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박노자]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 하마스와 좌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11. 15.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스라엘이 평화 지향적 국가가 될 수 있는가?

저는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지금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1988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일환으로 1970-80년대에 이민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최초로 일시적 '귀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입국 비자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냉전 시대의 적국인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으로 이민 간 이들은 "사회주의 조국 배신자"로 여겨져 한 번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곤 했는데, 냉전이 점차 해소돼 이런 '귀환'이 가능해진 겁니다.

그 때에 이렇게 '귀환'해서 만나게 된 사람은 어머니 친구의 친척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소련을 떠나 이스라엘로 간 그는,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강변하고, 그를 만나러 온 다수의 소련 유대인들에게도 "조국 이스라엘"로의 "귀국" (aliyah)을 권고했습니다. "나는 소련 군대에서도 복무해보고 이스라엘 군대에서도 복무해 봤는데, 전자에서는 흑빵과 죽을 먹었지만, 후자에서는 바나나까지 거의 매일 식탁에 오르더라"와 같은 말은 주요 논거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전부 수입품인 바나나는 그 당시 소련에서 귀중품이었던 만큼 이런 논거가 통하기도 했던 시대이었죠. 한데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스라엘 군 복무해본 그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경멸이었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을 지칭했을 때에는 "저 오랑캐", "저 야만인"이라는 말을 계속 썼습니다. 40대 후반의 얌전한 엔지니어 아저씨가 이런 인종주의적 표현을 써대는 게 솔직히 상당한 위화감을 낳기만 했습니다.

그 뒤에 소련은 망국을 향해 가게 되고 수많은 친척과 친구, 지인 등이 이스라엘로 이민 갔습니다. 실로 아주 다양한 구성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암 전문의 의학 박사와 힌디어 강사가 있었는가 하면 허벌라이프 장사, 즉 다단계 판매를 하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이스라엘에서 잘 정착돼 이스라엘 사회의 안정한 중상층으로 편입되었는가 하면, 일부는 표류를 했으며, 한 명은 아예 러시아로 재이민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종족적 러시아인 부인과 함께 이스라엘로 간 그는, 그의 부인이 이스라엘 사회 편입에 계속 실패하는 걸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해 다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오고 말았습니다.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이 언급만 되면 "초강경" 발언이 계속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던 거죠.

팔레스타인 사람만도 아니었습니다. 베타 이스라엘, 즉 피부색이 흑색인 에티오피아 출신의 유대인들도 그들에게 의해서 종종 경멸적으로 언급되곤 했습니다. 대체로 교육, 교양 수준이 높고, 구소련에서 주로 지식인층 출신이었던 이들이 이렇게 수준 낮은 인종주의적 언어를 쓰는 것은 저로서 미스테리이었습니다. 이 미스테리는,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에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본 것은 그야말로 "여러 소사회로 이루어진 위계질서"의 사회이었습니다. 초종교적 유대인 (하레딤)과 아랍권 출신의 유대인 (미츠라힘), 서유럽 출신의 아슈케나짐과 1990년대 초반 이전의 "" 동구권 이민자와 최근의 동구권 유대인 이민자...이들 사이에 물론 교통이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인간 관계는 주로 하나의 출신 지역을 가진 커뮤니티 안에서 이루어지곤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데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 관계는, 여러 유대인 커뮤니티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멀고 멀었던 것 같았습니다. 유대인 전체에 비해 아랍인들의 상대적 가난은 눈에 띄었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는 빈곤율은 20%이하이었지만, 아랍인 중에서는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한데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아랍인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았던 것은 서안지구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공사장 등 고난도 저임금의 직장에서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누가 봐도 확실히 수직화돼 있는 여러 커뮤니티들의 '서열'로 보였습니다.

소련 출신의 1990년대 이후 이민자들은 "" 동구권 이민자나 구미권 출신의 유대인을 우러러봤지만, 본인들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미츠라힘이나 베타 이스라엘 등을 안하무인 격으로 대해도 된다고 종종 생각했습니다.

한데 서로 불평등하고 많이 다른 이 여러 커뮤니티들을 하나로 묶는 건 바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적대적 타자의 이미지였습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대적 타자화는, 불평등한 수직적 공동체인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죠. 마치 한국의 그 악명 높은 1990년대 이전의 "레드 콤플렉스"처럼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과연 언젠가 평화 지향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까요? 평화주의자인 저는,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살 길이 '평화와 공생'이라고 봅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끝없는 타자에 대한 적대성 배양과 억압, 살육 등은 인간다운 삶도 아니며 유대민족의 "우리나라"에 대한 숙원과도 사이가 너무나 멀기 때문입니다.

핍박 받는 민족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해방"을 원했던 19세기말-20세기 초중반의 그 수많은 유대인 좌파 운동가 등은, "우리나라 만들기"를 생각할 때에 대개 타자들을 억압하고 정기적으로 학살을 벌이는 군국을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데....이스라엘 수출의 구성을 보면 12%는 무기이며, 40%는 주로 군수복합체와 관계가 많은 기업들이 생산해내는 하이테크 제품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경제에서는 무기 생산과 군-민 양쪽에서 이용이 가능한 하이테크, IT 제품 생산은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선박처럼 "주력 부문"입니다. 군대는 다양한 이질적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를 통합시켜 주는 주된 메커니즘이고, 팔레스타인인과 관련된 "안보 의식", 그리고 그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적대 의식 등은 사회 결속의 기제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는 과연 그 체질을 평화 지향적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상상하기조차 힘든 "환골탈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평화 지향적 시민들은, 단순히 이번 학살의 정지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평화 본위의 "재건국" 수준의 사회 개혁을 요구해야 할 겁니다. 그런 "재건국" 아니면 이스라엘은 오늘날과 같은 학살 주범이 아닌, 정상 국가로 다시 태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마스를 지지한다""좌파"를 보며

레닌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으며, 어떤 부분들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레닌의 "전위 정당"이 결국 노동자 계급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설 여지는, 처음부터 "전위 정당론"을 만들었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전위", "지도" 내지 "영도", 결국 주로 지식인 출신이나 "직업적 혁명가" 등으로 구성된 당의 상근자/간부 집단이 그 지지 계급보다 애당초부터 더 우월적 입장에 선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것도 그렇고 1917년 이후 멘셰비키 등 그 좌파적 반대자들을 레닌이 다루었던 방식은, 결국 차후 스탈린 독재 시절의 정적 탄압으로 이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한데 레닌주의에 내재돼 있었던 "권위주의의 맹아"를 논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레닌은 전략과 전술의 천재이었으며, 그가 그 당시의 각종의 정치 세력들에 대해서는 늘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았습니다. 레닌은 중요한 판단 오류를 범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게 그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었습니다.

레닌은 1904-5년 러-일 전쟁 국면에서 일본의 승리와 자국 러시아의 완패를 적극 희망했습니다. 이미 혁명적 상황이 거의 조성된 러시아에서 전쟁 패배야말로 가장 완벽한 혁명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는 그의 판단은 명중했습니다.

그는 1914년 제1차 대전 국면에서도 - "민주 국가 프랑스"를 지지한다고 밝힌 그의 한 때의 스승 플레카노프와 달리 - 양쪽 진영을 똑같은 "제국주의 깡패"로 보면서도 자국 러시아 패배와 제국주의 전쟁의 계급 전쟁으로의 전환을 외쳤습니다.

패배의 가능성이 어차피 높고 계급 전쟁이 곧 터질 확률이 높았던 그 당시의 러시아에 대해서는, 이건 딱 맞는 전략이었습니다. 19182-3월에 브레스트 강화 조약의 강도적 조건을 일단 수용한 것도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천재적 판단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등지를 점령한 독일군은 어차피 이미 서부 전선에서는 미국의 참전 등으로 패배를 당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한데 우크라이나나 발틱지역의 독일군에 의한 임시적 점령은, 혁명을 보다 효율적으로 탄압할 수 있었던 연합국의 군이 그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게끔 하는 작용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코민테른이 창립된 1919년부터 식민지 등 주변부 국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적 민족주의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 역시 20세기 중후반의 탈식민화를 가능케 만든, 그야말로 세계사를 바꾼 용단이었죠. 역시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을 제대로 내면화한 천재만이 이런 판단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하면서 하마스의 행동을 무비판적으로 응원하는 자칭 "좌파"를 볼 때마다 레닌의 마르크스주의적 판단력이 그리워집니다. 하마스가 107일에 저지른 행위 (예컨대 영유아 살해, 여성에 대한 살해/납치/성학대, 노인 살해, 민간인 납치, 3세계 노동자 살인 및 납치 등)나 그런 행위에 대한 "지지"의 도덕성 여부 등을 떠나서, 하마스 행동에의 열광은 중동에서의 진보적 변혁을 이끌어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가능성을 더 축소, 차단시키기 때문입니다. 일단 하나하나씩 "하마스 지지론"의 문제점을 논의해보겠습니다.

하마스 (하라카트 알 마가와마 알 이슬라미야, 즉 이슬람 저항 운동의 약칭)은 이집트 등의 "이슬람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로 시작한 운동입니다. 1988년에 발표된 그 헌장을 보면 "계급" 같은 단어들은 아예 보이지 않으며 세속주의는 ''으로 명기돼 있습니다. 그 목적은 "이슬람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을 빼앗은 유대인의 시온주의 집단을 궤멸"시키는 일이라고 나옵니다.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 "자선"이나 "상호 공제", 즉 부자들에 의한 "시혜" 이외에는 하마스가 바라는 부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애당초 하마스를 은밀히 키운 것은, 그렇게 해서 좌파 지향, 친소련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려 했던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후원자들은 소련과 소련 진영의 국가 (북한 포함)이었다면 하마스의 후원세력은 현재 절대 왕권의 왕국인 카타르와 신정 국가 이란, 그리고 신권위주의 국가 터키입니다. 하마스의 지도자 격인 이스마일 하니예는 지금 카타르에서 거주하고 있는 백만장자입니다.

그 지도부의 다른 구성원들도 그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하면서 엄청난 규모로 치부한 것입니다. 하마스는 2006-8년에 가자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집권하고 나서 그 어떤 선거도 치루지 않았습니다. , 가자지구 주민들이 하마스의 결정이나 행동에 민주적으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반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 등은 거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죠.

2023107일 하마스의 공격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백해무익 그 자체이었습니다. 그 공격이 초래한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 및 침탈로 이미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1만 명 넘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이 공격과 전시 상태 선포로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운동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었는가 하면, 사법제도 개악 등으로 이미 민심을 다 잃은 네타냐후의 극우 내각은 그 정치적 생명이 연장됐습니다.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는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들이 엄청나게 위축되고, 그렇지 않아도 계속 줄어갔던 정치적 좌파의 영향력은 더 줄어 우경화가 가속화됐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국회에서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정당 (하다쉬-, 노동당 등)의 의원들은 120 의석 중의 9석만 차지하는 거고, 이번 공격과 전쟁 상태로 좌파의 주변화가 더 진행되는가 하면, 팔레스타인/평화의 문제에 있어서의 중도 우파 등의 입장은 더 강경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번 공격이 초래한 것은 억압과 차별의 심화, 탄압의 가중화, 평화 프로세스 전망의 당분간의 증발, 그리고 그나마 연대가 가능했던 파트너인 이스라엘 좌파의 약체화 등입니다. 그걸 가지고 우리가 "지지"해야 한다는 건가요?

반대로 이 공격으로 "득점"한 쪽은 이란과 러시아 등 미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열강들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쟁자이며 지역 강국인 이란의 입장에서는 전시 상태 선포와 부분 동원 등이 부른 이스라엘 경제에의 손실은 당연 "플러스"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굴욕은 지역 전역에서 친이란 세력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죠.

터키에서도 에르도완 정권이 "팔레스타인 투쟁 지지"를 선언하면서 경제 위기로 이탈했던 민심을 회복했는가 하면, 러시아에서는 푸틴은 미국의 주의와 자원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사이에 분산되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틈을 타서 우크라이나 영토의 추가적 강탈을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는 이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응이 부른 것은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교섭의 중단과 사우디의 (러시아와 연대해서 실시하는) 석유 생산 감산 조치의 지속, 즉 고유가 유지 정책의 지속인데 이건 석유를 팔아 전쟁 자금을 마련하는 푸틴에게는 "하늘의 선물" 격입니다. 도대체 위와 같은 이번 사태의 결과들 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나 진보주의자들이 "지지"하고 "응원"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고통을 당하고 사력을 다해 저항을 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좌파의 지지는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에 가자에서의 공습, 침탈, 학살 중지를 요구하는 것 역시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을 더 가중시키고 그 투쟁과 평화적 해결의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든 하마스의 폭거를 "지지"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좌파로서는 실격에 해당됩니다.

좌파로서 논리적으로는 이스라엘 좌파의 힘을 키우는 데에 도움을 주고, 차후 진보 쪽으로 민심이 바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에서의 모종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게 맞을 것입니다. 하마스의 행동은 역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게끔 한 것이죠.

이 행동에 득을 본 것은 이란과 터키, 러시아의 지배자들입니다. 하기사, 우리들의 자칭 "좌파" 중에서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우크라이나 영토 강탈까지도 - "반미"인 이상 - "진보적으로" 해석한 사람들까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정말 이럴 때마다 레닌의 판단력이 그리워질 뿐입니다.

(기사 등록 2023.11.15)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