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세상읽기 - 세월호 7주기/ 윤미향 마녀사냥/ 아마존 노조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4. 16. 10:38
전지윤
● 끝까지 함께 기억하고 행동해야
얼마 전 세월호약속지킴이 도봉모임에서 세월호 가족분들과 간담회가 있었다. 다가오는 세월호 7주기를 앞두고 항상 세월호를 기억하고 행동하는데 열심인 존경스러운 지역분들이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이다.
고맙고 죄송한 마음으로 참가해서 한켠에 앉아서 오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질문을 하고 답변도 듣고 하다보니 7년 전의 그날도 떠오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충분한 조사가 안 되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방해는 여전히 강력하고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예컨대 국정원은 그나마 근래에 관련 문건 60여만건을 ‘목록’만 공개하기로 했다는데, 그 공개 방식이 기가 막힌다. 사참위 조사관 2명이 국정원에 들어가서 손으로 문건 제목을 적어가는 방식이란다.
이런 식으로 도대체 어느 세월에, 그 60만건의 목록을 확인할 것이며, 그 중에서 또 의미있는 문건이 무엇인지 가려낼 것이며, 그 문건들의 제목이 아니라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전진할 것인가. 내용을 받으면 또 사찰문건처럼 검은색으로 주요부분을 지우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있겠는가.
정권이 바뀌었지만,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의 방해는 계속되고 있고, 문재인 정부도 그것을 거스를 의지가 없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언제나 진실을 두려워 한다. 최근에 천안함 사건의 재조사를 우파가 강력하게 저지하고 문정부가 또 그것에 굴복한 것도 그것을 보여 준다. 반면에 희생자들은 누구보다 진실을 원한다. 진실을 알아야 진정한 추모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7년이 지나도록 세월호에 대한 온갖 추측, 가설, 음모 등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것도, 권력기관과 수사기관이 여전히 충분한 정보와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고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과도한 음모론적 가설에 거리를 두게 되면서도, 그것을 비판하면서 일부 개혁적 지식인과 언론들마저 세월호의 진실은 이미 드러났다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든 이유다.
그것은 충분한 정보와 자료의 공개, 그것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고 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결론만을 옳다고 고집하거나, 다른 견해와 가설을 쉽게 매도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태도로 보인다. 자신의 결론이 옳고 다른 가설이 틀렸다고 확신할수록, ‘이제 충분히 조사했다’가 아니라, 더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견해가 옳았다는 게 더 분명히 드러날 것 아닌가.
어제 간담회와 끝나고 나눈 이야기들에서 확인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세월호 가족들의 실망과 분노였다. 그리고 끝까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싸우려는 의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의 주범인 국힘당과 오세훈이 돌아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사실, 오세훈이 용산참사에 보인 태도는 세월호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최근에 만난 장애인 활동가나, 이주민 활동가에게서 본 반응이기도 했다. 대부분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국힘당의 부활에 몸서리친다. 이런 분들에게 ‘하지만 차악론에 빠져서는 안 되고 제 3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스스로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가 부끄럽기도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박주민 의원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여기서도 가족들의 태도는 분명했다. ‘박주민은 세월호 가족들의 요구와 뜻으로 의원이 됐고, 민주당의 어떤 다른 의원도 박주민만큼도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맞다. 박주민의 흠결과 잘못을 누구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세월호를 이용해서 의원이 됐다’, ‘세월호를 팔아서 뱃지를 달았다’는 말은 그만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세월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간담회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광주의 진실이, 4.3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끝까지 함께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
● 방관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윤미향 마녀사냥
또 시작됐다. 수구언론과 반동적 우파는 지난해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통해서 윤미향 의원에게 아주 지독한 굴레를 뒤집어 씌웠다. 엄밀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 사태의 핵심이 무엇인지 따지기 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리고 평소의 악감정까지 실어서 같이 돌을 던지는 사람들 속에서 마녀사냥은 완성됐고, 윤미향 의원에게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혀졌다.
그 속에서 윤미향 의원의 평생의 활동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보통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사랑,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주변인들, 자신의 헌신에 안쓰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는 가족들의 응원 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녀사냥이 특히 잔인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겨냥해서 의식적으로 하나씩 파괴하는 과정에 있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마녀사냥꾼들이 특히 더 잔인한 것은 자신들이 한번 마녀로 만들어서 낙인을 찍어둔 사냥감은 마치 목줄이 채워진 노예처럼, 필요하면 수시로 다시 화형대로 끌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선동하는 행태에 있다. 어떤 주저함도 없이 이 마녀사냥꾼들의 최고봉은 조선일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많은 보도들이 사실이 아니거나 부분적 사실을 왜곡하고 끼어맞춘 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게 중요할 리가 없다.
조선일보가 지난 1년간 갖가지 꼬투리와 빌미를 만들어내서 얼마나 많이 윤미향 의원을 다시 화형대로 불러 세웠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윤미향’이라는 이름만 거론해도 일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뭔가 부정적인 감정과 혐오감을 보이도록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제 선거를 앞두고, 며칠 전 조선일보는 또 당연하다는 듯이 습관적으로 다시 윤미향 의원의 목에 자신들이 채워둔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끌어내기 시작했다.
마녀사냥꾼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들의 사냥감이 특히 어떤 부분을 찌르면 비명을 지르며 아파하는지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들은 ‘마녀’를 화형대에 세워두고는, 특히 그 곳에 집중해서 돌을 던지라고 사람들에게 선동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 투쟁하며 쌓아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당사자들과 윤미향 의원 사이의 신뢰와 사랑을 집중 겨냥해서 찢어발기는 것이다.
이렇게 저들의 필요에 따라서 툭하며 소환당해서 화형대 위에 세워지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당사자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지옥같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많은 이들의 침묵과 방관, 심지어 동조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마저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들이 친구 중에 하나를 조선일보처럼 저런 식으로 괴롭힌다면 우리는 그것을 ‘왕따’라고 하면서 잘못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만약에 직장에서 누군가가 다른 동료들에게 계속 저런 식으로 공격을 당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집단적 괴롭힘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만약 온라인에서 이런 지독한 스토킹이 벌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중단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자신의 범죄를 ‘공인에 대한 정당한 검증’, ‘시민단체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라고 포장하는 순간 모든 불편한 감정과 의문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마녀사냥꾼들은 자신들이 목줄을 채워둔 또다른 ‘마녀’들을 불러세우거나, 또 다른 먹이감을 새롭게 찾아다니며 오늘도 내일도 계속 ‘검증’하고 ‘감시’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동료 인간들을 죽이라고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폭력 행위다. 그러나 그 과정이 ‘병역 의무'로 불리자마자, 그 선량한 시민은 모든 일이 완벽하게 합법적이며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받는다. 한 시민이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재산이나 소득의 일부를 빼앗겼다면 폭력행위가 저질러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즉시 그 과정이 ’간접세 부과‘로 불리자마자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로자 룩셈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