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의 혁신

젠더와 민족, 민족의 젠더: 수렴과 발산의 담론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6. 1. 12. 13:18

데스피나 파라스케바-벨루도얀니(Despina Paraskeva-Veloudogianni)

번역: 두 견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주장을 인종주의와 결합시켜서 우파적 민족주의로 발전시키는 새로운 경향을 분석하면서 억압받는 다층적 주체들에 대한 통합적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다. 이 글의 필자인 데스피나 파라스케바-벨루도얀니(Despina Paraskeva-Veloudogianni)는 아테네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이고, '역사적 유물론' 아테네 조직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하며, 주요 저서로는 2015년에 발간된 <적, 피, 처벌자: 황금새벽당 “지도자”의 13개 연설 분석>이 있다.

출처: https://www.historicalmaterialism.org/article/gender-and-in-the-nation-converging-and-diverging-discourses/

 

최근 영국의 고등법원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간주되는 사람만이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헝가리에서는 성 정체성 인정이 사실상 폐지되었다. 미국에서는 낙태의 불법화와 LGBTQI+ 공동체에 대한 공격이 종교 단체의 후원을 받으며 더욱 격화되고 있다. 터키의 <이스탄불 협약> 탈퇴는 거의 4년 전의 일이다. 최근 그리스 총리는 생물학이 규정하는 대로 성별은 두 개뿐이라고 선언했다.

이것들은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젠더 불평등의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극우의 부상과, 더 넓게는 유럽과 미국에서 권위주의적 신자유주의 전략의 공고화를 해석할 때, 젠더 문제가 반드시 논의의 중심에 놓여야 함을 충분히 보여준다. 제인 캐플란(Jane Caplan)은 마리아 안토니에타 마초키(Maria Antonietta Macciocchi)를 따라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가부장제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파시즘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파시스트 담론

그리스에서는 신나치 조직 황금새벽당(Golden Dawn)’이 범죄 단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선거적 부상을 가능하게 했던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은 여전히 잔존한다. 때로는 극우 단체들에 대한 정치적 지지 형태로, 때로는 배제와 외국인 혐오의 사회적 실천으로, 때로는 정치 지형의 점점 더 우경화되는 흐름에 압력을 가하는 축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태도에 대한 조사들은 수년간 그리스 사회의 약 8%가 지속적으로 극우에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세 개의 극우 정당이 의회에 진출해 있으며(유럽의회를 포함하면 네 개), 이는 시리자(SYRIZA)의 점진적 붕괴, 좌파 정치 세력 전반의 명백한 퇴조, 그리고 집권당의 권위주의적 궤적과 병행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맥락 속에서 그리스에서 젠더 권리에 대한 국제적 공격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국제적 공격의 맥락 속에서 극우는 각성 의제(woke agenda)”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라는 이름으로 젠더와 페미니즘 문제를 둘러싼 도덕적 공황을 조성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는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 대안우파와 종교 단체, 언론, 그리고 일부 좌파 세력에게까지도 지지를 얻는다. 필자는 이 수사가 누가 사용하든 간에 순수한 파시스트 담론의 근본 요소들을 밀접하게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파시스트 담론과 직접 맞닥뜨리게 했다. 그것은 흩어져 있던 보수적·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을 모아 정태적이고 자명한 고정 관념적 진리로 조직하고, 이를 으로 규정된 자들에 대한 폭력 행위의 명령으로 체계화하는 담론이다. 이러한 파시스트 담론이 더 이상 공공연하게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오늘날의 정치 담론 속에서 주제뿐 아니라 담론적 전략 , 담론 수준에서의 정치적 전략 측면에서 그것과 공통된 요소를 식별하는 것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파시스트 담론의 핵심 요소는 혈통인종국가라는 삼각 구성이다. 모든 논변과 담론 전략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혈통은 다양한 사회적 특성과 집단의 형성을 결정하는 생물학적 요인이다. , 생물학적 측면이 사회적 측면을 지배하고 생산한다. 따라서 혈통이라는 생물학적 범주는 그리스인이라는 사회적 범주를 산출하며, 국가의 파괴는 곧 조국의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사 속에서 여성은 국민 혈통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국가의 생물학적 전제 조건을 이룬다. 여성의 신체는 국가에 봉사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자기결정권, 페미니즘, 그리고 어떤 지정성별-이성애 질서와 어긋나는 행위도 국가의 존재에 적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파시스트 담론의 근본적인 논거이지만, 그 본질적으로 인종주의적인 핵심 혈통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 극우 세력뿐 아니라 국가의 공식 담론에서도 공유되어 왔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자체에 내재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파시스트 담론의 담론적 전략 그 자체가 다시 호출되고 있다. , 존재에 대한 치명적 위협에 직면한 긴박감의 조성, 어둠의 세력들이 꾸미는 음모론적 계획, 그리고 언제나 계급적·이념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들을 비인간적 존재로 묘사하는 의 구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우적 영감을 받은 담론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위협을 포착한다. 그것이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다. LGBTQI+ 및 페미니스트 주체들은 생물학을 거스르는 존재, 범주화될 수 없는 타자이자 침입자로 표적화된다. 기존 사회 관계의 수사적 전도를 통해, 이들은 주변화된 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들의 규범을 강요하기 위해 사회 다수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과거의 이민자들, 더 이전의 공산주의자나 유대인들처럼 치명적 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젠더혐오는 이슬람혐오, 반유대주의, 반공주의와 나란히 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반()각성 담론은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 대한 저항의 담론, 억압받는 다수의 해방의 담론, 서구와 세계화 엘리트가 강요하는 비이성적 '정치적 올바름'의 폭정으로부터의 해방의 담론, 그리고 위기 속 남성성을 구원하기 위한 담론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극우는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심지어 리비도적 역동성을 포섭하려 시도한다.

따라서 권위주의적 담론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라고 초대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라고 부추기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빼앗으려 하는 것을 되찾아라!”라는 외침을 통해서다. 그것은 박탈된 권력의 회복을 약속하며, 군사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토스카노(Alberto Toscano)가 푸코(Michel Foucault)를 읽으며 말한 바와 같이,파시즘은 단지 지도자를 양떼 같은 추종자들 위에 신격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식민 개척자의 사소한 주권 논리를 재창조하고 폭력의 독점을 ‘자유화’하고 ‘사유화’하는 것”이다. , 살해하고 강간할 권력의 이양이다.

민족의 핵심과 현대적 경향

그리스의 주요 경향은 본질적으로 인종주의적 민족주의 핵심에 여전히 충실하다. 이는 극우 세력의 부상뿐 아니라, 성차별적·동성애혐오적 국가 전략의 정당화와 공직자들의 성차별적·동성애혐오적 공적 담론에서도 드러난다.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페미니즘과 LGBTQI+ 담론의 체계적 도구화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전형적인 예는 여성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가족 강화 조치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쿠출렌티(Koutsoulenti)가 지적하듯이, 성평등총사무국(General Secretariat for Gender Equality)을 가족정책·성평등총사무국(General Secretariat for Family Policy and Gender Equality)으로 개편하고, 이후 인구문제라는 담론으로 무장한 그리스 사회결속·가족부(Ministry of Social Cohesion and Family)를 창설한 것은 그 상징적 사례다. 여성 보호라는 명목 아래, ‘여성가족인구 문제의 명시적 연결을 통해 국가 멸망이라는 민족주의적 위협이 재가동되며, 이는 국경에서의 반이민 죽음의 정치와 직결된다.

더 나아가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담론 자체가 이슬람혐오 담론의 구성요소가 된다. 이러한 담론은 동방에서 온 이민자들을 본질적으로 성차별적인 문화를 지닌 자들로 묘사하며, 그들이 서구 여성의 복지와 여성 권리의 발전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남성 이민자는 위협으로, 여성은 무력하고 보호받지 못한 희생자로 그려진다. 여성 보호라는 명분 아래 제국주의적 목적에 부합하는 민족주의적·식민주의적 페미니즘의 형태가 구축된다.

이 국제적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사라 패리스(Sara Farris)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패리스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을 도구화하는 현상이 아니라, 현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체계적 경향이며, 노동력 재편과 계급 불평등의 재생산과 연관된 강력한 물질적 경향이다. 한편으로, 흑인 및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통찰을 상기하자면, 가난하고 주변화된 이민자 남성들은 언제나 이미 범죄적 주체로 간주되며, ‘백인 여성 보호법의 이름으로 감옥을 채울 1차 후보 집단이 되어 결국 노동의 예비군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민자 여성들은 가사노동자 등 사회적 재생산 노동 산업으로 유입되어 백인 가정의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그 가정의 남성과 여성 모두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한다.

전제 조건은 다름 아닌 서구의 규범과 가치의 전면적 수용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의 얼굴 가리는 베일 금지 역시 종교적 성차별로부터 여성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시행되며, 그 결과 프랑스 내 성차별의 책임이 이민자들에게 전가된다. 페모크라트(femocrat), 페모내셔널리스트(femonationalist), 그리고 교도소 페미니스트(carceral feminist)가 호소하는 성평등은 전 인구 집단의 낙인과 불법화, 감시와 국경의 군사화 강화, 빈곤층에 대한 처벌 강화와 맞물려 있다.

자스피르 푸아르(Jasbir Puar)가 제시한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 개념은 이후 사라 패리스(Sara Farris)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푸아르는 게이와 레즈비언 주체의 수용관용’”이 법적·사회적 인정과 함께 복지 축소, 이민자 권리의 제한, 국가 권력의 확장과 병행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이 국가 주권의 권리와 역량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러한 호모내셔널리즘적 경향이, ‘문명화된서구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국가 주권을 인정하고, ‘퇴행적이고 비관용적인 무슬림으로 낙인찍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무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페모내셔널리즘과 호모내셔널리즘을 함께 접근하면, 이 두 개념은 이성애 규범적 민족 자본주의의 핵심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연장이란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렇기에 가장 보수적이고 이성애 규범적인 자본주의 전략조차 페미니즘과 LGBTQI+의 요구를 도구화하고, 그것들을 부분적으로 통합·전유할 수 있다. 그 대가는 곧 규범적 동성애든 이성애든 국가적 틀 안으로의 통합이며, 계급적·교차적 결정 요인의 은폐다.

민족주의 담론의 인종주의적 핵심을 다양한 백인 페미니즘 담론과 호모내셔널리즘 담론에 연결하는 공통의 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식민주의적 관점이다. 서구 문명의 우월성에 대한 계몽된 확신은 때로 흑인 강간범이나 무슬림 억압자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보호자의 형태로, 때로 제국주의적 해방자의 형태로, 때로 서구 도덕성 즉 인류 전체 을 수호하는 대리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관용으로 제시되는 것은 실상 서구의 자애롭고”, “관대한패권적 규범성이다. 이 규범성의 구성 조건은 배제의 생산이다. 정상과 비정상, 살아야 할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용인되는 자와 그 배제를 통해 정상성의 기준을 규정하는 자들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극우 단체 이성의 목소리(Voice of Reason)’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게이와 동성 커플은 사회, 가족, 직장 생활에서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야 한다. 그들은 다른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권리를 갖는다. 여기는 이슬람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 세계의 요람이다. […] 그러나 최근 몇 년간 LGBT 의제는 점점 더 터무니없는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우월한 서구의 관용은 이성의 한계까지다. 기존의 젠더적 확실성을 재생산하는 모든 것이 이성상식으로 세례받는 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비이성적이고 퇴폐적이라고 정신의학적으로 낙인찍힌다.

이러한 담론들은 어디에서 이런 확신과 자명함을 끌어오는가? 정치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제국주의적 사회구성 내부에서 객관적이며 협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권력과 특권의 관점으로부터 나온다. 수사적·이데올로기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자연적이고 불변이라고 제시되는 생물학적 데이터를 소환함으로써 정당화된다. 이러한 소환은 규범성의 인종주의적 핵심을 다시 활성화하지만, 계몽적·문명적 외피를 두른 채로 나타난다. 여기서 상식은 곧 생물학과 동일시된다. 서구 제국주의의 보편화 담론이 확립한 배제는 살 가치 없는 몸들’, 제도 바깥에 머물러야 하는 몸들을 생산한다. 이는 곧 시민권으로부터의 배제다. 누가 시민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안티고네의 질문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울려 퍼진다.

예기치 못한 수렴들

생물학의 소환이 민족주의에 낯선 것이 아니라면, 오늘날 본래 민족주의적이지 않았던 일부 페미니즘 담론에서도 유사한 소환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놀랍다. 젠더 권리를 위한 투쟁이 우파 전체의 공격 대상이 되듯이,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젠더 비순응자들은 좌파 내부 일부 페미니즘에 의해서도 공격받고 있다.

()젠더 페미니스트들은 성(sex)이 젠더(gender)에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양보해도 젠더는 물질적 기반이 없는 허구적 구성물로 폄하되며, 최악의 경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짜 욕구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렇다면 처음부터 질문해야 한다. 물질주의란 무엇인가? 물질주의를 생물학으로 환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신체적 물질성이 사회적 배제, 트라우마, 계급적 사회 관계라는 교차적 정의 위에서 조직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해부학적 가시 부위로 한정하는 것은 기계적 현상학에 불과하지 않은가? 트랜스 성향이 신자유주의적 개인 정체성으로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랜스젠더들은 매일 깊이 물질적이고 계급적이며 사회적 배제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좌파 반자본주의 전략이 다루어야 할 물질적 사실이 아닌가?

여성 억압이 생물학이 가능케 한 출산 능력의 착취에 기초한다는 주장에 대해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렇게 응답한다. 억압 체계의 존재를 생물학에 귀속시키는 것은 비생산적이며 잘못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억압 체계가 어떻게 생물학적 사실을 왜곡해 자신들의 부정의한 목적을 달성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주로 착취하는 것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회 체계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역할의 확립이며, 이 역할들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처럼 자연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성성이 사회적 관계이자 수행적 사회 실천의 역동적이고 다중 결정된 흔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생물학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해부학적 소유물로 여겨진다. 마치 그리스인혹은 다른 국민 정체성의 소유처럼 말이다. 이로써 성(sex)의 영역 안에서도 일종의 소속 체계가 구성되며, 이는 본질적으로 배제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성의 영토 내 시민권의 소유적 개념의 형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질주의적 여성 개념은 계급적 배제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문법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는 가부장적 민족 담론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확장하며, 좌파적 페모내셔널리즘으로 이어지는 연속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외국인들이 오고 있다”, 무자격의 비국민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낮추고 있다는 말은, 트랜스젠더들이 본래 정상적으로 젠더화된 국민에게 속해야 할 무언가를 탈취해 그 정당한 구성원을 해치고 있다는 논리와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배제와 불평등에 기초한 체제에 맞서 이 세계를 해석하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정치 이론과 전략의 기준은, 우리에게 강요된 방향과 반대되는 길을 여는 데 있다. 혈통과 생물학의 자연화에 맞서 창조성, 변형, 독창성을 선택하는 길. 닫는 대신 모든 영역에서 시민권의 체제를 끊임없이 열어젖히는 길. ‘각성 의제(woke agenda)’에 공포로 반응하는 대신, 다층적으로 억압받는 주체들의 계급적 착취를 인식하고 동시에 그들의 요구를 국가가 어떻게 전유·이용하는지를 통찰하는 길.

국가가 더 깊이 억압하고 권리를 말살하며 불평등을 제도화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 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극우의 부상과 극우적 국가 전략이 강화되는 시기에 더 큰 배제의 공포를 느끼는 소외된 주체들이 단지 들리는존재가 아니라 전략의 중심에 자리하는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물질주의(materialism)의 유일하게 확실하고 사유 가능한 기준이다.

(기사 등록 2026.1.12)   

* '다른세상을향한함께읽기와열린토론' 참가자 모집 

https://forms.gle/d7mJxD21kDYtoHb8A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ㅈㅈㅇ  1002 - 452 - 402383/ https://forms.gle/zs2LbYutAWPX5KBAA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https://forms.gle/LuPms3PRRkMv3Crr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