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정신장애와 심리적 문제 함께 하기>
- “마음 아파도 괜찮아” 집담회 후기
허승영
[지난 8월 23일에 정신 장애와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행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 “마음 아파도 괜찮아”가 열렸습니다. 아래 글은 이 행사의 후기로서 그날 있었던 발표와 논의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이 날 발표를 맡아서 유익한 말씀들을 해주신 라다님, 밀사님, 초롱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가와 발언 등을 통해 더 소중한 자리를 만들어주신 60여 명의 참가자 분들에게도 감사하며, 더 신속하게 후기를 올리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날 있었던 3분의 발표문은 아래 파일로 첨부합니다.]
지난 8월 23일 정신 장애와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행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집담회 “마음 아파도 괜찮아”가 열렸다.
많은 활동가들이 다양한 정신적 ·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기보다 부차적이거나 비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만 여겨졌다. 엄혹한 현실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심리적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사치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이 직면한 정신적·심리적 문제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행사는 활동이나 사회적 삶 속에서 얻은 정신적 · 심리적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돕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기획되었다.
이 행사는 총 3부로 나누어 열렸다.
1부에서는 전문가의 얘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전문가에게 다양한 정신장애와 심리적 문제의 양상과 대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전문가 패널은 여성주의 상담가인 라다님이 강연을 맡아주었다.
2부에서는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주변인들은 그 사람과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를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는 노동당 관악당협 활동가이자 8년 째 우울장애를 겪고 있는 밀사님과 심리학도인 초롱님이 패널을 맡아 주었다.
3부는 자유토론 시간이었다.
1부 – 전문가 강연
현재 활동가들의 심리적 문제를 연구한 논문은 3~4개 정도라고 한다.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다만 NGO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그 활동가들이 고된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스스로 감정을 심하게 억압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다른 부문의 활동가들에게서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활동가들이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딪히며 두려움, 슬픔, 좌절 등을 경험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활동 공간에서는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나약하다고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동지들을 나약하거나 의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 분위기 속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정신 장애나 심리적 문제들을 마주하고 고민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무엇을 정신 장애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4 가지 기준이 적용된다.
첫 번째는 적응적 기능이 저하되거나 손상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환경에 끊임없이 대처하고 적응해 나가는 생명체인데 그런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울 · 슬픔 등의 고통스런 감정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문화적 규범에서 일탈하는 것이다. 이는 한 사회의 문화적 규범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때로는 정치적 투쟁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네 번째는 통계적 기준에서의 일탈이다. 예컨대 지능의 경우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70 미만을 지적 장애로 진단하는 것이다.
심리적 어려움은 크게 신경증, 정신증, 성격장애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신경증은 현실적 판단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를 뜻하는 반면, 정신증은 주관적 경험과 현실을 구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뜻한다.
이 날 강연에서는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겪는 신경증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중에서 우울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관련 장애, 공황장애, 알콜 관련 장애, 간헐적 폭발 장애 (이른바 분노조절 장애)를 다루었다.
우울장애는 상실이나 실패를 의미하는 경험을 했을 때 발생한다. 활동가들은 상실과 실패의 경험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유병률이 훨씬 높다. 일반인이 3.7% 인데 비해 활동가들의 유병률은 남성이 19%, 여성이 27%다.
우울증의 경우 약물 치료와 인지 치료들이 주로 시행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이다.
“개인적, 집단적 의미를 발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를 발견하고, 집단의 문화, 삶의 가치, 이런 것들을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세상이 안전하고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따뜻하다는 믿음이 깨지는 경험을 했을 때 발생한다. 활동에서 안전이 깨지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많은 활동가들이 이런 문제를 경험한다. 이에 대한 치료는 길고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인내와 주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황장애는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활동하면서 불안한 상황들을 많이 겪게 된다. 경찰과 마주서면서 처음에는 두려움이 없다가도 어느 순간 주변에 경찰 소리만 들려도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알콜 관련 장애도 많은 활동가들이 경험한다. 억압된 감정을 술로 푸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알콜 관련 장애들이 발생하기 쉽다. 평소에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문화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간헐적 폭발장애(흔히 분노조절 장애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간헐적 폭발장애다.)는 좌절된 욕구가 있어 그것을 발산하고 싶을 때 혹은 수치심을 분노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느껴질 때 화가 나는 것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공동체에서 멸시 당하는 기분을 느낄 때 발생한다.
분노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분노는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노를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를 잘못 폭발하게 되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라다님은 마지막으로 개인의 내면이 환경, 사회구조, 상황, 문화, 시스템, 신체 등 다양한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겪는 정신 · 심리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사회적 요인, 조직 문화 등에 대한 성찰이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토론에서는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경험과 고민들과 그에 대한 라다님의 답변들이 이어졌다.
2부 당사자 세션 - 밀사님 발표
2부 당사자 세션은 8년 동안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밀사님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밀사님의 발표는 정신 장애를 겪고 있거나 겪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이 정신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은 가장 먼저 ‘병식’ 수용 및 파악을 해야 한다. 병식이란 자신이 병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한다. 병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과잉과 인정 사이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것은 점차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신만의 병식을 잘 만드는 것은 정신장애에 잘 대처하기 위한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병식을 세운 다음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병원을 찾아야 한다. 가까운 병원을 찾아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적절한 약물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등을 복원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약물의 경우 사람들마다 작용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담당의사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상의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 생활 속에서 증상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약은 일정한 시간에 복용하는 것이 좋으며 임의로 약을 끊는 것은 증상을 악화시키고 병의 재발 및 만성화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하루 중 햇볕을 쬐거나 산책을 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져보는 것이 좋다. 또한 식사, 수면 등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
생활 관리에서 정기적 치료도 중요하다. 이 때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의사나 상담자가 미덥지 못 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치료자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치료 저항을 뜻하는 징후일 수도 있다. 이때는 치료자에게 죄책감을 갖지 말고 솔직한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 좋다. 그 얘기를 듣고 치료자는 적절한 피드백을 하고 조치를 취할 것이다. 만약 치료자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치료자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작은 습관들을 만들어 가는 것 역시 필요하다. 우선 정신의학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자신의 병에 대해서 잘 이해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증상이나 기분 등을 기록에 남김으로써 증상들이 어떻게 발현되고, 삽화(episode : 질환의 증상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사건)의 전조는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두면 이후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때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다. 계획을 세울 때는 수면과 식사, 햇볕 쬐기 등 일상적인 습관을 만들어 가는 단기적 계획부터, 병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미래를 설계하는 장기적 계획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세워둘 필요가 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자살 예방 센터나 119 등 연락할 곳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또한 평소에 자해 도구 같은 것들을 치워두는 것도 좋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중요한 것이 주변 사람과 공동체의 역할이다. 우선 정신 장애 당사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병을 알리고 지지자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둘러싼 공동체는 그 사람이 나약해서 그렇다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또한 정신장애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취급해서도, 시혜의 시선으로 봐서도 안 된다. 그는 신체적 장애와 마찬가지로 질환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특정한 감각이 더 발달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동체는 그 사람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
2부 당사자 세션 - 초롱님 발표
밀사님의 발표에 이어 초롱님의 발표가 이어졌다. 2부는 당사자의 주변인의 입장으로 정신장애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고 케어할 1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당사자 주변인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사자가 처한 정신건강 이슈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가장 먼저 당사자가 더 나은 병식을 갖기 위해 독려해야 한다. 그 후 적절한 시기에 치료 및 상담을 권할 수 있다. 그 다음 당사자의 정신장애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공유하고, 조직 차원에서 지속 가능한 활동을 모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처음 동지의 정신 장애를 알았을 때 이런 식으로 대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SNS 등을 보고) 걱정했어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 해볼 수 있을까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면, 누구와 대화하는 것이 편하겠어요?”
“동지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을 동지의 가장 가까운 보호자(부모나 파트너 등) 와 이야기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문제를 겪을 때 누가, 어떻게 도움을 주었어요?”
이때 당사자가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럼에도 천천히 자기가 생각할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A. 당사자가 조직에 필요로 하는 케어 및 지원
B. 주변인으로서의 걱정과 지지
C. 당사자 동지에게 조직과 다른 동지들의 지원이 가능하며, 정신 건강 문제는 전문가를 통해 치료/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
D. 당사자 동지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돌봄 및 지원
E. 당사자 동지와 함께 하기 위한 조직 차원의 계획. 이 때 주의할 점은 당사자를 정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도 충분히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동지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논의를 함께 하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 차원에서는 정신 건강과 관련한 사실들을 모든 구성원에게 교육해야 한다. 이는 정신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막기 위한 기본적 조치인 동시에 공동체의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이다.
이 발표에 대해서는 이후 한 가지 피드백이 있었다. 예방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비슷한 행사가 열린다면 그 문제와 관련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을 듯하다.
2부 질의 응답과 토론
원래 계획은 2부 질의 응답 후 3부 자유토론으로 이어질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길어진데다 토론의 성격이 강한 질문들이 많이 나와 2부 질의 응답과 3부 토론은 통합되어 진행되었다.
먼저 약의 효용성과 위험성에 토론이 이루어졌다.
약은 단일 치료방법으로 효과가 가장 빠를 수는 있지만, 약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현직 정신과 간호사의 지적이 있었다. 특히 한국의 상업적 의료체계나 부실한 의료 교육시스템 때문에 환자가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약을 처방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약이 맞지 않는다면 담당 의사와 솔직하게 상담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병원을 바꿔 보는 것도 좋다는 조언이었다.
물론 약물 치료에 대해서 지나친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 약이 필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약을 지나치게 맹신해서는 안 되며 생활 관리나 상담이 병행되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에 대한 초롱님의 대답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는 정신질환자 당사자 동지를 비판에서 제외시키지 않는 것이 그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장애를 비판할 필요는 없습니다. 폭발장애가 있는 동지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경우, 비판의 대상은 약자인 여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지 폭발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신장애가 있는 동지의 행동들을 명확히 비판하되, 그 비판의 화살이 정신장애를 향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개인이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일으키는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논의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1부 패널이었던 라다님의 기여가 컸다.
“조직의 문화도 개인이 심리적 문제를 표출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여성이나 힘없는 사람의 경우 주로 우울로 표현되는 반면, 남성이나 힘 있는 사람의 경우 주로 분노로 표현됩니다. 심리적 문제를 조직의 문화와 구조 속에서 함께 보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조직적 문제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조직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데 해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밀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병의 계기가 확실할수록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보조적인 기능은 해줍니다. 좀 더 오랫동안 버티게 해주는 것이죠. 자신이 좀 더 생존할 수 있고 싸움을 지속할 수 있는 도구로써 작용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어 라다님이 논의를 이어갔다.
“(그 경우) 조직이 바뀌고 조직이 책임지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조직이 바뀌지 않고, 가해자가 책임지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는 내가 겪었던 감정, 상처, 잃어버렸던 통제력 등을 다시 만나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간접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가해) 당사자에게 피해 당사자가 하고 싶은 목표를 현실적으로 정하고 시뮬레이션을 거쳐서 전달하는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가해자는 책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인지한 상태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경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문제가 개인에게 남겨진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내밀한 이야기들이 많아 이곳에 옮길 수는 없을 듯하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큰 의미가 있어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한 명의 참여자로서 그날 용기 있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가 주었던 분들께 몇 말씀 전하고자 한다. 한 명 한 명의 아픔을 들을 때마다 글쓴이 역시 가슴 아팠고, 전체 운동 공동체의 일원으로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그 모든 분들에게 항상 응원하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면 함께 하겠다는 약속 또한 전하고 싶다.
정리
이번 행사에는 60여 명이 참여했다. 기획단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은 숫자였다. 생소한 행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을 그 만큼 운동 진영에서 정신적 · 심리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거나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행사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더 깊은 좌절을 느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친구(동지)가 SNS에 죽고 싶다고 남긴 것을 보고 한잠도 자지 못하고 막막한 절망만을 느낀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행사로 운동진영 내에서 정신적 ·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많이 부족했으며 앞으로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나누기에 3시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못 다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기획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글쓴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함께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1부에서 라다님이 PTSD 설명 말미에 한 말을 인용하며 이 취재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그 고통을 통과했을 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고난과 역경을 겪고 나면 자신이 몰랐던 강점과 잠재력을 알게 되기도 하고,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이나 외상이 가져오는 성장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16.9.10)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anotherworld.kr/164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케어는 한국어로 돌봄이라고 번역되지만, 의미가 다소 다르다. 영어에서 케어는 “주의깊게 살핀다.”는 의미다. 한국어에서 ‘돌봄’이라는 단어가 뉘앙스 상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에 위계가 느껴지는 감이 있어서 이 글에서는 케어라고 표현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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