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 너에게 가는 길
한국에 두 개의 당사자 부모 운동이 있다. 하나는 장애인 부모운동이고, 또 하나는 성소수자 부모 운동이다. 전자는 장애인 운동에서 활동하면서 지금도 계속 함께 하고 있는 "나의 운동, 우리 모두의 운동"으로 생각하는데, 후자는 사실 퀴어 퍼레이드나 해당 부모모임에 활동하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 동지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잘 몰랐던 성소수자 부모 운동의 이야기가 90분 내내 너무 절절하게 볼 수 있었다. 장애인 부모운동이든, 성소수자 부모운동이든 함께 하는 가족이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고 때로는 투쟁하는 모습들이 모두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는 안 된다고 혐오를 퍼붓는 동네주민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으며 '투쟁'하는 장애인 부모 동지들과 "너에게 가는 길"에서 1회 인천 퀴어축제에서 수천 명의 혐오세력들의 악다구니같은 혐오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옆에서 눈물 흘리는 성소수자 가족 및 다른 참가자를 위로하는 성소수자 부모 동지들의 모습이 너무 연결이 되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바람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싶어서 서러운 맘도 있었다. "(혐오세력들이 혐오를 퍼붓는) 이게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야? 그 때부턴 오히려 투사가 되더라구요"라는 말에서 부모 운동이 가지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특히 어제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었는데, 숙명여대 입학포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걸 보며 힘들어 하는 트렌스젠더 자녀와 그것을 또 지켜보며 "설령 내 아이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끓더라도, 바로 그 옆에서 끝까지 혼자가 아니도록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 며 눈물 흘리며 말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두번째 눈물이 나왔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너무나 쉽게 차별과 배제를 말하면서 그로 인해 여러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을 여러 방면에서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을 정도다.
맨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함께 하는 부모 활동가의 소개가 하나씩 하나씩 나왔다. 활동가가 되기까지 온갖 생각, 고민, 눈물이 있었겠지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동지. 부모 운동 활동가와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우연찮게 이 영화의 엔딩곡 "燃え殻(잿더미)"를 듣고 <오징어 게임>과 <지옥>도 스킵하던 내가 홀리듯이 넷플릭스로 로그인하여 클릭해서 보았다. 트위터에서 140자로 연속 기고했던 모에가라의 소설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치 영화 "오아시스"처럼 시시한 어른이 된 40대 중반의 사토가 살아왔던 삶을 시간을 거꾸로 배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방송국 플립보드 하청을 토대로 제법 큰 회사가 된 곳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뭔가 현실에 불만족하는 평범한 사토의 시간은 거꾸로 가면 갈수록 사랑도 일도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오히려 사람의 빛나는 순간은 시간을 거꾸로 돌릴수록 더 환하게 비추는 것처럼 보인달까.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이걸 시간순으로 재배치해서 내용을 생각해 보면 참 한 사람의 인생이 지독하게 꿈과 순수함, 열정이 사라지고 세상의 쓴 맛만 남고 사람에 대한 마음(사랑이든, 관계든)도 마치 하룻밤 꿈처럼 사라지거나 건조해 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평범하게 결혼하여 아이와 가족을 찍는 사진을 "평범하게" 올리는 사토의 첫사랑 카오리는 예전엔 서로 펜팔을 주고 받으며 서로 수줍게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조차 서툴렀던 시절이 있었고, 이혼을 하지만 성공한 온라인 학원 업체를 운영하는 전 회사 동료는 회사가 조그마한 회사에 어마무시한 업무량에 치여도 자기가 다 감당하겠다고 동료가 데이트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열정많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에게 지쳐서 게이바도 그만두고 온갖 삶의 곡절을 겪은 듯 한 지인은 빵공장 알바 시절엔 연극을 한다면서 자랑을 하고 이제 공장을 그만두고 취직을 하는 사토에게 자신의 감정은 숨긴 채 꽃을 주며 작별을 나누던 시절이 보여진다. 그런 시간의 역설들이 보는 사람에게 모두 예전 청춘의 역린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찢어지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가장 행복할 때가 가장 슬프게 느껴진다."는 카오리의 말은 누구나 슬프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80년대 혹은 90년대에 대한 향수, 그 때에 대한 그리움이 지금도 열병처럼 남아 있는 것은 그 당시 청년이었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며 이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라는 것을 절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냉혹하게 그 시절을 넘어 '평범한' 현실로 돌아가는 마지막을 보여 준다. 아주 오랜만에 짝사랑했던 사토를 만났던 나나세는 "너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 말하며 택시에 사토를 태우며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돈다.
택시 백미러 속에 떠나가는 택시를 계속 바라보는 나나세의 모습은 어쩌면 20대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과 트라우마에 아직까지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보내고자 하는데 여전히 바라보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제는 철거 직전의 첫사랑과 자주 갔던 모텔, 코로나 시국 아무런 사람도 없는 새벽 첫사랑을 만나고 데이트했던 거리를 보며 눈물을 훔치던 사토는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날이 밝아 다시 출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사거리를 건너며 다시 마스크를 쓰며 현실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원래 영화제목인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란 텍스트가 "우리는 모두 어른이..."로 바뀌는 것까지 2시간의 영화가 끝까지 날카로운 칼바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과거에 내가 어떠했든 어린 시절, 젊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는 그 시절을 토대로 "어른"이 되어 또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는 현실이 느껴졌다.
너무나 꿈 같으면서 너무나 현실 같은 영화가 마치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먹은 기분이다. 혹시나 필요할 까 싶어서 사온 생맥 1000CC를 결국 다 마셔 버렸다. 오랜만에 여운이 오래 가는 영화를 보았다.
(기사 등록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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