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논쟁

아래 글들은 미국에서 조란 맘다니가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이후에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전략과 방향에 대한 다양한 토론들 중의 일부이다. 이 글의 필자들인 닐 마이어(Neal Meyer)와 닉 프렌치(Nick French)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 조직(DSA) 내에서 핵심 분파 중 하나인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그룹의 창립 멤버이자 핵심 인물들이고, 좌파 잡지 <자코뱅>(Jacobin)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전략가이자 작가들이다.(번역: 두 견)
● 개혁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찾기
닐 마이어(Neal Meyer)
출처: https://www.left-notes.com/p/finding-a-road-beyond-social-democracy
오늘날 좌파에 속한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된 것은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정치 혁명” 프로그램에 영감을 받고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의 핵심은 이제 매우 익숙하며, 사실상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 좌파의 프로그램이다. 그 안에는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그린 뉴딜, 노동조합 조직률의 급증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노동법 등 여러 요소가 포함된다. 이는 단지 우리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의 사실상의 프로그램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누리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들릴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언젠가 미래에 미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정부가 선출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고자 한다. 적어도 그것은 우리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다. 이러한 정치 혁명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는 좌파 정부는 기업의 완강한 저항에서부터 거대 기업언론의 끊임없는 공격, 정치적 중도와 우파의 가혹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이 결국 승리하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 싸워서 실현된 개혁 프로그램보다 더 급진적이지 않다.
사회주의 운동에 속한 우리 중 대다수에게, 그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어느 정도 작업하고 있는 전망이다. 우리의 주요 질문은 그러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는 운동을 어떻게 구축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사회주의 전략에 관한 장기적 질문도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보다 이론적으로 도전적이며 덜 자명한 질문이 있다.
즉,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경로”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 속에서 쟁취된 개혁 프로그램에서 체제 자체를 바꾸기 시작하는 구조적 변화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노동을 강화하고 공공 부문을 확대하여 자본주의 소유를 대규모로 위협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예컨대 금융과 주요 대기업의 국유화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보다 급진적 프로그램에는 거대 가문 재산의 수용, 즉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과두제의 일거해체와 억만장자 계급의 폐지도 포함된다. 오직 이러한 종류의 프로그램만이 소수 투자자 계급이 수십억 인류의 삶 위에 행사하는 막대한 권력을 타파하고 사회의 급진적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다.
여기서의 도전은 사회주의 정부와 운동이 체제적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 즉 <공산주의 선언>에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말한 “사유 재산권에 대한 전제적 침입”을 시도할 때 — 더 이상의 진전이 자본과의 실제적 대결을 촉발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주요 금융기관의 국유화와 같은 체제적 변화는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가 결코 그러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본 전체에 존재론적 도전을 가한다.
개혁의 한계를 탐색하기
그 대결은 자본 파업, 사회주의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준법적 조치, 심지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1930년대 프랑스 인민전선에서부터 1970년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경우에 이르기까지 야심 있는 좌파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직면해온 도전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한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 자본에 대한 도전이 단순한 저항을 넘어 지배계급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이 어디인지 — 알지 못한다. 랄프 밀리밴드(Ralph Miliband)와 마르셀 리브만(Marcel Liebman)이 그들의 고전적 논문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에서 사회주의 정부의 과제가 “개혁의 한계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러한 한계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핵심 질문은 이러한 한계에 도달했을 때 사회주의 정부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이다. 그것은 1970년대의 사회민주주의자들처럼 자본과의 일정한 공존 방식을 찾기 위해 후퇴하고 우물쭈물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급진적 프로그램을 지지하기 위해 대중적 세력을 동원하며 더 나아갈 것인가? 그리고 자본과의 실제적 대결, 즉 기존 방식과의 결렬에서 비롯되는 모든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a) 위에서 설명한 한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자본이 점진적 단계에 의한 자기 폐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b) 그 한계에 도달했을 때 후퇴가 아니라 추가적 충돌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전략적 준비가 핵심 과제가 된다. 이러한 준비는 특히 어렵다. 개혁의 정확한 한계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언제 그 지점에 도달할지, 어떤 조건에서 도달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그 결렬의 순간에 후퇴하지 않을 운동과 정당을 건설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경로”가 존재한다면, 그 길을 찾고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위험을 충분히 인식한 채 전략적으로 준비된 정당과 간부가 필요하다. 거친 비유를 사용하자면, 우리가 앞으로 달리게 될 도로의 세부를 모르더라도 가장 가능성 있고 가장 어려운 상황에 대비한 차량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배우기
여기서 20세기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실패로부터(그들의 많은 성취를 제쳐두더라도)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밀리밴드와 리브만의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이 점에서 특히 유용하다. 밀리밴드와 리브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두 가지 주요 오류와 그로부터 도출해야 할 교훈을 요약한다.
첫째,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공공 소유, 국유화, 수용이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근본적 구성 요소인지 여부에 대해 — 특히 전후 시기에 —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모호성으로 특징지어졌다. 자본의 소유권에 도전하기를 주저한 이러한 태도는 결국 사회주의의 의미를 미래에 실현될 새로운 사회 질서에서, 현재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 가치와 연대의 정신으로 재정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의 교훈은 비교적 분명하다. 경제적 권력을 민주화하는 목표에 대해 모호한 정당은 자본주의와의 결렬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결코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그 결렬을 끝까지 관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당원과 운동 활동가의 풀뿌리 활동을 억제하고 모든 활동을 선거 영역으로 집중시키며, 궁극적으로 자체 정당 내 활동가 층을 무력화하는 경향으로 훼손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정부로 이끌었던 풀뿌리의 힘을 약화시켰고, 운동을 점차 공동체 성장 없이 지도자 소집단과 피동적 지지자 대중으로 양분된 속빈 구조로 만들었다. 그러한 운동은 미래의 정부가 중대한 도전을 돌파하도록 뒷받침할 대중 권력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풀뿌리의 힘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물론이고 보다 기본적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의 운동을 평가하기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는 운동을 구축하는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건실한 운동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생각은 두 가지 추가 질문을 제기한다. 첫 번째 질문: 우리가 착수하려는 이 프로젝트의 막대한 장기적 도전을 어느 정도까지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는 여전히 공공 도서관과 공립학교를 의미한다.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의 과제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바에 대한 훨씬 더 야심찬 개념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대와 공동체라는 가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사회주의의 버전을 발전시켜야 한다. 즉 경제에 대한 공공 및 협동조합 소유가 우세한, 사회주의를 목적지이자 다른 종류의 사회로 다루는 개념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작업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시작된다.
두 번째 질문: 우리의 새로운 사회주의 프로젝트에서 일부 지도적 요소는 종종 소란스럽고 통제하기 어려운 대중운동의 선두에 서는 데 대해 어느 정도로 불편함을 느끼는가? 거의 모든 권력을 자율적 지도자 혹은 지도자 집단에게 부여하는 정치 운동 — 스페인에서 포데모스(Podemos)를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종류의 프로젝트 — 의 매력은 좌파의 정치적 대변인이 종종 규율적이지 않은 대중 활동가 기반을 멀리 둔 채 선거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대중적 회원 조직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숙의와 간부 형성이 없다면, 이러한 운동은 스스로의 성장을 제한하게 된다.
우리가 미국 좌파로서 <미국 민주적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를 구축했다는 사실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은 노동조합, 사회운동, 그리고 잠재적으로 차기 뉴욕시장을 포함한 새로운 좌파 지도자들이 성장하는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만 명의 풀뿌리 활동가로 구성된 조직된 운동만이 다음을 실현할 수 있다. a)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진정한 목표에 집중하도록 유지시키는 것 b) 파열의 시기에 자본의 저항을 압도하기 위해 필요한 교란적 에너지를 창출하는 것
이러한 종류의 전략적 질문에 뛰어드는 모든 이들은 이러한 논쟁이 필연적으로 추상적이며 개방적이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 과제와 도전에서 매우 먼 사건들을 추측하는 활동의 본질적인 성격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의 가치는 우리의 공유된 정치 프로젝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토론의 조건과 기대를 설정하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어디서 개혁의 더 견고한 한계에 부딪힐지 알거나 예측할 수는 없지만 — 애초에 왜 한계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한계가 도래할 때 우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논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 대중 권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닉 프렌치(Nick French)
나는 최근 <Left Notes>에 실린 글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현대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최종 목표에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의 대부분 생산 자산을 집단적 혹은 노동자 소유로 전환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개혁되고 노동자 친화적인 자본주의 버전에 만족한다.
후속 글에서 닐(Neal)은 전략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사회주의 진영 내부의 또 다른 중요한 분열을 탐구했다. 사회주의로 가는 봉기적 경로를 지지하는 이들은 기존 국가를 전복하는 대중적이며 초법적인 봉기를 통해 사회주의자들이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경로를 신봉하는 이들은 탈자본주의 사회를 구축하는 길이 사회주의 정부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전략이라는 문제, 즉 닐이 “전환의 문제”라고 부르는 이 사안에서 우리는 더 많은 구분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당신과 내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사회주의 정부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 정부가 일단 선출되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온갖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 집합만을 다루고자 한다. 즉, 사회주의 정부가 대중 권력을 구축하는 것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사회주의 전환이 어떤 속도로 진행될 수 있는지와 성공 조건에 어떤 함의를 갖는가라는 문제다.
대중 권력
나는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풀뿌리 차원에서 노동계급의 권력 기관을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좌파 인사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러한 대중 권력의 기관에는 노동조합(혹은 산업별 또는 전국적 노동조합 연맹), 작업장 협동조합, 세입자 조합, 그리고 동네 수준에서 도시나 지역과 같은 더 큰 지리 단위에 이르는 민주적 의회가 포함될 수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경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대중 권력의 이러한 제도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째, 아직 자본주의를 넘어 전환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것은 노동자들이 자본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수단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세입자 평의회 등을 조직함으로써 노동계급은 집단적 힘을 사용해 착취에 저항할 수 있다. 예컨대 더 높은 임금을 위해 파업하거나, 주거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임대료 지급을 거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도는 또한 국가에 대한 자본주의적 압력에 대응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여 정부가 노동자 친화적 개혁을 통과하도록 동원하고, 이상적으로는 경제의 더 많은 부분을 집단적 소유와 통제 아래로 가져오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이러한 제도는 본질적으로 기존 질서 내부에서 새로운 질서의 씨앗이며, 사회주의 전환의 근력이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의 더 많은 부분이 사회화될수록 작업장과 지역 공동체의 민주주의라는 대중적 제도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직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리 코뮌, 러시아 혁명, 칠레에서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사회주의 정부, 그리고 여러 도시 단위의 총파업 경험은 이러한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재편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 엿보게 한다.
대중 권력을 넘어
그러나 대중 권력만으로는 사회주의 전환을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첫째, 사회주의자들은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한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고 유지해야 한다. 대중 권력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다수 지지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대중 권력 기관의 핵심을 이루는 활동가 기반은 항상 사회 전체에서 소수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정부는 정당성과 인기를 강화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지지받는 정책 개혁을 추진해야 하며, 이는 장차 더 급진적 경제 변혁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힘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사회주의 전환의 몇몇 근본적 측면에는 국가 정책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특정 기업과 산업을 국유화하고, 필요한 공공은행을 설립하며, 금융 거래에서 환경 관리, 노동자 권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규율하는 규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책임은 국가 정부에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중 권력 기관만으로는 실행 가능하게 해결할 수 없으며(물론 민주적 사회주의 정부는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적절한 경우 의사 결정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 정부는 대중 권력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촉진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사회주의 정부가 공적 플랫폼과 입법 권한을 사용해 이러한 제도를 구축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집단적 힘을 확장하고, 경제와 국가의 보다 근본적 변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중 권력과 칠레의 경험
1970년대 초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의 인민연합(UP, Unidad Popular) 정부가 전복된 사건은 사회주의 정부의 과제를 생각할 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귀중한 교훈이다. 2023년 <Catalyst>에 실린 글에서 르네 로하스(René Rojas)는 좌파에서 흔히 제기되는 분석, 즉 아옌데가 충분히 강력하거나 빠르게 밀어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 특히 정부를 지지한 대중 권력 기관을 충분히 동원하거나 강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 UP 정부가 전복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대규모 자본 파업이 UP 정부를 치명적으로 위태롭게 했고, 아옌데가 사유 재산을 더 빠르게 수용했더라면 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하스가 지적하듯, UP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종종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실제로 빠른 속도로 기업을 국유화하고 수용하고 있었다. “1973년까지 은행, 광업, 대외 무역, 기초 산업뿐만 아니라 섬유나 주요 식료품과 같은 중요한 경공업 부문까지 포함하여 전체 국내 생산의 절반 이상이 공공 부문이 차지했다.”
또한 로하스는 아옌데가 더 공격적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다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며, UP 정부가 그 권한을 넘어설 경우 대중적 지지를 잃을 것이라는 당시의 우려가 타당했다고 말한다. 로하스는 아옌데 정부가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시작”하겠다는 공약 아래 선출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장차 더 포괄적 반자본주의 재구조화를 수행할 수 있도록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더 유리한 위치에 놓는 중요한 변혁적·재분배적 개혁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했지, 이를 완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의 지지층 대부분은 자본가 계급과의 혁명적 대결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로하스는 노동자들이 그러한 대결에 실제로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코르도네스(cordones), 코만도스(comandos), 그리고 사재기를 억제하고 소비재 분배를 통제했던 지역 공급·가격 위원회와 같은 대중 권력 기관의 증가는 칠레식 사회주의 경로의 진전을 저지하려는 엘리트의 조치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들이 구축한 핵심 도구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관은 여러 세대의 노동자, 빈민, 그리고 그들의 정당이 고통스럽게 발전시켜온 조직적·전략적 역량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승산 없는 내전의 가능성을 마주한 아옌데는 쓸모없는 유혈 사태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이 장기전에 해당했기 때문에, 아옌데와 대중적 전투원들은 이러한 역량을 보존하고 육성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성급하고 희망 없는 최후의 전투에서 그러한 역량의 파괴를 감수하지 않으려 했던 그의 태도는 노동계급의 요구와 선호에 뿌리를 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헌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로하스는 아옌데가 쿠데타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가능성이 기독교민주당(CD)에 충성하는 노동계급 상당수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민주당 좌파 지도자들과 합의에 도달해야 했는데(그들은 쿠데타 직전까지 UP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폭넓게 지지했다), 이러한 합의는 “진행 중인 수용 조치의 범위를 제한하고, 무장 대결 준비를 억제하며, 지속적인 정치적 다원주의와 시민적 자유를 명확히 보장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한 합의에 실패하면서 UP는 노동계급의 지지를 잃었고, 우파이자 쿠데타 지지 성향의 CD 지도자들이 당의 좌파를 주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아옌데의 경험은 대중 권력의 구축을 포함한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발전시키기 위해 사회주의 정부에는 시간과 광범위한 정치적 동맹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대로, 자본가 계급과의 직접적·최종적 대결로 서둘러 나아가는 선택지는 파국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긴 전환 기간의 필요성과 보다 온건한 세력과의 타협 필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에는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경로를 신봉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비판자가 있다.
(기사 등록 202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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