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과 주장

재난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시대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5. 6. 10. 12:52

최태규(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시사IN>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시사인과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산이 탄다는 것은 멀리서 보이는 몇 개의 봉우리와 능선과 그 아래 계곡 하나하나가 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숱한 삶들이 지독한 고통 속에서 재만 남기고 사그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삶들은 각자 개별의 삶이기도 하면서 서로 끝없이 얽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화선을 보며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한다면, 그 산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다. 산과 연결이 되어본 사람이다.

언론이 이 거대한 재난을 다루는 방식은 당연하게도 인간의 이해에 맞춰진다. 사람이 몇 다치고 죽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이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불에 탄 채 매일 발견되는 사람들은 사회가 소외시킨 사람들이다.

의성에서 불을 끄다 숨진 진화대원들도 60대였고, 73세 노인이 30년 된 헬기를 몰고 진화 작업을 하다 추락사했다. 고관대작이 불에 타죽는 일은 음모론적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누군가의 목숨이 더 중할 리 없지만, 목숨의 사회적 경중은 재난 상황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게 진짜 비극이다.

더 소외된 자들도 있다. 간혹 재난 상황에 처한 동물을 다루는 기사는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이 얼마어치죽었는지, 집에서 예뻐하기 위해서나 초인종으로 쓰기 위해 묶어둔 개나 고양이가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에 대해서 보도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무슨 동물까지 챙기냐는 핀잔은 이제 후진 인식이 되어간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제도와 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목적으로든 가두어 기르는 동물들은 인간에 예속되기 때문에 사회가 재난 상황에서 이 동물을 챙겨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끔찍한 경험에서도 교훈이 있기를 바란다.

불이 난 산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나 사람이 기르는 동물이 전부가 아니다. 산에는 야생동물이 산다. 야생동물은 산이라는 공간에 길을 내고 땅을 헤집는다. 풀씨를 옮기고 나무를 죽이기도 하면서 산을 이룬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산을 만든 존재들이다. 까맣고 반질거리게 화상을 입은 산을 보면서 그 산에 살던 동물은 불길 속에 어떤 경험을 했을지, 결국 어떻게 됐을지 마음이 쓰리다. 산의 일부이자 산의 주인으로 살던 야생동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산불의 구체적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야생동물은 몇이나 죽었는지 셀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알지 못한다는 무관심과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때문에 야생동물은 사회의 관심 밖에 있다. 국가가 지리산에 옮겨 심은 반달가슴곰 정도가 동물로 인식되어 언론에 어쩌나정도의 걱정거리로 등장한다. 너구리나 다람쥐처럼 작고 흔한 동물들, 개구리나 딱정벌레처럼 사람과 다르게 생긴 동물들은 산불의 희생자로 계산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재난 상황에서 대피시킬 대상도 안 된다.

사실 그들은 인간이 초래한 재난에 일상적으로 몰리는 중이다. 교통사고나 인간의 외래종 도입 같은 직접적 요인도 알려져 있지만, 삶의 터전 자체가 사라지는 재난이 급속히 진행 중이다. 산불도 그 중 하나다. 발화의 원인은 대체로 사람의 행위다.

성묘든 쓰레기를 태우든 산 곁에 불을 피우는 바람에 시작된다. 고릿적부터 인간은 불을 썼지만 요즘과 같은 강도와 빈도로 산불이 일지 않았다. 이 심각한 산불은 산업화 시대가 초래한 기후 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서 대기와 땅이 건조해지고 불이 잘 붙게 되었다. 산림청의 무식한 소나무 조림 사업 따위가 산에 장작을 쌓아두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거대한 불길 위에서 자그마한 헬기들이 물을 떠다 붓는 얄궂은 모습은 상징적이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는 척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아직 이 나라는 야생동물은커녕 사람들을 빈털털이로 만들고 불에 타죽게 하는 나라다. 산불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는 시스템이다.

굳이 희미한 희망을 찾아보자면, 그 산줄기들을 이루던 아무개들은 불길을 견디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극우 정치와 썩은 관료제가 불어대는 불길도 견디는 남태령 트랙터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이토록 빠듯하게 싸우며 살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 부박하고 탐욕스러운 국가 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 다시 불이 붙을 때 어떻게 할지 사회가 준비하기를 바란다.

(기사 등록 202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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