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이후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이 더욱 확대되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시리아 내전의 난맥상과 민중의 고통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자인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과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이 중동 정치에서 변화하고 있는 국제적 동맹과, 이것이 유럽에서 부상하는 이슬람 혐오증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파리 테러 이후 더욱 중요해진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사들에게 도움이 될 이 글은 원래 그들의 웹사이트(https://sexismclassviolence.wordpress.com/)에 있는 ‘여성주의와 이슬람 공포증’ 연재의 일부로 발표됐다. 번역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rs21.org.uk/2015/03/27/the-new-grand-alliance-in-the-middle-east/
시리아 폭격의 폐허 속에서 어린이의 손을 꺼내고 있다
이제 유럽과 북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인종주의는 한 가지 형태뿐이다: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 이는 최근의 일이다. 1978년까지 유럽과 북미 대부분의 지역에서 무슬림들은 그들이 아시아인이거나, 아랍인이거나, 유색인이기 때문에 차별받았다. 하지만 미국, 영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이 종교 때문에 따돌림 당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이란 혁명에 의해 미국이 모욕감을 느낀 이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 혁명은 중동에서의 미국의 지배에 도전한 여러 이슬람 운동에 자신감을 주었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서구에서는 한 세대 동안 언론과 정부에 의해 이슬람에 대한 악마화가 조금씩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그런 다음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이 있었다.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에게 이 전쟁들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 전쟁들이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다. 심지어 미국 군인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전쟁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위에서부터 이슬람 공포증이 조장되었다.
이제 미국과 유럽의 열강들은 또 이라크를 폭격하려고 돌아왔다. 지금은 유럽과 미국의 대중, 심지어 상당히 좌파적인 대중에게까지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페미니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동적인 왜곡을 동반한다.
그러나 많은 유럽인들은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고 느낀다. 이는 그곳의 정치가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는 미국, 이란, 이스라엘, 러시아, 중국,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레바논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 사이의 새로운 거대 동맹이 만들어졌다. 이 새로운 거대 동맹은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와 이라크의 다양한 종류의 이슬람 운동을 탄압하거나 이런 운동들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매우 최근까지도 이 나라들 중 많은 수는 수년 동안 적대 관계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이라고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도 적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러시아와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기타 등등도 그랬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였고 지금은 지금이다.
예전의 확신과 충성심은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다. 우리 중 ‘아랍의 봄’과 함께 새로운 여명을 바랐던 이들에게도 이는 가슴 아픈 일이다. 배반과 잔인함이 팽배하다. 이런 새로운 동맹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랍의 봄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아랍의 봄’ 이전
2011년 이전, 중동은 오래 유지되어 온 독재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다. 핵심 고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국가들이 있었다.
모로코 (1965년부터 유지된 독재정권)
튀니지 (1987년부터)
알제리 (1965년부터)
리비아 (1969년부터)
이집트 (1952년부터)
수단 (1989년부터)
예멘 (1994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1932년부터)
페르시아 만 인근 국가들 (1971년부터)
쿠웨이트 (1961년부터)
시리아 (1971년부터)
요르단 (1946년부터)
이란 (1953년부터)
이 모든 독재 이전에는 또 다른 독재인 식민주의가 있었다. 민주적 선거가 있기는 있었던 레바논과 터키만 예외였다.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에게는 선거가 가능했지만 점령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는 불가능했고, 6백만 유대인이 6백만 아랍인에 대한 독재정치를 펼쳤다.
잔인함의 정도에는 스펙트럼이 있었다. 알제리와 시리아가 시민들에게 가장 끔찍한 곳이었던 반면 쿠웨이트와 이란의 시민들은 어느 정도의 실제적인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독재국가들은 모두 몇 가지 일들을 했다.
그들은 공포와 고문으로 커다란 경제적 불평등을 유지했다. 그 지역의 석유를 통해 얻은 부를 극소수를 위해 떼어 놓았다. 유가를 낮게 유지하여 국민들은 더 가난하게, 북미와 유럽과 일본은 더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1년까지, 이란을 제외한 이 모든 독재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하는 국가들이었다.
이 정권들은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기 위해 그 정도로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 대부분이, 특히 가장 많이 고통 받은 노동자, 농민, 소상공인, 이민자 등 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을 미워했다.
이 국가들은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절망스러울 정도로 불평등했다. 그러고 나서는 2008년에 신자유주의에 더하여 긴축정책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게 되었다.
2010년 말에 튀니지에서의 시위가 독재정권을 끌어내렸을 때 아랍의 봄이 시작되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2011년 1월, 카이로의 중심에 있는 타흐리르 광장에서 집회가 시작되었고 무바라크 독재는 18일 후에 무너졌다. 도시의 광장에 중심을 둔 시위와 봉기가 리비아, 예멘, 바레인,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일부까지 확산되었다.
이러한 아랍 봉기는 중동 지역 전체에 걸쳐서 독재정치와 억압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이런 본보기는 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도시 광장에서의 집단 점거가 부르키나파소, 터키,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이완과 스페인 정권에 도전했다.
많은 이들이 보기에 그리스에서의 파업, 우간다에서의 도보 출근(Walk to Work: 기름값 인상에 걸어서 출근하는 것으로 항의한) 시위, 그리고 퀘벡에서의 장기간 동안의 학생 휴업도 같은 저항운동의 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월가 점거 운동’(Occupy Wall Street)를 통해 미국에서도 그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랍의 봄에 대한 정권의 반격
해당 지역에 걸친, 그리고 바깥의 정권들은 아랍의 봄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고,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반격했다. 러시아와 중국 정권은 무슬림들의 운동과 광장에서의 봉기, 둘 다를 두려워하고 싫어할 이유들이 있었다.
러시아는 러시아 남쪽 지역에서 무슬림들에 대해 여러 번의 전쟁을 치러 왔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 저항에 맞선 장기간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모스크바는 중앙아시아의 무슬림 공화국에서의 소요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모스크바와 키예프의 광장에서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2011~12년에 러시아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던 반정부 시위를 가리킨다.]
중국은 중국 서쪽 지역에서 무슬림들의 심각한 소요를 지속적으로 겪어 왔다. 그리고 대중 광장에 대한 모든 점거의 모태는 1989년 천안문 시위에 있었다. 천안문 시위는 중국 지배계급에게 악몽으로 남아 있다.
이란 정부는 최근에, 여러 면에서 아랍의 봄과 유사한 아래로부터의 봉기인 2009~2010년의 ‘녹색 혁명’을 진압한 바 있다. 시리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독재정권들이 아랍의 봄에 적대적이라는 것에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은 보다 복잡하다. 아랍의 봄은 미국이 지원하던 독재정권과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위협했고, 세계 전체에 걸쳐 봉기를 고무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지배계급은 아랍의 봄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워싱턴은 복잡한 전략을 구사했다. 그들은 봉기를 막고 싶어 했지만, 동시에 봉기가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봉기가 승리할 경우, 워싱턴은 새로 들어선 정부와 친하게 지내고 옛 동맹을 재건하고자 했다.
핵심적으로, 미국은 중동 국가들을 정말 더 이상은 침략할 수 없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경험 이후 미국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특히 사병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새로 전쟁을 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워싱턴은 물결을 잘 타보려고 했다. 리비아에서 그들은 봉기를 지원하며 독재자 카다피 세력을 폭격했다. 예멘에서 미 대사관은 독재자만 떠나고 구 정권의 나머지는 살아남는 거래를 중개했다. 걸프에서, 워싱턴은 바레인에서의 점거와 행진을 진압하기 위해 침공한 사우디 군대를 지원했다.
반면 워싱턴은 이집트 군부에게는 민주주의를 허용하라고 말했다. 선거를 하게 되자마자, 이집트인들은 이슬람 정당인 무슬림 형제단 정부에 찬성하는 투표를 했다. 형제단이 더 평등한 사회를 약속했고, 한 세대 동안 지하에서 독재에 맞서 온 주요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워싱턴은 형제단과 협력해 보려고 했다.
봉기가 가장 격렬했던 곳은 정권이 가장 억압적이었던 시리아였다. 시리아인들이 시위를 하자, 군인들은 군중에 대고 사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군인들이 거부하면 그 상관들이 그들을 쏘았다. 그래서 군인들이 대거 탈영하기 시작했다. 내전이 초래된 것이다.
외부의 열강들은 시리아 사태에서 각기 다른 편을 들었다. 이란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돈, 무기와 폭탄으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그들은 독재에 맞선 봉기가 성공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란과 아사드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아파 무장조직을 오랫동안 지원해 왔다. 이제 이란과 아사드는 채무를 회수하고자 했다. 헤즈볼라 무장부대가 아사드 편에서 싸우기 위해 도착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걸프에서의 이란의 지배와,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소수 시아파의 봉기를 독려하는 것을 두려워해 왔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여러 소규모 걸프 국가들은 아사드의 시리아 정부에 맞선 다양한 우익 수니파 이슬람 반란 집단들을 지원했다.
미국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워싱턴은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긴 쪽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또한 저항세력 속에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미국은 무기와 폭격을 돕겠다고 계속 말은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교착상태와 대학살이었으며, 20만 명이 사망했고, 20만 명 이상이 아사드의 감옥에 갇혔으며, 최소한 8백만 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는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중국, 그리고 이란 등 모든 외부 세력들이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 시리아가, 감히 혁명을 하려고 하면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일들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유용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러고 나서 2013년 6월 30일, 이집트에서 시시 장군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고 모든 것이 변화했다. 시시는 고전적인 군사독재를 펼치고 있다. 군대와 경찰은 아랍의 봄의 심장이었던 타흐리르 광장의 운동을 분쇄했다. 3000명이 살해당한 결과 거리에는 시위자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최소한 3만 명이 투옥되었고, 많은 이들이 고문당했다.
이는 1973년 칠레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럽 전체가 침묵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이스라엘과 시리아 정부는 시시의 강력한 동맹군이다. 그러나 이 탄압을 비판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다른 세력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란, 러시아, 중국의 정권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유럽은 미국의 지도에 따라 시시의 탄압에 대해 침묵해 왔다.
이 쿠데타 이후,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아랍의 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두 마리의 말을 탈 필요가 없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3주만에 시리아 정권은 반란군을 상대로 독가스를 사용했다. 오바마는 아사드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시리아를 폭격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거꾸로 뒤로 물러섰다.
그는 이미 이란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제 이란과 미국의 대통령들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이란 정권은 핵 협상이 곧 제재를 종료시킬 것이고 경제 호황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를 통제하는 것에 대한 주요한 도전은 ISIS로부터 온다. 아사드의 시리아 정부는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미국, 이란, 프랑스와 영국은 함께 이슬람 국가의 영토를 폭격하고 있다. 미국 특공대, 이란 군대, 이라크 정부 무장조직과 쿠르드의 페슈메르가(민병대)들은 지상에서 함께 ISIS와 싸우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ISIS에 맞서 이란, 미국과 시리아를 지원한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금지 당했지만, 팔레스타인에서는 고삐가 풀려 있다.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아랍 세계 전체에 걸쳐 오랫동안 저항을 계속해 왔다.
서안지구의 파타 세속 독재정권[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은 이제 이스라엘의 의사를 대리하고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선출된 이슬람 정부인 하마스는 그렇지 않다. 2014년 여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몇 주 동안 폭격하여 2000명을 죽였다.
워싱턴은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의 이런 학살을 지지했다. 이스라엘과 함께, 이집트의 시시는 가자지구와 접한 국경과 터널을 폐쇄했다. 이때는 이란도 반대하지 않았다. 러시아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아,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집트를 놓고, 가자지구를 놓고, 그리고 시리아와 이라크를 놓고 세 개의 동맹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모든 동맹들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각각의 동맹도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 거대 동맹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심각한 전지구적 분열이 존재하며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도 그런 분열이 생겨나고 있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 이것은 기이한 일이다. 왜 그럴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아랍의 봄의 기억과 희망을 묻어 버리기 위해 뭉쳤다는 것이다. 아랍의 봄은 거대하고 고무적인 대중운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억과 저항의 어떤 가능성이라도 깨뜨리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잔학 행위, 살육과 억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동맹에 가담한 정부들은 아랍의 봄을 실제로 정말 깊이 묻어 버리고 싶을 만한 강력한 이유들을 각각 가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터키 정부이다. 에르도안[Erdoğan]의 정의개발당[AKP] 정부는 중도적인 신자유주의 성향의 이슬람주의 정부다. AKP가 수권하기 전에, 터키는 사납고 세속적인 군부에 의해 지배받았고 연이어 쿠데타가 있었다. 터키에서 쿠데타를 또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르도안과 그의 장관들은 반이슬람 독재정부가 해당 지역 전체에서 기반을 얻는 것을 좋게 보지 않고 있다.)
새로운 거대 동맹은 아랍의 봄의 심장이었던 세 곳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집트가 가장 중요한 운동이었다. 시리아는 가장 격렬하고 피로 물든 봉기였다. 가자와 팔레스타인은 아랍 세계에서 오랫동안 저항을 상징해 왔다. 이 세 곳에서는 대규모의 이슬람 대중운동에 대한 공격 역시 이루어졌다. 이집트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마스였다.
시리아는 달랐다. 2011년에 시작된 봉기는 저항 속에서 다양한 이슬람 집단과 세속 집단을 하나로 단결시켰고, 지역적 동맹들을 섞어 놓았다. 그런데 2014년이 되자 우익 이슬람 집단인 IS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정부에 맞선 가장 큰 규모의 군대가 되었다.
이는 세속 좌파가 중요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분명, 한 세대 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이 미국의 권력과 독재정권에 맞선 대중운동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현실은 비극적이다. 특히 아랍의 봄에서 너무나 큰 용기를 얻었던 우리 좌파들에게 더욱 그렇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이 새로운 거대 연합의 현실조차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것은 이 현실이 전부이고,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와 이란 정부가 모두 이슬람주의자들이 아랍의 봄에서 가장 강력한 부분이었다고 믿는다는 것은 극도로 명확하다.
그래서 서구의 정권들은 그들의 탄압과 폭격을, 한 쪽에는 서구 계몽주의, 여성의 권리와 세속주의가 있고 다른 쪽에는 이슬람 반동이 있는 전쟁으로 프레임화한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다. TV와 신문은 매일매일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다. 다른 한편,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군대는 중동에서 아이들, 여성들과 남성들을 매일매일 폭격한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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