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구하려면 이윤 체제를 끝내야 한다 – 2
생태사회주의자인 이안 앵거스가 2023년에 발간한 책인 <인류세에 직면하다: 화석 자본주의와 지구 시스템의 위기>에 대해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안 앵거스(Ian Angus)는 온라인 저널인 <기후와 자본주의:Climate & Capitalism>의 편집자로서, <녹색의 더 붉은 그늘: A Redder Shade of Green>을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이다. 그는 '지구적 생태사회주의자 네크워트'(Global Ecosocialist Network)의 창립 멤버이다. 한국에도 그의 여러 글과 책들은 번역 소개돼 있다. 우리도 그의 글과 인터뷰를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기존에 소개된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은 생략하고 번역했다. 두 번에 나누어서 싣고, 이 글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다.(번역: 두 견)
출처: https://climateandcapitalism.com/2025/02/28/to-save-the-environment-we-must-end-the-profit-system/
문: 당시 마르크스는 인간 세계와 자연 세계를 점점 더 분리하고 인간의 자연 지배를 강조하는 지적인 환경에서 글을 썼다. 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덜어내면 풍요롭다: 탈성장이 세상을 구할 방법>에서 이를 ‘이원론(dualism)’이라고 불렀다. 마르크스와 당시의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그 생각에 동의했나?
‘이원론’이라는 단어는 쓰기에 좀 까다롭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초기 저작에서 인간이 자연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인간이 자신을 바꾼다는 뜻이라고 썼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새로운 존재라고도 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가 하듯이 환경을 대규모로 바꿀 수 있는 종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바꾸고 있고, 그것은 다시 우리를 바꾸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문제는 ‘이원론’이나 ‘일원론’이 아니라 ‘변증법’이다. 즉, 부분과 전체의 관계다. 우리는 전체의 일부지만, 전체를 바꾸는 독특한 일부이다.
문: 당신은 “생태적 사회” 또는 “생태적 문명”을 제안한다. 왜 생태적 사회는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먼저 자본주의부터 시작해보자. 자본주의의 주요 동력은 이윤을 창출하고 소수의 부를 늘리는 거다. 그게 전부다. 여기서 많은 게 따라온다. 그중 하나는 모든 걸 단기적으로 보는 사회다. 자본가 입장에서 오늘 돈을 벌 수 있다면 내일 버는 것보다 낫다. 나는 늘 다른 자본가들과 경쟁하며 부나 수입을 늘리거나, 심지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더 많은 자본과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이 사회는 단기적 부의 이익 외에는 계획할 줄 모른다.
경제의 동력으로서 이윤 동기를 없애야만 환경의 대규모 파괴를 멈출 수 있다. 궁극적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은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 세계를 돈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이윤 동기를 경제의 중심 동력에서 제거하려 한다. 사회주의에는 분명히 다른 많은 요소가 포함되지만, 그 핵심은 이거다: 폴 버켓(Paul Burkett)의 용어를 빌리자면, 경제적·사회적 결정의 동력을 “지속 가능한 인간 발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목표는 인간이 오래 지속 가능한 더 나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지구를 소유한 게 아니라 일시적인 관리자일 뿐이며, 미래 세대를 위해 좋은 상태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세상을 보면 미래 세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사회적·경제적 체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오늘이다. 정치인이 경제 성장에 대해 말하지 않는 연설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더 많은 걸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이나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의료 서비스가 아니다. 더 많은 문학이나 더 나은 삶의 방식도 아니다. 그건 더 많은 부, 구체적으로 더 많은 자본이다.
문: 생태적 사회는 사회주의적이어야 하고, 이윤과 성장을 방정식에서 빼야 한다고 했는데, “탈성장(degrowth)”을 주장하는 운동과도 동일시되는가?
중요한 건 1990년대에 시작된 생태사회주의 운동이 주로 유럽에서 일어난 탈성장 운동과 병행해서 발전했다는 점이다. 초기 탈성장 연구는 모든 성장이 그냥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가정했다. 모두에게 “아니, 이렇게 해”라고 말하기만 하면 다 될 거라고 봤다. 그들은 사회적·경제적 분석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일부는 문제를 잘 묘사했지만 설명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변했다.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의 글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핵심을 잘 짚고 있다고 본다. 존 벨러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는 최근 탈성장을 계획할 필요성에 대한 중요한 글을 썼다. 그는 탈성장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취하되, 그걸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맥락에 넣었다.
그냥 바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윤 동기를 깨고 지속 가능한 인간 발전을 위한 계획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탈성장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광고나 군사 지출, 이윤을 낳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걸 깨닫든 못 깨닫든 상관없다.
문: 당신의 책에서 이걸 자세히 다루지 않았는가?
맞다, 나는 쉽게 멈출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텔레비전 광고가 없어진다고 누구도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빼고 말이다. 물건을 팔고 새로운 욕망을 만드는 데 전적으로 바쳐진 경제의 그 부분은 엄청나게 크다. 당연히 군사 산업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경제의 비중도 엄청 크다. 그걸 50%, 90%, 심지어 100% 줄인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을 것이다.
문: 언어학자이자 좌파 지식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탈성장”이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글로벌 남반구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단어가 두려움을 준다고 본다. 이건 “탈 자본주의”를 직접 말하지 않으려는 방식이 아닌가?
나도 그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세”처럼, 이게 우리가 가진 단어다. 문제는 단순한 탈성장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전 세계 인구의 90%에게 자원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다. 환경에 가능한 한 적은 혼란을 주면서 자원의 글로벌 사용을 계획적으로 균등화해야 한다.
문: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역사학자 아담 투즈(Adam Tooze)는 2023년 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인류세에 관한 강연을 했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 패키지”에 지출을 제안했음에도, 미국의 경제 성장은 여전히 군사 지출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 군대의 화석 연료 배출은 글로벌 기후 협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신 책에서도 다루는 문제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자본주의 경제가 경제 침체 때마다 정부가 돈을 많이 쓰기만 하면 계속 굴러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얻은 건 “군사적 케인스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군사 지출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들은 예산에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쓴다. 왜냐하면 군대나 무기에 명시된 예산뿐만 아니라 그 활동을 지원하는 모든 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군사적 지출은 자본주의에서 소위 성장이라고 불리는 것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왔다.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는 이점을 제쳐두더라도, 군사적 지출을 재분배하면 글로벌 남반구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전 세계 빈곤을 극복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데 엄청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더 이상 자연에서 이걸 빼내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그 돈을 숲을 복원하거나 바다를 정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높은 군사 예산을 가진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은 전 세계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군사비를 더 쓴다. 탈성장을 어디서 시작할지 정하고 싶다면,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문: 포스트자본주의 경제를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돌봄 경제(care economy)”를 강조한다. 사람, 공동체, 자연, 노인, 어린이, 병자를 돌보는 서비스에 투자를 늘리는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경제 분석에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개념은 중요하다고 본다. 조 노세라(Joe Nocera)와 베서니 맥린(Bethany McLean)의 <대실패: 팬데믹이 드러낸 미국이 보호하는 자와 버리는 자>는 이 사회에서 이익이 항상 극소수에게 돌아간다는 걸 훌륭하게 보여준다.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분명 그렇다. 여기 온타리오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부유한 주 중 하나인데, COVID-19가 시작됐을 때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고맙다”는 표지판이 곳곳에 있었다.
정치인들은 최전선 의료진이 얼마나 필수적이고 중요한지에 대해 연설했다. 하지만 동시에 온타리오 정부는 간호사들이 더 높은 임금을 협상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니 사실 정치인들은 진짜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회주의 사회의 큰 동력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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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산업화 이전 대비 세기 말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제한하려면 화석 연료 사용을 급격히 줄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국제적 논의가 지금 어디쯤 있다고 평가하나?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를 말했다. 그게 그의 삶의 태도였고, 나도 그 태도를 가지려 한다. 현재 상황과 우리 지배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전혀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면, 내 아이들과 손주들이 물려받을 세상이 걱정된다. 지구 온난화를 1.5도나 2도 아래로 유지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세상이 빠르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인가? 생태사회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가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몇 년 전, 내가 사는 마을을 통해 파이프라인이 지나갈 계획이 있었다. 엄청 더러운 타르 샌드 오일을 실어 나를 것이었다. 이곳은 매우 보수적인 마을인데도, 우리는 모임과 집회를 열었고, 결국 그 프로젝트를 막았다. 작은 마을의 작은 승리였지만,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이런 승리를 쌓아가야 한다.
(기사 등록 20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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