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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추태의 수출: 한국 남성들의 원정 성매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2. 9.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제가 한국 사회-정치사 수업을 할 때에 보통 1970년대의 일본인 속칭 기생 관광기생 관광반대 운동 이야기를 꼭 빼먹지 않고 하곤 합니다.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기생 관광이라는 현상 속에서는 그 당시 한국 사회와 정치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개발의 모델로 생각하는, 옛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독재자가 되어서 운영하는 국가는 하나의 커다란 포주가 되어서 여성들을 외화벌이의 도구로 만들어 이용했습니다.

 

일면으로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는 여러분들은 진정한 애국자라고 국가주의적인 언어로 상황을 호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는 그들의 인권은 포주 국가의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개발 독재의 민낯 그대로죠. 동시에 그 당시에 그 반대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나중에 위안부성노예 인권 운동을 전개하는 등 한국 여성 운동의 중요한 한 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 일본인들의 기생 관광이 절로 줄어든 것은 반대 운동의 효과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와 업소 주인들은 동남아시아와의 가격 경쟁에서 진 셈이죠. 동남아시아 같으면 지금도 섹스 관광의 끝없는 행렬들을 목격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일본인만이 참여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인제 대한민국 중산층과 그 이상의 남성들도, 독버섯 같은 이 세계적 시장의 큰 손 고객이 된 셈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역전도 드물죠. 1970년대말까지는 대한민국은 (주로 일본으로부터의) 섹스 관광객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었지만, 1990년대초부터 지금까지는 사방에 어딜 가도 대한민국 원정 성매매 남성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국에서는 아예 한국어가 통하는 한국인 전용업소들이 등장할 정도죠.

 

동남아시아와 필리핀의 피해는 제일 크지만, 제가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도 이 현상과 맞닥뜨린 적은 있었습니다. 제가 관광 가이드로 알바하면서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었는데, “사장님급 관광객들이 백마 타게 해달라고 제게 계속 성매매 알선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제게 그런 요구를 해봐야 하등의 소용은 없었습니다. 성매매는 그 당시 쏘련 몰락 직후의 러시아에서는 번성했지만 원칙상 여전히 불법이었고 저 같은 책벌레는 불법행위를 하고 싶어도 할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성화 같은 요구에 시달려도 해줄 줄도 모르고 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제게는 그저 알선 요구로 끝나곤 했지만, 여성, 특히 고려인 여성 가이드들은 보통 이 직종에서 단명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의 야담패설과 노골적인 성추행을 참지 못해 떠나는 것은 예사이었죠. 그 당시엔 한국어 사전에는 아직 성추행이라는 단어도 없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단어는 1990년대말에 추가됐고, 그 전에는 성추행은 그저 군사화된 남성성이 지배하는 마초사회의 일상에 속했습니다....

 

제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오슬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더 이상 관광 안내라는 직종과 인연을 맺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가끔 들르곤 했는데, 거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1990년대와 같은 현실의 제도화이었습니다. “사장님들은 더 이상 옛날의 저와 같은 가이드들을 볶어먹을 필요도 없어졌죠. 한인 전용 여행사 - 한인 전용 호텔 - 한인 전용 노래방과 같은 성매매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술자리 이후로는 손님들은 바로바로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업소“2갈 수 있었습니다.

 

<오를료녹>, <스푸트닉>, <살류트> 등 세 군데의 호텔 내 1층을 한인 업자들이 임대해 사용했는데, 그들이나 그들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그 호텔 내 노래방 등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여자들이 방 안으로 들어 와 앞에 줄 지어 서 있으면 한국으로부터 온 부유한 손님들이 하나하나 여자들을 골라 옆에 앉히고 술 시중을 들게 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건 일반적 행태이었답니다.

 

성매매는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법률상 불법이었는데, 대개는 실질적인 성매매 장소로 이용되는 노래방의 바지 사장들은 러시아 조폭들이었고, 피해 여성들은 점원이나 청소부 등으로 허위 직업 등록돼 있었습니다. 거의 전부 구쏘련 몰락 이후에 외국이 된 중앙아시아 출신들이었고, 상당수는 고려인 여성이었습니다. 가장 믿기 어려웠던 것은, 이 성매매 카르텔의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바로 한인 교회 신도이면서 교포 사회의 유지급 인물이었던 점, 그리고 이 현실에 대한 주러 한국 대사관의 조직적 은폐라는 점이었습니다.

 

일각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러시아 여성 인권을 위한 모임을 꾸려 이 현실을 바꾸어보려 했을 때에 바로 대사관이 나서서 그들을 억눌렀죠. “인권 변호사출신의 대통령 시절이고 국내에서 성매매 퇴치 운동이 막 벌어졌던 시절이라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이게 얼마나 가관으로 느껴졌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한국 남성이 혼자 내지 남성만의 단체로 여행 오면 태국이나 러시아에서 섹스 관광객으로 충분히 오해 받을 수 있는, 오늘날과 같은 현실에는 물론 역사적 배경이 작용됩니다.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상업적 성 착취의 제도화는 근대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일제는 공창제를 도입했는가 하면, 역대의 한국 정권들은 표면상 공창을 불인했지만 사실상 미군이나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조직적인 성매매 알선을 국가 레벨에서 해온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경찰과 조폭들 사이의 동업속에서 인신매매/감금형 성매매가 번창했으며, 그 속에서는 주류 남성의 성 의식이 완전하게 왜곡되어 여성에 대한, 경제력에 의한 성 착취가 당연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근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부산물인 이런 성 의식은, 한국 자본의 국제적 부상과 함께 역시 국제화되어 인제 해외 여러 나라에서 한국인 성구매 남성이미지의 고착화로 이어진 것이죠. 아마도 국내에서 남녀의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여성 신체 이미지의 상업적 이용 등에 제동이 걸리기 전에는 이와 같은 폐단들을 제거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듯합니다....  



(기사 등록 20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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