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성폭력 사건과 공동체적 해결

성폭력 사건과 공동체적 해결

상처 치유와 신뢰 회복의 길을 함께 찾아가자

 



전지윤(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이 글은 지난 2월 29일 <성폭력 사건과 공동체적 해결 - 성인지적 객관성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발표된 토론문이다. 80여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참가해서 성공적으로 진행된 이 토론회에 대한 후속보도도 곧 올리겠다. 발제문과 나머지 토론문 전체를 묶은 자료집도 첨부한다.]


성폭력공동체해결토론회자료집.pdf

   




먼저 이번 토론회의 공동주최 기회를 얻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대안을 찾는 모임 담쟁이동지들과의 세미나와 이번 발제문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담쟁이의 의미있는 문제의식에 자극과 도움을 얻은 내용과 일부 견해 차이 등을 반영해서 이 토론문을 썼다. 또 여기에는 그동안 토론자의 소속 모임 동지들과의 토론에서 배운 점들이 많이 반영돼 있지만 모임을 대변·대리하는 것은 아닌 개인의 생각이다.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폭력은 누군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진보좌파 진영은 대체로 성폭력이 단지 몇몇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억압적 사회체제의 산물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회구조에 온전히 떠넘길 수 없는 개인의 책임을 잊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여성차별적인 이 사회와 구조 속에서 누구도, 당연히 진보좌파 진영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것은 성폭력이 주변 사람들, 나 자신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잘못을 범할 수 있는 문제라는 뜻이다.


누구든 피해자가,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은 최근 몇 년간에도 거듭 드러나 왔다.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실천하던 사람도 얼마든지 잘못할 수 있다는 게 드러났다. ‘우리 단체는, 저 동지는, 나는 그럴 리가 없고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는 확신은 무너져 왔다.


많은 경우에, 그 패턴은 비슷했다. 성폭력이 일어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처는 곪아간다. 잘못된 대처 속에서 피해자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가해자까지도 끝없이 더 큰 상처를 받으며, 더욱 감정의 골과 불신을 키워나가게 된다. 환멸과 냉소가 번져 나가고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씩 멀어져 간다.


이런 일들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지에 대한 갑갑함과 의구심이 쌓여 왔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을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진 운동·조직과 무관한 문제로 보는 것도, 어차피 운동적 해결은 가능하지 않으니 법적 소송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손을 놓는 것도 옳지 않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수한 상처와 불신 속에 진보좌파 진영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만을 낳는다.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우리 내부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들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위로부터의 부조리와 억압에 맞서는 우리의 능력, 이에 대한 신뢰도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은 내 자신이 바로 위와 같은 일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커다란 잘못과 실수를 범하면서 더 깊어진 생각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상처를 겪은 피해자와 관련된 동지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리며, 자기비판적 돌아보기 속에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현재까지의 반성폭력 운동의 원칙과 실천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우선 진보좌파 진영이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에 대해 부적절하고 잘못된 대처를 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좌파 진영의 많은 단체들이 보인 잘못된 대응은 우리가 일반 사회나 기업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상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먼저 여성 억압과 반성폭력에 대한 일상적인 교육과 토론, 내부 규약 등이 미비하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단체 내부에서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성폭력을 겪은 사람이 즉각적인 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피해호소는 외면, 차단, 방해받기 쉬웠다.


그래도 고통과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아서 피해 호소를 하는 경우, 이제부턴 의도와 진실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를 호소한 사람의 과거와 약점 등이 들춰지면서, 2차 피해도 겪게 된다. 믿었던 동지들과 소속 단체에서 그런 일을 겪을 때 피해자는 무엇보다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가장 안좋은 것은 소속 단체가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법적 소송으로 발전하는 경우다. 보통 그런 소송과 재판은 피해자의 입을 막고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데 이용됐다. 피해자 가슴 속에서 상처는 더욱 깊게 패이고, 비슷한 피해를 가슴에 묻어 둔 사람들은 그걸 지켜보면서 역시나하면서 절망하게 된다.


왜 이런 양상들이 반복돼 왔을까? 여기에는 크게 4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먼저 진보좌파 진영도 여성억압적 사회구조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부족함을 보이기 쉬웠다.


둘째, 대개 계급투쟁과 노동해방, 반제국주의와 민족해방 등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과제라는 기계적인 관점·이론과 여성주의에 대한 경직된 태도가 억압과 차별 문제를 부차적으로 보거나 둔감하게 반응하도록 작용한 측면이 있다.


셋째, 여성주의와 반성폭력을 강조해 온 단체들도 막상 자신의 조직과 지도부에 타격이 될 만한 사건이 터지면 객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기 쉽다.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 조직을 더욱 성장·강화시켜야 한다는 나름의 좋은 의도가 앞선 나머지, 조직 건설에 해를 끼치고 약화시킬 수 있는 일을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내부적 민주주의의 부족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성폭력 사건이 구성원들 속에서 보고되거나 토론·평가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롭고 활발한 문제제기와 의사소통이 어려울수록 문제를 발견하고 오류를 교정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과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 ‘2차 가해등의 개념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먼저 성폭력을 단지 개개인들간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구조적인 문제이자 공동체의 문제로 볼 수 있게 했다. 일상적인 반성폭력 교육과 내규 등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운동 내에서 더 성평등적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성폭력 피해가 제기됐을 때 외면하거나, 묵살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귀를 기울이도록 만들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배려하면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기존의 여성차별적 사회 구조와 관점에서는 놓치기 쉬웠던 사실들을 볼 수 있게 했고, 피해자가 적대적 환경 속에 2차 피해를 겪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반성폭력 운동과 피해자 중심주의의 실천과 적용은 한계와 허점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다음과 같이, 그것은 대부분 기존의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관행에 대한 정당한 반발이 지나친 일면성이나 또 다른 편향을 낳은 경우로 보인다.

 

* 피해호소를 무작정 의심하지 말고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자는 태도가, 피해호소만으로 성폭력을 기정사실화하는 문제를 낳곤 했다. 피해호소인을 바로 피해자로 확정하고, 가해지목인을 바로 가해자로 유죄추정하게 됐던 것이다.

 

* 피해자의 감정을 배려하고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제기가,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에만 의존해 사건을 판단하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이것은 당사자가 불쾌하고 그렇게 느꼈다면 성폭력이라며 성폭력 개념을 자의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었다. 피해자의 의견과 요구를 무조건 다 수용하는 것이 성폭력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혼동도 있었다.

 

* ‘2차 가해와 더 큰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가,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작용을 했다. 2차 가해로 규정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입을 막고 침묵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 것이다.

 

* 이처럼 충분한 조사와 토론이 부족하다보니 막상 사건의 객관적 진상을 밝혀서 그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공동체 내 합의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가해자 개인만 비난·단죄하고 도려내는 것에 치중하기도 했다.


* 결과적으로 공동체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진 경우가 생겼다. 피해자가 진정으로 치유되지 못하고, 가해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공동체 내부의 건강성과 신뢰도 회복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쌓이자 역풍이 불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반성폭력 운동의 의의와 성과를 깍아 내리고, 성차별적이고 조직 보존주의적인 대응을 정당화하는 반응이 있었다. 공동체적 해결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맡겨두거나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게 뭐가 문제냐는 논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반성폭력 운동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존 반성폭력 운동의 의의와 문제의식을 먼저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성이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리고,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기 매우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진보좌파 진영도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반성폭력 운동은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그러므로 반성폭력 운동과 그 운동이 이용해 온 무기인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등을 비판하고 거부하기만 하거나, 한계와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 원칙과 개념은 분명히 가해자중심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과 피해자들에게 힘과 도움이 돼 온 게 사실이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장점, 성과를 흡수해서 계승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 한계와 약점을 메우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즉 더럽혀진 목욕물은 버려야하지만 아이까지 버릴 이유는 없다. ‘성인지적 객관성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돼야 한다고 본다. 즉 아이는 살리지만, 동시에 더러워진 목욕물은 버리려는 시도여야 한다. 나는 성인지적 객관성이란 개념과 용어가 새롭게 발전해 온 이런 문제의식과 내용을 담기에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물론 용어와 개념에 대한 해석 다툼으로 가져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 잘못된 해석과 적용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과 내용만 들어있다면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느냐는 부차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해 반성폭력 운동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원칙과 내용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 성폭력 예방 교육과 내부 규약 마련이 필요하다.


여성 억압에 대한 일상적인 관심과 토론을 유지하고 성인지적 문화를 만들어가려는 공동체의 노력은 중요하다. 지적돼 왔듯이 여기서는 피해자가 되지 않을 교육이 아니라 가해자가 되지 않을 교육만 가능하다. 그런 환경에서 성차별적 언행과 성폭력은 좀 더 억제될 수 있고, 성폭력 피해 호소와 시정 요구는 더 신속하고 부담없이 제기될 수 있다. 실질적인 예방교육과 내부규약의 도움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은 더 효과적으로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와 파장도 최소화해야 한다.

 

* 성폭력 피해자가 공개 폭로로 내몰리지 않도록 하고,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공동체 내부적 예방책과 제도, 절차가 미비할 때 곪던 문제가 공개 폭로로 나타나기 쉽다. 그럴 때 온라인 등에서 문제가 더욱 악화·변질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그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공개 폭로가 벌어지면, 막다른 길에서 벼랑 끝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피해호소인을 탓하고 책임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온라인 등으로 번지며 뒤틀리지 않게, 공동체 내부적 절차와 제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 성폭력 피해호소에 대한 성인지적 대응이 필요하다.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 중에 그것을 폭로하는 여성은 극소수이고, 거기에는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먼저 피해야 할 것은 거짓말이고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덮어놓고 의심·불신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심·불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호소인의 과거 행실과 피해자답지 않은 태도를 들춰내고 공격하기 쉽다


필요하고 합리적인 반응은 공감과 위로의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피해호소인이 대리인이나 조력자를 구하는 것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조심해야 할 것은 고통의 상대 평가. 더 심각한 피해가 많고, 더 중요한 쟁점들이 많다는 비교는 피해 호소를 가로막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 사건에 대한 성급한 규정을 피하고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곧, 피해호소를 곧바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덮어놓고 불신, 또는 신뢰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찾아나가는 게 필요한 일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도 온전한 진실을 밝혀내고, 그에 바탕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에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담당 기구나 대책위 등을 구성해서 신속하고 공정하게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밝혀나가야 한다. 피해호소인을 피해자, 가해지목인을 가해자로 규정하는 것은 그 다음이어야 한다.

 

* ‘2차 피해를 예방하고 규제해야 한다.


피해호소인의 과거와 사생활, 이성관계, 개인적 약점 등을 들춰내기, 피해 호소 과정의 실수와 오류 더 부각하기, 정파 갈등으로 몰아가기 등은 모두 2차 피해를 낳는다. 성차별적 편견에 의한 것이든, 실수·무지에 의한 것이든, 정파적 이익을 위한 것이든 심각한 상처와 고통을 낳고 사건의 본질을 왜곡·악화시키기 마련이다. 공동체는 이것을 분명히 예방·규제해야 한다


다만 건전한 토론과 문제제기까지 가로막으며 구성원들의 무관심과 침묵을 강제하진 말아야 한다. 가해자 선별의 의미가 강한 ‘2차 가해보다, 피해자 보호의 의미를 담은 ‘2차 피해개념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이유다.


* 가해지목인을 악마화하거나 방어권을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가해지목인에 대한 섣부른 단죄와 공동체에서 격리를 우선하거나, 온라인 등에서 인신비방이 번져가는 것을 방조하거나, 사적 보복과 폭력을 방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가해지목인과 주변 사람들의 거센 반발을 낳으며 문제 해결을 방해하거나, 성폭력 사건의 가해지목인을 지나친 여론재판의 피해자로 만드는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대리인이나 조력자를 두고 자신을 방어하고 변호할 권리를 포함한 가해지목인의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 물론, 이를 악용해 피해호소인에게 ‘2차 피해를 주거나, 입막음과 물타기를 위한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것은 가해지목인의 방어권으로 인정될 수 없다.

 

* 성인지적 접근과 객관적 진상 규명을 대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성폭력 사건은 여성차별적 사회 속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공평무사한 중립적 접근은 불평등한 현실을 정당화하기 쉽다. 이런 불평등과 차별은, 그것 때문에 고통 받아 온 사람들에게 더 많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좌파는 항상 착취·억압 당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차별적인 구조를 감안하며 어떤 행동이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고 해야 한다. 피해호소인이 처한 구체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런 성인지적 관점에서 객관적 물증, 정황 증거, 피해호소인과 가해지목인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객관적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 처벌에 머물지 말고, 교훈을 배우며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진상이 드러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해 진다. 그러나 가해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만 괴물 취급하며 도려내는 것은 겉으론 단호해 보이지만,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고 공동체적 해결과 거리가 멀다.


성폭력 사건은 공동체 내에서 보고와 토론의 대상이 돼야 한다. 어떤 사회구조와 공동체 내부 문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가해자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피해자는 무엇 때문에 고통받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함께 교훈을 배우고, 그에 따라 재발방지책이 마련·갱신돼야 한다.


물론, 보고와 토론은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보호하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또 다른 상처와 사건의 변질을 낳을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은 쉽지 않다. 피해호소가 묵살당한 후 피해자는 큰 상처를 안은 채 공동체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 속에는 불신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를 과감하게 도려냈지만, 피해자의 상처는 별로 아물지 않았고 공동체가 무엇을 배웠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서, 공동체 내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피해자는 상처를 이겨내고 운동과 동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해자도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진정성있는 실천 속에서 다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성적 억압과 차별을 더 깊이 이해하고, 비슷한 사건에서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사회 진보와 변혁을 위한 운동에 대한 냉소가 아니라 지지를 갖게 될 것이다. 부디 이번 토론이 진보좌파 진영이 함께 이런 문제를 돌아보고 더 건강하게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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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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