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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윤석열/카자흐스탄/이석기/차별금지법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 8.

전지윤

 

● 윤석열의 위기에는 더 깊은 뿌리가 있다

 

최근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카오스적 혼돈은 2016년 촛불 속에서 궤멸적 타격을 받으며 심각한 위기와 분열로 빠져들었던 한국의 보수우파와 기득권 카르텔이 여전히 그것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 당시에 이들의 분열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다시 기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분열은 처음에 <조선일보>와 박근혜 청와대 사이에서 불거졌다. 하나의 계기는 <조선일보>가 당시 ‘왕수석’인 우병우 일가의 비위 의혹을 보도한 것에 있었다. 그러자 박근혜는 <조선일보>를 직접 “부패 기득권”이라고 직격했고, 검찰은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송희영의 비리를 밝혀내며 방상훈의 숨통을 조였다.

 

우파-족벌언론-검찰이 서로를 불신하고 물어뜯던 이 장면은 기득권 카르텔의 균열을 상징했다. 그 배경에는 물론 한국사회를 어디로 끌어가고, 차기 권력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한 기득권 세력 내부의 다툼이 있었다. 일단 깨갱하며 납작 엎드렸던 <조선일보>는, 모두 기억하다시피 촛불이 터져나오자 앞장서 박근혜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태극기 부대가 가장 욕하던 언론이 <조선일보>가 됐고, 검찰도 신속하게 포지션을 이동해 특검과 함께 박근혜와 측근들을 수사 기소했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도 상당수가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즉, 박근혜는 이미 5년 전에 아래로부터 투쟁에 직면한 기득권 우파에 의해 버려진 카드였다.(물론, 이것이 이번 박근혜 사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 후로 우파 정당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새보수당 등으로 계속 쪼개지면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런 위기와 분열은 그 후 5년이 지나면서 검찰-족벌언론-우파정치권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상당 부분 복원되고, 최근에 주요 우파 정치세력들이 ‘탄핵의 강’을 건너 국민의힘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대선을 앞두고는 이들 모두가 윤석열을 중심으로 힘을 합쳤고, 윤석열의 지지율 1위가 한동안 계속되면서 우파의 재결집은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고 있다. 윤석열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고, 윤석열과 이준석이, 김종인과 홍준표가 날선 말을 주고받고 있다. 정치검사들과 족벌언론과 국민의힘이 서로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고 있다.

 

이것을 단순히 김건희가 실수해서, 이준석이 욕심이 많아서, 김종인이 총기를 잃어서, 윤석열이 어리석어서라고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고, 이것은 촛불 이후 5년 동안의 변화에 대한 평가를 필요로 한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지난 5년간 문재인과 민주당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평가로 단순화하고, 그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끝낸다.

 

여기에는 그 5년 간 기득권 우파가 촛불이 낳은 변화를 어떻게 가로막으려 했는지와 기층 민중과 진보좌파가 촛불이 가져온 기회를 어떻게 확대하려 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적 평가)가 빠져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후자이겠지만, 윤석열의 위기를 보려면 전자를 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촛불 이후 5년 동안 기득권 우파는 재결집과 함께 우파정치의 재구성을 진행해 왔다. 여기에는 새로운 의제와 세력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인 반페미니즘, 중국혐오, 난민혐오를 이용해 청년층을 파고든 신우파들이었다. 이들을 대변한 것은 이준석, 하태경, 이언주 등이었다. 또 2019년 검언대란 국면에서 ‘공정’을 내걸고 중도층을 파고든 ‘진보이탈파’도 있었다. 이들을 대표한 것은 진중권, 김경율, 권경애, 금태섭 등이었다. 이들이 주로 종북몰이에 의존했던 구우파와 결합하면서 우파의 재구성과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선 기반 확대가 벌어질 수 있었다.

 

오세훈의 서울시장 당선은 그 절정이었고, 이것을 ‘세대결합론’이라고 정식화한 이준석의 당대표 당선으로 기득권 우파의 혁신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은 서로 다른 강조점이 결합되면서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대표적 구우파인 홍준표가 청년우파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고, 진보이탈파인 서민이 반페미니즘에 앞장서고, 윤석열과 이준석이 한 목소리도 N번방 방지법을 공격하는 장면들이 나타났다.

 

이수정(과 신지예) 식의 ‘페미니즘’도 꼭 윤석열이나 <조선일보>같은 구시대적 우파와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성폭력을 민주당 진영 정치인들의 인성과 인격의 문제로 몰면서 정파적으로 틀 지우고, 성폭력 범죄자 개개인에 대한 처벌과 단죄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접근은 ‘범죄와의 전쟁’과 치안 강화를 약속하는 윤석열의 주장과 연결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파의 재결집과 재구성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던 한 달 전에 <조선일보> 김대중은 자신감을 보이며, 이제 윤석열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가 ‘무엇을 못 하게 막는 데’ 있다”면서 “민노총과 전교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2016년의 거대한 촛불 속에서 기득권 우파가 입은 치명적 내상은 아직 충분히 아물지 않았고, 촛불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대중적 위기의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다시 드러났다. 우파의 서로 다른 강조점과 모순되는 노선들이 화학적으로 결합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도 드러났다. 불신과 갈등은 다시 위기와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준석은 “복어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누누이 이야기해도 그냥 믹서기에 갈아버렸다”고 구우파를 탓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준석이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독약’ 성분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준석과 그 가족의 비위 의혹들이 흘러나오는 배후에는 윤석열과 정치검사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가세연은 자신들의 다음 표적은 홍준표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어제 김종인이 주도한 전격적인 선대위 해체는 사실상 윤석열을 바지사장으로 만들려는 이준석과 김종인의 쿠데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상대방의 약점과 치부를 쥐고서 압박하거나 폭로하는 양상이 어지럽게 이어지고 있고, 이처럼 서로를 믿지 못하며 도구화하는 극단적 상호불신 속에서는 혼파망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해외의 사례를 봐도, 위기와 분열을 겪던 우파가 기존의 전통적 우파정당으로 다시 결집해서 권력 탈환에 성공한 경우는 미국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의 경우 말고는 별로 없다. 공화당도 트럼프당으로 변신하거나 트럼프가 따로 당을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돼 왔다. 이 나라에서도 대선 이후에 우파 정치세력의 정계개편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위기와 분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얼마 전 합당에 실패한 안철수에게 다시 손을 내밀면서 후보 단일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석기는 다시 감옥에 가거나 북한으로 가라”고 하면서 윤석열의 오른쪽 이탈표를 챙기던 안철수와 단일화한다고 해서 지지율이 합쳐지진 않을 것이다. 정치는 산수가 아니라 고차방정식인 법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우파의 위기와 분열을 정치적 기회로 이용할 준비가 진보좌파보다는 민주당에서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 러시아 공수부대는 카자흐스탄에서 당장 철수하라!

 

연초부터 시작된 반정부 민중저항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 카자흐스탄 독재정권이 도움을 요청하면서 러시아 푸틴 정부가 공수부대를 투입해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민중의 분노가 촉발된 계기는 정부가 LPG 가격을 갑자기 2.5배나 올린 것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계기였을 뿐이고 저항의 뿌리에는 소연방 해체와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30년 동안 지속된 나자르바예프의 독재 철권통치가 있다. 이 속에서 카자흐스탄은 독재자의 일가친척이 모든 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부패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 빈곤과 실업은 계속됐고, 2019년에 나자르바예프가 물러나긴 했지만, 그는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 토카예프의 뒤에서 막후 실권자로서 계속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30년 동안 쌓여온 분노와 불만의 폭발은 순식간에 거대한 집회와 시위가 전국을 뒤흔드는 것으로 나타났고, LPG 가격 인하만이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 양심수 석방과 민주적 기본권 보장을 넘어서 정권 퇴진 요구로 나아갔다.

 

야당이 유명무실한 속에서 석유,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합세했고, 자주적 투쟁기구들이 등장했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정부 청사와 공항을 점령하고 대통령 집무실에 쳐들어가 뒤집어 놓았다. 독재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군대와 장갑차 투입,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차단 등으로 대처하면서 시위대를 ‘무슬림 테러리스트’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런 폭력 진압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분노와 투지를 억누르지 못했고, 오히려 경찰력이 무장해제되거나 일부가 이탈해서 시위대에 합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에서는 시위대가 무장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이런 결정적 위기 국면에서 독재정부는 러시아에 구원의 손길을 부탁한 것이다. 이처럼 독재정권의 군대와 러시아의 공수부대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민중의 저항을 짓밟으려 하면서 수천 명이 부상을 입고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구소련의 해체 이후 마피아 자본주의에서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로 변화해 온 러시아는 이미 벨로루시, 시리아 등에서 민중을 학살하는 독재자들을 무기 판매와 군대 파병을 통해서 지원해 왔다. 이것은 중국이 미얀마의 군부를 돕는 것이나, 미국이 중동과 남미에서 독재정부를 지원해 온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제국주의적 행태였다.

 

미국과 나토의 동진이 낳은 우크라이나 갈등에서 러시아만을 악마화하는 서방 정부와 언론의 프레임에 동조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그것이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눈감아 주는 것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러시아는 당장 카자흐스탄에서 손을 떼고 군대를 철수시켜야 한다. 카자흐스탄 독재정권은 살인진압을 중단하고 물러나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카자흐스탄 민중의 저항을 지지한다.

#prayforkazak #Kazakhstan #StandwithKazak #StopMassacre #RejectDictator

 

 

● 국민의힘 이채익과 이정화는 당장 직위에서 물러나라

 

2021년의 마지막날이었던 어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송년문화제에 다녀왔다. 매우 춥지만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고, 지난 1년 동안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던 동지들과 내가 힘들 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셨던 동지들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의미있었다.

 

지난해 내 가장 중요한 소망 중 하나였던 차별금지법은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올해는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모든 진보정당과 후보들이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상적 차별, 혐오, 편견, 낙인을 줄여나가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여기에 집권여당이고 관련 법안도 발의해 놓고 계속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고 타협하는 민주당이 큰 책임이 있다. 민주당이 이런 문제에 얼마나 불철저한지는 최근에 개인적으로도 경험했다. 몇 년전에 성폭력 피해자와 그 조력자인 나에게 공개적으로 막말과 욕설을 퍼붓는데 옆에서 동조했던 사람이 민주당의 주요 당직자로 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SNS 공간에서 그 막말과 욕설을 퍼부은 사람을 우연히 발견한 내가 그에게 사과를 요구했더니 그 당직자는 자기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유체이탈을 하면서 오히려 나에게 ‘왜 이러냐’며 화를 냈다. 혐오성 막말과 욕설을 퍼부은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요구한 사람이 문제라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물론, 민주당만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이런 문제에서 잘못할 수 있다. 예컨대 얼마 전 어떤 좌파 이론가가 윤석열을 지지한다며 납득이 안가는 주장들을 하는 인터뷰를 한 것을 봤는데, 그것을 비판한다면서 그 사람을 ‘외롭고 한심한 노인네’ 취급하는 글들을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주장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토론하면 될 일이지, 편견을 담은 조롱은 그것에 도움이 안될텐데 싶었다. 이처럼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얼마든지 일상에서 차별과 편견에게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식하고 돌아보고 바로잡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별로 그런 기대가 가지 않는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기반한 망언을 거듭해 오던 윤석열은 최근 갈수록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좌익 혁명이념과 북한의 주사이론을 배워서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온 그 집단들”, “이 나라를 사회주의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인지”, “한국 국민들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 “무식한 삼류 바보들”, “대깨문”, “미친 사람들”...

 

유력 대선후보가 이러 막말들을 하는 것은 언론과 방송으로 매일 접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윤석열의 개인적 특성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국민의힘 자체가 사실 이런 색깔론과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유지해 온 정치세력인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차별금지법을 가로막는 세력에서도 핵심이다. 이 당의 핵심 지도자들이 한 말을 보면 입장은 분명하다. 김도읍 정책위의장 “당론으로 반대”라고 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성소수자가 약자냐”고 하면서 “차별금지와 약자동행은 무관”하다고 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성경적 원리의 근본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이름만 좋은 법이고 독소조항이 있다”고 했다.

 

금태섭 전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더니 이런 당으로 가서 갑자기 사라진 ‘소신’을 보여주고 있고, 신지예 씨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말만 하고 안하는 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더 낫다’는 궤변을 펼치고 있다. 내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의힘이 윤석열 선대위 종교특보단장으로 이채익 의원을, 기독인지원본부 본부장으로 이정화 목사를 임명한 것에 있다.

 

이채익은 “성소수자를 인정하게 되면 동성애뿐 아니라 근친상간, 소아성애, 시체 상간, 수간(獸奸)까지 비화할 것”이라는 막말을, 이정화 목사는 차별금지법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는 주장을 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요 공당의 공직을 맡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서 분명히 요구한다. 이채익과 이정화는 당장 물러나라.

 

●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와 대선 공동 대응

 

사회주의 공투본 대선 후보 선출에 참여해서 이백윤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이백윤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아무래도 노동당 당원분들이 더 많아서 힘들다고 봤는데 의외였다. 아무튼 당선된 동지에게 축하를 보내고 낙선한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이 경선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 단일후보를 선출해서 공동대응하자는 방안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제 정의당, 진보당, 한상균 후보, 이백윤 후보간의 단일화가 또 남은 셈이다.

 

많은 주류언론들이 이번 대선을 ‘역대 최악의 비호감 경쟁’이라고 부른다.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언론들 자신이 정책 검증과 비교, 진보후보 소개 등에는 관심없고 온갖 선정적이고 편파적인 카더라식 의혹 제기에 ‘속보, 단독’을 하며 매달려 온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클릭장사 때문이겠지만, 그런 정치혐오가 결국 기득권 세력에게도 득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이 ‘윤석열과 이재명은 똑같다’고 한다. 공감하지 않는다. 두 후보는 분명 계급적 기반, 정책적 내용과 방향, 정치적 실천 등에서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도 있다. 이 차이점을 싸잡아 퉁쳐버릴수록 진보좌파의 공간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는 중요한 착각 중에 하나다. 진보좌파는 보수우파와 중도개혁 세력의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분석하면서, 설득력있는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둘 사이의 차이점을 의미있게 보고, 그 때문에 혹시 윤석열이 될까봐 진보후보보다 이재명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거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요즘 윤석열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고 더 추락하면 할수록 좋은 일이다. 결선투표같은 게 없는 이 나라에서 강경우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질수록 더 많은 이들이 더 부담없이 정책과 노선을 신중하게 비교해 진보후보에게 투표할 공간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좌파는 족벌언론, 주류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그놈이 그놈이다’는 정치혐오 프레임과 막 던지는 의혹제기들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반문우파와 진보좌파의 차별성을 희석시키기만 할 것이고, 나중에 진보좌파의 힘이 커지면 얼마든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급성장하고 연립정부에까지 참가하게 되자, 사법부는 포데모스 소속 하원의원의 10년 전 폭행 혐의를 찾아내 의원직을 박탈해 버렸다. 미국에서 민주적사회주의DSA 후보가 시장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녀의 오래전 세금체납 기록을 찾아낸 기득권 정치세력과 언론의 공모도 있었다.

 

이준석이 토론중에 ‘진보진영의 도덕적 우위’를 말하는 상대방에게 운동사회 성폭력을 줄줄이 읊으며 입을 막아버리는 것을 보고 기가 막힌 적도 있다. 진보좌파라고 해서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털어서 먼지 나올’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로만 구성돼 있을 리 없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혐오와 도덕정치’의 프레임을 벗어나, 강경우파와 중도개혁 세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에 왜 진보좌파 정치가 필요한지를 납득시켜 내야 한다. 그리고 이 방향에서 이번에 이백윤 후보가 제시한 가장 급진좌파적 반자본주의 입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많은 문제에 뿌리에 사회주의적 해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정치에는 원칙만이 아니라 전술이 필요하다. 내 생각과 똑같은 가장 선명한 좌파적 원칙만을 지지할 수 있다면 그런 사회주의자가 지지할 수 있는 후보는 평생 아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직 너무나 힘이 부족한 한국사회의 진보좌파는 서로의 차이점을 넘어서 공통점을 중심으로 협력할 필요성이 너무나 크다.

 

DSA의 활동가 에릭 블랑은 최근 ‘좌파들은 다른 좌파들을 욕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한국 상황에도 딱 맞는 말이다. 2000년에 ‘진보정치의 씨앗을 뿌린다’며 출발했던 민주노동당이 이제 풍성한 열매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처음부터 씨앗을 뿌려야 하는 상황으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곱씹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부디 이번에는 진보후보 단일화와 공동대응이 성사되길 기대한다. 지금은 힘을 합쳐도 모자를 상황이고 여기에 진정성을 보이는 세력이 마음을 얻을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일단, 강경우파는 싫지만 중도개혁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가능한 최대한 더 많이 우리의 기반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더 급진적인 좌파정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다시 처음부터 씨앗을 뿌리는 것을 회피하지 말자.

 

● 윤석열의 ‘공정’, 김건희의 허물, 그리고 족벌언론

 

김건희 씨의 사과 기자회견을 보고 큰 당혹감을 느꼈다. ‘남편 앞에서 내 허물이 부끄럽고, 내가 남편에게 얼룩이 될까봐 걱정이고, 아이도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니... 지난번 윤석열 측근이 김건희 씨의 목덜미를 잡아 끌고가던 장면에 이어서 도대체 윤석열같은 지배층 인사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기에 저런 태도가 나오는지 근본적 의구심이 들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김건희 씨의 성적이력, 외모, 성형 여부 등을 파헤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학력위조, 주가조작, 부동산 사기 등은 명백히 잘못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지적처럼 이에 대한 검증과 비판을 가로막는 것은 ‘페미니즘’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보면서 이 문제에서도 역시 몸통은 윤석열이라는 생각이 더 굳어진다.

 

검찰권력을 이용해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하고, 자기 주변의 문제들은 덮어온 정치검사 윤석열의 ‘허물과 얼룩’이 모든 문제의 뿌리인 것이다. 하지만 족벌언론을 중심으로 주류언론들은 이것을 별로 파헤치지 않고 있다. 윤석열도 김건희 씨를 일종의 ‘범퍼’처럼 이용해, 검증의 칼날이 윤우진 게이트 등 자신의 허물로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다보니 주된 시선이 김건희 씨에게 쏟아지고,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김건희의 허물이 정의로운 검사였던 윤석열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프레임을 형성해 가면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물론 공적 검증이 불가피한 김건희 씨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주류언론들(과 법조기자들)의 검증 태도는 정경심 교수나 윤미향 의원 때와 비교해보면 아주 미온적이다.

 

만약 그런 수준의 검증과 취재가 이어지고 검찰이 거기에 호응했다면 김건희 씨는 벌써 수십번 압수수색을 받고 긴급구속 됐을 것이다. 반면, 김건희 씨는 아직도 소환조사 한번 받지 않았고, ‘검증’은 학력위조에 머물며 주가조작과 부동산 사기 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중권, 권경애, 김경율, 금태섭 등의 ‘양심과 소신’은 실종됐고, <조선일보>와 국민의힘(허은아 대변인)은 의혹제기를 ‘여성비하와 사생활 캐기’로 퉁쳐버리려 했다.

 

극악한 사생활캐기에 몰리던 조동연 씨가 눈물을 보이자 “눈물전략을 쓰다니 워킹맘 망신”이라고 공격했던 게 바로 허은아였는데 말이다. 또 <조선일보>는 손혜원 씨가 김건희 씨의 눈성형 문제를 (부적절하게) 제기하자, “[성형의] 견적도 안 나오는 고생대 생물”이라고 손혜원 씨의 외모를 비하하는 우파 논객의 글을 실었다. ‘여성비하는 우리만 할 수 있다’는 면허증이라도 가진 것 같다.

 

이런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상황이 2007년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에 대해 검찰과 언론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라는 기억도 소환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신정아 씨의 부분적 잘못과는 별개로 당시에 벌어진 것은 야만적 마녀사냥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논란은, 그녀가 청와대 정책실장의 연인이었다는 것을 고리로 온갖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발전했다. ‘신정아 뒤에는 이해찬 총리, 권양숙 여사가 있다’고 했고, ‘신정아는 김대중의 숨겨둔 사생아’라는 말까지 나왔다. 족벌언론들은 신정아 씨의 연애편지를 공개하고 성생활을 묘사했고, 나중에는 나체 사진까지 입수해 1면에 ‘단독’으로 실었다.

 

언론에 이런 정보를 흘려주던 검찰은 전광석화같은 압수수색, 구속과 기소로 답했다. 이 모든 것은 터무니없이 과도한 집단폭력이었다. 결국, 나중에 권력형 비리 의혹들은 모두 사실무근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이 광풍 속에서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은 더욱 심해졌고, 당시 우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이명박의 BBK 의혹은 어느 정도 물타기가 될 수 있었다.

 

공인(또는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뤄지는 언론의 야만적인 물어뜯기와 몰아가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에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김진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우다. 김수석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정신질환(조현병)으로 고생해 왔고, 최근 입사지원서에 ‘내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라고 쓴 것은 그것이 낳은 해프닝이었지 무슨 특혜나 채용비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언론은 이런 사실을 확인, 검증하지도 않고 무조건 ‘단독, 속보’부터 올렸다. 결국 김수석은 즉각 사퇴했고, 아들의 내밀한 정신병력은 온세상에 강제 공개돼 버렸다. 이 과정에서 이 가족이 겪은 아픔과 상처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에서 관련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는 것에도 언론의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족벌언론과 종편방송들에서 지난 반년간 끊임없이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 ‘비리의 하수인’으로 기정사실화해 낙인찍었던 이들이 연달아 목숨을 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집요했으면 ‘대장동 주범은 이재명’이라는 프레임은 누구도 의심없이 받아들일 지경이다.

 

이 속에서 화천대유의 돈줄이었던 부산저축은행과 하나은행,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해 준 박근혜 청와대, 민간개발을 압박한 국민의힘, 투기꾼들을 풀어주고 뒤를 봐 준 검찰, 전관 법조인들과 법조기자 등으로 구성된 ‘50억 클럽’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검증,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 <정준희의 해시태그>를 보다가 족벌언론들의 행태를 묘사한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누군가를 ‘나쁜놈’이라고 좌표를 찍고 우르르 몰려가서는 집단린치를 하고 다시 다음 표적을 향해 이동하는 방식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과 행태 속에서 어떤 문제의 사회적 원인과 구조적 해법은 실종된다. 더구나 이들의 좌표찍기는 철저히 선택적이다.

 

족벌언론들에 인용되기를 즐기는 지식인, 정치인들은 이런 선택적 좌표찍기와 집단린치를 돕는다. 따라서 내가 묻는 것은 왜 김건희 씨는 좌표찍어서 집단린치하지 않냐는 게 아니다. 왜 김건희 씨에게는 정당한 공적 검증의 잣대마저 들이대길 주저하며 변명에만 귀를 기울이고, 무엇보다 윤석열 앞에서는 검증의 잣대를 꺼낼 생각도 않냐는 것이다.

 

● 8년 넘어 가석방되는 이석기 전 의원과 ‘종북몰이’ 체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무려 8년이 넘는 옥살이 끝에 드디어 감옥에서 나온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오게 됐으니 기쁘고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구속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들씌워진 죄목들은 전부 터무니없었다. 처음에는 그가 진보적 가치를 말하면서 뒤로 선거부정과 사업비리를 저지른 엄청난 위선자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다음에는 그가 내란음모로 총으로 무장해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제 그가 말로써 ‘내란을 선동’했다고 했다. 사실도 아니었지만 단지 말 몇 마디 했다고 처벌이라니? 그러나 이 나라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종북몰이가 내면화된 나라였기에 그런 낙인, 혐오, 편견은 한 사람을 무려 10년형으로 감옥에 가둘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은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이다. 김기춘이 앞장서고 국정원이 중심이 된 박근혜 정부는 ‘종북몰이’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그 시절은 조금이라도 여지만 생기면 ‘종북’ 딱지가 붙던 공포스러운 시대였다. ‘종북’ 딱지가 붙은 사람은 ‘불가촉천민’이 됐고, 너도나도 같이 크고 작은 돌을 던졌다.

 

특히 2013년의 그 절정기에는 조중동, 한겨레-경향, 박근혜당, 민주당, 지식인들, 심지어 많은 진보좌파까지도 이석기 의원과 그 동료들(이정희 대표 등)을 비난하며 거리를 두고 선을 그었다. 국회에서 진보정당까지 동참해서 이석기 체포동의안이 통과되던 시절이었다.

 

그 동료들도 잡혀갔고, 그들의 집에는 누가 페인트로 ‘간첩’이라고 낙서를 했고, 가족들은 이웃에게 눈총을 받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도 주눅들었다. 이석기 의원이 속해 있던 통합진보당도 강제해산 당했다. 박근혜 정부가 촛불로 쫓겨나면서 이제 ‘종북몰이’는 같이 무너졌을까?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반세기 동안 만들어진 훨씬 더 뿌리깊고 내면화된 프레임이고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매주 수천 수만명이 모여서 태극기를 흔들며 ‘문재인은 간첩’이라고 외치는 집회가 코로나 전까지 3년 넘게 계속됐다.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윤석열은 지금도 정부를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종속이론과 주체사상 등의 이념으로 엮인 집단’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재명을 조작된 ‘청주간첩단’과 엮으려는 시도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을 간첩이라고 했다고 고소하냐’, ‘설강화같은 드라마조차 문제삼냐’는 쿨한 자유주의적 태도는 이석기 의원에게는 별로 적용되지 않았다. ‘말 몇 마디했다고 구속하는 게 말이 되냐’는 이야기는 진보좌파들 속에서도 별로 나오지 않았고, 이석기 의원은 문재인 5년 내내 감옥에 있다가 이제야 사면도 아니고 ‘가석방’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것도 '박근혜 사면과 함께'라는 속보가 들리고 있다.

 

심지어 법무부는 그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려고 하고 있다. 그는 살인강도나 성폭력범도 아니지만, ‘언제든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종북인사’라는 낙인과 편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가석방된 이재용과 재벌회장들에게는 절대로 적용돼지 않았던 기준에 따라서 말이다.

 

물론 이 문제에서는 진보진영 내부의 오랜 정파적 갈등과 분열이 함께 작동했다. 그것은 상처와 불신을 낳았고 감정적 대립을 격화시켰다. 나아가 경쟁 정파가 탄압받는 것을 외면하고 방조하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저런 잘못된 노선을 가지고 있고, 저런 잘못을 하고 흠결을 가진 사람들은 탄압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자기정당화를 낳았다.

 

어떤 정치사상과 노선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가의 검열과 탄압은 부당하며, 인간은 누구나 결함이 있기에 완벽한 사람만 방어받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상식적 생각의 설 자리는 없었다. 지금 나도 ‘주장과 태도를 보니 혹시 당신도 북한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NL이거나 그쪽 노선 아니냐’는 의문의 시선과 뭔가 해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기득권 우파와 공안당국은 누구보다 이것을 잘 간파하고 그 틈을 파고들어서 더욱 벌어지게 만들었다. 이념과 노선만이 아니라 개인적 결함과 잘못들을 탈탈 털고 만들어내서 ‘종북’ 낙인과 ‘위선자’ 프레임을 섞어짜는 이들의 수법은 ‘조국몰이’와 ‘윤미향 마녀사냥’으로 변형되고 발전했다.

 

이제 이석기 의원의 가석방 이후에, 이것을 최근의 위기를 벗어날 반격과 재결집의 고리로 삼으려는 기득권 우파의 대대적인 공격과 총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법치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역시 문재인은 종북이고 간첩이었다’, ‘김정은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이대로 가면 공산주의로 갈 것이다’... 세상이 무너진 듯이 과장을 하면서 어떤 논리를 펼지 그려진다.

 

그래서, 사실 기대가 없었다. 그런 기득권 우파와 족벌언론의 눈치를 보면서 계속 양보하고 타협해온 이 정부가,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던 누님이 죽어도 이석기 의원을 풀어주지 않고 5년을 버티던 정부가, 대선을 눈 앞에 두고 표 떨어지는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판에 나름 작은 용기를 낸 것인가 싶었는데, 씁쓸하게도 결국 박근혜 사면 소식이 물타기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극단적으로 난리치는 세력은 소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다. 그리고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그런 ‘소수’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고 다수의 이해를 거슬러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이것이 다수의 지지에도 차별금지법이 막혀있는 이유, 그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종부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이유다.

 

거대언론과 대기업과 억압적 국가기구들에 기반을 가진 그들 소수의 승인을 얻는 과정을 보통 ‘국민공감대’와 ‘사회적 합의’라고 부른다. 이 힘은 더 큰 사회적 힘을 통해서만 꺾을 수 있다. 이제 더 큰 연대로 그 힘을 만들어서 이석기 의원의 완전한 사면과 국가보안법의 폐지, 나아가 끝없는 종북몰이가 가능한 프레임과 구조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든 낙인, 편견, 혐오에 맞서서 함께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래 그림을 보자. 여기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생각에 좀 문제가 있어’, ‘저 사람은 전에 이런 잘못을 한 적이 있지’, ‘저 사람의 가족도 사고를 친 적이 있었지’, ‘저 사람은 나에게 서운한 짓을 한 적이 있지’... 그리고 이것들은 어느 정도 다 사실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결함이 있으니.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지 보자.  

 

 

●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을 보고

 

어제 저녁에 노원 ‘더 숲’에 가서 드디어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을 봤다. 2021년을 보내며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였고, 영화 관람뿐 아니라 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와서 진행한 관객과 대화 시간까지 기대한만큼 뜻 깊은 시간이었다.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영화는 존재 그 자체로서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사랑하는 이를 괴롭히는 세상에 맞서 투사가 돼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4년 동안 게이 아들 ‘예준’의 엄마 비비안과 트랜스젠더 아들 ‘한결’의 엄마 나비가 당차고 멋진 인권활동가로 발전해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변규리 감독은 공감과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것을 담아냈다. 그래서 이제 예준과 한결의 누구보다 든든한 동지가 된 비비안과 나비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지키는 활동가이면서 소방공무원 노조의 활동가이며 항공승무원 노조의 활동가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서로 다른 매력은 이 영화의 핵심 기둥이다.

 

영화를 보면서 맥락은 다르지만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들이 오버랩됐다. 예준이 처음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을 하며 남긴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는, 내가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정치적 신념을 '커망아웃'하는 편지를 남기고 집을 가출하던 오래 전 그 순간이 떠올랐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겠다던 거짓말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와르르 무너지기 직전에 ‘나는 사회주의자가 됐고 졸업할 생각이 없고 평생 활동가로 살겠다‘는 편지만 남기고 사라진 나 때문에 부모님이 받았던 충격과 슬픔은 지금 돌아봐도 아득하다.

 

또 한결이 성별정정을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는 과정은 지금 내가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조력자로서 5천만원 역고소를 당해서 겪고 있는 괴로움과 겹쳐졌다. 서류를 준비하고 동의서와 진술서를 받아내고 몇 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는 과정이 그랬다.

 

결국 재판장이 ‘당신에게 세상이 여전히 힘들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살아달라’고 손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내년 초에 나올 판결에서 저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관객과 대화에서도 공감가고 영감을 주는 곱씹을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커밍아웃은 선물이고 그것을 고맙게 받지 못한다면 받는 사람의 문제’라는 말이 그랬다. 나비님은 더 나아가 ‘나의 정체성과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부모하고도 안전이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가족주의의 벽을 부수는 대담한 말씀을 해 주셨다.

 

맞다. 내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고 집단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욱 더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는 가족. 폭력의 피해자로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무리들 속에 서 있는 가족. 그런 가족과의 기억과 관계 속에 괴로워하는 이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계속 생각하던 의문이다.

 

반면에 나를 존재 자체로서 받아들이고 믿어주고 사랑한다면, 그것이 누구든 그 관계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와 감정과 존재와 사랑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들이, 그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2022년에는 반드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동성결혼 등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인정됐으면 좋겠다.

 

(기사 등록 20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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