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얼마 전에 세상을 등진 고 신영복 선생님의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애도를 불러일으켰다. 깊이있고 큰 여운을 남기는 그 분의 생각과 글과 글씨뿐 아니라, 독재정권에 의해 20년 간 감옥에 갇혀야 했던 비극적 삶이 안타까움을 더했을 것이다. 성공회대 다니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 나도 참 겸손하고 따듯했던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고종석 씨가 ‘통혁당은 조작이 아니었고 이 나라 민주화와 상관없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 단체였다’며 추모 분위기를 매도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고종석 씨가 한때 종북몰이를 비판하기도 했던 사람이라서 더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종북몰이’의 효과와 자기검열이 얼마나 뿌리깊은 문제인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통혁당 사건이 터져나온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영복 선생님 등 탄압받는 사람들과 선을 긋고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피해자 가족들이 도움을 청하러 가면 시민사회의 행사에서도 싸늘한 냉대와 외면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웃과 세상은 선생님을 기억에서 지우고 선생님을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완강히 부인했으며, 88년 특사로 풀려난 이후에도 과거의 인연을 맺고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피했습니다.”(김동춘 교수)
고 신영복 선생님은 20년을 살고 나와서도 가석방 상태에서 활동의 제약과 주장의 검열을 당해야 했다. ‘감호경찰서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주거지를 이전하거나 10일 이상 여행을 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나 시위, 기타 활동에 참가하거나 이를 지지·성원하는 경우에 가석방이 취소’되기 때문이었다.
또 보안관찰법 때문에 ‘3개월마다 주요활동 사항, 통신·회합한 다른 보안 관찰처분 대상자의 인적 상항과 그 일시 장소 및 내용, 그리고 여행에 관한 사항도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되는 처지에 놓여야 했다. 고 신영복 선생님 자신도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북’이라고 하면 바로 조용해져요. 더 이상 논의가 진전이 안 돼요. … 그냥 한마디로 끝이에요. 더 이상의 논의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아주 마법 같은 정치용어가 역모, 종북, 이런 거거든요. … 제가 종북 좌파의 배후 같은 그런 강한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겠지요. 저도 그 부분을 일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감시와 통제의 무게는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재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 신영복 선생님은 투옥 초기에 강압 속에서 전향서를 쓴 적이 있고, 출옥 이후에도 많은 사상적 변화를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은 죽음 이후에도 우파들뿐 아니라 고종석 씨 같은 사람에 의해서도 사상에 대한 재단과 매도를 겪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최근에 가장 심각한 마녀사냥이었던 이석기 의원과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하고 있는 종북몰이와 비교하게 된다. 이석기 의원과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피해자와 그 지인, 가족들이 지난 몇 년 간 겪은 어려움과 고통도 엄청난 것이었다.
특히 이석기 의원은 9년의 형기 중 이제 2년이 지났을 뿐이니 그 고난이 끝나려면 아직 멀어 보인다. 근래 검찰은 ‘선거비용 사기’라는 억지혐의로 1년형을 추가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이석기’는 종북의 상징이 돼 있고,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거나 방어하는 사람까지도 혐오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식 자유주의, 유럽식 사민주의, 심지어 나처럼 트로츠키주의를 지지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혐오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흔적만 보여도 얘기가 달라진다. 고종석 씨는 며칠 전에도 <경향신문>에 ‘종북몰이’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도 앞부분은 ‘종북몰이에 동참한 일부 진보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결국 ‘진짜 종북은 나부터 배척할 것’이란 방향으로 나간다.
“저는 지금의 북한 체제를 고금동서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체제는 절대악에 가깝습니다. … 북 체제에 너그러운 사람들이 통진당의 다수파라고 제가 판단했다면 … 저는 당연히 통진당이 위헌정당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북한에 대한 사상만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포용되기 어렵다’는 한국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좌파의 한계가 다시 드러난다. 다른 여러 사상에 대해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열린 토론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답이 정해져있고, 상대방의 머리 속을 쉽게 재단하고 제약해도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분파적 동기와 결합되면서 국가 탄압에 순응하게 되면 특히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최근 이상규 전 진보당 의원이 쓴 회고 글에서 드러난 심상정 의원의 태도가 그것을 보여 준다. 2012년 이석기 의원이 ‘경선부정’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종북몰이와 결합돼 마녀사냥이 한참일 때이다.
“심대표는 분당논거도 명쾌하게 일갈했다. ‘내가 당대표가 된 들, 대선후보가 된 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기자들이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는 이석기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말만 할텐데 … 내가 이석기 당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이석기가 나가지 않는다면 내가 나가는 게 맞다’ … 굶주린 이리떼에 둘러싸인 위기상황에서 집밖으로 이석기 의원을 쫓아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굶주린 이리떼는 검찰이다, 내쫓기면 이리떼에 물려 죽을 테지만”
이석기 의원이 경선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은 나중에 사실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도 아니었던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석기 의원의 실제 생각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당장 ‘종북’의 상징이 돼 있는 그와 선을 긋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이렇게 증언한다.
“문제는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로 소급할 수 있다. … ‘종북몰이’ 시작은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당시 진보언론을 포함한 모든 언론은 통합진보당 경선비리가 매우 심각하다며, 특히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맹비난했다. … 평등파의 언론플레이에서 진실을 확인하지 못한 … 언론계에도 종북몰이라는 마녀사냥에 휩싸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 이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서 언론의 태도에서 다시 반복됐고 … 그 결과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은 하나하나 유린됐다.”
2012년 당시 한국 사회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은 '종북몰이'의 희생자들과 선 긋기 바빴다.
이런 종북몰이와 마녀사냥은 지금도 우리를 옥죄고 있다. 얼마전 ‘효녀연합’으로 큰 주목과 지지를 받은 홍승희 씨에 대해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이렇게 공격했다. “홍승희는 통합진보당 강원도당 학생위원장을 했다. … 홍승희는 이석기 전 의원 구명운동을 했잖나. 그러면 홍승희도 이석기 추종세력이지.”
이런 공격에 주춤하고 굴복하고 주변에서도 선을 긋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결국 종북몰이는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또다시 우리는 분열·마비시킬 것이다. 하지만 홍승희 씨의 대응은 당당했다.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산당했다.”
이것이 답이다. 이재화 변호사도 말했듯이, 우리는 침묵하고 ‘종북 새장’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해법은 단 한 가지다. 정면으로 싸우는 것뿐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당원이었던 나는 당시 광기어린 분위기에서 이석기 의원 제명 시도에 침묵했고, 오히려 그것에 손을 들어줬었다. 명절 때 만난 가족과 친척들에게 ‘나는 이석기와 생각이 다르고 통합진보당에서도 얼마 전 탈당했다’고 변명하기 바빴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게 된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마녀사냥 속에서 한 야당 의원은 꼬리를 자르며 “지금 상황에서 진실이 뭐가 중요해”라고 말한다. ‘종북몰이’가 일으킨 광풍도 경선부정이, RO가, 내란음모가 사실인지 아닌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http://savelee.kr/)회원이다. 다른 분들도 힘을 보태주길 권하고 싶다.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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