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차별
인종주의와 인신매매의 신화 - 1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3. 13. 12:32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 & 조나선 닐(Jonathan Neale)
번역: 윤미래
인신매매 신화는 미국의 우익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발명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고, 인종주의적이며, 성노동자들에게 위험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페미니즘적이고 좌익적이라고 여긴다. 이 기사는 이 모순을 논쟁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 글의 필자인 독립적 사회주의자인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과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은 미국과 영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왔고, 제국주의, 기후정의, 젠더 억압과 젠더 정의 등에 대한 많은 글을 써왔다. 조나선 닐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 <두 개의 미국>,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등은 국내에도 출판돼 있다. 글이 길어서 몇 번에 나누어 연재한다. 이것은 1편이다.
출처: https://annebonnypirate.org/2021/02/05/racism-and-the-myth-of-trafficking/
2007년, 미국의 사회학자 Kimberley Kay Huong은 성착취를 위한 인신매매를 연구하러 베트남에 갔다. 그는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고 대신 성노동과 자본 흐름, 남성성들에 대해 연구하기로 했다. 충격적인 점은 미국의 비판적 학자들 중에서도 베트남에 인신매매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여러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그들이 현지 조사를 나가면 인신매매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 기업과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 그리고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연합을 이루어 미국의 길거리를 정리하는 일에 나섰다. 그리고는 이어서 전지구적으로 성노동을 재편해보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이 전지구적 재편의 핵심적 계기는 2000년 미국에서 통과된 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Trafficking Victims Protection Act)이었다. 같은 해에 UN은 팔레르모 협약(Palermo Protocol)을 비준했다. 이어 미국에서 십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인신매매에 대한 주(州)나 지역 차원의 법규가 통과되었고, 브라질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법이 만들어졌다.
반인신매매 캠페인에서 ‘인신매매’라는 말은 네 가지의 상당히 다른 의미로 혼용되어 쓰이고 있다. 인신매매는 사람들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도록 돕는 것, 여성들이 성노동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도록 돕는 것, 국내에서 여성들에게 성노동을 강요하는 것, 또는 18세 미만의 어린 여성들이 성노동을 하도록 돕거나 강요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의미들 사이의 괴리가 바로 이 단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그토록 강력하게 만든다. 앞으로 다룰 것이지만, 성착취 인신매매에 대한 일련의 신화들은 [우리의 인식을] 자극하고 교란하여 이주민들에 대한 현재의 인종주의적 맹공(猛功)을 효과적으로 은폐한다. 이 괴리가 가져오는 효과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 가지 명확하게 밝히도록 하자. 우리는 불법 이주민들이 [이런 의미에서] ‘인신매매’를 택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등한 세계를 원한다. 사람들이 빈국에서 부국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일부다. 그렇지 않은 상태는 평등하지 않다. 보통 우리의 정치적 입장은 ‘열린 국경’에 찬성한다는 어구로 표현된다.
이것이 유토피아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임금을 낮추고 있지 않은가. 근본적으로 이것은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냐의 문제다. 우리에게 그 ‘우리’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아니라 세계의 근로 인민, 그리고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든지 억압받는 쪽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깔레(Calais)의 사진을 보면 우리가 바로 그 난민 캠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거기다 우리는 정치적 논란에서 어느 편을 들지에 대해 대략적인 기준이 있어 우리가 쓴 다른 많을 글들에서도 그것을 적용해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상황에서 누가 억압받고 있으며, 그 억압받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 가다. 이 경우에 대답은 명확하다.
불법 이민자들이 국경을 건너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은 아주 많다. 이 전문가들은 거의 모두가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정의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법이 어떤 거래를 범죄자들의 손에 밀어 넣으면 거기엔 학대, 바가지, 사기와 폭력이 만연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또한 인간성도. ‘인신 매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신 매매 담론은 자유주의자들이 폭력적인 이민 정책을 수용하도록 만든다. ‘우린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걸 막으려는 게 아니다.’ 라고 그 담론은 말한다. ‘우리는 취약한 사람들을 인신매매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엔 ‘인신매매’에 대한 글에는 항상 성착취의 함의가 배경에 깔려 있게 되었다.
반인신매매 연합
미국과 세계에서 이러한 법안들이 통과되는 데 가장 강력한 정치적 추동력은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회에서 왔다. 1980년대 이래 이런 교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었다. 이 교회들은 홈스쿨링을 강력하게 주창하고 공화당의 우익을 지지했다. 그들은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낙태와 동성혼 반대 운동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반인신매매 운동의 기반이 된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은 다르다. Elizabeth Bernstein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연구를 하고 반인신매매 복음주의자들과 함께 현지 조사를 나갔다.
그들은 이 활동가들의 대부분이 젊은 백인 여성이며 거의 모두가 대학 졸업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통적 가족상이라고 생각하는 [모델을] 지지했는데 그것의 실상은 신식의 동반자적 결혼과 결혼 내에서의 출산에 보수적 [색채를 더한] 판본이었다. 이 새 운동의 지도자들은 낙태를 공격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기존의 낯부끄러운 행태를 탈각할 필요성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사회 정의파’ 복음주의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반인신매매 연합의 두 번째 날개는 ‘교도소 페미니스트’들 즉 법과 구금(‘교도소’)로써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포르노그라피와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위반자들을 구속하자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우익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기층에서 많은 수를 동원할 수 없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은 그걸 해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복음주의자들은 그냥 무시해버렸을 사람들 많은 수가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말에는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다.
이 연합의 세 번째 날개는 미국 정부였다. 핵심적인 주체는 국무부와 국제개발처(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AID)다. 반인신매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양당 모두의 지지 하에 부시, 오바마,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의 행정부에 걸쳐 [한결같이] 이루어졌다. 미국 외교관들과 국제개발처 관료들이 이 법제의 집행에 많은 역할을 했고, 반인신매매 복음주의 단체(NGO)들에 재정을 지원하기도 했다. 반인신매매 [법제]는 페미니즘적이고 자유주의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권력의 도구이기도 했다.
페미니즘의 이러한 조류는 미국 외교관들과 국제개발처 관료들 그 자신이 선호하는 결혼 형태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그것은 또한 중동에서 미국의 침략과 점령을 지지하는 그들의 입장에도 들어맞았다. 자유주의적 이슬람 혐오의 수사(rhetoric)는 이슬람 국가들이 여성을 억압하므로 침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외교관들식의 여성주의는 또한 국제개발처식 용어로 ‘여성의 힘기르기(empowerment)’로의 선회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것은 또한 ‘여성과 소녀들과의 협력’과 ‘젠더 주류화(mainstreaming)’로도 알려져 있다.
국제개발처의 이러한 유행은 실상 여성에게 힘을 주지(empower) 않았다. 정부를 상대하거나 낙태나 동성혼에 대한 국가적 논쟁에 참여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정부 공무원에 의한 성희롱이나 국제개발처 혹은 UN 기구 내의 성희롱에 대한 캠페인조차 없었다. 많은 경우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관념은 [단순히] 가정 폭력으로 치환되었다.
반인신매매 연합의 네 번쨰 날개는 주류 언론이다. 지난 20년간 그들은 수만 편의 기사와 뉴스 클립에서 인신매매 서사를 받아들여 왔다. 이 뉴스 보도들의 거의 모두가 반인신매매 단체의 보도 자료를 받아쓰기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결과적으로 도덕적인 외양을 유지하면서도 흑인이나 동양인 소녀들이 학대받는 장면을 보여주어 독자나 시청자를 흥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연합의 성취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러나 성노동자들과 함께 작업을 해본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인신매매가 기만적이고 해로운 신화라고 말해 왔다. [역자주: 구체적인 연구 사례들은 생략. 원문을 참조해 주세요.]
성노동자 조직과 성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단체들 또한 모두가 인신매매 서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광범위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금 공론장을 지배하는 것은 인신매매 서사 쪽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인신매매’의 말뜻에서부터 시작을 해보자. 이 말은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동시에 여러 개의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말뜻을 확정하기 매우 어렵다. 이 의미의 혼동이 바로 인신매매 서사가 기능하는 방식의 일부다. 앞서 우리가 말한 것처럼 이 단어에는 네 가지 주요한 뜻이 있다.
▸ 어떤 사람들이든, 불법으로 국경을 넘도록 조력하는 일.
▸ 여성들이 성노동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도록 조력하는 일.
▸ 국가 안에서 여성들에게 성노동을 강요하는 일.
▸ 18세 미만의 어린 여성들이 성노동을 하도록 조력하거나 강요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