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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러시아인들이 저항력이 약한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5. 26.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온 박노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유럽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한국과 생활 패턴이 가장 흡사한 데는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인 것 같습니다. 과거의 한국 같이 ()주변부 지역이다 보니 노르웨이 등 북구와 같은 "향락주의적" 지향이라기보다는 매우 강한 "생존" 지향은 동유럽 생활 패턴의 특징입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IT쪽 임금이 평균보다 매우 높은 등 "교육"의 정도에 따라 아이의 생활 궤도가 엄청나게 달라지기에 한국과 같은 "교육 엄마"들의 부류가 만만치 않습니다.

공부가 싫고 학습 노동에 피로해진 아이의 성적을 열심히 확인하고, 온갖 과외 활동들을 시키고, 개인 선생도 붙여주고... 한국처럼 러시아에서는 투잡족 등 과로 인구가 많고, 파김치 될 때까지 "열심히" 죽도록 "노오오력"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생존이 최우선이고 학력에 의해서 사회적 신분이 좌우되는 ()주변부의 전형적 모습이죠.

개인으로 치면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만큼 생활력/의욕이 강합니다. 미국에 가면 전체 평균의 가구당 1년 소득이 약 7만 불이라면 재미 한인은 약 83천불, 재미러인은 약 9만불 정도랍니다 (물론 "재미러인"들의 상당수는 유대계이기도 하죠). 양쪽은 평균보다 학력도 소득도 좀 높은 편입니다.

한데 흡사성이 높은 만큼, 러시아인과 한국인 사이의 한 가지 큰 차이도 있습니다. 개인으로 보면 악착같이 일과 공부를 하고, 열심히 모으고, 학력이나 차세대 교육을 생명처럼 여기는 부분은 같지만, 집단 행동의 양식은 사뭇 다릅니다. 198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은 집단 행동을 아주 잘 하는 사회입니다. 민주화 투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행됐거나 그 후에 계속 이어진 각종 계층이나 그룹, 이해 공동체의 집단 권익 주장 등 집단 행동 단련을 엄청 많이 한 데는 대한민국입니다.

서울은 각종 "대책위""비대위"(비상대책위)는 거의 교회 숫자만큼 많은 도시입니다. 물론 그게 다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고, 상당 부분은 사회 공익과 무관하거나 반대될 수도 있는 "집단 이익"의 문제를 다루는 행동일 수도 있죠. 종종 반사회적일 수도 있고요. "땅값이 떨어질 것 같아서" 영구임대 주택의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대책위" 따위는 대표적입니다. 모든 집단 행동들이 다 선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게 다 땅값과 개개인 지갑 위주로 돌고 도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이라는 걸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좌우간 뭔가를 "같이", 함께 어울려서 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부정할 수 없는 "특기"입니다.

러시아인들은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최근의 역사가 너무 판이하게 다른 만큼 집단 행동에의 단련의 정도도 다른 거죠. 한국의 1980-90년대가 민주화와 소득 향상, 중산층/고학력층 주도의 사회 형성의 시기라면, 러시아의 1980-90년대는 소련의 쇠락과 몰락, 빈곤화, 원자화, 그리고 사회적 공동체의 해체 시기입니다. 소련 시기의 주된 공동체란 일차적으로 직장 공동체이었습니다.

특히 광산이나 대공장에서는 노동자 사이의 연대력은 아주 강했습니다. 한국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 못지 않았죠. 그러니까 고르바쵸브 지도부 몰락의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은 바로 1989년 쿠즈바스 광산 노동자의 대규모적 파업과 같은 노동 계급의 집단 행동들이었습니다. 폴란드만큼은 아니지만, 소련 노동자들도 연대, 단결에 능한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들이었죠.

한데 1990년대의 탈공업화, 공장 폐쇄, 정리 해고 등 속에서는 이 과거의 직장 공동체는 상당 부분 해체됐으며 일부는 역학 관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련에서는 현장 노조 위원장의 동의 없는 해고는 불가능했는데, 1991년 이후의 러시아에서는 공장 지배인들에게 비교적 쉬운 해고라는 가공할 만한 무기가 생겼습니다. 지배인과의 갈등에 따를 "대가"가 엄청 높아진 거죠. 거기에다 1990년대에 공장 임금이 하도 낮았기에 많은 노동자들이 개인 텃밭이나 장사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직장 공동체를 이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가 결국 각자도생 (各自圖生)에 골몰하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들의 모래더미 같은 집합체 된 것입니다. 각자도생에 여력이 없는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에게는 누군가와 연대해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할 만한 시간과 에너지부터 부족합니다. 거기에다 사회적 신뢰의 수준도 아주 낮은 편입니다.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아주 오랜 친지 이외의 "타자"들에 대해서는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불신"부터 합니다. 사회 활동가를 보면 "모종의 개인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를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부터 해보는 게 러시아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어떤 집단 저항도 오랫동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침략 전쟁에 대한 저항이 비교적 강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물론 전쟁에 대한 저항력의 저하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다른 이유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공업의 상당 부분이 군수 공업이라는 점, 군수 공장들의 노동자들이 전시 동원 면제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 등도 감안해야 하고, 국가주의 담론에 원자화되고 각종의 실망과 환멸에 지친 신자유주의 시대 러시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포획되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있습니다.

한데 이런 기본적인 "집단 행동에의 단련" 같은 사회적 습관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그런 단련이 이루어지려면 지금 심화돼 가는 푸틴의 독재와 노동계급의 충돌, 그리고 기층민들이 대중적으로 참가하는 민주화 운동이 필요할 것입니다. 계급 모순들이 경향적으로 심화돼 가는 만큼, 아마도 가까운 10-20년 사이에 노동 계급과 푸틴주의 정권이 분명 언젠가 크게 부닺칠 것이라고 저는 예상합니다. , 지금 당장에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죠.

(기사 등록 20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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