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 관점에서 본 가자 제노사이드
질베르 아슈카르(Gilbert Achcar)
번역: 두견
이 글의 필자인 질베르 아슈카르(Gilbert Achcar)는 레바논에서 성장했으며 파리, 베를린, 런던에서 거주하며 강의했고, 런던대학교 SOAS의 명예교수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야만의 충돌>(2002, 2006),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와 공저한 <위험한 힘: 중동과 미국의 외교정책>(2007), <아랍인과 홀로코스트: 아랍-이스라엘 서사 전쟁>(2010), <마르크스주의, 오리엔탈리즘, 코스모폴리타니즘>(2013), <민중의 바람: 아랍 봉기의 급진적 탐구>(2013), <병적 증상: 아랍 봉기의 재발>(2016), <신냉전: 코소보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미국, 러시아, 중국>(2023)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가자 대재앙: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 집단학살>을 출간했다. 2025년 11월 10일,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 대학(SOAS)에서 그의 신간 출간 기념회가 열렸고, 이하의 글은 그가 발표한 강연 원고를 직접 편집한 것이다.
출처: https://newpol.org/issue_post/the-gaza-genocide-in-world-historical-perspective/

내가 가장 먼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가자에서의 제노사이드가 수많은 출처를 통해 매우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명확히 해두기 위해,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제노사이드라고 단언하는 법학자들과 단체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정의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 정의의 핵심 문장은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파괴하려는 의도의 문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가자에서 제노사이드가 자행되어 왔다고 단언하는 근거가 되는 정의다.
초기에는 이 용어의 사용에 대해 거센 분노가 있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 대한 그 어떤 비판에도 전방위적으로 제기되는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이 꼬리표처럼 붙기도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난 2023년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이 용어의 사용은 특히 서방의 소식통과 서방 정부들로부터 큰 공분을 샀다. 그 이후 긴 시간이 흐르면서, 논의의 성격은 제노사이드의 인정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이들이 지배하던 국면에서, 오늘날 내가 '새로운 형태의 제노사이드 부정론'이라고 묘사할 만한 상황으로 변화했다.
모든 제노사이드는 어떤 형태로든 부정론을 낳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이지만, 터키 정부에 의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의 공식적 부정과 같은 다른 사례들도 존재한다. 모든 제노사이드는 대개 제노사이드를 자행한 국가나 민족에 속한 이들 사이에서 부정론을 옹호하는 대중을 찾아내곤 한다. 우리는 지금 가자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에 관해 바로 그러한 논의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여전히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제노사이드 부정 행위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2년의 세월과 가자에서 계속되어 온 살상 및 파괴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그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스라엘의 맹공격이 시작된 첫해 말엽, 세계적인 두 주요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모두 제노사이드를 인정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여름에는 두 곳의 핵심적인 이스라엘 인권단체도 이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비첼렘(B’Tselem)으로, 이들은 이스라엘 단체로서는 놀랍고도 매우 용기 있는 제목인 "우리의 제노사이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인정은 미국과 유대인 사회를 포함한 여론 전반에서 계속 확산되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대인의 약 40%가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라니!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10%를 더하면 절반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인구 전체에서 이 제노사이드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비율과 유사하다. 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근 스페인 총리도 가자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다고 단언하며 이 용어를 직접 사용했다. 이는 아일랜드 정부에 이어 이 사실을 언급한 두 번째 유럽연합(EU) 정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 정부들은 여전히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서 걸려 있는 것은 의미론적이거나 사전적인 논쟁, 혹은 역사적인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명확한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어떤 정부가 이스라엘이 2023년 10월부터 가자에서 벌여온 전쟁의 제노사이드적 성격을 인정한다면, 공식적으로 반인도적 범죄의 공범이 되지 않고서는 그 국가와 관계, 특히 군사적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영국은 이스라엘과 무역 및 협력 등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EU-이스라엘 동반자 협정이 존재하는데, 이 협정의 일부는 "트럼프 평화안"의 발표 전에 동결될 예정이었으나, 그 발표가 사실상 이 이니셔티브를 싹부터 잘라버렸다. 따라서 제노사이드에 관한 논쟁은 즉각적인 결과를 수반한다. 가자 지구의 사망자 규모 수치는 절대적으로 끔찍하고 소름 끼친다. 지금까지 폭격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만 7만 명에 육박하며, 여기에 의료진들이 초기에 추정했던 바에 따르면 가자의 의료 및 보건 인프라 파괴와 제노사이드 수단의 일부인 매우 조직적인 기아를 포함한 기타 상황으로 인해 사망한 간접적 사망자 수를 포함하면 이 수치의 최소 4배 이상을 더해야 한다.
이 끔찍한 학살의 실제 총 결산을 낼 수 있게 될 때, 이스라엘의 맹공격 결과로 가자 인구의 약 10%가 목숨을 잃었음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제노사이드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제노사이드의 정의는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기준을 거의 완전한 전멸이었던 600만 유럽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제노사이드 수준으로 설정한 뒤,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제노사이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논거가 아니다. 가자에서의 제노사이드 사실을 부정하는 바로 그 서방 정부들은, 예컨대 절대적 및 상대적 기준 모두에서 학살의 규모가 가자에서 일어난 일보다 분명히 적었던 보스니아에 대해서는 이 표식을 사용할 것을 강하게 고집했다.
다음으로 의도의 문제가 나오는데, 이 역시 가자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를 부정하는 데 사용된다. 이 점에 대해 나는 이스라엘 맹공격의 제노사이드적 성격이 실제로는 시작부터 명확히 식별 가능했다고 말하고자 한다. 맹공격이 시작된 지 사흘째 되던 2023년 10월 10일, 나는 아랍어로 쓰는 나의 주간 칼럼에서 이미 시작된 상황을 제노사이드 전쟁으로 묘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로 집필되어 훨씬 더 이목을 끌었던 전쟁 엿새째인 10월 13일, 미국에 기반을 둔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학자 라즈 세갈(Raz Segal)이 미국의 간행물에 "제노사이드의 교과서적인 사례"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관련 글을 기고했다는 사실이다.
벌어지고 있던 일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초기 인정은 그 의도가 시작부터 다양한 수준에서 식별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은 이스라엘의 폭격이 민간인 인구를 표적으로 삼음으로써 국제인도법, 즉 전쟁법에 대한 노골적이고 공개적인 위반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분명 10월 9일 이스라엘의 전쟁 장관, 이른바 국방부 장관인 요아브 갈란트(Yoav Galant)가 했던 악명 높은 발언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것은 큰 관심을 끌었다.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가자 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명령했다." "전기도, 식량도, 물도, 연료도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폐쇄된다. ...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이는 어떠한 구별도 없이 특정 영토 전체와 그곳의 민간인 인구 전원을 차단하는 것에 관한 일이었다. 여기에 이미 전쟁법의 명백한 위반이 존재했으며, 전쟁법의 핵심 기둥 중 하나는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별이다. 여기서는 불과 수천 명의 무장 괴한들의 공격을 이유로 민간인 인구 전체가 표적이 되고 처벌을 받고 있었다.
다음으로 하마스(Hamas)의 박멸이라는 전쟁의 공언된 즉각적 목표가 있었다. 이는 참으로 제노사이드적인 목표다. 왜인가? 우선, 이는 10월 7일 사건을 감행한 조직의 무장 부문과 조직의 나머지 부분 사이에 아무런 구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무장 부문은 이즈알딘 알카삼 여단(Izz al-Din al-Qassam Brigades)이라 불리는 반면, 하마스는 2007년부터 가자 지구를 통치하며 그에 따라 민간 행정 조직 전체를 발전시켜 온 10만 명 이상의 단원을 지닌 대중 조직이다. 따라서 가자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하마스 전체를 박멸하겠다는 목표는 그 자체로 제노사이드적이다. 그것이 바로 공언된 의도였다.
다음으로 수단이 있으며, 이 점 또한 매우 명확하다. 아주 초기에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의 파괴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시작부터 폭격의 폭력성과 강도는 절대적으로 끔찍했다. 명심할 점은 가자가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곳은 매우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지고 있으며, 인구의 44%가 15세 미만의 아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민간인에게 미칠 잠재적으로 끔찍한 영향 때문에 도시 환경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거대한 2,000파운드 및 1,000파운드 폭탄의 사용을 포함하여, 해당 영토의 전체 구역을 폭격하고 파괴하며 평평하게 밀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폭탄이 민간인 도시 밀집 지역에 투하될 때 표적 간의 그 어떤 차별성도 불가능하다. 이 모든 일의 결과로, 사망자(그리고 이는 폭격의 직접적인 피해자만을 가리킨다)의 70%가 아동과 여성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내가 여성을 특정하는 이유는 하마스에는 여성 전투원이 없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은 여성을 전투원으로 모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바라보든 가자 인구의 상당 부분을 명백히 의도적으로 살해하고, 생존자들이 떠나도록 강요하려는 분명한 목표 하에 주거지 대부분을 파괴한 것은 모든 전쟁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다. 이는 인종 청소를 실행하기 위해 자행된 제노사이드다. 이스라엘은 물론 가자 주민 전체를 파괴할 의도는 없었으나, 생존자들이 영토를 떠나도록 압박하는 방법으로서 그들의 상당한 비율을 살해하고 서식지를 파괴할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그 의도 역시 매우 명확했다. 가자 주민들을 이집트 영토로 밀어내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설명하는 문서가 초기에 이스라엘 정보부(Israeli Ministry of Intelligence)로부터 유출되었다. 제노사이드를 부정하며 이에 대한 이스라엘 측 관점을 옹호하려는 이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폭격을 준비하던 각 지역의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했기 때문에 이것이 역사상 가장 도덕적인 전쟁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글쎄, 영토의 크기, 즉 매우 작은 영토를 바라보고, 인구 전체가 그 어떤 지역이든 한 번에 또는 짧은 통보를 받고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하마스가 인간 방패 뒤에 숨어 있다는 변명과 결합될 때 더욱 위선적이 된다. 우선, 어떤 집단이 수많은 인질을 잡고 있고 경찰이 개입하여 모두를 사살한 뒤 "나쁜 놈들이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이는 엄청난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해 왔고 그것이 이스라엘이 그토록 많은 민간인을 살해해 온 이유라는 변명은 그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선적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투사들이 터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 방패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이는 더욱 노골적이다. 그들은 런던 지하철보다 더 많은 터널을 뚫었다. 그들은 민간인 인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용도를 위해 터널 네트워크 전체를 구축하고 그곳에 숨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자의 30%를 차지하는 성인 남성의 절대다수가 비전투원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제노사이드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10월 7일에 일어난 일을 예측 가능한 결과로 만드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책에서 10월 7일을 "반식민지 투쟁 역사에서 매우 치명적인 오판"이라고 묘사한다. 나는 어떤 이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온전히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커다란 오판이었다고 주장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이 오판은 유럽, 나치즘,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아닌 그것이 진정으로 속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0월 7일을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에 대한 최악의 학살"이라거나, 그날 벌어진 일을 나치즘의 연장선으로 만들거나, 그 역사적 연속선상에 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 어떤 유사한 묘사로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억압자가 불교도였거나, 개신교도였거나, 혹은 다른 어떤 종교에 속했더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응은 같았을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문제는 유대인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었으며, 10월 7일에 공격을 감행한 이들을 움직인 동기는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이스라엘이 자행한 식민지적 억압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반식민지 투쟁의 역사는 실제로 다른 형태의 10월 7일들을 목격해 왔다.
책에서 나는 1961년 앙골라(Angola)에서 일어난 유사한 사건을 묘사한다. 그 묘사를 읽어보면 두 사례 사이의 평행선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게 될 것이다. 유사하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동일한 유형의 공격이다. 그러나 10월 7일이 단지 구실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스라엘 국가와 정부는 이 공격을 빌미로 10월 7일과 비교해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맹공격을 개시할 기회로 삼았다. 비례성의 원칙은 전쟁법의 중심이다. 따라서 만약 점령국이 점령당한 자들의 '점령에 저항할 권리' 행사에 맞서 '자위권'을 가진다고 한다고 해도, 점령국은 여전히 비례성에 의해 부과되는 법적 한계를 준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매우 명백하게도 시작부터 이스라엘의 대응이 엄청나게 불균형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덧붙여 말하자면, 모든 이가 10월 7일 이스라엘 측의 피해자 1,200명에 대해 들었다. 이 작전 과정에서 사망한 1,600명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아는 사람은 훨씬 적다. 즉, 시작부터 가자를 둘러싼 장벽을 넘어간 5,000~6,000명 중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그들이 살해한 이스라엘인의 수보다 많았다. 따라서 그 시점을 넘어선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인 살상은 전적으로 시작부터 불균형했으며, 이는 제노사이드 의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증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이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여전히 믿는 이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맹공격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이 대규모 전쟁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자 제노사이드에 대한 부정은 바로 그것, 즉 제노사이드 부정론의 새로운 사례가 되었을 뿐이다.
나아가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 자체에 제노사이드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유대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이기 때문이다. 식민주의는 그 자체로 제노사이드적 잠재력을 수반한다. 식민지 상속인, 그리고 정착민-식민지 상속인은 더더욱 제노사이드적 잠재력을 내포한다. 정착민 식민주의의 유명한 두 역사적 사례인 북미나 오스트랄라시아(Australasia)를 생각해 보라. 식민주의는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한참 동안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다. 나치즘이 패배한 후에도, 나치와 싸웠던 이들이 이끌던 프랑스 정부는 1945년 알제리(Algeria)에서 거대한 학살을 자행했고, 2년 후에는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두 번째 학살을 자행했다.
식민주의의 역사는 실제로 제노사이드적 학살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제노사이드적 잠재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종류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19세기에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세계관이 20세기 하반기에는 더 이상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본질 자체에 내재된 또 다른 잠재력인 우경화 경향에 도달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원래 식민지적 조건은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점령과의 결합으로 인해 악화되었다. 1948년에 일어난 인종 청소에 더해 1967년 이후 새로운 영토의 직접적인 점령과 그곳의 거대한 팔레스타인 인구에 대한 굴복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은 필연적으로 우경화 경향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시오니즘(Zionism)의 많은 비판자들, 특히 이러한 잠재력을 강조했던 시오니즘의 유대인 비판자들에 의해 시작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스라엘 국가가 건국 후 첫 2~30년 동안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등대로 널리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예측들이 나왔다. 시오니즘 운동의 사회민주주의 분파인 시오니스트 사회민주주의가 국가의 건국을 주도하고 거의 30년 동안 통치했다. 그러나 시오니즘 운동의 극우파는 국가 건국 후 30년이 채 되지 않고, 1967년 서안 지구(West Bank)와 가자 지구가 점령된 지 10년이 지난 1977년에 집권했다.
이 극우파는 시오니즘 운동의 원래 극우파를 계승한 리쿠드(Likud)당에 의해 대변되는데, 그 전통의 창시자인 블라디미르 자보틴스키(Vladimir Jabotinsky)는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숭배자였다. 이들은 1977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처음으로 승리했으며, 그 이후 48년 중에서 리쿠드당은 35년 동안 집권했다. 리쿠드당은 이스라엘 국가의 지배적인 정당이 되었고, 노동 시오니즘은 매우 작은 세력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우경화 추세는 계속되었다.
어느 시점에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및 점령의 사령관이었고 사브라와 샤틸라(Sabra and Shatila) 학살 사건과 연루되어 그 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이스라엘에서 기소되었던 인물인 아리엘 샤론(Ariel Sharon)은 2000년 9월 예루살렘에서 노골적인 반이슬람 도발을 조직했고, 자신이 촉발한 봉기를 이용해 2001년 2월 이스라엘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1967년 점령지들이 점령된 이래 현재 가자에서 자행되는 제노사이드 전까지 가장 잔혹한 맹공격을 퍼부었으며 서안 지구 인구에 대한 박해를 개시했다.
이러한 우경화 경향은 모든 군대 중 "가장 도덕적"이라고 위선적으로 주장해 왔고 여전히 그렇게 주장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군사 교리 개정을 동반하기도 했다. 18년 동안의 점령 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2000년에 떠나야 했던 레바논에서의 참패 이후, 이스라엘 군은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적의 민간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이 적이 이스라엘에 대한 그 어떤 추가적인 행동도 취하지 못하도록 저지한다는 새로운 교리를 고안했다.
이 군사 교리는 전쟁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이는 2006년 레바논에서 처음으로 실행되었다. 이스라엘은 특공대 집단이 레바논 국경을 넘어 병사 3명을 살해하고 2명을 납치하자 헤즈볼라에 보복을 가했다. 이스라엘 군은 1,000명이 넘는 레바논 민간인을 살해했고, 베이루트 남부의 도시 밀집 지역을 포함하여 헤즈볼라가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거대한 민간인 지역들을 파괴했다. 동일한 우경화 경향은 네타냐후(Netanyahu)가 리쿠드당 내에서 샤론의 우파 도전자로서 입지를 구축한 후 그를 권좌로 이끌었다.
군부의 압박 속에서 샤론이 2005년 이스라엘의 가자 철수를 명령했을 때, 네타냐후는 이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는 결국 샤론이 탈당해야 했던 리쿠드당의 수장이 되었고, 2009년 권좌에 복귀하여 2021년까지 12년 동안 총리직을 유지하며 이 직책의 이스라엘 최장수 기록을 경신했다. 그 후 그는 또 다른 이스라엘 제노사이드 학자가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에서 '네오나치'라고 묘사한 두 집단을 포함하는 연립정부와 함께 2022년 말 총리로 복귀했다. 이 꼬리표는 참으로 과장이 아니다. 그들은 정말로 매우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이며, 매우 노골적으로 인종 청소를 옹호하고, 극도로 우익적이며, 폭력적 성향을 지닌 네오나치들이다.
두 집단은 종종 극우로 지칭되지만, 실제로는 극우 성향의 리쿠드당보다 더 오른쪽에 위치한 초극우(ultraright)다. 두 집단 중 하나는 1994년 이스라엘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서방 국가에서 테러리즘으로 금지된 정파의 후계자인데, 바로 메이르 카하네(Meir Kahane)가 이끌던 카흐(Kach) 그룹이다. 이 자들이 지금 네타냐후와 연대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자 제노사이드의 자행, 즉 이스라엘이 그 결과물인 식민지 기획의 본질 자체에 내재된 잠재력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든 정치적 조건들이다.
마지막으로, 가자 제노사이드를 세계사의 분수령으로 제시하는 이 책의 부제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는 분명 역사적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순간에 처해 있다. 우리가 이른바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다는 점은 미디어를 통해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그 자유주의적 개념은 미국의 자유주의 성향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 대서양 헌장에 표현된 그의 비전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1948년 세계인권선언, 내가 인용한 제노사이드 협약, 새로운 국제인도법인 1949년 제네바 협약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기관들로 전환되었다.
일련의 기관들이 생겨났으나, 규칙 기반의 질서는 1945년 루스벨트의 사망과 열성적인 반공주의자인 해리 트루먼에 의한 그의 대체로 인해 매우 일찍 시작된 냉전으로 인해 이후 수십 년 동안 작동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루먼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했다. 5년 후, 그는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규칙 기반의 질서'는 사실상 유예되었다. 1990년 독일의 통일로 가시화된 냉전의 종식과 함께,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 즉 아버지 부시는 당시 매우 유명해진 어구인 '신세계 질서'를 선포했다.
그는 이를 법의 지배가 지배적이고 약자가 강자에 맞서 옹호받는 세계 질서로 묘사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창설되었고, 이어 유엔 총회에서 보호책임(R2P)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 핵심 사상은 국제사회가 주권 존중이라는 명목 하에 어떤 정부가 자국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세계시민주의적' 질서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환상은 차례로 빠르게 깨어졌다. 1990년대는 새로운 냉전으로 이행하는 전환기였다. 나의 이전 저서인 <신냉전>에서 나는 세계가 어떻게 구냉전에서 신냉전으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신냉전이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기술했다.
그러나 그 규칙들은 규칙을 옹호하는 척하던 이들에 의해 또다시 빠르게 위반되었다. 1999년 코소보(Kosovo) 전쟁은 국제법상 자위권 전쟁 외에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우회하여 수행되었다. 2002년 미국은 서명한 지 불과 2년 만에 국제형사재판소의 로마 규정(Rome Statute)에서 서명을 철회했다. 그때는 부시 주니어(Bush Junior) 행정부가 국제법에 대한 훨씬 더 노골적이고 중대한 위반인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 기반 질서의 환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방의 자유주의자들이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을 탓할 수 있었고, 미국의 일부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의 뒤를 이은 버락 오바마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자신의 초기부터 반대를 자랑했는데, 이 침공은 마찬가지로 프랑스와 독일의 자유주의 정부들에 의해서도 반대된 바 있었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원칙을 고수한다는 환상과 핑계가 유지되었다. 자유주의적 명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정점에 달했다.
이 전쟁은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으로 묘사되었으며, 서방은 과거 소련의 정통성을 계승한 라이벌 러시아와 대치했다. 이러한 부활한 냉전 담론은 조 바이든에 의해 추진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바이든 정부 시절에 시작됐다. 그는 냉전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미국에 우호적인 권위주의자들의 참여 하에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를 소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자가 그것에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가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노사이드는 일련의 사건들의 정점이지만, 이중 잣대, 즉 위선이 모두에게 명백해졌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내가 책에서 주장하듯 가자는 역사상 최초의 미국-이스라엘 공동 전쟁이기도 했다. 가자 이전에 이스라엘이 치른 전쟁 중 그 어떤 전쟁도 그렇게 온전히 묘사될 수 없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전 전쟁 중 일부를 지원했으나, 어느 시점 이후에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가자의 경우 워싱턴은 수천 개의 2,000파운드 및 1,000파운드 폭탄과 기타 무기를 제공하고, 주변 지역 열강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군사적 엄호를 제공하고, 수개월 동안 휴전 요구를 체계적으로 거부하고, 다른 서방 정부들도 마찬가지로 이를 거부하도록 부추길 정도로 공언된 전쟁 목표를 전면 수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가자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 사이의 거대한 모순은 모두에게 자명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푸틴과 네타냐후 모두를 기소했으나, 그 체포영장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매우 상이한 태도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행동은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준수한다는 자유주의적 명분의 최종적인 실추로 이어졌다. 그것은 순전한 위선임을 명백히 드러냈으며, 이러한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배신, 자유주의적 담론의 불신은 전 세계적인 극우파의 발흥을 부채질했다. 네오파시즘은 수년 동안 고조되어 왔다. 그 진전은 2008년 경제 위기와 시리아 등지에서의 난민 유입 이후 가속화되었다.
이처럼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 이주, 특히 난민의 정치적 이주 증가는 네오파시즘 세력의 성장을 간접 부채질한 반면,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원칙을 배신한 것은 그들의 성장을 직접 촉진했다.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조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림'을 촉진했다. 카멀라 해리스 자신도 최근 바이든이 가자 주민들에 대해 그 어떤 공감도 보여주지 못한 무능함이 자신의 패배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 그것은 그녀의 선거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녀가 바이든의 태도와 공개적으로 거리를 둘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이 극우파의 발흥에 기여한 또 다른 최종적인 요소는 극우파의 평범화와 반유대주의를 핑계로 한 세탁에 공모했다는 점이다. 가자는 이를 위해 집중적으로 이용되었다. 10월 7일 이후 반유대주의에 대한 공동 거부라는 명목 하에 사회당 및 중도파 마크롱과 함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의 극우 운동이 참여하는 시위가 프랑스에서 조직되었다. 단언컨대 전 세계의 모든 선출된 정부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는 전 세계 극우파의 자석이 되었으며, 최근 핵심적인 네오파시즘 인물들이 참석한 국제 회의를 조직하기도 했다.
역사적 나치즘에 직접적인 뿌리를 둔 독일 대안당(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과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 Freiheitliche Partei Österreichs)을 포함한 서방의 극우파는 이스라엘 국가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반유대주의를 거부한다는 명목 하에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반유대주의의 현대적 등가물인 이슬람포비아로의 수렴이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극우 정부와 모든 서방 극우 세력이 공유하는 공통점이며, 반이슬람 인종주의가 그들의 공통된 이데올로기적 동기이다.
따라서 그러한 의미에서도 가자는 네오파시즘에 맞선 전 세계적 투쟁의 초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 인민과 연대하여 가자 제노사이드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으며, 이 자유는 점점 더 위협받고 심각하게 탄압받아 왔다. 가장 극적인 곳은 미국으로, 가자 주민들과 연대하는 학생들과 교수진이 현재의 네오파시즘 행정부인 제2기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잔혹하게 박해받고 있다. 이것이 가자가 지닌 세계사적 의미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증이다.
(기사 등록 202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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