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사정을 설명하는 일
최태규(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시사IN>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시사인과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싸워야 할 일이 많다. 사는 게 그렇다. 싸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싸움이 되려면 전제되어 있는 바닥이 비슷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과 싸울 때에는 아예 딴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컨대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이랄지, 그가 감옥에 들어가도 여전히 그를 추종하며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그렇다. 따로 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피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전쟁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옹호하거나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힘으로 눌러야겠다는 생각이 명확하다. 죽어나가는 당사자들이 사람의 말로 소리쳐 외치고 있으니 헷갈릴 것이 없다. 그 목소리를 애써 배제하고 자신의 신념이나 재산을 챙기려는 사람들은 그냥 나쁜 사람들일 뿐이다. 법으로 처벌하고 사회에서 떠들지 못하게 입을 막아야 한다. 보통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나쁜 짓을 주도하기 때문에, 판단은 쉽지만 힘으로 이기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걸 이기려는 민중의 투쟁이 역사를 만들어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동물 이야기를 할 때는 싸움이 더 어렵다. 나에게는 당연한 어떤 것을 한참 설명해야 하고, 설명을 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마음에 불이 인다. 동물들에게 물러설 곳이 없다는 조바심이 들어서 서두르다 화를 내버린다. 한 달 남짓이면 새끼를 다 키우고 떠날 제비 둥지에서 똥이 떨어진다고 집을 헐어버리는 장면을 보면,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 마음을 흔드는 일이 되는지 혼란스럽다.
제비는 항상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집 처마에 집을 지어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는 제비도 집을 짓지 않는다. 사람이 있어야 안전함을 느끼도록 진화한 동물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동화책에서 얻는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
늙고 병들어 먹지도 못하고 아파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개를 두고 위에다 호스를 꽂아 기어코 살려두면서 효능감을 느끼는 장면도 그렇다. 수의사는 동물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데, 입원 시간이 길어져야 돈을 더 벌 수 있어서 혹은 아무리 괴로워도 살리는 게 먼저라서 동물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강제하곤 한다.
심지어 동물단체에서 그러고 있는 장면을 마치 동물에 헌신하는 스스로를 홍보하듯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한다. 죽을 기회를 빼앗기고 고통에 일그러진 개의 얼굴은 사랑을 전시하는 도구가 된다. 그 전시는 어떤 이들에게 측은지심을 일으켜 지지와 후원을 유도한다.
그러니까, 나는 제비 똥이 싫어서 제비집을 허는 일과 늙고 아픈 개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왜 나쁜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동물의 사정을 나와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과는 힘으로 싸워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인 동물의 외침이 비교적 흐릿할 수밖에 없고,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사정을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세상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 동물의 사정을 설명하는 일이란 오랫동안 애태우는 일이다. 못 알아듣는다고 화내지 말고 어떻게 이야기를 건낼지를 고민한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동물의 입장과 경험을 몸으로 자연스럽게 익히려면, 제비가 마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개는 사이보그가 되는 시절 즈음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매만지며.
(기사 등록 2025.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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