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D. 팔머(Bryan D. Palmer)
언제나 노동계급은 강탈의 다양한 형태에 의해 분열되어 왔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강력함은 집단적인 힘에서 나온다. 이 글은 임금노동과 작업장을 중심으로 보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서 더 포괄적인 관점에서 계급과 계급투쟁을 분석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 글의 저자인 브라이언 D. 팔머는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주요 저서로 <혁명적 팀스터: 1934년 미니애폴리스 트럭운전사 파업>(Revolutionary Teamsters: The Minneapolis Truckers’ Strikes of 1934)가 있다. 번역해 준 김민재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https://www.jacobinmag.com/2015/07/palmer-marx-precarity-class-struggle/
2011년 이집트 혁명에서 주역이었던 청년 실업자들
노동계급이란 무엇인가? 비교적 간단한 질문이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관계”를 강조하며 계급을 잉여가치의 착출과 임금관계의 관점에서 정의한다. 이게 틀린 것은 아니다. 잉여가치와 임금관계는 계급과 계급투쟁에서 핵심적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에는 계급의 의미와 형성, 그리고 계급투쟁의 총체성을 작업장 내부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독해는 더 넓고 더 적절한 전망이 복원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와 계급은 강탈로 시작되었다. 정통 정치경제학과의 논쟁에서, 마르크스는 계급 체계로서의 자본주의의 비밀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에 기초한 ‘자본의 시초축적’에 있다고 주장했다. 농노든 선원이든 장인이든 원주민이든 간에 인류의 다수로부터 그들의 생산적 능력과 생계 보장 수단을 강탈하는 것이 계급 형성에 핵심적이었다. 수탈은 “피와 불의 문자로 인류의 연대기에” 새겨졌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임금관계 그 자체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강탈, 즉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리는 가혹한 과정에 의해 정의된다.
현대의 불안정 노동의 특수함, 그 독특한 계급적 지위, 그리고 좌파를 재건해야 할 강령적 필요성에 대한 오늘날의 모든 논의를 고려해 볼 때, 이 지점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적 특수성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불안정성이 언제나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의 몫이었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이에 상응하여, 계급투쟁은 오직 그들이 얼마나 억압받는지 혹은 얼마나 심하게 착취당하는지를 막론하고, 빼앗기는 이들 전부가 차이를 넘어서서 하나 될 때에만 진전되고 성공한다.
임금관계를 강탈이라는 긴 서사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계급과 계급투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킨다. 따지고 보면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의)”라는 용어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고대에 흔히 쓰이던 말을 응용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고대의 계급투쟁은 고대 그리스에 대한 드 스테 크루아(G. E. M. de Ste. Croix)의 기념비적인 연구[<고대 그리스 세계의 계급 투쟁>]에서 능숙하게 개괄된 바 있다.
로마 제국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는 재산으로부터 분리되고 규칙적인 임금을 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사회 계층을 지칭했다. 1819년 장 샤를 레오나르 드 시스몽디는 “궁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공공 자선에 의지하기 때문에 초래되는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을 자세히 기록한 자신의 정치경제학 저술에서 이런 배경을 끌어다 썼다.
시스몽디는 “사유재산이 없는 이들은 아이를 낳는 일을 맡았다: ad prolem generandum(아이 낳는 무산자란 뜻의 고대 희랍어로 추정)”라고 썼다. 막스 베버도 비슷하게 논평했다. “벌써 16세기부터 농촌 인구의 프롤레타리아화는 많은 수의 실업자 집단을 초래하여 영국은 빈민 구호의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힐이, 17세기에 다양한 사회경제적 압박에 의해 토지로부터 쫓겨나 직업 없이 방랑하는 다수에 대해 묘사했을 때도 이런 맥락이 있었다.
영국 농촌의 겉보기의 안정 밑에는, 눈을 끄는 드넓고 평화로운 탁 트인 들판 밑에는, 숲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사람들, 떠돌이 장인들, 건설 노동자들, 일거리를 찾고 있는 실업자 남녀들, 유랑극단들과 마술사들, 행상인들과 돌팔이 의사들, 떠돌이들, 부랑자들의 들끓는 이동이 있었다.
그들은 특히 대도시에 모여 들었을 뿐 아니라, 교구 조직에서 벗어난 새로운 점유지나 또는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많은 구 점유지도 발판으로 삼았다. 바로 이 지하 세계에서 군인들과 선원들이 모집되었고, 인구가 포화된 영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자유로운 토지 보유권 (그리고 그와 함께 오는 지위)을 얻기 위한 희망에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절박한 사람들인 아일랜드와 신세계 정착민들의 일부가 나왔다.
마르크스는 이런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으며, 수탈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해는 계급 형성, 식민화, 갈등에 대한 개념적 해석의 틀이 되었다.
이는 그의 1840년대의 저작에서 명백하다. 여기서 계급 형성과 고통의 근본 토대로서의 강탈이 강력하게 나타나고,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 당대의 부르주아 사상을 완전히 넘어서는 명확함을 보여 주면서, 마르크스는 적대 계급들이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싸우는 사회경제적 전쟁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노동자 집단을 모집하는 것을 통해서보다 내쫓는 것을 통해 이길 수 있”게 되는지를 파악했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은 실업자, 일하는 사람(the workingman)이 이런 노동관계 외부에 있는 한 그를 인식하지 못한다.” “건달, 사기꾼, 실업자, 기아에 시달리고 비참한 범죄자인 일하는 사람(workingmen) - 이들은 정치경제학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의사, 판사, 묏자리 파는 사람, 그리고 집달관의 눈에만 보인다. 이 사람들은 그 영역 밖에서는 유령들이다”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또한 강탈당한 이들이 겪는 처지에 대해 상당한 공감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의 “빈민에 대한 대우의 야만성”에 대한 성토와 “노동자들이 구빈원의 노예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에 대한 인식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구빈원을 “궁핍을 처벌하는 곳”이라고 이름붙였다.
이처럼 “잉여”로 지정된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것이, 역사유물론의 분석적 지향의 상당 부분을 고무하고, 오직 자본주의 사회질서 전체의 변혁만을 요구하는 정당한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이다.
오늘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이 주류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마르크스도 불평등에 대한 존중받을만한 논의로서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이렇게 길들이는 것은 “과잉인구”를 만들어 낼 자본의 권리에 대한 혁명적 거부를 회피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피케티는 이 근본적인 강탈을 우회하고, 자본에 대한 과세를 제안하며, 터무니없이 부유한 자들로부터 가져와서 사회의 주변부로 부를 재분배해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복지를 확실히 보장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자본주의가, 특히 남반구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을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 핵심 국가들에서는, 임금을 받는 이들과 받지 못하는 이들 모두의 사회보장제도와 권리들이 필연적으로 계속 잠식되어 가는 것 역시 완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권리들은 비록 제한적인지만,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몇 세기 동안 계급투쟁을 하며 어렵게 얻어 낸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재분배는 그 자체로 강탈을 몰아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모든 프롤레타리아화의 근본에 있는 강탈은 축적을 지탱하고, 이는 수탈과 이 모든 과정을 한층 더 강화하며, 다시 가차 없는 계급투쟁을 만들어 낸다.
강탈의 과정 속에 배태된 계급투쟁은 그래서 단편적인 해결책이 옆으로 치워버릴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본과 재통합시켜야만 하는, 자본으로부터 놓여날 수 없는, 스스로를 다양한 자본가 개인들에게 판매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그 노예화가 가려지는, 다수 노동력의 재생산, 이러한 노동력의 재생산은 사실 자본 그 자체의 재생산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증가이다.”
강탈당한 자들의 몫에 대해 기록한 19세기 중반의 논평가는 마르크스뿐만이 아니었다. 마르크스, 엥겔스와 대략 같은 시기에 런던의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저작을 낸 헨리 메이휴(Henry Mayhew)는 강탈이 어떤 식으로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특징이 되는지를 강조했다.
메이휴가 보기에 고용시장은 유행이나 우연에 기초한 계절적인 일거리와 직업들에 의존했고, 값싼 종사자들이 초과노동과 날림으로 하는 일에 의해 처리되고 있었다. 임금을 억제하기 위해 여성과 아동이 특정 수작업에 도입되는 노동희석([역자] (영국)숙련이 필요 없는 일에 임시로 비숙련공이 투입되는 일)으로 인해 끊임없이 변화했고, 기계와 관리상의 혁신으로 인해 재구조화되었다.
토지에 기반을 둔 관계의 해체와 마을 수공업의 파괴로 인해 대도시로 모집된 임금노동자들은 언제나 극심한 한계 속에서 요동치는 노동시장의 비인간적 규율과 싸워야 했다. 메이휴는 안정된 고용은 대략 150만 노동자들에게만 가능했고, 추가적인 150만 명에게는 반일제 일자리만 생겼고, 나머지 150만 명은 완전히 실업상태이거나 그 영역에서 특별한 일이라고 여겨지는 누군가를 대체하는 경우에만 가끔씩 일거리를 얻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한 묶음의 불연속적인 현상들”을 “노동계급들”로 묶어서 지칭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P 톰슨(Thompson)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그것이 정말로 산업혁명과 1790~1832년 재산 소유자들의 반혁명의 용광로에서 형성된 하나의 노동계급이라고 주장했다.
두 역사적 과정들 모두 부르주아지에 의해 강제로 지배당했거나 실제로 부르주아지가 실시한 것이었으며, 둘 다 자신의 삶에서 점점 더 재산과 권력을 강탈당하던 사람들에게 의존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겨누었다. 계급은 “가장 다양한 직업과 기능 수준 속에서 … 이해관계의 동질성”을 구성했고, 이 모든 요소들을 “일종의 기계”처럼 만들려는 시도에 대한 적대감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계급은 언제나 내부 분화, 불안, 그리고 불안정을 수반해 왔던 것이다. 강탈은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곤경을 정의한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강탈당할 수는 없고, 그러한 물질적 소외의 과정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탈은 일반적으로 프롤레타리아화를 개시하고, 정의하고, 심화시키고, 확장시킨다. 이는 고용 수준, 임금 수준, 지위, 보수를 받는 일자리, 혹은 무보수의 정도를 막론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새겨진 은유적인 카인의 표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노예 반란, 고대 로마 평민들의 봉기, 농민 봉기, 식량 폭동 그리고 군중의 도덕경제와 관련된 대중 소요가 모두 1848년과 1871년의 19세기의 혁명들, 그리고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시작되는 20세기의 혁명과 나란히 놓일 수 있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발전 상태는 각각 독특하고, 중요성과 역사적 결과에 있어서 차이를 보일지라도,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이라는 지점에 있어서 연결되어 있다. 이들 모두의 시작은 전부 강탈과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적대와 갈등을 요동치게 만든 것과 관련있다. <공산당 선언>의 구절에 따르면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동업 조합의 장인과 직인, 요컨대 서로 영원한 적대 관계에 있는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 왔다. 그리고 이 투쟁은 항상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므로 강탈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는 계급 형성의 현실을 구조화한다. 오늘날에 그렇듯이 1300년대에도, 1700년대에도 그랬다. 자본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에 동력을 얻기 위해, 노동을 재조직한 것은 강탈에 대한 불만을 강화했다.
1960년대에 C. L. R. 제임스(James)의 미국인 공동연구자 마티 글라버만(Marty Glaberman)은 산업 하나하나에서 계급관계가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끊임없는 재편성 속에 작업장 안팎으로 그들을 이동시키는 자동화가 지배하며, 그 결과는 종종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해고라고 지적했다. 노동의 이러한 상황 악화는 1974년에 노동과정에 대한 해리 브레이버만의 영향력 있는 저작인 <노동과 독점자본>의 주제가 되었다.
마르크스의 이후 작업은 강탈과 자본주의 위기 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자본론> 1권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부의 증가가 “노동계급의 절반이 초과노동을 함으로써 나머지 절반이 강제된 실업 상태를 선고받는 것”에 기초해 있으며 “사회적 축적의 진전과 상응하는 규모로 산업예비군이 생성되는 것”을 가속화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프롤레타리아는 그러므로 임금을 받는 그들의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유동적, 잠재적, 정체적”이라고 이름붙인 ‘상대적 과잉인구’의 가능한 형태에 따라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축적은 또한 노동의 축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맬서스적인 증식이 노동계급 전체가 임금을 받을 것임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은 구호빈민의 영역이다. ... 구호빈민의 수는 공황시에는 언제나 증가한다 ... 구호빈민은 현역노동자군의 폐인수용소이며 산업예비군의 고정구성원이다. 구호빈민의 생산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생산에 포함되어 있으며, 전자의 필연성은 후자의 필연성에 포함되어 있다. 구호빈민은 상대적 과잉인구와 더불어 부의 자본주의적 생산 및 발전의 전제조건을 이룬다.
계급투쟁을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은 남반구의 계급투쟁을 보는 새로운 실마리를 준다. 존 벨라미 포스터, Robert W. McChesney 그리고 R. Jamil Jonna가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지면에서 지적했듯이, 현대 제국주의와 세계적 규모에서의 자본 축적의 가차없는 진행은 세계적인 산업예비군의 양적인 팽창과 질적인 변혁을 낳았다. 이 것을 예측했다는 점에서 계급을 보는 마르크스의 관점은 시대를 훨씬 앞서가 있었다.
이러한 거대한 예비군은 이제 수 억 명에 달하며, 자본이 여기서 축적욕구를 채우며 산업예비군이 확장되었듯이 강탈당한 이들의 비참함의 차원 역시 확장되었다.
그러므로 생산수단과 노동생산성이 생산적 인구보다 더 급속히 증가한다는 사실은, 노동인구는 언제나 자본이 자기 자신의 증식을 위해 그 증가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보다 더 급속히 증가한다는 정반대의 형태 속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설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이 축적되는 것과 비례하여, 노동자의 몫은, 그의 급료가 높든 낮든, 더 나빠진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한쪽 극에서의 부의 축적은 그러므로, 동시에 반대쪽 극 다시 말해 자본의 형태로 스스로의 산물을 생산하는 계급의 쪽에서의 비참함, 고생스러운 일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야만화, 정신적 퇴보의 축적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최근에 세계적 산업예비군이라고 불릴 만한 수치가 이제, 완전히 임금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약 14억 명의 노동자들보다 더 커졌다고 추산했다. 이 예비군은 약 2억1천8백만 명의 실업자들과 “취약하게 고용된” 것으로 지칭된, 천문학적인 수치의 17억 노동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 예비군의 상당한 부분이 임금을 받지 못하며, 개발도상국의 빈민촌(favelas, barrios, and shantytowns)에서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는, 주변적인 가내경제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부문은 임금의 안정성 같은 것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들에게 임금의 안정성은 불가능하거나 간헐적으로만, 불규칙적이지만 항상 제한된 유급노동의 묶음으로만 획득된다. 그리고 무급노동, 쓰레기통 뒤지기, 그리고 생계를 위한 분투 속에서의 여타 노력들과 같이 묶여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거리에 있는 3백만 명의 릭샤[인력거의 일종] 끄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자. 방글라데시의 수도이자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인 다카에서는 20만 명의 릭샤 꾼(rickshawallah)들이 있다. 그들은 반어적으로 이름 붙여진 “신의 도시”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의류부문의 심각한 저임금 층의 뒤를 따라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고용 부문을 구성한다.
하루에 30마일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경찰(그 고압적인 부패가 그들의 릭샤를 파괴하는 방식의 추가적 강탈로 그들을 위협한다), 질식할 것 같은 오염,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교통상황과 싸우는, 겉보기에는 자영업인 ‘푼돈 자본가’들은 점점 커지는, 하루에 1달러도 못 되는 돈으로 생존하려고 분투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의 산업예비군을 대표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그가 “세계적인 비공식 노동계급”이라고 부르는, “슬럼가 인구와 중첩되지만 동일하지는 않은” 사회경제적 계층이 이제 수치상 10억을 넘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그리고 가장 유례없는 사회계급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데이비스는 세계의 도시 빈민에 대한 그의 논의를 “불길하고 멈추지 않는 이중주”라는 통렬한 요약으로 끝맺는다. 우리는 그것을 강탈이라는 충격적이고 꺾이지 않는 무도곡이라고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밤 말벌 같은 무장 헬리콥터가 슬럼가의 좁은 거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추적하며 판잣집이나 도망치는 차에 불의 공격을 퍼붓는다. 매일 아침 슬럼가는 자살 폭파범과 강렬한 폭발로 이에 대응한다. 제국이 전체주의적인 억압 기술을 사용한다면, 거기서 쫓겨난 이들에게는 혼돈의 신들이 있다.
자본주의는 지금 세계의 노동계급을 더욱 더 격렬한 폭력으로 타격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주기적 위기는 노동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오히려 파괴하려고 혈안이 된 무기를 구성한다. 수탈의 위계질서에서 그들의 자리가 무엇이든 간에, 생산력에 대한 소유권과 분리된,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대한 소유권과도 분리된 전 세계의 대중은, 계급투쟁을 임금과 작업장의 착취 너머로 확장하여 강탈과 재생산 영역에 더 직접적으로 중심을 두는 세계로 가져올 수밖에 없다.
확실히, 노동은 고용된 노동자들이 자본을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곳, 노동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곳에 있기를 거부함으로써 자본과 싸울 수 있고 싸워야 한다. 이러한 착취의 지형도에서 철수하는 것은 파업이라는 전통적인 무기이다. 하지만 강탈당한 노동은 또한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닌 곳에 있음으로써도 자본과 자본에 부역하는 국가에 맞서 싸울 수 있다. 이것이 점거라는 무기, 자본과 통치기구의 이익에 적대적인 공간, 장소, 시간을 점유하는 무기이다.
임금노동자들과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하나 되게 하고, 생산의 전선과 재생산의 전선 모두에서 저항하는 것, 이것이 미래에 확장되는 계급투쟁의 임무이다. 임금과 작업장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요구수준을 높여서 대중교통, 주택, 아이 돌보기와 보건, 교육, 그리고 그 이상의 동원까지도 포함시킬 것이다. 강탈당한 이들은, 강탈에 대한 서로 다르지만 집단적인 경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럴수록, 분할지배에 효과가 있었던 자본주의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대한 오랜 충성심도 깨질 것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지속은 이제 그런 부스러기들이 더 적어졌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덜 효과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서 생산만큼이나 파괴에 토대를 둔 병든 체제 라는 새롭고 가속화되는 인식이 강탈당한 자들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이들의 수, 가시성, 그리고 고통은 긴축정책으로 채울 수 없는 요구와 함께 매 주가 지나갈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물질적인 현실이 착취당한 자들과 억압당한 자들이 저항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쇠락의 객관적인 조건에 국한된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주관적이기도 한데, 노동계급 지도력과 의식의 실패이다.
이는 연대해서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것의 중요성을 올리고 있고, 그런 투쟁이 이뤄져야만 한다. 우리 시대에 강탈당한 자들의 계급투쟁은 노동계급의 이 부분 혹은 저 부분이 각각 개별적이고 고립된 전선에서 싸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임금이 높든 낮든, 일자리가 비교적 안정적이든 아니면 불안정하고 위태롭든, 전체로서의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와 그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출몰하는, 점점 더 파괴적으로 되어가는 강탈이라는 유령에 힘을 합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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