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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침략 전쟁의 2년, 이제는 어디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3. 4.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딱 2년째가 됩니다. 전쟁 광란의 2년 동안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세계도 다 바뀐 것입니다. 물론 셋이 다 별로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뀐 것이죠. 현재 러시아는 한국의 1972-9년 유신 정권 이상의 초강경 권위주의 정권이며, 그 어떤 독립적인 정치 활동이나 "국시"를 위반하는 여론 활동을 불허하는 유사 파시즘 사회입니다.

침략국이 초강경 독재로 치닫는 사이에, 피침국도 - 불가피한 일이겠지만 - 민주 정치가 저하되고 증발되어가는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조 경제"인 만큼 해외로부터의 원조를 재분배하는 대통령실이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권한을 갖게 된 것이죠 (,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독립적인 정치적, 여론상의 활동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세계는 일단 가면 갈수록 전쟁이 "뉴노멀", "새로운 정상"이 되는 전란기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2022년의 세계 군비는 22천억 달러 정도 되었는데, 이는 2020년에 비해서도 2천억 달러 이상 늘어난 겁니다. 2022년 한 해동안 핀란드의 군비가 36%나 늘고 스웨덴의 군비가 12%나 늘어나는 등 특히 전선의 근처에서 "초고속 군사화"가 진행 중입니다.

, 미국이 "약점"을 보인 틈을 타서 근동의 친이란 세력이 같은 지역 친미 세력 (이스라엘)이나 미군 부대를 공격하는 등 전쟁이 점차 "확산" 일로로 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지역의 친이란 세력 (예멘)의 대미 공격 등으로 화물선들이 홍해, 수에츠 운하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전후 세계체제로서 상당히 새로운 상황이죠. 미국의 제해권 등의 세계 패권이 이 정도로 약화된 적은 과거에 그다지 많이 없었습니다.

러시아 침략의 애당초의 계획은 죄절되었습니다. 계획은 초고속 키이우 점령,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숨은 친러파 관료 등에 의한 친러 정권 수립이었는데, 보기 좋게 "완패"를 당한 것이죠. 한데, 미국의 애당초 계획 역시 죄절되었습니다. 계획은 초강경 대러 제재에 의한 러시아 경제 와해 유도, 러시아 지배계급 안에서의 내분 유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푸틴 정권 붕괴이었는데, 역시 거의 완벽한 "실패"를 당한 것이죠.

미국은, 처음에는 초강경 대러 제재로 러시아의 GDP2022년에 - 15%의 엄청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것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2022년 러시아 gdp 마이너스 성장은 1,2%에 그쳤으며, 2023년의 러시아 gdp3,6%의 플러스 성장을 보였습니다. 참고로, 비교적 잘 성장하는 미국 경제 역시 약 3,1% 정도 성장을 한 것이죠.

미도 러도 결국 우크라이나 전장에의 무기 공급, "군사 케인스주의적" 방식으로, 군비 지출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높인 거고, 그 피해를 거스란히 안게 되는 것은 전장이 된 우크라이나의 민중들입니다. 대러 제재의 효과가 당분간 없었던 것은, 세계적 경제 활동의 중심이 그만큼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글로벌 사우스 (Global South)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에서의 학살 등으로 이 글로벌 사우스와 글로벌 노스 (Global North), 즉 미국 중심의 구미권 사이의 심리적 간극이 더더욱더 벌어져가고 있으며, 이 상황을 러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도전자 열강" (challenger powers), 즉 중국, 터키, 이란 등이 열심히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체제의 분절화의 정도는 전체적으로 계속 높아져 갑니다.

그러면 러도 미도 우크라이나도 "승리"를 얻지 못했으며, 계속해서 나름의 좌절을 봐야 했던 것이죠. 분절화되고 긴장과 불확실성이 높아져 가는 세계 체제인 만큼 앞으로도 그 어느 쪽의 "완승"도 예상하기가 다소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미국의 대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정지된 상태지만, 예컨대 근동이나 한반도, 아니면 대만 주변에서 심각한 상황이 조성되면 아예 지속적 지원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데 무인기가 지배하는 요즘의 전장에서는 그 어떤 "진군"도 공격하는 군 쪽의 엄청난 인명 손실을 의미하기에 러시아가 아무리 지금처럼 공세를 유지해도 우크라이나 측은 당분간 몇년 간 유럽 지원만으로도 그 영토의 대부분을 아마도 보존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면 서서한 장기전이자 물자전은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요?

모종의 중간 타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어쩌면 우크라이나를 황폐화시키고 우크라이나 민중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이 침략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단 생각도 듭니다. 일단 전쟁 당사자들의 입장차는 좀처럼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제 "완전한 국토 회복"은 현 정권의 정치적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게 안되면 여태까지의 파괴와 인명 손실이 무엇때문이었느냐는 책임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손실도 - 전사자는 적어도 10여만 명, 전사자와 부상자는 약 30만 명 정도 - 역대급입니다. 단순한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의 강탈로 쉽게 얼버무리기에는 이미 이 "특수 군사 작전"은 너무 커졌습니다. 역시 적어도 "우크라이나 중립화" 정도 따오지 않으면 "책임론"이 불가피하기에, 푸틴의 독재 정권 역시 전쟁을 종식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보를 양보하여 우크라이나 중립화에 찬동하는 것은 부분적이지만 "패배 인정"입니다. 안그래도 흔들리고 있는 패권은, 그렇게 되면 더더욱더 흔들릴 겁니다. 물론 미국에서 정권 교체가 되면 공화당 정권이 민주당과의 차별성 강조 차원에서 어쩌면 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현재로서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결국 러도 우크라이나도 미도 각각 그 셈법은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입니다. 바로 휴전 없는 "속전"이죠. 적어도 당분간 말입니다.

이 비극적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일단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크라이나 피난민 지원부터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리고 "반미" 절대주의, "반미" 본질주의에 빠진 좌파 일각에서 만연해 있는 푸틴 독재와 그 정책에 대한 환상들을, 계급론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진보가 불식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열강의 이와 같은 약소국 침공과 각축전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현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본격적인 "교체"를 목표로 하는 세계 좌파 진영의 강화, 국제 협력의 강화가 중요합니다. 자본주의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한 이 전쟁 같은 대대적인 살인극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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