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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용어에 대한 단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9. 11.

조형석


이 글에 원래 달려있었던 각주들을 여기서는 모두 생략했다. 필요하면 오프라인 글을 참고하라.


 

쓰다 보니 주로 노동자연대(구 다함께, 이하 노연’) 특유의 용어 위주로 쓰게 되었다. 용어 순화도 굳이 노연과의 차이를 긋기 위한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노연출신이므로 대중과 거리감을 만드는 '특정 조직 고유 사투리를 털어 내는 작업, 우리가 노연에서 물려받아 사용하는 용어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의미가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억압 - 천대

 

얼마 전부터 노연은 '억압'이라는 용어 대신 '천대'를 사용하고 있다.

<레프트21>에 실린 존 몰리뉴의 글에서, ‘oppression’천대로 번역한 것을 보면 노연은 ‘oppression’의 일반적인 번역어인 억압천대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천대업신여기어 천하게 대우하거나 푸대접함, 함부로 다루거나 마구 굴림을 뜻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성, 흑인, 유색인종 등에 대한 억압의 구체적인 형태 중 지금까지 주로 주목받은 것은 차별’discrimination인데, ‘천대또한 억압의 현상을 더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천대억압의 대체어가 될 수는 없다. 한국어에서 천대억압은 명백히 다른 의미의 단어이고, 일반적 용법에서도, 사회주의적 용법에서도 ‘oppression’에 가장 가까운 한국어 단어는 억압이다.


맑스주의적 용어로 ‘oppression’(억압)은 국가나 사회세력 등 타자他者에 의해 자유나 의지가 구속되거나, 가능성과 잠재력이 제한받는 상태를 뜻한다.


‘liberation’(해방)은 그런 구속과 제한을 깨뜨리고 자유로와진 상태라는 점에서 두 개념이 연결되어 쓰일 여지가 많다. SWP 필자들의 글에서도 억압oppress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 해방liberation이라는 용어가 자주 따라 나온다. 제목이 ‘Oppression and Liberation’인 글도 있다.


현실태와 이상태로서 ‘oppression’(억압)‘liberation’(해방)의 관계에 비추어 보아도, ‘oppression’의 번역어로는 여전히 억압이 적절하다고 본다.

 

 

연루, 개입, 참여, involvement

 

연루란 명백히 '범죄' 내지 추문 등, 불미스럽고 불명예한 사건에 관계된 용어이다. 여러 종의 국어사전을 찾아 봐도 확인된다. 물론 사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어 언중言衆의 실제 언어생활인데, 인터넷 검색을 10분만 돌려 보아도, 범죄나 추문이 아닌 투쟁과 운동에 '연루를 맺는다'라는 틀린 용법은 오직 노연만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명백한 다함께 사투리인 것이다.

아마도 involve의 번역어로 채택된 단어일 텐데, 요즘은 연루대신 개입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다.


개입틀린 번역이라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어감상 최적의 번역어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여러 종류의 국어사전에 개입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끼어듦”(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등으로 설명되어 있고, 비슷한 말로 참견’, ‘간섭등이 주로 제시되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어 화자들의 실제 언어생활을 반영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거부감을 줄일 수 있고 엘리트주의적인 어감을 띄지 않는, ‘involvement’(사회주의 개인이나 단체가 운동에 뛰어든다는 의미로 사용될 때)의 최선의 번역어는 참여가 아닐까 한다.

 

 

반포

 

요즘 노동자연대는 리플릿을 '반포'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반포頒布'율령을 반포하다' '훈민정음을 반포하다'처럼 법령 등을 새롭게 널리 알린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는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내가 알기로는, 실질적으로 유일한 용례는 법률용어인데, ‘국가보안법 75’ (이적표현물 반포의 죄), 형법상의 음란물건 반포의 죄등이 있다. 법률용어로서 반포불특정 다수인이 열람할 수 있는 상태에 놓아 두는 것, 불특정 다수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보다 일상적인 용어인 배포配布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많은 법률 전문용어들이 그렇듯이, 이 역시 일본어식 표현이다. 일본어에서는 頒布’[はんぷ]가 한국어 배포配布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소송 관련 서류를 작성할 때가 아닌 한, ‘반포보다는 배포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간단한 배경 설명


다들 알다시피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의 본명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Лев Давидович Бронштейн, - 로마자 표기법으로 Lev Davidovich Bronshtein) 이다.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가명이 트로츠키’(Троцкий - Trotsky)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주요한 혁명 지도자들의 이름은 대개 이름과 부칭父稱은 본명에서, 은 가명에서따 와서 부르게 되었는데, 트로츠키의 이름도 이와 같이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라 불렸다. (비슷한 예 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가명: 니콜라이 레닌, 혁명 후 이름: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그리고 영어 등 유럽 언어에서는 다른 언어의 이름을 자기들 언어에서 해당하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오랜 관례였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어 Friedrich Engels => 영어 Frederick Engels)


러시아어 Лев(Lev)에 해당하는 서유럽식 이름이 Leo, 혹은 Leon인데(모두 사자Lion를 뜻함)인데, ‘레온 트로츠키는 트로츠키의 서유럽식 이름을 한글로 표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Лев(Lev)’라는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표기


이 러시아어 이름을 사용하는 유명한 인물로 레프 톨스토이, 레프 카메네프, 레프 트로츠키 등이 있다.


특히 톨스토이는 예전엔 영어식으로 레오 톨스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원어를 존중하는 레프 톨스토이가 대세가 되었다. 카메네프 역시 오래된 책에서는 레온 카메네프라는 표기를 종종 보게 되지만, 지금은 레프 카메네프로 완전히 정리된 것 같다.


레온이라는 서유럽식 이름이 여전히 자주 쓰이는 인물은 트로츠키가 있는데, 어떤 책의 같은 문장에서 '레온 트로츠키와 레프 카메네프'라고 표기되면 상당히 기이해진다. ‘레온 트로츠키의 본명이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이라고 써도 역시 기이하다. 레온과 레프 모두 Лев(Lev)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트로츠키


이런 사정으로, 나는 웬만하면 원어를 존중하는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레프 트로츠키가 더 적절한 표기라고 본다.


레온레프중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지는 대세적 표기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인데, 한국어판 엔하위키’, ‘위키백과에서도 '레프 트로츠키'를 표제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트로츠키의 이름도 이제는 '레프'라는 표기가 대세가 아닌가 한다.


물론, 트로츠키의 영향력은 주로 영어권, 프랑스어권에서 강력하며, 말년의 트로츠키의 글이 대부분 영어로 발표된(트로츠키가 러시아어로 글을 쓰면 비서들이 영어로 번역했다) 사정에 따라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가 거의 필명처럼 굳어진 분위기, 주요 한국어 번역서들이 아직 대부분 레온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 등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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