좋다고 하긴 어렵다고 말하는 것 아닐까.

 

한국경제가 어려워졌다면 이런 삼성같은 재벌들의 책임이 가장 클텐데, 지금 사회는 거꾸로 민주노총을 탓하고 때리고 있다. 민주노총 때리기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조선일보는 동시에 삼성을 찬양하는 칼럼도 실었다. “한국 반도체는 출발부터가 기적과도 같았다.... 독일·영국·프랑스도 못해낸 반도체를 먹겠다고 감히 덤벼들 생각을 했을까... 이병철이라는 걸출한 기업인이 있었던 것이 우리에겐 천운이다.”

 

기적? 걸출? 천운? 독성물질과 노동자 죽음 때문에 다른 기업과 나라들이 발을 뺄 때 삼성이 덤벼들었고, 그 결과가 수많은 죽음이었고, 이제야 뒤늦게 사과하겠다는 게, 하지만 여전히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였다는 게, 진실이다.

 

그럼에도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이 앞장서고 집권여당이 거기에 동조하면서 너도나도 민주노총 때리기를 한다. 민주노총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경제와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더 이상 사회적 약자도 아니란다. 무소불위는, 분식회계까지 드러났지만 여전히 멀쩡한 삼성에게 어울리는 말이고, 경제와 일자리를 위협한 것도 하청업체 쥐어짜기, 비정규직 양산, 분식회계를 저지른 삼성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약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삼성과 재벌같은 사회적 강자와 특권,적폐세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문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이 중단,변질되고 탄력근로제같은 개악이 시작된 것도 저들의 힘을 보여준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을 계속하겠다는 정부도, 중단하라는 야당도 틀렸다. 소득주도성장은 삼성, 재벌들의 힘 앞에 가로막혀 시작도 못했다.

 

그 점에서 탄력근로제 추진 등에서 보이는 문정부의 고집스러움도 이해나 용납이 안 된다. 문정부는 자신들이 사회운동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중도개혁정부의 한계일 수는 있다. 그런데 중도개혁은 사회운동의 요구와 기득권 적폐세력의 요구를 반반씩 섞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느리지만 반보씩 개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개혁의 포기와 실패로 가는 길이다. 정혜신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내 공감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 깨달았다’(문재인)는 말은 지금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가.

 

반올림의 끈질긴 투쟁과 연대가 저 오만한 삼성이 결국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듯이, 이제 삼성의 피해자들, 해고자들, 철거민들은 또 끈질기게 연대하고 투쟁해서 나머지 부족한 부분도 채워낼 것이다. 삼성을 규탄하고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는 매주 목욜 12시에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있다.

 



 (기사 등록 201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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