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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선한 지도자",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1. 2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국가를 "잘못" 만나서일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그러고 싶어도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 즉 지배자들의 선의나 지혜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들의 행동에는 근시안과 대단히 단기적인 집단 사익, 아니면 아주 단순한 사리사욕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1980년대에 어린 나이에 최초로 접한 국가란 몰락해 가는 소련이었습니다. 12-13만 명의 소련 군인들이 아프간에서 필패의 침략 현장에 가 있었으며 월남에서의 미군 못지 않게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 때에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이 침략의 배경에 아프간에서 새로운 무기를 실험해보고, 전시 특수를 이용해 증산을 하고 있었던 소련 군수 복합체의 욕망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적 국제주의" 따위가 그냥 그 욕망을 합리화하는 데에 들어가는 립서비스 정도이었다는 것도, 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페레스트로이카의 폭풍 같은 정치 풍경을 보면서, 저는 고르바쵸브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는 민주주의도 "레닌적 사회주의"도 아닌 서방의 자본과 기술부터 필요했다는 것을 전 분명히 보고 있었습니다.

한데 저들은 당국가의 생명을 지속시킬 만한 지혜마저도 부족해 결국 나라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옐친 때의 정치의 본질이란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해 일확천금의 치부를 도모하고 있었던 각종 자본세력들의 로비, 고급 관료들의 자본가화와 자본과의 유착 등이었다는 점을, 백치가 봐도 당장에 알아차릴 수 있었죠. 하기야, 그 당시 지배자들의 선의나 지혜를 믿었던 사람이란 러시아에서는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푸틴의 등장 초기, 1999년부터, 저는 이 사람이 본인의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한 두 명이든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수십만 명이든, 수백만 명이든, 그저 필요한 만큼 사람을 죽이고서도 하등의 가책을 못느낄 것이라고 봤습니다. 19999, 러시아에서 모스크바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고층 아파트들이 폭파되고 당국이 그 원인을 "체첸 분리주의자"들에게 돌리자, 전 결국 이 폭파 사건과 재차 체첸 침략 피해자들의 시체를 딛고 푸틴이 권좌에 올라 이제 절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아파트 폭파가 되고 그 소식이 러시아 뉴스에서 나왔을 때에 저는 그 당시에 출강했던 외대의 지역대학원에서 제 대학원생 학생들과 함께 그 뉴스를 외대의 교실에서 봤습니다. 그 때 신임 총리의 자격으로 폭파 현장을 찾아 "체첸인에게의 응징"을 다짐했던 푸틴의 기고만장한 표정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결국 제2차 체첸 전쟁의 수십 만 명의 희생자들의 시체를 밟아 푸틴이 왕좌에 오르고 나서도 살인은 계속해서 그 정치의 주된 수단으로 이용돼 왔습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에서는 다수 빈민들의 분노를 정권에 무난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 정권은 음으로 양으로 스킨헤드 등 극우 테러리스트들의 백색테러 활동을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1년에 극우들의 손에 죽는, 남북한인/고려인을 포함한 피해자는 적어도 40-50명이었습니다. 그 극우 집단들의 상당수가 2014년 이후에 "인종적으로 더 깨끗하다"는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자 그 때 비로소 경찰들에게 소탕을 당해 대부분 없어진 겁니다.

푸틴 정권의 유지, 지속이 계속해서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요구했었는데, 그 정권의 선의와 지혜를 믿는 러시아인들은 늘 60% 이상, 종종 80%이상이었습니다. 정말 "절망" 이외에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뭘 느낄 수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작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충격"이라 하지만, 제게는 하등의 충격도 아니었습니다.

여태까지의 푸틴의 캐리어, 제국 복구와 군수 공업 위주의 재공업화 전략의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던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데, 집권하고 나서는 거의 한달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어디에선가 전쟁, "폭도 소탕", "대테러전", "토벌", 그리고 각종의 대리전과 암살, 백색 테러단 활동에 대한 방치 등등을 해온 러시아의 통치자를 지지한다는 한국인들이 있다는 거야말로 좀 충격이긴 합니다.

, 한국의 상황으로 눈을 돌립시다. 제가 한국에 와서 교편을 잡은 건 김영삼 시절의 말기이었습니다. 김영삼을 지지하고 그 선의나 판단력 등을 믿는 사람을, 저는 마산이나 부산의 일부 동네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지만, 복합 위기 국면에 경제나 외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자신의 "자아", 즉 본인의 오만과 아집만 가지고 국가 운영을 시도하는 정치꾼이나 관벌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입니다.

반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그의 선의와 지혜를 백프로 신뢰해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전 제 주위에서 무지 많이 봤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김대중이 밟아온 길 역시 그 만큼 감동적 측면도 있었지만, 그들이 예컨대 "햇볕 정책"도 결국 북한을 남한 기업의 저임금 생산 기지로 만들 전략이라는 사실을 과연 인식 못하고 있었는지 전 가끔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햇볕 정책"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만큼의 비교적 주체적인 외교 전략이 한국 외교사에 거의 없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사실이지만, 김대중과 그 주변 책사들의 "계산"을 생각하지 않고 그 "선의"를 거의 종교적으로 믿으려는 태도는 좀 놀라웠습니다. 분명히 위대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걸 존중하면 되지, 굳이 "믿는" 태도는 정말 필요하나요?

"종교적" 태도의 결정판은 아마도 노무형 대통령에 대한 그 지지자들의 태도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조금을 해서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는 한국형 신자유주의의 착근, 심화의 시절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악법 (고용허가제), 비정규직 악법 등이 통과되었던가 하면, 부유층의 해외 부동산 구매 등 해외 투자 관련 규제가 풀리는 등 "최고 부유층 15-20%"의 삶은 윤택해져 갔습니다. 재야 운동과 시민 단체 출신들이 집권했다 해도, 경찰의 시위 진압 태도 등이 여전히 강경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위자가 죽고 다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구속 당한 노동 운동가만 해도 수백 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짱"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태도를 가졌던 이들은 이 모든 문제들을 "상황"이나 "기득권 체제의 불가피한 작용" 등으로 돌려 "우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흠모의 정"을 계속 표현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인간이 정말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 살 수 없나, 싶은 생각을 계속 했었죠. "좋은 지도자"에 대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어야 이 무정하고 무서운 세상이 덜 공포스럽게 느껴지고 소외감을 덜 느끼는 건가요? 인간은 정말 그렇게까지 심적으로 취약한 존재인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서거하신 지 이미 14년이나 되었습니다. 한데 그 후의 일들도 그저 과거의 오류들의 '무한 반복'에 가까웠습니다. 극우들은 박근혜를 "아이콘"으로 받들어 왔는가 하면, 상당수의 자유주의자들은 지금도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시기의 각종 오류적 정책 등에 대해서 거의 시인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국정을 망치고 있는 "대통령"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 재임 시기에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많은 독실한 천주교인들도 더 이상 교황의 무오류성을 믿지 않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정치 지도자, 지배자의 선의나 지혜 등에 대한 과신, 맹신의 태도는 여전히 팽배합니다.

지배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란 "개혁" 등 우리가 바로는 일보다는 바로 그 지배의 공고화와 유지, 지속이라는 사실, 대부분의 지배자들에게 장기적 비전이 없다는 사실, 혁명을 통해 등장한 지배자가 아닌 이상 기득권층과 유착해 그 이해 관계를 알게 모르게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선한 지도자가 국정을 장악해도 밑으로부터의 압박, 압력이 없으면 그가 "개혁"을 추진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제발 좀 평상시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지도자"가 대선에서 이긴다고 해서 우리 삶이 돌연히 좋아질 리가 만무합니다. 가령 다음 대선에 이재명 등 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더 정상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온건 보수주의자가 집권한다 해도, 그가 유의미한 개혁 조치를 취하게끔 하자면 밑으로부터의 엄청난 대중적 압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저 지도자의 선의만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쪽박만 차게 되지요.

(기사 등록 202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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