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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능력"이라는 이름의 세습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9. 27.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조국 사태", 후보자의 딸에게 입시 부정이 있었느냐 내지 "능력"대로 '명문대' 갔냐 라는 지점 위주로 흘러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계급 재생산'이라는 차원에서는 '부정'의 문제는 다소 2차적입니다. 굳이 '부정'이 없어도,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대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계급/계층의 출신은 그 부모의 광의의 계급적 위치를 충분히, 얼마든지 세습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계급의 재생산은, 아무리 천부적으로 '재능'이 있어도 그 사회화 과정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구조적으로 키우지 못한 흙수저 출신에게는 신분상승의 길을 차단시킵니다. 이미 성장이 끝난 시점이고 체제가 완숙 단계에 들어간 것인데, 중상층과 상류층이 대체로 재생산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는 "개천"에서 어디로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당연 없지요. 그러니 이미 인권침해적인 "신상털이", 일종의 "몰이"로 전락된 이 "사태"를 넘어서, "능력"이라는 범주를 한 번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도록 하지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내지 신분세습에 제일 필요한 능력은? 한국에서는 아마도 '영어'겠지만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대체로는 일차적으로 독서력, 문자 이해력 같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계급사회가 존재한지 약 5천년이 지났는데, 바로 계급사회와 함께 태어난 것은 슈메르의 설형문자, 애급의 상형문자, 그리고 약간 나중에 상나라의 갑골문자죠. 계급사회와 함께 태어나고 계급질서의 유지와 재생산 도구 역할을 그때부터 해온 것이죠... 좌우간, 예컨대 제게 "읽기" 능력이 없었다면 제가 연구자가 되어서 노르웨이까지 왔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활자중독에 가까운 "읽기"에 대한 집착은 과연 저의 천부적 재능인가요? 전혀요.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거의 모든 일가 친척들은 (비록 조부모는 노동자 출신이라 해도 현직은) 지식분자인지라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쌓여 책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당연시해온 겁니다. 아무런 천부적 재능은 없어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독서력을 안/못 키우면 이상한 것이죠. 만의 하나에 공장 노동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쏘련의 공립 도서관 제도는 아주 좋았으니까 이런 경우에도 어쩌면 독서인으로 자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좌우간 확률은 훨씬 더 낮았을 것입니다.

 

독서력 다음으로 중요한 능력은? 맞습니다. 논리정연하게, 두서있게, 난삽한 고등 어휘를 써가면서 말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아이는, 그 어떤 면접시험에서도 다 유리하겠지요. 그리고 모어로 "표리부동"이니 "소탐대실"이니 식자들이 쓰는 표현들을 어릴 때부터 잘 익힌 아이라면, 커서 영어의 고등어휘 습득도 훨씬 쉽게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별명은 "교수"이었습니다. 전문대 교원인 제 어머니가 늘 써온 강의투의 언어를, 제가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베껴서 그대로 습득한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다음 그 무슨 면접 통과도 식은 죽 먹기죠. 저도 특목고 (세계문학)에 다녔는데, 그 입학 과정에서 '부정'을 쓸 입장에도 서 있지 않았지만,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특목고의 면접관은, 제가 쓰는 강의투의 언어를 듣기만 하면 광의의 동료/동류의 자녀라는 제 정체를 바로 알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공장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과연 이런 언어를 어린 시절부터 익혔을까요? 그러니 '능력'이라는 게 넓은 의미에서 '세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문화자본의 근저에는 독서력과 고등어휘, 고등언어 구사 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1위 문화자본"의 종류는 물론 '영어'입니다. 구쏘련도 사실, 개혁, 개방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에는 영어는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지식분자의 외국어는 불, 독어이었지만요. 무엇이든 "회화"로 통하는 요즘과 좀 다른 문화고 다른 시대인지라 저는 영어를 디켄스나 골즈워디, 그램 그린 등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이건 저로서 아주 쉬웠는데, 그 이유 역시 ""에 있었습니다.

 

집에는 디켄스나 골즈워디의 러역 전집들이 다 소장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어 익히기 위해서 나중에 원본으로 읽어야 할 책들의 역본들을, 제가 그냥 어린 시절에, 편하게 소파에 누워서 다 볼 수 있었던 것이죠. 노동자 출신이지만 결국 하급 간부가 된 외조부는 영국 고전 문학의 광팬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공장 노동자의 집에서 태어났다면? 아무리 평등 지향적 쏘련이라 해도 희귀본인 골즈워디의 전집을 소장하는 노동자들의 집은...좀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이 점에서도 "능력"은 바로... 맞습니다. "세습"의 다른 표현입니다.

 

저는 "사다리"를 밟고 있었을 때에는 그다지 '부정'을 한 건 없었을 것입니다.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급 지식분자/간부 가정인지라 뭐 '부정'까지 할 입장이 되지 않았지요. 고급 당 간부이었다면 달랐겠지만요. 그런데 아무리 "능력"으로 특목고나 레닌그라드국립대의 동양학부, 그 다음에 모스크바국립대 대학원으로 갔다 해도, '능력'이란 광의의 문화자본의 '세습'에 불과하다는 점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조국 사태" 논의가 굉장히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 논의해야 할 것은 후보자 본인도 아닌 그 가족들의 그 무슨 표창장 따위는 아닙니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강남에서 책이 많고 유식한 말을 쓰는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 교수 아빠와 함께 외국 돌아다니면서 영어를 배울 가회가 없었던 아이에게는 그 천부적 재능대로 어떻게 해서 공정한 신분상승, 사회 진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문화적 자본을 세습할 수 없는 다수를 위한 역차별 정책 같은 것을 우리가 지금 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표창장 이야기로 도배되는 언론에서는 이 핵심적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죠. 저는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서, '부정' 문제와 무관하게 "능력"이라는 것 자체도 결과 신화에 불과하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제 인생을 사례로 들어 여기에 써본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9.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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