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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5

세상읽기 - 슬픈 세상과 사람들/ 검찰, 언론개혁/ 인국공/ 정의연 전지윤 ● 너무 슬픈 세상과 너무 슬픈 사람들 정말 너무나 슬픈 세상이고 슬픈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인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큰 충격 속에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고,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제발..’을 되뇌었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결국 비극이 전해졌을 때 느꼈을 비통함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고인의 실종과 죽음이 성폭력 피해호소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많은 사람이 느꼈을 혼란, 당혹감도 마찬가지다. 그 피해자가 겪었을지 모를 고통과 상처에 대한 걱정과 공감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더구나 이 커다란 비극이 그 피해자에게 가할 엄청난 후폭풍과 새로운 피해를 걱정하는 마음도 절박할 수.. 2020. 7. 12.
‘위안부’ 문제의 본질? - 사죄와 배상을 생략할 수 없는 이유 윤미래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발굴했으며 사람들이 이것을 외면하고 있다는 언설을, 다름아닌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수용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비유할 사례를 찾기도 어려울 만큼의 역설이다. 사물의 의미는 사물 자체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해석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고, 따라서 본질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맞게 계속 재해석 재규정되고 협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인식론의 가장 강력한 합리적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자, 문화적 보수주의자, 국가주의자, 저항적 민족주의자, 국제사회주의자, 여성주의자가 본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다 다를 수밖에 없고 이것은 사람들이 제 욕망을 위해 현실을 왜곡할 때뿐만이 아니라 오로지 사실만을 채택하며 가능한한 많은 사.. 2017. 6. 26.
토론광고) 박유하와 <제국의 위안부>, 무엇이 문제인가 박유하와 , 무엇이 문제인가? 일시: 9월 6(화) 저녁 7시 30분 장소: 종각 윙스터디(종각역 4번 출구) D1번방 발제: 류한수진(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패널발제: 임경화(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번역자) 박유하 교수의 는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왔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언론들도 박유하 교수의 논리와 입장을 옹호하면서 다양한 측면의 토론이 진행돼 왔습니다. 지난해 반역사적 한일 합의에 대한 강력한 반대 운동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박유하 논란을 살펴보며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모색해보려 합니다. 함께 토론하고 열린 자세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며 답을 찾아나가는 자리가 되길 기대합니다.(문의: 010 - 8230 - 3097) 참고자료: 피억압자의 말로 피.. 2016. 9. 4.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압자를 공격하기: <제국의 위안부> 비판 류한수진 [편집자 - 박유하 교수의 는 뜨거운 논쟁을 일으켜 왔고,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 언론마저 박유하 교수의 논리를 옹호하는 혼란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글은 박유하 교수의 주장과 논리가 왜 학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잘못인지를 다소 길지만 매우 날카롭게 조목조목 짚고 있다.] '위안부' 피해생존자가 그린 그림 들어가며 ‘서브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사회 주류적인 사고방식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이야기할 언어조차 없는 피억압자들의 존재를 폭로하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 유명한 질문은 피억압 집단에 대한 기존의 모든 재현들을, 특히 거시적 사회구조에 대한 ‘거대서사’들을 시험대에 올린다. 우리가 ‘민중’, ‘인민’, ‘민족’ 등의 단어.. 2016. 7. 19.
한미일 지배자들에게 두 번 죽임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 전지윤 전시 성범죄의 피해를 겪은 수십만 명 중에 대부분이 돌아가시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46분 밖에 살아남아 계시지 않다. 46분의 온 몸에는 그 끔찍한 기억과 상처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 지배자들의 태도는 이 할머니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듯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 취급해 온 한국 지배자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상을 통해 많은 문제를 헐값에 ‘땡처리’한 후부터 줄곧 그랬다. 그러나 한일 지배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기다리기’ 정책은 계속될 수 없었다. 한일 지배자들에게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 2015.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