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지만 보통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에 관심이 없는 정부의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 어제 사고 발생 13일만에 입을 연 박근혜는 확진 환자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관계당국의 늦장 대응과 총체적 혼란 속에 이번에도 세월호 때와 비슷한 대응이 반복됐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주장에 “세대간 도적질”이라며 치고나오던 그런 신속함을 이번에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국가가 책임있게 나서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이에, 최초 환자의 부인, 옆병상 환자, 그 가족, 다른 병실 환자, 간병인, 문병객, 간호사 등으로 줄줄이 2차 감염이 시작됐다. 이처럼 확진 환자가 대거 발생한 민간 병원은 얼마 후 자진폐쇄를 했다.
그런데 그 조치가 오히려 감염 전파를 촉진했다. 그 병원에서 나온 환자들이 다른 병원들을 전전하면서 또 다른 감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세월호 때 해경과 해수부만큼이나 무능하고 대책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이 나라는 전세계에서 중동 지역을 빼고는 최대규모의 메르스 확산국이 됐다. 전염병 확산은 보통 상하수도 시설과 공공방역 체계가 미흡한 가난한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말이다.
확산을 방지할 ‘골든타임’을 속절없이 놓친 정부가, ‘괴담을 유포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윽박지르기나 하고 있다. 탄저균을 택배배달하고 계속 비밀실험해 왔다는 미군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더니 말이다. 이러니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 수밖에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한사코 숨겨 온 정부가 온갖 음모론을 부추긴 주범이듯이 말이다.
메르스 사태는 한국 보건의료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드러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 시설과 공공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알려지듯이 전염병 확산을 차단하려면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상이 필수적이다.
병실 압력을 낮게 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게 ‘음압병실’이다. 반면 이번에 최초환자가 있었던 병실은 배기구도 없고 격리가 안 되는 다인실로 바이러스를 배양·전파하는 구실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격리시설과 치료장비를 갖추지 않은 일반 병·의원들은 메르스를 치료·차단하는 게 아니라 전파시키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압병실을 갖춘 곳이 서울에도 3군데에 불과하고 전국적으로 105개 병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격리관찰 대상자는 1천여 명으로 늘어나고 있는 데 말이다. 입원 환자의 돌봄 부담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구조도 문제다. 이것이 배우자와 가족들로 2차 감염을 부추긴 셈이다.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환자 1명을 여러 명의 간호인력이 교대로 돌보는 게 정상일텐데, 지금은 간호인력 1명이 여러 명의 환자를 돌보는 현실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방호복과 장갑 등도 부족해서 맨손으로 환자의 분비물을 치웠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격리관찰 대상자에게 유급휴가 등 분명한 생계대책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먹고살기 위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일하러 나가거나 출장까지 가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이런 대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공공운수노조는 “평택에서는 시내버스 협진여객 회사 간부가 메르스로 이미 사망”했는데 “이 간부와 접촉한 버스 기사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조치”도 없다고 규탄한다.
감염자가 입출국한 인천국제공항에서도 “승객을 직접 대면 서비스하는 공항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보호장구 지급 등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민간 병원과 기업이 입을 매출 손실만 걱정해서인지 병원 이름도 공개하지 않고 쉬쉬하기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낙타고기와 낙타유를 먹지말라’는 황당한 대책이나 제시했다. 물론 가장 황당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운운하며 영리병원, 의료관광 등 의료상업화와 민영화를 추진해 온 것에 있다는 게 이번 사태로 더 분명해졌다.
정말 필요한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고, 공공병원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다. ‘안전한 나라, 올바른 나라,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나라’를 위해 함께 싸우자고 했던 세월호 가족들의 호소는 여전히 너무나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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