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국회는 ‘민의’를 수용했는가?

- 촛불은 더 나아가야 한다


미래



국회가 아니라 거리의 촛불이 탄핵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었다



단비 같은 승리다. 새누리당의 절반조차 박근혜에게 등을 돌렸다. 박근혜 탄핵안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7시간이 공식적 탄핵 사유로 포함된 가운데 300명 가운데 무려 234명의 의원의 찬성표로 국회를 통과했다. 언론은 앞다투어 촛불의 승리를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 그간에 너무나도 절실했던 희망을 다시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승리에 대한 환성들 일부에는 여기서 멈추자는 메시지가 같이 담겨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탄핵 가결로부터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움직이는 우리의 대표자이며, 국회는 민의를 수용할 능력이 있고, 한국의 정치제도는 신뢰할 만하다고 환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정치인들과 직거래하는 법을 배웠고, 마음에 드는 국회의원을 후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정치의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는 언제고 우리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등의 보수세력은 대놓고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것은 맞지 않으니 판결을 기다리고 존중하라고 훈계하고 있다. 정치의 주체를 자처하는 것을 그만두고 법과 질서에 순응하는 통치의 대상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한국의 대의민주제가 이런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 사건 초기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가가 더 큰 혼란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우리가 재야, 시민단체, 학생들이나 일부 흥분한 국민처럼 탄핵과 하야를 요구해선 안 된다. 최소한 국민은 헌정 중단을 바라지 않는다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탄핵으로 가닥이 잡힌 뒤에도 야당들은 막판까지 우왕좌왕했다. 원래 2일 상정, 4일 표결로 예정되어 있던 탄핵 일정은 국민의당이 한 발 빼면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가 9일에야 가까스로 상정되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박근혜가 임기단축안을 제시하자 탄핵 반대당론에 합의해주었다.

 

탄핵안이 통과된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잘 작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200만 명이 일상을 내려놓고 거리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그 이상 한 것이 별로 없다.

 

황교안 직무대행은 아마 새로운 정책을 꺼내들지는 못할 테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미 시작한 정책들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직무대행이 된 뒤 처음으로 내린 명령은 여차하면 시위를 강경 진압하라는 것이었다.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살해한 경찰은 촛불 앞에서는 평화적인 연하면서도 농기계를 몰고 상경하던 농민들은 폭력으로 진압하고 연행했으며 법원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3년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금융기관에서는 성과연봉제가 강행되고 있다


황교안은 잠시 주춤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도 변함없이 추진한다고 밝혔으며 사드 배치나 한일군사협정도 철회는커녕 재논의조차 거부했다. 박근혜는 직무 정지되었지만, 박근혜 정권의 풍경들은 박근혜 없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주당, 국민의당은 본질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연장인 황교안 체제를 거부하는 대신 황교안이 직무대행을 하는 것 자체는 일단 인정하면서 여야정 협의체라는 식으로 황교안과 비박계 새누리당과의 협치를 시도하고 있다. (황교안은 이것조차 별로 적극적으로 응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야당이 권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 조금만 더 기다려서 대선, 총선을 치르고 정권을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 민주당 10년을 이미 경험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IMF의 구조조정 패키지를 수용하여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한 것, 중동을 지옥으로 만든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한국 젊은이들을 보내 협력하고 김선일 씨가 보복으로 납치살해당하도록 방치한 것,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주민 시위를 진압하려고 군대를 투입한 것, 농민 생존권에 대한 대책이 없으며 지적재산권 강화나 투자자 국가소송제 등 독소조항이 포함된 한·FTA를 강행한 것 모두 민주당 정부의 소행이었다.

 

물론 야당들은 대체로 새누리당처럼 대규모의 부패와 횡령을 일삼고, 권위주의와 국가주의를 내세워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극우세력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지역 차별과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나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희생하고 평등과 존엄에 대한 소수자들의 요구를 묵살하는 데는 별 차이 없이 가혹하다.

 

그것은 정치혐오를 조장하는 주류 언론이 즐겨 짜는 프레임처럼 야당 정치인들이 모두 게으르고 부패해서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 아니다. 현실에 그런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야당 정치인들 중에는 적어도 일제나 군사정권에 부역하면서 권좌에 오른 새누리당의 수많은 범죄자들보다는 훨씬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어느 정도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보다는 지금의 사회에서 절대 다수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하는 길이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며, 이 장애물은 믿을 만한 정치인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뚫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직선제 민주주의에서 정치인들은 표심을 쫓고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문자와 이메일, 후원금 등으로 명확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 더 나아가 각 정치인들의 입장에 대한 정보를 보기 쉽게 가공해서 지역구에 퍼뜨리고 다른 유권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등 유권자로서 압력을 가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이들을 움직이는 데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번 경험을 살려 다른 사안들에서 활용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의 84%가 특정 입장을 지지하고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오는 특수한 정세가 아닌 평시에 평범한 유권자가 법조 전문가들과 정치인 인맥을 거느린 기업 로비스트를 영향력으로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만, 수십만의 유권자가 돈을 모아도 삼성이나 현대보다 후원금을 많이 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이 교육은 물론 문화적 소양이나 인맥에서까지 우위를 점하고 훨씬 더 쉽게 엘리트가 되며 특히 쉽게 정치에 입문하는 것, 그래서 정치인 집단이 주로 이런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야를 가지고 이런 사람들을 대변하게 되는 것 역시 인터넷과 후원금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


이윤이 나지 않으면 자본가들이 자본을 해외로 빼버리거나 경제를 사보타지하기 때문에 다수의 필요를 희생하면서라도 일단 기업에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해줄 필요성이 체제의 법칙을 깰 준비가 되지 않은 모든 정치인들에게 구조적으로 강제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설령 정치인들이 표심만을 보고 움직이는 경우에도 이 표심자체가 구조적으로 한쪽 방향으로 압력을 받는다. 언론, 학교, 교회는 사람의 투표 성향을 좌우하는 데에서 의식적인 몇 명의 유권자들은 상대도 안 될 만큼 강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장시간노동과 빈곤에 몰아넣고 파편화된 채 각자도생하도록 강요하고,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 생존이 위협받게 만드는 사회 현실 자체가 보수에게 표심을 몰아가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압력이다.

 

우리가 박근혜의 목을 날리기를 원할 뿐 이 질서를 바꾸기는 싫은 것이라면, 그래서 촛불의 교훈이 진정 유권자로서 충분히 힘을 발휘한다면 이 사회가 실제로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촛불이 가져다줄 세계는 보다 유능한 박근혜가 (아마 기업가·군인·정치엘리트 출신일) 보다 똑똑한 최순실의 자문을 받으며 보다 세련된 전경련을 위해 통치하는 사회 이상이 될 수 없다. 정책의 내용은 비슷할 것이고 한국은 여전히 헬조선일 것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유권자로서 우리가 이렇게 힘을 떨칠 수 있는 국면은 대의제에서는 예외에 해당한다. 정말로 사회에 우리의 뜻을 반영하려면 우리는 유권자 이상의 존재가, 자기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민중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직접 의사를 모으고 소리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회사·학교·교회 등 각자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함께 실현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함께,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2016년의 광장은 그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우리는 함께 싸워 이길 수 있음을 배웠다.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하자. 자신감과 희망을 갖자. 하지만 이 싸움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다시금 믿고 지켜보는마음으로 돌아가 힘겨운 일상을 받아들이지 말자. 우리는 지금 모인 힘으로 더 밀고 가야 한다.  


(기사 등록 201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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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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