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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한국 젊은이들, 불행의 기원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10. 25.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한국 청년들은, 대체로 ‘불행감’ 속에서 삽니다. 한국의 전반적인 행복 지수도 세계 54위지만, 특히 20대들 같은 경우에는 ‘불행감’과 ‘불만족’은 지배적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여론조사해서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볼 때에는 20대들의 66%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50대의 48%나 역시 그렇게 말해 역시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20대나 30대 초반 한국인들의 한국적 삶에 대한 “피로”는 가장 현저해 보입니다. 20대 사망자들을 보면 40% 이상의 경우 사망 원인은 “자살”입니다. 한참 살아야 할 나이에 더 이상 살아 나갈 에너지가 고갈돼 없어지는 것도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의 ‘현실’입니다…

 

산업화된 세계에서 그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이런 “청년 불행감” 현상의 원인은 뭘까요? 일단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개인 경제’로 치면 청년으로서는 드는 돈과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 소득이란 너무나 낮은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성장하는 당사자와 그 후견인 (부모 등)으로서는 엄청난 고생과 비용을 의미합니다. 당사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 노동을 감내하는 데다 남성이라면 군에서 거의 2년을 인권 침해를 당하면서 허비해야 하며, 상당기간 동안 아예 수면조차도 정상적으로 취하지 못합니다. 고교 시절에 고작 4-5시간만 자는 셈이죠.

 

당사자와 후견인으로서는 대졸의 취직에 필요한 ‘스펙’ 비용을 지출해야 합니다. 평균 약 4천만원 정도인데, 여기에 대학등록금과 어학연수비, 자격증 획득 비용, 주거비 등이 다 포함됩니다.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 엄청난 돈을 들인 뒤에 국내에서 취업하고 나면? 산업화된 세계에서 두번째 긴 노동 시간을 참아내야 할 거고, 불가능에 가까울 자기 집 마련을 고심해야 할 거고… 말 그대로 한국에서의 청년기는 소득에 비해 고생이 너무 많아 불행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좀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여러모로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청년들의 실업률은 아직 11% 정도입니다. 취업 포기자들을 포함해서는 약 22% 될 겁니다. 그 자체로서는 끔찍한 숫자지만, 30%대의 청년 실업률이 보통인 남유럽 등에 비해 그나마 좀 덜 나쁜 수치죠 (물론 한국에서의 고용의 질은 엉망이지만).

 

한국의 평균 임금이 1년 약 4만1천 달러인데, OECD 평균 (4만9천)보다는 많이 모자라도 그래도 예컨대 일본을 이미 능가한 겁니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고임금이긴 하죠. 한국의 범죄율 같은 것도 미국보다 낮으며 대체로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과 비슷합니다. 기술적으로 세계 최첨단이고, 부유하고 비교적 안전된 사회인데, 한국 청년들은 왜 이런 나라에서 살면서도 이렇게 죽도록 불행하고 비관적이죠?

 

저는 이와 같은 상대적 불행감을 일종의 ‘괴리감’으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일면으로는, 한국 젊은이들이 늘, 매일씩 듣는 소리는 “우리 나라 국격이 올라간다”는 거죠. K-방역부터 <오징어게임>의 세계를 휩쓴 “성공”까지, 거의 매일매일 모종의 ‘국위선양’이 이루어집니다. BTS가 유엔 연설쯤 하고, 역시 유엔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우리 나라님을 G-7에서도 껴주고… 일부로 ‘국뽕’할 것도 없이 한국의 국가는 일련의 “성취”들을 계속 발표합니다.

 

그러나 일면으로는 이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청년들은 38%가 결혼을, 33%가 출산을, 28%가 내 집 마련을 각각 포기해야 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미래 꿈을 포기한 채 매일 각종의 직장 갑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합니다. ‘나라’의 ‘성공’과 ‘나’의 비참함은 너무나 대조되는 것이죠?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청년의 불행은 그야말로 하늘 찌를 정도일 것이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헬조선”의 1차적인, 최악의 피해자들은 바로 청년들입니다. 그런데도 20대들의 36%가 홍준표 후보를, 11%가 윤석렬 후보를 각각 지지합니다. 그들의 이미 비참한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 극우 후보들을, 특히 20대 남성의 대부분이 지지하는 겁니다.

 

그들이 “공정한 절차”의 외양을 가진 “오징어게임”에서 스스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우향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극우들이 이용하는 페미니즘 혐오, 중국 혐오, 북한 혐오 등 “혐오 장사”가 주효해서 그런 것일까요? 양쪽의 이유가 다 있겠지만…. 좌우간 불행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일 이상의 큰 비극도 없지요…

 

(기사 등록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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