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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전쟁, 계급, 그리고 죽음: 전사의 불평등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4. 2. 19.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전쟁이란 여러 모로 "진실의 순간"에 해당됩니다. 전쟁의 과정에서는 그 참전 국가들의 "실력"은 그대로 확인되고, 나중에 전쟁의 결과에 따라 각 국가에 비공식적 "랭킹"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는 전쟁에서 인간들 사이에서의 ""들도 바로 확연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전쟁은 인간 사회의 "계급성"을 심화시키며 가시화시킵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징병제의 근현대 사회에서는 전쟁에서 남성 사이에는 딱 두 가지 계급이 생기는 겁니다. 전장에 끌려가서 죽이고 죽는 상황에 놓여져야 하는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입니다. 평상시의 신분 차이는, 전쟁의 상황에서는 생과 사의 차이가 됩니다.

저는 가끔가다 제 가족사를 기억해봅니다. 제 외가쪽 할머니 한 친척의 남편은 소련 때에 지질학쪽에서 간부 생활하여 마지막 보직이 지질부 차관에 이른 적이 있었던 것이죠. 그는 본래 지질 탐사 전문가이었습니다. 1941622일에 파쇼들이 소련을 침략하자 그는 바로 그 날 낮에 이발관에 갔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군에 가서 전쟁판에 가야 할 터인데, 머리를 미리미리 팍팍 깎고자 했던 것이죠. 한데 머리를 깎고 병무청에 오자 그 귀에 "당신은 면제"라는 단어들이 들렸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우라늄 탐사 등의 "스킬"들은, 국가로서는 "총알받이"로서의 그 몸둥이의 가치보다 더 높았던 셈입니다. 결국 그가 살아남아서 나중에 전후 우라늄 등 이북 지역의 지질 지도 제작에 참여하느라고 북한 탐사도 갔었습니다.

만약 그 "스킬"이 그 정도로 높은 국가적 평가를 받지 않아 그가 19416월에 징병에 의해 보병으로 전선에 갔다면? 전체적으로는 소독 전쟁 때에 소련 군인들의 사망률은 약 32-33%이었지만, 1941년 퇴각 작전 때에 소련 보병 부대들의 사망률은 80-90%에 달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포병 등 기술력이 높은 부대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결국 "스킬"과 그 "스킬"에 대한 국가의 "인정"은 이렇게 생과 사의 차이를 극적으로 결정짓는 것이었죠.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가요? 양쪽을 봐도 지리적 위치성과 재력, 그리고 전문성 등 "계급적 위치"의 여러 요인들이 개개인의 생사를 여전히 갈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느 쪽도 그 인명 손실의 규모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사망률 등을 계산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의 전직 검찰총장에 의하면 한달에 우크라이나측 사망자와 중상자는 약 3만 명 정도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난 약 2년간 사망자/중상자 총수는 이미 적게 봐도 60만 명 가까이 갔을 것인데, 그 중에서는 사망자는 약 20만 명이라는 일부 서방 외신 보도는 아마도 어느 정도 취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망률은 약 20-25% 정도 될 것입니다. 한데, 징병 연령의 약 6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 그런 남성들의 출국을 불허하는 전시 동원 관련 법률에도 불구하고 - 현재 주로 서유럽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서방 외신의 보도에 의하면 병무청에서 "병역 면제"를 위한 서류를 만들어주는 값은 지역에 따라 6천달러에서 1만달러 정도까지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결국 1만달러, 1천만원의 보유 여부는, 한 남성이 살 것인가, 죽을 확률이 20-25%인 사지로 끌려갈 것인가를 갈리게 하는 것이죠. 러시아는 마찬가지로, "빈민 군대"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현재 통계에 의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부랴트 지역에서는 1만 명 남성당 전쟁 사망자는 이미 36명이나 되지만, 제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그는 2, 그리고 가장 부유한 도시인 모스크바는 1명 정도입니다. 부자들이 살기 좋은 푸틴의 제국은, 가난뱅이들의 시체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대한민국은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국 사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나중에 한국 사학계의 원로가 되신 분들이 6.25때에 뭘 했는가를 한 번 확인해 본 적은 있었지만, 사실 "참전"을 해서 나중에 사학과 교수가 된 경우나 현직 교수들의 참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대 등 학생들의 징집은 보류되어 학생증이 있으면 "생존"하는 데에 유리했는가 하면, 교수들도 이공계 등의 경우에는 군사 관련 연구 등에 강제로 종사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일반 징집을 대개 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사학 같으면 국방부 산하 전사 편찬위에서 이병도(李丙燾), 김상기(金庠基), 신도성(愼道晟), 이용희(李用熙) 교수 등이 그 위원이 되고, 그 밑에서는 김원룡·한우근·전해종·정병학·민석홍 등이 실무를 맡아 "전선 근무" 대신에 사학자로서의 "본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전시에 그 위원회에서 근무한 이들은 한국 사학의 "주력 부대"가 된 거죠.

그런데 과연 학계뿐인가요? 예컨대 법조계나 기업계에서 과연 참전해서 전사한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결국 목숨을 내놓고 치루어야 하는 최전선에서의 전쟁은 마찬가지로 전문성과 재력 등이 없는 가난뱅이들의 몫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혹시나 이북과의 어떤 국지적 무력 갈등이 일어나면 그 사망자 명단에는 재벌 임원이나 법조계 유력자들의 자녀들의 이름이 보일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는 한국의 노동자나 영세민들에게는 남북 관계 개선을 주도할 후보에 투표해서 "평화"를 기대해보는 것은 그 계급적 이해관계에 훨씬 더 맞는 일일 겁니다. 한데 여태까지 저소득층의 유권자들이 오히려 "평화 노선"과 인연 없는 극우를 찍는 경우들을 너무나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만큼 "조직"이 되지 않는 대중들에게 그 계급적 이해 관계를 자각하기가 힘든 일이죠

(기사 등록 202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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