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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잘 들으면 들리는 동물 재난기 - 영화 <플로우>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5. 6. 30.

최태규(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시사IN>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시사인과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속 세계에서는 물이 차오른다. 세상이 물에 잠기는 재난 영화다. 주인공은 동물들이다. 고양이와 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동물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걸 보면, 이 공간의 설정은 인위적으로 동물을 모아둔 곳이다. 카피바라와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는 전세계 동물원에서 인기리에 전시하는 종들이다.

이 주인공들은 배를 타지 않고 지나가는 동물로 묘사되는 사슴, 토끼와 달리 야생동물로서의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로 상징되는 인간 문화에 의존해서 생존하려는 이들은 진짜 야생동물을 위협(사슴)으로 느끼거나 먹이(물고기)로 본다. 서로 다른 종들이 인간적으로 서로 돕거나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에 애착을 갖는 동물이라는 설정은 인간화된 동물을 그린다. 관객들은 그렇게 분리된 동물설정을 통해 주인공인 동물들과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온전히 동물의 이야기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인간의 이야기에 동물을 상징과 비유의 도구로 등장시키는 여느 영화처럼 <플로우>도 동물이 갖고 있는 본질적 특성을 다분히 임의적으로 삭제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동물의 모습을 동원한다.

영화가 가장 세심하게 그리는 주인공 고양이는 현대인이 좋아하는 고양이의 (취약한) 모습을 내내 드러내며 관객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등장하는 개떼 중에서도 특히 현대 사회의 정서적 취향에 최적화된 리트리버는 공놀이를 요구하는 숨소리마저 우리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그들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너무 걱정된다.

반면에 대중 관객은 나머지 주인공들이 원래 어떤 동물인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면 공감도 어렵다. 그래서 동물원에서나 만나는 나머지 야생동물 주인공들은 온라인 밈과 상징 체계 속으로 들어가 인간 군상을 표상한다. 현실에는 한두 마리가 다니는 뱀잡이수리를 조폭처럼 무리 지어 우두머리가 조직원을 린치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키기도 하고, 카피바라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 가득한 성자처럼 동원된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패물에 집착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먹지도 못하는 걸 모으는 특성은 여우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종에서나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야생동물을 멸종시켜 온 동물원 산업이 이러한 동물의 대상화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혹여나 영화의 인기로 아직 한국에 없는 뱀잡이수리를 신규 도입하려는 동물원이 나오거나, 서울대공원에서 전국의 유사동물원에 흩어 내다버린 알락꼬리여우원숭이를 다시 데려오겠다는 소리를 할까 걱정된다.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는 인터뷰에서 관객의 상상을 열어놓기 위해 배경 설정을 정확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간 곳곳에 남은 인간 마을의 흔적은 가까운 과거에 인간이 집단으로 떠났다는 배경을 암시한다. 물이 급격하게 차고 빠지는 장면에서 유추하건대, 이 영화의 설정은 수몰지로 보인다.

수몰민을 쫓아낸 땅에 거대한 댐을 세우고 물을 채우는 과정은 실제로 딱 이 영화처럼 동물에게 일어나는 재난이다. 감독의 의도대로, 동물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잠시 느껴보기에 좋은 영화였다. 어쩌면 이제, 쫓겨나는 사람보다 쫓겨나는 동물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인가 싶기도 하다. 다만 땅의 주인이 어떤 동물인지 영화가 더 고민해줬으면 좋았겠다.

영화평들은 대사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 같다. 대개 대사가 없는데 알아듣겠다는 평이다. 영화에는 정말 인간의 음성 언어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의 설명 방식이 인간의 문법을 벗어났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현대인에게 감정적으로 익숙한 고양이와 개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몸짓과 소리로 이야기를 통역한다. 음향과 음악은 어느 동물보다 인간이 잘 이해하는 서사를 펼친다. 그러면 우리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알아듣는다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존재할까? 우리는 동물에게 일어난 재난을 몰라서 댐을 지어대는 것일까?

(기사 등록 202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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